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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 균열의 방아쇠 (172/326)

  < 171. 균열의 방아쇠 >

  171.

  "이해가 가지 않는군. 그나이우스와 다르다고 하면서 그와 조금도 다르지 않은 제안을 하는 게."

  클레오파트라의 냉소적인 대답에도 섹스투스의 태도는 흔들리지 않았다.

  그는 클레오파트라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 담담하게 입술을 뗐다.

  "오해십니다. 말씀드렸지만 저는 마르쿠스 총독님과 적대할 마음은 없습니다. 상식적으로 형이 그렇게 자폭을 해준 덕분에 제가 이 위치에 서게 됐는데 같은 일을 할 리가 있겠습니까."

  "그럼 자네의 말을 내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구체적으로 무엇을 협력하자고 하는 거지?"

  "저는 아버지에게 쿠시와 악숨 두 속주를 안정화하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지금 나름대로 소기의 성과를 거두고 있다고 자신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괜찮지만 앞으로 괜찮을 거라는 보장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미래의 일은 단순히 저 혼자 잘한다고 어떻게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파라오께서도 제 말의 의미를 이해하시리라 믿습니다."

  클레오파트라는 잠시 말없이 섹스투스의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았다.

  그는 탐색하는 듯한 여왕의 눈초리에도 여전히 당당함을 잃지 않았다.

  찔리는 것 따위는 하나도 없다는 기색이 확실히 느껴졌다.

  "이웃 국가와 사이좋게 지내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하네. 게다가 이집트는 로마의 동맹국. 쿠시와 악숨은 로마의 속주지. 굳이 총독 대행인 자네가 직접 오지 않더라도 원활한 관계를 유지하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하는데."

  "······."

  "애초에 단순히 그런 이야기였다면 아르시노에가 함께 있었어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겠지. 본심을 말해주지 않으면 난 어떠한 답도 들려줄 수 없네. 물론 자네를 신뢰할 수도 없고."

  섹스투스는 입맛을 다시며 한동안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누가 듣고 있을까 봐 불안해하는 게 아니라 그저 마음을 안정시키기 위한 행동의 일환이었다.

  이윽고 깊게 숨을 들이마신 그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아르시노에 님에게 이 이야기를 드리지 않은 건 협상의 대상으로는 클레오파트라 님이 더 적합하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 ···실례되는 말씀일 수도 있지만 아무래도 아르시노에 님은 완전히 마르쿠스 님에게 종속된 듯 보였으니까요."

  "그렇게 판단한 근거는?"

  "안티오키아에서 제 나름대로 유심히 분석했습니다. 마르쿠스 총독님을 바라보는 아르시노에 님의 표정엔 절대적인 신뢰와 애정이 드러나 있었고, 그걸 숨길 생각조차 없어 보였습니다. 그러니 제가 어떤 제안을 해도 바로 마르쿠스 님의 귀에 들어가겠죠."

  클레오파트라가 어이없다는 어조로 반문했다.

  "나는 그렇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적어도 협상의 여지는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다면 사람 잘못 봤네. 나도 아르시노에와 크게 다르지 않거든."

  "저는 마르쿠스 님과 척을 지라는 요구를 하는 게 아닙니다. 어디까지나 저희의 협력을 외부로 발설하지만 말자는 것이죠. 이건 배신도 뭐도 아니지 않습니까."

  섹스투스의 목소리에는 조금씩 숨길 수 없는 초조함이 묻어나왔다.

  클레오파트라는 알 수 없는 위화감을 느꼈다.

  폼페이우스 가문의 차기 후계자이자 수많은 클리엔테스를 거느리게 될 그가 어째서 이렇게까지 이집트의 협력을 구하는 것인가.

  그녀는 일단 단번에 거절을 하는 것보다는 섹스투스의 진의를 캐내는 게 좋겠다고 판단했다.

  "일단 내용을 들어보고 결정을 하겠네. 원하는 게 뭔가?"

  "귀국에도 결코 나쁘지 않은 제안입니다. 일단 전면적인 경제 협력을 통해 양국의 물류를 한층 더 수월하게 했으면 합니다. 나일강과 홍해를 이용한 해상 무역로를 지금보다 한층 더 개선시키는 거죠."

  "홍해를 자유롭게 이용하는 것은 우리도 바라는 바이긴 한데···굳이 이걸 비밀로 해야 하는 이유는?"

  "경제적인 협력은 1단계에 불과할 뿐입니다. 궁극적으로는 제가 있는 속주와 이집트가 하나의 국가처럼 서로를 도왔으면 합니다. 어차피 저희도, 이집트도 서로 간의 도움이 없다면 나일강과 홍해를 완벽히 사용할 수 없지 않습니까. 저희는 악어와 악어새 같은 관계가 될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섹스투스의 제안은 터무니없는 헛소리는 아니었다.

  분명 클레오파트라에게도 도움이 될 만한 이야기이기는 했다.

  "경제적인 협력은 이쪽으로서도 대환영이라네. 하지만 하나의 국가처럼 서로를 돕자는 이야기는 조금 걸리는군. 쿠시나 악숨이 외부의 위협에 노출될 만한 일이 현재로서는 없을 텐데? 홍해 건너편도 로마에 의해 정복될 테고 남쪽과 서쪽에는 아무것도 없지 않나."

  "재차 말씀드리지만 상황은 고정된 게 아니라 언제나 변화하기 마련입니다. 저로서는 아프리카의 국가들이 흔들리지 않는 평화를 누렸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한 치의 악의도 느껴지지 않는 목소리였다.

  클레오파트라는 거절도, 승낙의 말도 하지 않았다. 일단 좀 더 생각해 보겠다고 말한 뒤 섹스투스를 물러가게 했다.

  '섹스투스가 저러는 이유가 뭔지 좀 더 알아봐야겠군.'

  그녀는 섹스투스가 알현실을 떠나자마자 신하들을 불러 정보를 모으도록 명령했다.

  "섹스투스의 최근 동향과 쿠시, 악숨의 현 상황과 정세를 상세히 조사하고 나에게 보고하도록. 어떤 사소한 점도 놓쳐서는 안 되니 명심하게."

  클레오파트라의 허락을 이끌지 못한 섹스투스는 알현실 밖을 나와서 발끝으로 바닥을 툭툭 쳤다.

  안쪽에서 뭔가 부산한 움직임이 느껴지는 걸 봐서는 여왕이 뭔가 명령을 내린 게 확실해 보였다.

  어차피 한 번에 일을 성사시킬 수는 없다고 생각했으니 크게 아쉽지는 않았다.

  그래도 그는 초조한 마음을 완전히 떨쳐내진 못했다.

  시간이 얼마나 더 남아 있을지 현재로서는 확신할 수가 없었던 까닭이다.

  "그렇다고 내 입으로 사정을 줄줄 말할 수는 없으니···제길, 사람 골치 아프게 하는군."

  짜증 섞인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자리를 떠나려던 그때, 섹스투스는 근처에서 시종들과 수다를 떨고 있는 옥타비우스의 모습을 발견했다.

  섹스투스는 불쾌한 기색을 숨기지 않은 채 그에게 걸어가 물었다.

  "자네도 이집트에 있었나?"

  "오랜만에 뵙습니다. 저는 두 분 파라오의 배려로 알렉산드리아에서 관광 겸 휴양을 즐기는 중입니다."

  "팔자도 좋군. 그런데 자네 설마 밖에서 내 이야기를 엿 들은 건 아니겠지?"

  주의를 기울여 라틴어로 대화를 나누긴 했으나 밖에 로마인이 있을 거라는 가능성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엿듣다니요. 제가 그럴 이유는 없지 않습니까."

  옥타비우스는 사근사근하게 대꾸했다.

  "전 여왕님께 도서관의 책을 더 가지고 갈 수 없냐고 물어보기 위해 왔는데 먼저 온 손님이 계시다기에 기다리는 중이었습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무슨 나일강 어쩌고 하는 소리가 들리긴 했는데 별로 관심 있는 주제가 아니라 귀를 기울이진 않았습니다. 남의 대화를 엿듣는 건 예의에 어긋나는 행위이기도 하고요."

  "그래? 그렇다니 안심이 되는군."

  섹스투스는 옥타비우스의 여리여리한 얼굴을 이리저리 훑어보고는 몸을 돌려 자리를 떠났다.

  옥타비우스에게는 보이지 않았지만, 섹스투스의 얼굴에는 미약한 조소가 떠올라 있었다.

  옥타비우스뿐만이 아니라 자신을 향한 비웃음이기도 했다.

  '아무래도 마음이 조급해져 있었나 보군. 저런 평민 소년 따위의 행동에도 과민 반응을 보이다니.'

  안티오키아로 향하던 배에서 멀미로 추태를 보인 옥타비우스의 모습이 아직도 그의 뇌리에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변변한 배경도 없고 신분도 고귀하지 않은 어린 로마인을 신경 쓸 이유는 어디에도 없었다.

  섹스투스가 주시하고 있는 대상은 어디까지나 구름 위의 존재들인 카이사르와 마르쿠스뿐.

  객관적으로 판단했을 때 자신의 또래에서는 그다지 주의해야 할 상대가 보이지 않았다.

  하물며 옥타비우스 정도는 그야말로 안중에도 없었다.

  최근에 마르쿠스의 제안으로 안티오키아에서 유학을 하고 있다는 말은 들었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옥타비우스의 미묘한 핏줄 때문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어쨌거나 옥타비우스는 카이사르와 친척 관계였으며, 마르쿠스의 가족이기도 했으니까.

  물론 그래 봐야 그 한계가 명확한 방계의 평민 출신일 뿐이다.

  무엇보다 몸도 유약하고 계집애처럼 예쁘장하게 생긴 외모를 지닌 소년을 누가 고평가하겠는가.

  로마에 그럴 만한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라 확신할 수 있었다.

  섹스투스는 자신의 신경이 한순간이나마 옥타비우스에게 쏠렸다는데 오히려 불쾌함을 느꼈다.

  자신의 본능이 잠시 위험신호를 보냈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역시 너무 신경이 곤두서 있었던 것이다.

  그는 들어가서 한숨 푹 자면서 휴식을 취할 필요가 있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상대방에게서 주의를 거둔 섹스투스는 헤어지기 전 옥타비우스가 지은 표정을 제대로 살피지 못했다.

  그 어린 소년의 눈동자가 한없이 싸늘하게 내려앉아 있었다는 걸 봤다면 섹스투스의 생각도 조금이나마 변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런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옥타비우스는 언제나 자신을 완전히 무시하고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자들의 뒤에서만 그런 표정을 지었던 까닭이다.

  무심하게 섹스투스의 뒷모습을 일별한 옥타비우스는 주저하지 않고 알현실 안으로 들어갔다.

  ※※※

  클레오파트라와 독대를 마치고 자신의 거처로 돌아온 옥타비우스는 뜻밖의 방문객을 맞이했다.

  옥타비우스도 익히 아는 얼굴이었다.

  클레오파트라의 앞에서 마케도니아를 우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가 퇴짜를 맞은 재판장이 엄숙한 표정으로 자리에 앉아 있었다.

  "자네가 파라오께서 데리고 오셨다는 로마인 옥타비우스가 맞는가?"

  알렉산드리아의 수석 재판장 테오도로스가 대뜸 질문을 던졌다.

  그의 어투는 상당히 거만하면서도 자신감이 넘쳤다.

  아무리 로마인이라고 해도 아직 십 대 초반의 어린애, 그것도 귀족이 아닌 평민이라는 정보를 사전에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옥타비우스는 불쾌한 심정을 일체 드러내지 않고 공손히 인사를 올렸다.

  "예, 제가 가이우스 옥타비우스입니다. 실례지만 손님의 존함은 어떻게 되시는지요?"

  "흠, 날 모르는 건가? 파라오께서 이야기를 해주지 않으셨나 보군. 알렉산드리아의 수석 재판장 테오도로스라고 하네. 내 자네를 찾아온 건 긴히 묻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서일세."

  "제가 말씀드릴 수 있는 거라면 알려드리겠습니다. 하지만 파라오께서 제게 너무 많은 이야기는 하지 말라고 언질을 주셨는지라······."

  옥타비우스의 말은 정중했지만, 자신감과 패기 따위는 일체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말끝을 흐리는 데에서 일말의 불안감과 두려움마저 느껴졌다.

  테오도로스는 내심 제대로 찾아왔다고 쾌재를 부르며 최대한 부드러운 어조로 옥타비우스를 달랬다.

  "걱정 말게. 지금 두 분 파라오께서는 귀족들과 함께 회의에 들어가셨으니까. 그리고 나는 특별히 이상한 걸 물으려는 생각은 없네. 그저 파라오를 더 잘 모시기 위해 꼭 알아야 하는 것들이 있어서 자네를 찾아온 것일세. 우선 자네의 정확한 위치를 알아야 다른 귀족들도 자네를 어떻게 대우해야 할지 감을 잡을 수 있지 않겠나. 혹시 모를 실례를 범할 가능성도 줄일 수 있을 테고."

  "예, 그건 분명 그렇죠."

  "듣자 하니 파라오께서 즉위하시기 전에는 귀족들의 방문을 의도적으로 피했다고 들었는데 혹시 파라오께서 그렇게 하라는 명령을 내리신 거였나?"

  옥타비우스는 우물쭈물하며 답을 하지 않았다.

  그것만으로도 테오도로스에게는 충분한 대답이 되었다.

  "그러면 다른 걸 묻지. 이건 정말 중요한 사항이니 부디 말해줬으면 하네. 물론 자네가 원한다면 나만 알고 있을 테니 비밀이 새어나갈 염려는 하지 않아도 좋네. 내 세라피스 신의 이름을 걸고 맹세하지."

  "···말씀드릴 수 있다는 보장은 하지 못합니다."

  "그래도 이건 정말 중요한 일일세. 자네와 두 분 파라오는 정확히 어떤 관계인가? 만약 자네가 승은을 입은 몸이라면 우리도 그에 맞게 자네를 대우해야 하니 이걸 묻는 것일세. 원래라면 파라오께서 말해주셔야 하는데 이상할 정도로 자네를 꽁꽁 숨기고 계시니 우리로서도 곤란할 따름이라네."

  "저는 딱히 지금 이상의 대우를 받지 않아도······."

  "그건 즉 자네가 승은을 입었다는 소리인가?"

  테오도로스의 극적인 반응에도 옥타비우스는 고개를 푹 숙인 채 답을 주지 않았다.

  하지만 누가 봐도 이건 이미 정을 통했다고 밖에 볼 수 없는 상황이었다.

  클레오파트라인가 아니면 아르시노에인가 그것도 아니면 둘 다인가.

  만약 그렇다면 진지한 관계인가 아니면 단순히 욕정을 풀기 위한 수단일 뿐인가.

  그리고 무엇보다 마르쿠스는 이걸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가 가장 중요했다.

  보통의 남자라면 자신의 여인이 다른 남자를 침상에 들이는 걸 용납하지 않는다.

  자신은 다른 여자를 품어도 자신의 여자가 그러는 건 인정하지 못한다.

  어이가 없지만 원래 본성이라는 게 그랬다.

  물론 여자 쪽이 남자에 비해 권력과 위치가 더 크다면 반대의 상황이 연출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건 마르쿠스와 현 파라오들과의 관계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누가 봐도 강자는 마르쿠스, 약자는 이집트였으니까.

  '아니면 마르쿠스와 지금 파라오들의 관계가 우리가 생각했던 것만큼 가까운 게 아닌가? 아니, 그럴 리는 없어.'

  마르쿠스가 이집트에 왔을 때 아르시노에가 어떤 행동을 보였는지는 아직도 왕궁에 소문이 파다했다.

  현 파라오들의 미모는 테오도로스도 인정할 정도로 출중했다.

  마르쿠스가 고자나 남색가가 아닌 이상 둘 중 한 명이라도 취하지 않았을 리가 없다.

  아니면 장래에 취할 예정이었던가.

  어쨌거나 자신이 아닌 다른 평민이 파라오의 몸을 마음대로 할 수 있도록 허락해줄 리가 없다.

  자신이 없는 동안 한시적이라는 조건이 붙는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테오도로스는 로마 권력자들의 습성이 어떤지는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마르쿠스가 다른 로마인들과 조금 다르다고 해도 그 역시 한 명의 남자였다.

  '잠깐. 그러고 보니 마르쿠스는 어째서 아직도 이집트로 오고 있지 않은 거지?'

  마케도니아 귀족들은 현재 안티오키아의 동향에 엄청난 주의를 기울이고 있었다.

  지금 두 파라오가 기세가 등등한 건 전부 마르쿠스가 그녀들의 뒤에 있기 때문이었다.

  최후의 수단으로 군사를 일으킬 꿈조차 꾸지 못하는 것도 전부 동방의 로마군 탓이었다.

  로마군을 제외한다면 전력비는 근소하게나마 마케도니아 귀족 측이 더 유리했지만, 이건 의미가 없는 비교라고 여겼다.

  적어도 방금 전까지는.

  "옥타비우스, 자네도 안티오키아에서 왔다면 마르쿠스 총독님과는 아는 사이겠군. 그렇지?"

  "예. 그분께서는 저에게도 정말 잘해주십니다. 가족들의 편의도 봐주고 있고요. 저에게 있어서는 은인이라고 할 수 있죠."

  "그래? 역시 덕이 많으신 분인가 보군."

  "그렇습니다. 안티오키아에서 사는 사람 중에 총독님을 존경하지 않는 이는 아무도 없습니다."

  적당히 좋은 말을 해주니 옥타비우스는 잔뜩 신이 나서 묻지도 않은 여러 가지 정보를 알려주었다.

  파라오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그런데 이야기를 쭉 듣다 보니 테오도로스는 오히려 더욱 갈피를 잡지 못하게 됐다.

  '뭐지? 자신의 여자와 정을 통하는 평민 놈의 가족을 돌봐준다고?'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 태도였다.

  '마르쿠스가 이 사실을 모를 리가 없지. 비밀로 꽁꽁 숨기려고 했다면 여기에서도 훨씬 더 조심했을 거다. 그렇다면 나오는 답은 한 가지뿐.'

  옥타비우스가 파라오와 몸을 섞지 않았든가, 아니면 마르쿠스가 파라오와 이제 더 이상 정을 통하는 관계가 아니라고 볼 수밖에 없다.

  원래 남녀 간의 마음이란 사소한 일로도 쉽게 틀어지기 일쑤다.

  로마는 혼인한 남녀 사이에서도 이혼이 빈번하다고 하는데 하물며 결혼도 하지 않은 관계는 어떠하겠는가.

  '마르쿠스와 파라오의 관계가 소원해졌다면 원정이 끝나자마자 서둘러 이집트로 오지 않는 것도 설명이 된다. 그게 아니라고 해도 한 번 알아볼 가치는 충분하겠어.'

  옥타비우스가 클레오파트라나 아르시노에 중 어느 쪽과 가까운지만 확실히 판별해 내도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적어도 이 옥타비우스를 끼고 있는 쪽은 더 이상 마르쿠스의 여인이 아니라고 봐도 무방할 테니까.

  그렇다면 두 파라오를 이간질해 서로 대립하게 하는 방법도 자연스레 보인다.

  테오도로스는 즉각 귀족들을 소집할 필요성을 느끼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오늘 있었던 일은 서로 간의 비밀로 하도록 하지. 자네도 괜히 파라오에게 이 일이 세어나가서 눈총을 받고 싶지는 않겠지?"

  "예, 알겠습니다."

  물론 테오도로스는 옥타비우스가 비밀을 지킬 거라고 믿지 않았다.

  그는 처음부터 자신의 방문이 클레오파트라의 귀에 들어가는 걸 감수하고 이 자리에 온 것이다.

  그리고 위험을 감수할 만한 대가는 충분히 얻었다.

  이제부터 일 초라도 시간을 낭비해서는 안 된다.

  그는 거의 달리다시피 옥타비우스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황급히 떠나는 테오도로스와는 반대로 그의 빈자리를 바라보는 옥타비우스의 눈은 그저 평온하기만 할 뿐이었다.

  < 171. 균열의 방아쇠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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