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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 분열의 씨앗 (179/326)

  < 178. 분열의 씨앗 >

  178.

  언쟁은 오고 가지 않았다.

  폼페이우스는 섹스투스의 자존심상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다고 예상했지만, 섹스투스는 의외로 상황을 담담히 받아들였다.

  물론 그가 기뻐하며 폼페이우스의 말을 받아들이진 않았다.

  그저 가문이 앞으로도 성세를 이어나갈 방안은 마르쿠스의 도움을 받는 수밖에 없다는 현실을 이해했을 뿐이다.

  그나이우스였다면 자존심상 얼굴에 반드시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을 것이다.

  폼페이우스는 이것 하나만으로도 섹스투스가 가문의 후계자가 되는 게 맞다는 걸 재차 확신했다.

  폼페이우스는 이럴 때일수록 더욱 아들을 채찍질해야 한다고 여겼다.

  시기가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제 아들을 볼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하면 좋은 말만 하고 격려해줘야 한다고 여기겠지만, 이제 더 이상 자신이 도와줄 수 없다는 걸 고려하면 더욱 엄하게 홀로서기를 준비시켜야 한다고 볼 수 있었다.

  물론 폼페이우스가 아무리 애쓴다고 해도 모든 준비가 완벽할 수는 없었다.

  지금이야 클리엔테스들이 아들에게도 변함없는 충성을 맹세하겠다고 하고 있지만, 폼페이우스가 죽은 뒤에는 어떻게 바뀔지 알 수 없다.

  하지만 폼페이우스는 그걸 나쁘다고 말하고 싶지 않았다.

  원래 정치의 생리라는 게 그런 것이고, 자신 역시 다른 사람의 클리엔테스들을 수없이 많이 빼앗아 오지 않았던가.

  그렇게 해서 히스파니아, 그리스, 북아프리카, 악숨이라는 광대한 지역을 거느릴 수 있게 된 것이다.

  만약 섹스투스가 이 세력을 거느릴 그릇이 되지 않는다면 당연히 몰락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마르쿠스의 도움이 없다면 이건 반드시 찾아올 미래라고도 할 수 있었다.

  섹스투스도 사실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가 딱히 손 놓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건 아니다.

  클레오파트라와 협력 관계를 구축해 놓으려고 했던 것도 그가 나름대로 발버둥 친 결과물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러니 아버지의 말에 따르는데 그리 큰 거부감은 들지 않았다.

  '마르쿠스라······.'

  앞으로는 그의 신세를 져야 할 거라 들었다.

  그럴 만한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는 건 알았다.

  섹스투스는 마르쿠스를 처음 보았을 때부터 그와 경쟁해서 이길 자신이 들지 않았다.

  그나이우스처럼 열등감을 느낀 건 아니었다.

  그때는 폼페이우스가 최소 십 년 이상은 든든히 자리를 지켜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마르쿠스와 대칭되는 상대는 어디까지나 폼페이우스.

  자신이 그 무대에 올라가는 건 한참이나 더 뒤의 이야기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상황은 이제 이렇게 되어버렸다.

  "제가 마르쿠스 님에게 숙이고 들어가는 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분이 혹여나 다른 마음을 먹는다면 가문의 세력을 고스란히 그에게 바치는 꼴이 되지 않겠습니까. 저는 그것이 염려스럽습니다."

  폼페이우스는 그렇지 않을 거라고 말했다.

  마르쿠스는 최소 2년에서 3년은 섹스투스를 지켜주겠다고 약속했다고 한다.

  폼페이우스가 밀어붙이듯이 부탁했겠지만 그가 아는 마르쿠스는 한 입으로 두말을 하는 사내는 아니었다.

  결국 어찌 되었든 2년 이상의 시간은 벌었다는 뜻이다.

  선택의 여지가 없는 와중에서는 가장 좋은 결과물을 받아들었다고 할 수 있다.

  그리 생각하면 마음의 부담이 한결 덜어졌다.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그러니 너무 염려 마시고 건강을 추스르는 데 힘써 주십시오. 아버지께서 건강하게 오래 사시면 애초에 이런 일을 의논할 필요도 없지 않겠습니까."

  "그게 최선이겠지만 안타깝게도 바라는 대로만 풀리지는 않는 게 사람의 일이 아니더냐. 어제는 꿈에서 뱃사공 카론이 슬슬 아케론으로 오라는 말을 하더구나. 내 수명도 이제 한계에 달했다는 뜻이겠지. 그러니 내 마지막으로 너에게 주의를 하마. 네가 무얼 걱정하는지는 알겠지만 마르쿠스에게 너무 주의를 쏟지는 말거라."

  "예? 하지만 제가 가장 주의해야 할 상대는 역시 귀족파가 되지 않겠습니까. 마르쿠스 님은 그 귀족파를 이끄는 수장이나 다름없고요. 만약 민중파와 귀족파가 충돌하게 된다면 필연적으로 저희는 대립할 수밖에 없습니다."

  섹스투스는 결코 근거 없이 마르쿠스를 부정적으로 보는 게 아니었다.

  개인적으로는 그를 전혀 나쁘게 보지 않았다.

  오히려 능력적인 부분은 물론 인품조차 나쁜 소리가 들리지 않는 그에게 약간의 동경심을 품고 있기도 했다.

  그러나 문제는 두 사람이 서 있는 정치적인 입장이었다.

  제아무리 악의가 없더라도 서 있는 파벌이 다르면 언제라도 칼을 들이밀 수 있는 게 이 바닥 생태이다.

  마르쿠스가 섹스투스를 해할 마음이 없더라도 귀족파가 민중파를 치기로 했다면 주저 없이 그 결정을 따를 것이다.

  그래서 섹스투스는 마르쿠스에게 마냥 의지할 마음이 들지 않았다.

  폼페이우스는 그런 섹스투스의 판단을 존중하면서도 몇 가지 말을 더 보태주었다.

  "마르쿠스는 절대 귀족파와 민중파간의 대규모 내전이 일어나도록 두지 않을 거다. 그건 모두가 망하는 길이야. 네가 먼저 칼을 휘두르지만 않으면 된다. 마르쿠스의 성향이라면 '지금부터 우호를 깨고 널 적대하겠다.'라는 말을 하기 전까지는 널 치지 않을 거다. 네가 정말로 주의해야 할 사람은 그가 아니야."

  "그러면 누구입니까? 키케로는 아닐 테고···카토?"

  "카토도 주의하긴 해야겠지. 아마 틈만 나면 널 잡아먹으려고 원로원에서 시끄럽게 떠들어 댈 거다. 하지만 거기까지가 그의 한계야. 그는 자신의 증조할아버지인 대카토처럼 판을 이끌어가는 능력이 없어. 일반 시민들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인망이 부족하거든. 네가 방심하지만 않는다면 그에게 당할 일은 없을 거다."

  "그러면 대체 누구를 주의해야 한다는 겁니까?"

  "네가 가장 조심해야 할 상대는 귀족파가 아니다. 너에게 가장 위협이 되는 상대는 같은 민중파에 있다. 카이사르를 조심하거라."

  섹스투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생각지도 못했던 이름이 거론됐기 때문이다.

  물론 카이사르가 완전히 마음을 놓아도 될 상대라고 판단한 건 아니었다.

  만약 폼페이우스가 물러난다면 카이사르는 분명 민중파의 일인자 자리를 노릴 것이다.

  그리고 최악의 경우 히스파니아에 자신의 영향력을 확대하려 할 수도 있다.

  섹스투스는 민중파의 일인자 자리 정도야 카이사르에게 넘길 수 있다고 보았다.

  필요하다면 교섭을 할 의향도 있었다.

  하지만 마르쿠스나 귀족파보다도 더 카이사르를 조심해야 한다는 생각까지는 하지 못했다.

  "외부의 적보다는 내부의 적이 더 위협적일 수 있다는 의미입니까?"

  "그런 것도 있지만, 단순히 카이사르의 능력과 야심이 네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기 때문이다. 카이사르는 마르쿠스와는 다르다. 능력적인 부분이야 비슷하다고 할 수 있겠지만 가진 성향이 달라."

  "그분이 그렇게 권력 지향적이란 느낌은 받지 못했는데요. 오히려 원로원의 부당한 권력을 소리 높여 비판한 분이 아닙니까."

  카이사르가 지금까지 비판한 대상은 언제나 초법적인 행동을 일삼는 원로원의 귀족파들이었다.

  그의 사치와 허영은 유명했지만, 권력욕이 심하다고 비난하는 이는 로마에 없었다.

  단 한 명, 카토 정도만이 예외였을 뿐이다.

  그리고 카토의 그런 언사가 개인적인 감정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게 중론이었다.

  갈리아와 브리타니아를 평정하며 놀라운 군사적 능력을 드러냈으나, 딱 거기까지였다.

  사람들은 여전히 카이사르가 진짜로 노리는 게 무엇인지 알고 있지 못했다.

  폼페이우스 역시 처음에는 그런 수많은 사람들 중 하나였다.

  그는 카이사르가 자신과 별다르지 않은 유형일 거라고 여겨왔다.

  귀족파를 싫어하고, 적당히 허영심이 강하고, 그러면서도 군사적인 재능은 뛰어난 인물.

  정치적인 식견이 탁월하지만 그건 그의 성장배경이 영향을 미쳤을 뿐이고, 본질은 자신과 비슷할 거라고 믿었다.

  그게 착각이라는 걸 깨달은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육신이 쇠하니 이전까지는 보이지 않았던 많은 부분이 눈에 들어온 덕분이었다.

  "카이사르는 네 생각만큼 물렁한 남자가 아니다. 만약 네가 누군가에게 패해 몰락하는 일이 생긴다면 그 대상은 분명 마르쿠스가 아닌 카이사르일 게야."

  "그 정도입니까? 카토가 비판했던 말들이 그럼 사실이라는······."

  "그건 확실히 악의가 들어간 선동에 가깝긴 했어도 지금 돌아보면 아예 근거가 전무한 헛소리까지는 아니었던 걸로 보이는구나. 카이사르는 자신이 로마의 중심이 되려는 확고한 신념이 있어. 사실 처음 삼두를 구상할 때 그가 나와 다르다는 사실을 눈치챘어야 하는데 이건 내가 너무 무신경했어."

  갈리아를 정복해 군공을 쌓겠다는 카이사르의 계획을 당시의 폼페이우스는 이해하지 못했다.

  아무것도 없는 야만족의 땅에서 무얼 얻겠다는 것인지 의문일 따름이었다.

  공을 올릴 장소가 없으니 저런 곳이라도 가는구나 하는 정도의 느낌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떻게 되었는가.

  지금의 갈리아는 사실상 카이사르의 왕국이라도 해도 위화감이 없는 곳이 되었다.

  마르쿠스가 지배하는 부유한 동방에 비하면 모자람이 있을지 몰라도, 그 발전 속도만큼은 분명 심상치 않았다.

  게다가 막 문명화되고 있는 갈리아는 총독의 영향력이 다른 곳보다도 훨씬 더 컸다.

  카이사르는 자신을 제외한 그 누구도 뿌리를 내릴 수 없도록 철저하게 갈리아를 사유화하고 있었다.

  이건 마르쿠스도 별반 다른 바 없었으나, 아무래도 바다 건너 저 멀리 있는 동방의 상황보다는 바로 북쪽에 있는 갈리아의 현황이 더 쉽게 귀에 들어왔다.

  그리고 마르쿠스가 아라비아 원정을 하는 동안에도 카이사르는 줄곧 로마의 정계에 영향력을 행사했다.

  시범적으로 도입한 역참을 활용해 끊임없이 의견을 개진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정책을 수정하며 선거의 후보까지 손을 댔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모두 지켜본 폼페이우스는 점차 확신을 굳히게 됐다.

  카이사르의 궁극적인 목표는 군사적인 성공이 아닌 정치력의 확장에 있다고.

  군공을 쌓은 건 단순히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을 뿐이다.

  "하지만 아버님, 카이사르 님이 정말로 로마의 권력을 틀어쥐고 싶어 한다면 마르쿠스와 대립할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결국 귀족파와 민중파는 융화될 수 없는 사이니까요. 그렇다면 카이사르 님의 주적은 저보다는 오히려 마르쿠스가 될 가능성이 높지 않을지······."

  "나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마르쿠스와 카이사르는 장인과 사위의 관계니까. 만약 카이사르가 아들이 있었다면 저 관계는 그저 허울에 불과했을 수도 있겠지.

  하지만 카이사르는 후계자가 없다. 그 말인즉슨 마르쿠스가 카이사르를 계승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그게 아니라도 마르쿠스가 아들을 한 명 더 낳는다면 그 아이를 카이사르의 후계자로 들이는 방법도 있을 것이고. 카이사르 입장에서도 먼 친척을 양자로 들이느니 손자에게 가문을 넘겨주고 싶어 하지 않겠느냐.

  "

  "···그러니까 카이사르 님은 마르쿠스를 경쟁자로 여기지 않을 거라는 말씀이군요."

  "정확하다. 경쟁자라기보다는 오히려 자신의 모든 걸 이어받을 대상으로 여기겠지. 그러니까 두 사람은 충돌하지 않을 거야."

  섹스투스는 식은땀이 흐르는 걸 느꼈다.

  폼페이우스의 말대로 만약 카이사르가 자신을 배제하려고 한다면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마르쿠스와 싸우게 된다면 이길 자신은 없었으나 몇 가지 대항할 수단을 생각해 놓긴 했었다.

  그런데 같은 민중파인 카이사르가 상대라면 뾰족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마르쿠스가 지켜주겠다고 한 2년간은 괜찮을 테지만 그 유예기간이 끝난다면?

  민중파끼리의 내부다툼에 귀족파가 섹스투스의 편을 들어줄 리가 없지 않은가.

  아니, 들어준다고 해도 그건 민중파의 약화를 노리는 것이지 섹스투스를 도와주려는 의도는 아닐 것이다.

  산 하나를 넘으니 더욱 높은 산이 앞을 가로막고 선 듯한 느낌이다.

  폼페이우스는 암울함으로 물든 아들의 표정을 그저 측은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

  마르쿠스는 폼페이우스가 섹스투스를 돌봐주는 동안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들을 해 나갔다.

  그가 로마에 온 사실은 아직 비밀이었기 때문에 드러내놓고 활동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이때다 싶어서 날뛰는 자들을 제어하는 것 정도는 충분히 가능했다.

  마르쿠스는 키케로를 통해서 귀족파 의원들을 불러들였다.

  이때야말로 민중파를 압박해야 한다고 주장하던 이들은 마르쿠스의 앞에서 벙어리 마냥 입도 뻥끗하지 못했다.

  "마그누스 님은 로마를 위해 평생을 헌신한 인물입니다. 조금이라도 그 업적에 경의를 표하는 마음이 있다면 그런 주장을 해서는 안 되겠죠. 이건 로마의 시민으로서 가져야 할 최소한의 도리라고 생각합니다."

  마르쿠스는 완곡하면서도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폼페이우스의 건강 악화를 빌미로 민중파를 압박하지 않겠다는 뜻을 확실히 밝힌 것이다.

  하지만 귀족파와는 달리 마르쿠스가 마음대로 제어할 수 없는 상대방도 있었다.

  앞으로 로마가 어떻게 요동칠지는 전적으로 그의 마음에 달렸다.

  마르쿠스는 비밀리에 편지를 썼다.

  그의 서신을 든 전령이 달려간 곳은 라인강 너머의 전역.

  게르마니아를 성공적으로 공략 중인 카이사르의 군단이 진을 치고 있는 곳이었다.

  < 178. 분열의 씨앗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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