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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 다가오는 전운 (180/326)

  < 179. 다가오는 전운 >

  179.

  마르쿠스의 서신은 빠르게 라인강 너머로 전해졌다.

  편지 내용을 확인한 카이사르의 부관 라비에누스는 허겁지겁 카이사르에게로 그걸 가져갔다.

  어찌나 급했는지 진지 입구에 선 병사들의 인사를 제대로 받지도 않았다.

  카이사르가 사령관 막사에 있을 거라고 확신한 그는 예의에 어긋나는 걸 알면서도 바로 막사의 휘장을 걷어 젖혔다.

  다행히도 카이사르는 혼자서 서류를 정리하고 있었다.

  그는 라비에누스의 갑작스러운 방문에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카이사르가 없는 동안 라인강 안쪽에서 갈리아 부족들의 관리를 맡은 라비에누스가 왔다는 건 무슨 일이 터졌다는 뜻이었기 때문이다.

  "갈리아 부족들이 추가 파병군을 지원하겠다고 하던가?"

  "아닙니다. 지원군은 다음 군량을 보급할 때 함께 보내겠다는 답을 받았습니다. 그것보다 훨씬 더 중대한 문제가 발생했기 때문에 제가 직접 왔습니다. 아무래도 방침의 변화가 있다면 제가 직접 명령을 들어야 할 것 같아서요."

  라비에누스는 카이사르가 건넨 포도주에 손도 대지 않고 서신을 탁자 위에 펼쳐 보였다.

  심상치 않은 기색을 느낀 카이사르가 차분하게 종이를 집어 들었다.

  양피지나 파피루스와 다른 이색적인 질감은 분명 마르쿠스가 만들었다는 새로운 기록 매체였다.

  안티오키아에 있는 마르쿠스가 어째서 갑자기 연락을 보내온 건지 솔직히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턱을 만지작거리며 편지를 읽어 내려가던 카이사르의 손이 순간 멈추었다.

  어찌나 충격적이었던지 혹시나 잘못 읽은 건가 싶어 다시 처음부터 봤을 정도였다.

  이 정도로 동요한 건 어머니의 부고를 들었을 때 이후로 처음이었다.

  "···자네, 이걸 또 누구에게 보여줬나?"

  "저만 확인했습니다. 아무래도 사안이 너무 중대한 것 같아서."

  "잘했네. 이게 다른 병사들에게 소문이 퍼졌다면 필시 상당한 동요가 발생했을 거야. 지금 상황에서 그건 치명적으로 작용할 수도 있어."

  카이사르의 군대는 현재 라인강을 넘어 엘베강 유역까지 순조롭게 정복을 진행하고 있었다.

  강인하다고 널리 알려진 게르마니아 부족은 카이사르의 군대 앞에서 싸움다운 싸움도 제대로 해보지 못했다.

  그 정도로 지금 카이사르가 이끄는 로마군의 전투력은 최고조에 달해 있었다.

  갈리아와 브리타니아 원정을 거치며 이미 전쟁 기계나 다름없을 정도로 완성된 숙련도.

  거기에 마르쿠스가 알자스와 로렌의 광산에서 나오는 어마어마한 양의 철광석을 모조리 무기로 만들었다.

  전신 판금 갑옷은 아직 유출되지 않았으나, 중요 부위만을 가린 로리카 세그멘타타는 이미 엄청난 숫자가 보급되었다.

  마르쿠스는 이 갑옷을 카이사르의 군단에 보급해주는 대가로 추가 이권을 약속받은 상태였다.

  카이사르는 그래도 자신이 손해를 봤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마르쿠스에게 받은 장비 덕분에 그의 군단은 압도적인 힘으로 게르마니아를 찍어 눌렀기 때문이다.

  여기에 완전히 카이사르에게 종속되다시피 한 갈리아에서도 아낌없는 지원을 보내주었다.

  전통적으로 갈리아는 게르마니아를 싫어했다.

  사실 단순히 싫어한다는 표현으로는 이들의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게르마니아에 대한 갈리아의 감정은 불호보다는 혐오에 가까웠다.

  비옥한 토지를 소유한 갈리아는 전통적으로 게르마니아의 침략에 시달려 왔다.

  간혹 갈리아가 게르마니아를 밀어낼 때도 있었으나 대부분은 게르마니아에게 당해 조공을 바치기 일쑤였다.

  그런 게르마니아에 역으로 쳐들어가 되갚아줄 기회가 생겼으니 갈리아인들로서는 지금의 상황이 반갑지 않을 리가 없었다.

  어차피 본격적인 싸움은 로마군이 치르고 갈리아 부족들이 하는 건 현지 점령에 가까웠다.

  피해는 거의 보지 않으면서 재미는 재미대로 볼 수 있는 그런 임무였다.

  하이두이족이나 세콰니족처럼 로마에게 붙은 대부족들은 자원해서 기병대를 파병했다.

  카이사르가 이끄는 10개의 로마 정규군단과 갈리아 전체에서 파병한 5만의 지원군을 합치면 그 수는 10만이 넘어갔다.

  이 어마어마한 규모의 대군은 이미 몇 번이나 게르마니아의 군대를 격파하며 현재 8할에 가까운 지역을 점령한 상태였다.

  카이사르는 이런 상황에서 폼페이우스가 죽고 로마의 권력에 커다란 공백이 생기는 걸 원치 않았다.

  적어도 이 소식이 병사들과 게르마니아 부족의 귀에 들어가는 상황은 피하고 싶었다.

  만약 게르마니아 부족들이 로마에 곧 혼란이 찾아올 거라고 생각하면 저항이 한층 더 심해질 수도 있는 까닭이다.

  "앞으로 엘베강까지 국경을 확장하는 데는 넉넉잡아도 1년이면 충분하네. 그때까지는 이번 원정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으면 하는데."

  "그렇다면 라인강 안쪽으로 돌아가는 대로 정보 통제를 더 엄격하게 시행하겠습니다."

  "갈리아 부족들은 어떤가?"

  "그쪽은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이미 완벽히 로마에 동화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예상대로의 흐름이었다.

  카이사르가 갈리아를 점령하고 난 뒤 가장 주력했던 사업은 갈리아의 농업 개선이었다.

  갈리아는 게르마니아와 달리 워낙 토지가 비옥했기 때문에 예전부터 정착 생활을 하는 부족들이 여럿 있었다.

  그래도 체계적인 농업 기술이 없었고, 개간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절대적인 생산량 자체는 그리 높지 않았다.

  카이사르는 이런 상황을 극적으로 개선해 갈리아인들에게 광적인 찬양을 받았다.

  여기서도 마르쿠스의 도움이 굉장히 컸다.

  마르쿠스는 대체 어디에서 그런 정보를 알았는지 농사를 짓기 가장 좋은 지역들을 손쉽게 추려냈다.

  그가 파견한 기술자들은 갈리아의 토지를 효율적으로 개간하고 토지에 딱 맞는 새로운 농법을 전파했다.

  그 대가로 막대한 양의 돈을 챙겨갔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갈리아의 생산량은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폭증했다.

  로마는 이미 개선된 자영농들의 상황과 이집트와 아나톨리아, 메소포타미아에서 들어오는 식량 덕분에 갈리아에 굳이 식량을 요구하지 않았다.

  카이사르는 이 불어난 식량을 대부분 갈리아에서 현지 소비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었다.

  그리고 남은 잉여 생산량은 카이사르의 군단을 위해 사용됐다.

  게다가 갈리아의 농업 생산력은 시간이 갈수록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었다.

  원래 고대 시대 사람들의 주된 목표는 첫째도 둘째도 생존이다.

  이 생존에 가장 위협이 되는 것이 바로 식량의 부족과 외적의 침입이다.

  그들은 저 두 가지 요소를 로마에 의해 완전히 제거할 수 있었다.

  단순히 로마의 지배를 받으니 서로 싸울 수 없게 된 게 아니다.

  식량이 충분해지니 다른 부족과 싸워야 하는 근본적인 이유가 사라진 것이었다.

  가장 두려웠던 게르마니아 역시 로마에게 거의 초토화 되고 있었으니 더는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오히려 자신들이 역으로 게르마니아로 밀고 들어가 재미를 보고 있으니 통쾌한 심정까지 느끼고 있었다.

  이제 갈리아 부족들은 카이사르에게 제발 자신들의 땅도 개간해 달라고 비는 실정이었다.

  카이사르는 갈리아를 구원하기 위해 온 신들의 사자라고 하는 이들마저 생기기 시작했다.

  로마에 대해 좋지 않은 이야기를 하며 반란을 선동하려고 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갈리아인의 손에 의해 축출당하기 일쑤였다.

  실제로 이미 몇몇 갈리아 장수들이 같은 부족들의 손에 포박되어 카이사르에게 끌려온 전례가 있었다.

  이렇게 모든 게 순조롭게 흘러간다고 생각했으나 갑작스레 터진 대형변수에 카이사르의 머릿속도 복잡해졌다.

  "일단 게르마니아 원정을 중단할 수는 없네. 지금이 아니면 언제 이렇게 수월하게 이들을 억누를 수 있겠나. 게다가 원정을 그만두면 지금 한창 흥이 오른 갈리아 부족들에게 면목이 서질 않네. 이들이 로마의 힘을 의심하는 상황이 와서는 절대 안 돼."

  "아, 그 점을 생각 못 했군요. 확실히 지금 가장 신이 난 건 로마가 아니라 갈리아로 보이던데. 저에게도 매일 같이 부족장들이 찾아와 승전보고가 더 들어오지 않았냐고 묻더군요."

  "항상 당하고만 살았는데 쾌감이 오죽하겠나."

  카이사르는 거기까지 말한 뒤 탁자 위에 펼쳐둔 지도를 손가락으로 두드리며 생각에 잠겼다.

  사실 원정을 시작하기 전에 마르쿠스에게 귀띔을 받긴 했으나, 엘베강은 국경선으로 삼기에 썩 좋은 지형은 아니었다.

  일단 게르마니아라는 땅 자체가 점령도 쉽지 않고, 점령한다고 해도 갈리아처럼 쉽게 로마화를 할 수 있다는 보장도 없었다.

  카이사르가 이번 원정으로 얻고자 했던 건 게르마니아를 제패했다는 상징적인 명성이었다.

  당초 선언했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다면 명성을 얻기는커녕 체면이 손상될 우려가 있었다.

  로마에서도 실리를 취할 수 없는 전쟁에 너무 과한 투자를 한 게 아니냐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

  그러니 어차피 선택권은 없었다.

  원정은 계속되어야 한다.

  게다가 이번 원정에는 이상하게 위화감이 느껴지는 요소들이 있었다.

  카이사르는 다시 시선을 돌려 라비에누스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런데 자네는 최근 게르마니아에 대한 정보를 들은 적 없나? 갈리아인들이 떠드는 거라든가 로마에서 흘려 들어온 첩보라든가."

  "예?"

  카이사르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라비에누스가 머리를 긁적이며 되물었다.

  "게르마니아에 관한 정보는 원정을 수행하는 임페라토르께서 가장 잘 아시지 않습니까?"

  "그래. 아무래도 그렇겠지. 내가 괜한 걸 물어본 듯하군."

  "혹시 마음에 걸리는 거라도 있으십니까? 제가 역참을 통해 로마에 정보를 요청해 보겠습니다."

  "아니. 아마 로마에도 별다른 정보는 없을 거라고 생각하네. 그냥 게르마니아가 이렇게나 준비가 안 된 집단이었나 의구심이 들었을 뿐이니까."

  이번 게르마니아 원정은 예상보다도 훨씬 수월하게 풀렸다.

  카이사르의 눈에 비친 게르마니아 부족들은 아무래도 로마에 대한 방비가 확실히 되지 않은 듯 보였다.

  라인강 부근에서 세력을 키우던 수애비족은 꽤 장렬하게 저항을 하긴 했다.

  그런데 어떻게 된 게 게르마니아 동쪽으로 들어갈수록 저항이 약해지는 느낌이었다.

  원래 카이사르가 예상하고 있던 것과는 완전히 반대였다.

  처음에는 당연히 함정이라고 판단했다.

  게르마니아의 광대한 숲을 이용한 매복작전이 있을 거라고 확신하고 군단을 움직이는데 신중함을 기했다.

  병력 손실이 거의 전무했음에도 아직 엘베강까지 당도하지 못한 이유는 그래서였다.

  그래도 카이사르는 섣불리 군을 전진했다가 피해 입는 사태를 피하고 싶었다.

  하지만 게르마니아의 저항은 생각보다 허술하기만 했다.

  매복 공격이 있긴 했었지만, 부족들끼리 제대로 연계도 되지 않았고, 전술이나 병력의 구성도 초라했다.

  정보를 캐내려고 포로를 심문했으나, 한결같이 알맹이는 없고 영문을 알 수 없는 소리만 주절주절 늘어놓을 뿐이었다.

  동쪽에서 강대한 부족이 나왔다는 소문도 들렸지만 지금까지 진군하는 동안 그런 강력한 부족은 그림자도 구경하지 못했다.

  이 점을 확실히 밝히기 전까지는 군대를 물리고 싶지 않았다.

  "일단 마르쿠스에게 보내는 답장을 쓸 테니 라비에누스 자네가 믿을 만한 병사를 시켜서 로마로 보내게. 그리고 쿠리오에게도 따로 지령을 내릴 테니 그것도 함께 배달해주면 고맙겠군."

  "명대로 따르겠습니다."

  "그리고 자네는 지금처럼 갈리아 부족장들과 계속 좋은 관계를 유지해주게. 토지의 개간사업도 마르쿠스가 보낸 업자들과 협의해 예정대로 처리하도록 하고."

  "알겠습니다. 그럼 임페라토르께서 움직이시는 건 게르마니아 원정이 전부 완료된 뒤라고 생각하면 되겠습니까?"

  카이사르는 마르쿠스가 여분으로 보낸 종이에 글자를 써 내려가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총사령관의 인장을 찍고 밀랍으로 편지를 봉인한 뒤, 마르쿠스가 아닌 누구도 편지를 열어보지 못하게 하라고 몇 번이나 강조했다.

  어차피 로마에서 카이사르의 인장이 찍힌 편지를 열어볼 간 큰 인간은 존재하지 않았다.

  라비에누스는 그대로 말을 타고 로마군의 숙영지를 떠났다.

  ※※※

  마르쿠스가 시범적으로 설치한 역참은 이번 사건에서 그 우수함이 완벽하게 증명되었다.

  라인강 안쪽으로 돌아온 라비에누스가 붙인 서신은 거의 사흘 만에 마르쿠스의 손에 들어갔다.

  동방 속주에도 대도시를 연결하는 역참이 설치되고 있었는데 이 대사업이 끝나면 행정이 얼마나 간편해질지 대략 상상이 갔다.

  귀족파와 회동을 마친 마르쿠스는 저택에서 기다리고 있던 병사에게 편지를 건네받자마자 그 자리에서 내용을 확인했다.

  그리고 그만 그 자리에서 굳어버렸다.

  "···무슨 일이 있으십니까?"

  마르쿠스의 뒤에서 따라오던 스파르타쿠스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마르쿠스는 복잡한 눈빛으로 편지지를 바라보며 혀를 찼다.

  "이 서신을 방금 전 회의에서 받았으면 큰일 날 뻔했군."

  카이사르에게 답장이 왔다면 카토나 키케로도 내용을 읽어달라고 요구했을 것이고 그러면 한바탕 큰 소란이 일었으리라.

  생각만 해도 아찔한 상황이 펼쳐졌을 것이다.

  의아해하는 스파르타쿠스의 귀에 마르쿠스의 깊은 한숨이 내려앉았다.

  "아무래도 장인어른께서는 가만히 넘어가실 생각이 없는 모양이야. 상황이 안정화되면 한 판 붙어보겠다는 생각이신 것 같은데?"

  < 179. 다가오는 전운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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