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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 균열의 시작 (185/326)

  < 184. 균열의 시작 >

  184.

  마르쿠스는 한나라의 사절단을 떠나보낸 뒤 오랜만에 꿀맛 같은 휴식을 즐기는 중이었다.

  키케로와 카토의 제안대로 한나라 사절들의 접대는 동맹국의 왕족들 못지않게 융숭하게 치러졌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들은 자신들이 알고자 했던 지식들에 대한 실마리조차 찾지 못하고 돌아갔다.

  그들이 알게 된 사실은 설탕도, 놀라울 정도로 승차감이 좋았던 마차도, 심지어 저절로 감탄이 나왔던 매력적인 목욕탕과 선진적인 은행이 전부 마르쿠스 한 사람의 작품이라는 것 정도였다.

  마르쿠스는 휴식을 취하는 동안 옥타비우스를 여기저기 데리고 다니며 그의 안목을 넓혀 주었다.

  그와 이야기하는 건 확실히 섹스투스를 가르치는 것보다 족히 10배는 더 재미있었다.

  하지만 마르쿠스는 일부러 옥타비우스의 부족한 군사적 능력을 메워주지는 않았다.

  총명한 옥타비우스는 그 사실을 이미 깨닫고 있었다.

  그리고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이미 전부 꿰뚫어 보고 있었다.

  오늘도 옥타비우스는 마르쿠스와 수많은 화제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당연히 군사와 관련된 화제는 단 하나도 없었다.

  '과욕은 부리지 말아야지.'

  옥타비우스는 저택으로 돌아온 뒤 응접실에 앉아 상념에 잠겼다.

  로마가 변하고 있는 게 요새 부쩍 피부로 느껴지고 있다.

  기존에 보지 못하던 건물이 올라가고, 새로운 법령이 제정되는 수준의 변화가 아니다.

  그보다 더욱 깊은 곳에서, 본질적인 무언가가 변하려 한다는 예감이 들었다.

  그 중심에는 마르쿠스가 있었다.

  그에게 있어서 로마란 수정하고 보완해야 할 점들로 가득 차 있는 듯 보였다.

  그는 끊임없이 기존의 제도를 분석하고 해부하고, 해체한 뒤, 더욱더 합리적이고 그럴싸한 것으로 재창조해냈다.

  어떻게 어렸을 때부터 황금에 둘러싸인 인생을 산 그가 그렇게까지 시야를 넓힐 수 있었을까.

  옥타비우스는 처음에는 자신이 또 한 명의 마르쿠스가 되고 싶었다.

  그러나 곧바로 깨달았다.

  자신은 그와 같은 만능천재가 아니었다.

  카이사르가 비슷한 유형이었으나 옥타비우스는 아니었다.

  그는 마르쿠스와 카이사르처럼 완벽하게 군사를 지휘할 수도 없었고, 전선에서 병사들을 이끌 체력도 부족했다.

  약한 신체는 정적들의 방심을 유도하는 용도로는 제격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옥타비우스가 이전의 삼두 같은 위치에 자력으로 올라가기란 불가능에 가깝다는 걸 상징하는 요소이기도 했다.

  '그렇다고 해도······.'

  옥타비우스의 눈에 막 응접실로 들어서는 섹스투스의 모습이 보였다.

  어떻게든 눈앞의 저 사람보다는 더 위대해질 자신이 있었다.

  물려받은 유산과 세력은 비교하는 게 무안할 정도로 상대가 되지 않았으나, 옥타비우스는 자신이 밀릴 거라고는 손톱만큼도 생각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렇게 생각하는 건 섹스투스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는 마르쿠스의 저택에 머무는 옥타비우스가 상당히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집트에서 마주쳤을 때부터 느낌이 왠지 좋지 않았다.

  어차피 마르쿠스에게는 가문을 이을 후계자가 따로 있었으니 자신보다 어린 평민 귀족 따위에게 신경을 쓸 이유는 하나도 없었다.

  그래도 왠지 옥타비우스를 볼 때면 마음이 초조해지는 기분이었다.

  마르쿠스가 옥타비우스에게 보이는 눈빛이 자신을 가르칠 때는 한 번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물론 섹스투스는 이걸 자신이 옥타비우스보다 뒤떨어지기 때문이라고 여기지 않았다.

  단지 자신을 향한 마르쿠스의 기대가 옥타비우스보다 훨씬 더 크기 때문이라고 여겼다.

  사실이 그렇지 않은가.

  폼페이우스의 후계자로 삼두의 일원이 되어야 하는 자신과, 딱 봐도 마르쿠스의 아들 트라야누스의 비서로나 쓸법한 옥타비우스는 서 있는 위치가 달랐다.

  섹스투스가 부자연스럽게 자리에 앉아있는 옥타비우스를 외면하고 가려고 하자 옥타비우스 쪽에서 먼저 말을 걸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섹스투스 님. 마르쿠스 님을 찾아오셨나요?"

  "···그래. 너는 여전히 마르쿠스 님의 저택에서 머물고 있는 모양이구나."

  "예. 어머니께서 안티오키아로 가시면서 저희 집안의 저택을 다 정리했거든요. 마르쿠스 님도 머지않아서 동방으로 잠깐 다시 가실 것 같으니 굳이 이 짧은 기간 동안 다른 저택을 구할 필요는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마르쿠스 님도 흔쾌히 여기에 머물러도 된다고 하셨고요."

  "마르쿠스 님이 동방으로 다시 가실 거라고? 나는 그런 이야기를 듣지 못했는데?"

  "아예 가는 게 아니라 잠깐 가실 일이 있을 거라는 겁니다."

  옥타비우스의 어조는 더없이 공손했다.

  그런데 섹스투스에겐 이 말이 꼭 '너는 그것도 모르냐'며 비꼬는 것처럼 들렸다.

  짜증으로 입술을 깨문 섹스투스가 몸을 채 돌리기도 전에 옥타비우스가 한 가지 더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섹스투스 님, 그나이우스 님과는 최근 만나보셨습니까?"

  "···아니. 형님은 아버님의 장례식 이후 아무런 연락이 없으셨다. 그런데 네가 그걸 왜 묻지?"

  "아니요. 마르쿠스 님이라면 분명 이미 묻지 않았을까 했습니다."

  옥타비우스의 말대로였다.

  섹스투스는 이미 몇 번이나 그나이우스에 관한 질문을 받은 적이 있었다.

  그 역시 형의 행보에는 다소의 불안감이 있었기에 쭉 주시하고 있는 입장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장례식 이후로는 그나이우스에 관한 정보가 뚝 끊겼다.

  아무래도 가문을 차남에게 빼앗겼다고 생각하고 극심한 울분에 젖어 어딘가로 떠난 것 같다는 말들이 들렸다.

  북아프리카나 히스파니아에, 심지어 갈리아에서 그를 보았다는 말이 들리기도 했다.

  어지간히 충격이 컸던지 이곳저곳을 정처 없이 돌아다니고 있을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마르쿠스에게는 그대로 이야기를 해주었지만 옥타비우스에게 굳이 이런 말을 해줄 필요는 없었다.

  "형님에 관한 문제는 내 가족사니 네가 알 필요까지는 없다. 넌 그냥 마르쿠스 님이 명령하는 일이나 잘 처리하면서 지내거라."

  섹스투스는 누가 들어도 기분 나쁜 어조로 한 마디를 툭 던지고는 마르쿠스를 찾아 옥타비우스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예상 그대로의 반응에 옥타비우스는 쓴웃음을 흘리며 다시 자리에 앉았다.

  "역시 섹스투스는 아니야. 하지만 마르쿠스 님도 의외로 인정에 연연하시는 측면이 있었구나."

  만약 옥타비우스가 마르쿠스의 입장이었다면 폼페이우스와 절대 그런 약조 따윈 하지 않았을 것이다.

  폼페이우스와의 우정은 폼페이우스와 맺은 것이지 그의 아들과 맺은 게 아니지 않는가.

  "아니면 내가 눈치채지 못한 다른 구상이 있는 것일까."

  어느 쪽이 됐든 섹스투스가 그의 야망처럼 삼두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지는 날은 오지 않을 거라 확신할 수 있었다.

  섹스투스가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는 옥타비우스의 눈에서는 어떠한 감정도 읽어낼 수 없었다.

  ※※※

  카이사르의 게르마니아 원정은 마지막까지 저항을 일삼던 케루스키족의 몰락과 함께 마무리됐다.

  생각보다도 더 쉽게 엘베강 유역을 손에 넣은 카이사르는 병사들의 피로를 충분히 풀어준 뒤에 로마로 귀환하기로 결정했다.

  아무리 전쟁에 익숙한 병사들이라고 해도 장장 10여 년을 전장에서 보내면 피로에 찌들기 마련이다.

  카이사르의 병사들도 이제는 휴식을 취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카이사르는 병사들에게 역대 그 어느 원정군보다도 더 호화롭고 명예로운 보상을 약속했다.

  "원로원은 우리의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지금까지 나를 믿고 따라온 그대들은 막대한 돈과 토지를 받아 원하는 곳에 정착해 새로운 삶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원한다면 그 토지를 다시 되팔고 로마에 돌아가도 좋다. 나는 이번만큼은 그대들이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전적으로 편을 들어줄 것이다. 우리들은 그런 대우를 받아야 마땅할 정도의 공을 세웠기 때문이다!

  "

  "우오오오오!"

  카이사르의 군단은 곧 있으면 눈앞에 들어올 부귀영화를 꿈꾸며 목이 쉬도록 카이사르의 이름을 연호했다.

  사실 객관적으로 생각해 봐도 카이사르의 주장은 이치에 벗어나지 않았다.

  그가 이끄는 군단은 거의 10년에 가까운 세월을 전장에서 보냈다.

  그리고 갈리아와 브리타니아 전역, 거기에 게르마니아의 대부분을 점령했다.

  지난 수백 년간 로마가 시달려온 북방 이민족에 대한 걱정을 완전히 뿌리째 뽑아버린 것이다.

  이 업적은 카이사르라면 치를 떠는 카토마저 위대한 승리라고 인정할 정도였다.

  폼페이우스에 뒤지지 않는 규모의 개선식을 요구한다고 해도 원로원은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카이사르는 군단병들이 충분한 휴식을 취해야 하니 장거리 행군은 하지 않겠다고 확실히 못을 박았다.

  겸사겸사 게르마니아의 점령지를 안정화하고 온통 숲으로 둘러싸여 있는 토지를 손보겠다는 의도가 엿보였다.

  물론 카이사르의 의도는 이것만이 아니었다.

  그의 명령을 받은 정찰병들이 엘베강의 동쪽의 상황을 조사하기 위해 조심스레 길을 떠났다.

  엘베강을 로마의 임시 국경으로 삼기로 한 이상 동쪽의 정세가 어떤지 확실히 알 필요가 있어서였다.

  그렇게 게르마니아에서 시간을 보내는 동안에도 카이사르는 착실하게 자신의 일을 처리했다.

  역참을 통해 꾸준히 로마와 연락을 주고받으며 정치에도 깊이 관여했고, 마르쿠스와도 의견을 주고받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의 비밀지령을 받은 라비에누스가 돌아오기를 손꼽아 기다렸다.

  목이 빠져라 기다리기를 한 달째.

  드디어 라비에누스가 다시 라인강을 넘어 카이사르의 군영에 모습을 드러냈다.

  "어서 들어오게."

  라비에누스가 문을 두드리기 무섭게 카이사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문간에 서 있는 사람을 알아본 카이사르가 펜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친애하는 내 부관이 드디어 돌아왔군. 아주 기쁘네."

  "제 평생 이토록 환대를 받아본 건 한 손으로 꼽을 정도가 안 되는 것 같은데 얼떨떨하군요."

  "그만큼 자네가 오는 걸 기다렸다는 뜻이지. 포도주 한잔하겠나?"

  "부탁드리겠습니다. 갈리아 촌구석을 하도 여기저기 돌아다녔더니 제대로 된 포도주를 마실 틈이 없었거든요."

  라비에누스는 자리에 앉아 카이사르가 건네는 잔을 받아들었다.

  "갈리아의 상황은 어떤가? 불온한 움직임이 있다는 보고는 없었지?"

  "예. 그런 움직임이 있다면 제가 보고를 받았을 겁니다. 아, 그러고 보니 아르베르니족의 족장이 주의를 주더군요. 베르킨게토릭스라는 젊은이가 요새 부쩍 심상치 않은 언동을 하고 있다고요. 물론 아무도 호응해주는 사람이 없어서 금방 꼬리를 내리고 자숙에 들어갔다고 합니다."

  "그래? 일단 별문제 없다고 하니 다행이긴 하지만 그 베르킨게토릭스 같은 자만 봐도 강경파의 씨앗이 완전히 사라진 게 아닐세. 그러니 눈에 띄는 자들이 있다면 일단 눈을 떼지 말라고 각 종자들에게 일러두게."

  "명심하겠습니다. 그런데 갈리아보다는 이곳에 더 주의를 쏟아야 하는 것 아닙니까? 게르마니아의 부족들은 갈리아처럼 순순히 통치를 받아들이지 않을 텐데요. 앞으로도 걸핏하면 반란을 일으키지 않겠습니까."

  카이사르가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까딱였다.

  "그래서 점령 단계부터 꽤 신경을 썼네. 항복을 하는 자들에게는 파격적인 대우를 베풀고, 끝까지 저항을 하는 자들은 철저하게 응징해서 본보기로 삼아줬네. 그뿐만이 아니라 항복을 하고도 로마에 적대할 움직임을 보이는 부족들이 있다면 언제든 밀고하라는 엄명을 내려두었네."

  "그런다고 그들이 협조를 하겠습니까?"

  "실제로 아주 잘하고 있네. 배신을 계획하는 마을은 깡그리 밀어버린 뒤, 거기에서 나오는 노예나 각종 물자들의 절반을 밀고한 부족에게 떼어주기로 했거든. 그리고 신고한 부족의 유력자들에게 로마 시민권을 추가로 더 부여해줬고."

  "당근과 채찍의 교본으로 남을 만한 정책이로군요."

  카이사르는 관용을 좋아하긴 했어도 아무에게나 무턱대고 관용을 베풀지는 않았다.

  그의 관용에도 엄연히 우선순위는 존재했다.

  같은 로마 시민은 거의 무조건적으로 관용의 수혜를 받았으나, 이민족들의 경우엔 달랐다.

  단순히 잘해주는 것만으로는 동화되지 않는 자들에게는 단호하게 채찍을 휘두를 필요가 있었다.

  카이사르는 같은 로마 시민에게는 한없이 물러지는 경향이 있어도 이런 점에서는 균형 감각이 꽤나 절묘한 편이었다.

  "그나저나 라비에누스, 내가 내린 지령은 성공적으로 수행했나?"

  라비에누스가 포도주 잔을 내려놓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그의 목소리가 자연스럽게 낮아졌다.

  카이사르가 싱긋 웃으며 라비에누스의 빈 잔에 포도주를 더 채워주었다.

  "그래, 그럼 그는 어디에 있나?"

  "아이두이족의 영역에서 찾았습니다. 갈리아의 부족들을 꼬드겨서 히스파니아와 분쟁을 일으킬 생각이었던 듯싶습니다."

  "쯧, 역시 예상대로 생각이 짧은 녀석이었군."

  "그자가 사고를 칠 줄 알고 탐색을 명하신 겁니까?"

  "그런 의미도 있고, 써먹기 좋은 말이라는 점도 한몫을 했네. 물론 직접 만나봐야 더 정확한 판단이 되겠지만."

  라비에누스가 손가락으로 오른쪽을 가리키며 물었다.

  "일단 옆의 막사에서 대기하라고 일렀습니다. 물론 아무도 얼굴을 보지 못하도록 투구를 씌워두었습니다. 데려올까요?"

  "그래, 자네의 확실한 일 처리는 언제나 고맙게 생각하고 있네."

  "그러면 나중에 법무관까지는 올라갈 수 있도록 힘 좀 써주십시오."

  농담 섞인 라비에누스의 부탁에 카이사르가 눈살을 찌푸리며 혀를 찼다.

  "남아가 그렇게 꿈이 작아서 어디에 쓰겠나. 최소한 집정관의 자리에 앉게 해달라고 부탁할 패기는 있어야지."

  "···정말로 절 집정관으로 밀어주실 겁니까?"

  "그럼 내가 한 입으로 두말할 거라고 생각하나?"

  "아닙니다! 그럼 저는 이만······."

  라비에누스는 만면에 화색을 띤 채로 총사령관의 막사를 떠났다.

  그의 등이 보이지 않게 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막사의 문을 열고 카이사르가 그토록 기다려온 그 사람이 안으로 들어섰다.

  "저를 찾으셨다고 들었습니다."

  분노와 울분, 그리고 그걸 뒤덮을만한 무기력감에 찌든 목소리가 그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카이사르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반갑게 자리에서 일어나 두 팔을 활짝 벌렸다.

  "어서 오게, 그나이우스. 기다리고 있었네."

  < 184. 균열의 시작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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