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5. 갈리아 내전 >
195.
로마와 알렉산드리아의 거리는 배를 타고 최단거리로 가로질러도 2000km가 넘어간다.
고대 시대의 갤리선은 아무리 빨라도 최고 속력은 5노트를 넘어가기 힘들었다.
즉, 마르쿠스가 알렉산드리아에서 보고를 받았을 때는 사건이 터진 지 이미 열흘가량 지난 뒤였다.
섹스투스는 마르쿠스가 떠난 뒤에 은밀히 행동을 개시했다.
카이사르를 치기로 결정을 하긴 했으나, 섣불리 움직이다가 꼬리를 잡힐 마음은 없었다.
그는 일단 자신과 함께하기로 한 의원들의 입단속부터 철저하게 하고 나섰다.
"이번 일의 성패를 가르는 건 처음부터 끝까지 기밀유지에 달렸습니다. 경솔하게 입을 놀리는 사람이 있다면 배신자로 간주할 테니 다들 명심하길 바랍니다."
폼페이우스파의 움직임은 조용하면서도 신속했다.
우선 귀족파에게 고발당한 의원들은 길길이 날뛰는 척하며 어디까지나 재판으로 문제를 해결할 것처럼 위장공세를 폈다.
귀족파가 현재 가장 집요하게 물어뜯고 있는 사람은 폼페이우스파의 가비니우스였다.
카이사르파 역시 그를 찍어내기 위해 갖가지 증거를 몰래 귀족파에게 넘긴 상황이었다.
이유는 역시 가비니우스가 폼페이우스파에서 군사적 재능이 가장 뛰어난 원로 중 한 명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도 한 가지 다행인 점은 가비니우스 재판에 대한 관심으로 다른 쪽으로는 의원들이 시선이 쏠리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섹스투스는 지금이 물밑에서 움직일 절호의 기회라고 판단했다.
"히스파니아에 절반의 군단을 남겨 두길 잘했군."
그는 그나이우스와의 내전을 끝마친 뒤에도 치안 유지를 위해 3개 군단을 상주시켰다.
그때는 어쩔 수 없다고 여기면서도 유지비용이 아깝다고 느껴졌는데 지금은 정반대였다.
히스파니아의 군단이 아니었다면 지금의 계획을 실행에 옮길 엄두도 내지 못했으리라.
그는 가비니우스에게 더 적극적으로 여론전을 펼치라고 이른 뒤, 밤마다 동료들과 회합을 가지며 계획을 점검했다.
이미 한배를 타기로 결심한 폼페이우파의 의원들은 섹스투스의 설명을 한 글자도 빠지지 않고 귀담아들었다.
"가장 중요한 건 저번에도 말했듯 기밀유지, 그리고 그 다음으로 우리가 신경 써야 할 건 신속함입니다."
섹스투스가 책상 위에 펼쳐진 거대한 지도를 손가락으로 짚어가며 말을 이었다.
"카이사르가 현재 거느리고 있는 군단의 수는 열 개입니다. 엄청난 대군이죠. 그리고 훈련도 아주 잘 되어 있는 정예병들입니다. 이들과 정면으로 맞상대해서는 승산이 없습니다. 저나 가비니우스가 온 힘을 다해 지휘를 해도 카이사르 한 명을 감당하기 힘들 테니까요. 게다가 그의 밑에는 우수한 막료들도 다수 포진되어 있습니다."
설명을 쭉 듣고 있던 의원 중 한 명이 어색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러면 저희에게 승산이 없다는 말입니까?"
사실 폼페이우스파 의원들이라고 불안한 마음이 없는 건 아니었다.
자신들을 대놓고 배척하려고 하니 카이사르와 싸우기로 마음을 먹긴 했으나, 상대는 바로 그 카이사르였다.
그가 누구인가.
10년도 걸리지 않아서 갈리아 전역과 브리타니아 전체를 제패하고, 게르마니아의 대부분을 손에 넣은 군사의 천재다.
그런 자와 정말로 싸운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벌렁거리고 밤에 잠이 오지 않는 이들도 많았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카이사르파에 붙어봐야 미래가 없으니 진퇴양난의 상황이었다.
섹스투스는 그런 동료 의원들의 생각을 잘 알았다.
정작 본인도 그런 불안감이 드는데 다른 이들은 오죽할까.
마르쿠스의 평가도 딱 그러했다.
정면승부를 하면 백번 싸워서 백번은 질 자신이 있었다.
물론 그렇기 때문에 처음부터 정면에서 힘겨루기를 할 생각은 없었다.
섹스투스는 손가락으로 브리타니아, 게르마니아 쪽을 짚으며 자신감 있는 눈빛으로 의원들을 둘러보았다.
"지레 겁을 먹을 필요는 없습니다. 지금까지 보안을 유지하기 위해 말을 아꼈지만, 이제 때가 왔으니 제 계획을 말씀드리죠. 우선 카이사르가 10개 군단을 거느리고 있다고 해도 그가 이 10개 군단을 전부 동원 가능한 건 아닙니다. 지금 카이사르는 브리타니아의 안정을 위해 그쪽에 2개 군단을, 그리고 게르마니아에 2개 군단을 배치해 두었습니다."
"그렇다면 도합 6개 군단이 갈리아에 주둔하고 있는 것입니까?"
"예. 그리고 그 6개 군단도 현재 하나로 뭉쳐있는 게 아닙니다. 최소 1개에서 최대 2개 군단은 갈리아 북부에 주둔하고 있다는 걸 확인했습니다."
"그래도 막상 싸움이 벌어지면 곧장 합류하지 않겠습니까. 브리타니아나 게르마니아에 있는 군단의 합류는 상당히 늦겠지만······."
"그러니 속전속결로 해치워야지요. 우리가 선제공격을 가해서 적에게 타격을 입히고 시작한다면 뒤늦게 적의 지원이 도착해도 우리가 우세를 점할 수 있습니다."
섹스투스는 막힘없이 능숙하게 지도 위에 놓인 말들을 움직이며 자신의 전략을 풀어나갔다.
"히스파니아에 주둔하고 있는 군단이 현재 셋. 그리고 저번에 원정에 동원했던 군단은 언제라도 바로 소집할 수 있는 이탈리아에서 세 개 군단을 바로 동원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선 도합 6개의 군단으로 선제 타격을 가한 뒤, 적의 지원이 도착할 때쯤 저희도 추가로 편성한 4개 군단을 불러들이면 됩니다. 즉, 초반에 기습공격으로 얼마나 큰 타격을 입히는지로 전세의 유불리가 정해지겠죠.
"
"아, 그러니 보안 유지에 그토록 신경을 쓰신 거군요."
"예. 그리고 이미 초기에 동원할 6개 군단의 준비는 이미 끝났습니다. 히스파니아의 군단은 아버지의 밑에서 군단장을 역임했던 폼포니우스가 지휘할 겁니다. 그리고 저는 여기서 편성된 세 개 군단을 이끌고 갈리아로 북진하겠습니다."
섹스투스의 목소리에는 그나이우스와 싸울 때와는 한층 다른 늠름함이 서려 있었다.
결국 사자의 자식은 사자인 법.
미숙했던 그에게 직접 군단을 이끌어 본 경험은 둘도 없는 성장의 밑거름이 되었다.
굳이 그걸 드러내려고 하지 않아도 주변의 모두가 느낄 수 있었다.
폼페이우스파의 원로들은 그런 섹스투스의 모습에서 한 줄기 희망을 보았다.
이대로 계속 성장해 나간다면 과거 폼페이우스처럼 로마를 이끌어나갈 거목으로 성장할 수도 있다.
만약 이번에 카이사르를 상대로 승리를 거둘 수만 있다면?
그러면 동방에서 절대적인 아성을 구축한 마르쿠스조차 넘볼 수 없는 세력을 거느리게 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현재 돌아가는 상황을 볼 때 분명히 승산이 없는 건 아니었다.
카이사르는 아직 섹스투스가 군사적으로 뭔가를 하려고 한다는 의심조차 하지 못하는 듯 보였다.
사실 이게 당연했다.
섹스투스의 이번 결정은 자신의 미래를 건 도박수나 다름없었다.
그나이우스 때와는 경우가 다르다.
그때는 명백히 로마의 법을 어긴 반역자를 친다는 명분이 있었으나, 이번에 일으키려는 전쟁은 그런 명분조차 없었다.
그 누구도 섹스투스가 카이사르를 향해 검을 뽑으려 들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사실 지금 로마에서 벌어지는 정치공방의 배후에 카이사르가 있다는 걸 아는 사람들조차 몇 되지 않았다.
그러나 바꿔 말하자면 이런 명분 없는 전쟁은 섹스투스에게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할 수도 있었다.
이 점을 염려한 가비니우스가 조심스럽게 손을 들고 물었다.
"훌륭한 전략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시민들의 여론은 어떻게 조성할 생각이십니까. 그냥 다짜고짜 군대를 일으키는 건 이쪽이 과한 폭거를 일으키는 거라고 비칠 우려가 있습니다. 카이사르도 그걸 아니까 우리가 섣부르게 군대를 움직이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는 게 아닐까요? 만약 민심을 잃는다면 전쟁에서 이긴다고 해도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게 없습니다."
"자폭을 할 마음은 없습니다. 저는 이기기 위해 싸우는 거지 같이 죽기 위해 싸우는 게 아니니까요. 카이사르를 공격하면서 그가 가짜 정보와 선동으로 내란을 일으키려고 했다는 발표를 할 겁니다.
그리고 귀족파에게도 거래를 제시할 겁니다. 내전이 끝나고 혼란을 수습하는 데 협력한다면 이권을 나눠주고, 귀족파와 협력해 원로원의 권위를 강화하는 데 앞장서겠다고요.
"
"그건 괜찮은 생각이군요. 그들이야 손해 볼 게 없겠죠. 우리가 지면 그냥 우리를 규탄하면 그만이고 이기면 이득을 챙기면서 협력하면 그만이니까요."
섹스투스는 이미 상세한 거래안까지 다 생각해 두었다.
갈리아에서 비옥한 토지를 집중적으로 선정해 배분해주겠다고 하면 귀족파는 아마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 것이다.
남은 변수는 카이사르가 갈리아 부족들을 동원해 맞서는 것이었는데 이것도 사전에 차단할 수단을 강구해 두었다.
할 수 있는 모든 준비를 끝마쳤다.
더 이상 망설일 게 없었다.
※※※
동료 의원들에게 계획을 설명한 뒤 섹스투스는 적극적으로 행동을 개시했다.
히스파니아로 건너간 폼포니우스는 언제라도 갈리아로 침공할 수 있는 위치로 슬며시 군단을 움직였다.
섹스투스는 비밀리에 수하들을 보내 미리 준비시켜 두었던 군단병을 빠르게 소집했다.
평상시였다면 정보통을 자처하는 키케로 같은 의원이 이 사실을 눈치챘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그는 가비니우스의 재판에 정신이 팔려 다른 곳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가비니우스가 연일 연단에 올라 이번 일의 배후에 카이사르파가 있다고 주장하며 정치적인 논란을 키워댔기 때문이다.
섹스투스가 전쟁을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지금까지 단 한 명도 없었다.
그가 얼마나 철저하고 은밀하게 계획을 진행했는지 엿볼 수 있는 부분이었다.
키케로가 무언가 이상하다고 여긴 시점은 가비니우스가 갑자기 태도를 바꿔서 재판에 임할 수 없다고 억지를 부리기 시작했을 때부터다.
지금까지 재판장에서 철저히 진상을 규명하겠다고 하던 그가 갑자기 태도를 바꿔버린 것이다.
그리고 귀족파에서 뭐라고 하기도 전에 섹스투스가 자신의 권한으로 원로원을 소집했다.
섹스투스는 의아해하는 원로들을 향해 청천벽력과도 같은 발표를 건넸다.
"친애하는 동료 의원 여러분, 제가 이 자리를 소집한 건 다름 아닌 국가의 반역자 한 명을 축출하기 위해서입니다."
"반역자? 가비니우스가 뇌물을 받긴 했지만 거기에 반역죄를 적용하는 건 너무 과한 처사가 아닌가?"
통렬하게 비꼬는 카토의 말에도 섹스투스의 표정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카토를 향해 한 번 웃어주고는 태연하게 입을 열었다.
"제가 지목하려는 사람을 듣게 되신다면 카토 님은 오히려 환영할 겁니다. 저보다도 더 그 사람을 열심히 공격해 왔으니까요."
"뭐? 설마······!"
"그 설마입니다. 저는 현 갈리아와 브리타니아, 그리고 게르마니아의 총독인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에게 국가 반역죄를 적용하겠습니다. 그리고 그가 불응할 시 무력으로라도 소환절차를 집행하겠습니다. 이를 위해 저는 제게 부여된 10개 군단의 지휘권을 사용하고자 합니다."
"그게 대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인가! 반역죄라니? 카이사르가 그런 말도 안 되는 누명을 받아들일 거라고 생각하나?"
"어째서 그렇게 놀라십니까. 카토 님은 언제나 카이사르가 원로원을 전복하고 공화정을 망치려 든다고 주장하지 않으셨습니까. 공화정을 무너뜨리려는 사람은 당연히 반역죄의 대상이 됩니다. 카토 님은 찬성하셔야 하는 게 아닌가요?"
카토의 안색이 창백하게 질렸다.
그가 물론 카이사르의 위험성을 쭉 경고했던 건 사실이었다.
언젠가 그가 공화정을 무너뜨리겠다는 야심을 품고 있다는 사실도 확신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건 아니었다.
이런 식으로 카이사르를 공격해 봐야 얻을 수 있는 건 단 하나도 없다.
"나는 찬성할 수 없네. 이건 그냥 억지로 시비를 걸어서 전쟁을 하자는 말밖에 되지 않아. 이런 멍청한 의견에 지지를 할 사람이 누가 있겠나."
"억지를 부린 쪽은 카이사르가 먼저입니다. 그는 간악하게도 저를 지지하는 의원들을 말도 안 되는 이유로 모함해 의원직을 잃게 만들려고 했습니다. 이건 터무니없는 중상모략이며 증거가 조작되었다는 자료도 제시할 수 있습니다."
"그게 정말인가?"
당연히 거짓말이었다.
그러나 섹스투스는 카이사르를 이기면 얼마든지 그런 증거를 확보할 수 있을 거라고 내다보았다.
설령 증거조작의 흔적을 찾지 못한다고 해도 이쪽에서 역으로 조작하면 그만이다.
섹스투스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그리고 카이사르가 이런 일을 벌인 의도는 단 하나. 귀족파와 저를 따르는 의원들을 대립시켜 원로원을 약화시킨 뒤, 자신이 실권을 잡기 위해서입니다. 이에 관한 증거도 다 확보해 놓았습니다."
"그렇다면 그 증거를 보여주시오. 그러기 전에는 그쪽의 주장에 동의할 수 없소."
"물론 공개할 겁니다. 단, 지금은 시간이 너무 촉박하니 우선 행동으로 옮길 수밖에 없는 점을 양해해주십시오. 이건 불법적인 행위나 월권이 아닙니다. 저에게는 로마의 집정관과 대등한 권리가 부여되어 있고 집정관은 반란 행위가 일어났을 시 자의적인 판단으로 그걸 제압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마땅히 그래야만 하고요."
침묵을 지키고 있던 키케로가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않고 눈살을 찌푸렸다.
"물론 그렇긴 하지만 그게 죄 없는 사람에게 반역죄를 적용시켜 해코지해도 된다는 소리는 아닐세."
"만약 제가 나중에 증거를 제시하지 못한다면 그에 상응하는 처벌을 받겠습니다. 제가 여기에서 하는 말은 전부 기록으로 남을 테니 발뺌할 수도 없을 겁니다. 이렇게까지 말한다면 여러분도 납득하시겠죠?"
카토는 맹렬하게 정치적인 손익을 계산했다.
섹스투스의 말대로 지금 원로원에서 하는 모든 발언은 악타 디우르나에 의해 물증으로 남았다.
이렇게까지 말하고 섹스투스가 카이사르를 축출했는데 마땅한 증거가 나오지 않는다면 그 역시 실각을 피할 수 없다.
물론 무력으로 로마를 뒤엎으려 할 수도 있겠지만, 어차피 곧 있으면 마르쿠스가 돌아온다.
카이사르와 피 터지게 혈전을 벌인 섹스투스가 마르쿠스를 이길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리고 섹스투스가 카이사르에게 역으로 당해도 별문제는 없었다.
그러면 카이사르 역시 어느 정도의 타격은 입을 테고, 섹스투스가 실각되고 무주공산이 된 폼페이우스의 세력권을 귀족파가 먹어치우면 되지 않겠는가.
카토는 격분해서 반박하려는 키케로를 제지시키고 상황을 관망하자고 주장했다.
이런 종류의 야합을 가장 싫어하는 키케로는 말도 안 된다고 항변했으나, 대다수의 귀족파는 카토와 같은 생각이었다.
결국 격분해서 자리를 박차고 나간 키케로는 그대로 자신의 방으로 달려가 마르쿠스에게 보낼 서신을 작성했다.
그러든 말든 섹스투스는 개의치 않고 카이사르를 로마의 적으로 선포하고 토벌하겠다는 공식선언문을 냈다.
그와 동시에 히스파니아와 이탈리아 북부에서 대기하고 있던 그의 6개 군단이 거의 동시에 갈리아로 밀고 들어갔다.
이제 누구도 멈출 수 없다.
폼페이우스의 죽음으로 지펴진 작은 불씨가 마침내 로마의 권력 구도를 재편하게 될 거대한 내전의 불길로 격화됐다.
마르쿠스에게 키케로의 편지가 도달하기 열흘 전의 일이었다.
< 195. 갈리아 내전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