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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9. 대회전 (230/326)

  < 229. 대회전 >

  229.

  "와아아아!"

  두 배가 넘는 병력 차. 하늘을 뒤덮는 화살이 격전의 서막을 알렸다.

  달려드는 흉노의 선봉대는 쏟아지는 화살의 소나기가 이전과는 크게 다르다는 걸 깨달았다.

  흉노군의 활보다 사거리가 긴 동방군단의 활의 수도 이전보다 훨씬 많았고, 편전 사수도 육안으로 구분이 갈 정도로 수가 늘어 있었다.

  그 말은 즉 사거리로 들어가기도 전에 낙마하는 기병의 수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기죽지 마라! 뚫고 들어가 적의 목덜미를 물어뜯어라!"

  화살에 맞아 아군이 차례차례 낙마하는 와중에도 흉노 전사들은 주춤거리지 않았다.

  여기서 움찔해 속도를 늦추면 오히려 피해가 더 커질 수밖에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송곳과도 같은 기세로 달려오던 흉노 기병들이 로마군과 거리가 좁혀지자 양쪽으로 쫙 갈라졌다.

  라리사 회전 때처럼 한곳에 모든 전력을 집중해 좌익이나 우익을 밀어붙이진 않았다.

  이번에는 흉노군의 수도 워낙 많았고, 그 대군을 라리사 때처럼 완벽히 통솔하는 건 물리적으로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적이 그렇게 나올 거라고 예상한 카이사르는 아군의 기병대에게 출격 신호를 보냈다.

  로마군은 흉노와는 달리 10만에 달하는 기병의 거의 전부를 좌익 쪽에 집중시켰다.

  우익에 배치한 기병의 수는 불과 2만도 채 되지 않았다.

  대신 우익이 적의 기병에 돌파당하지 않도록 여러 대비를 해놓았다.

  카이사르는 이미 섹스투스가 패배했던 회전과 마르쿠스가 비등하게 싸웠던 회전의 상세한 정보를 모두 전해 들은 상태였다.

  거기에 현재 흉노군은 잔뜩 초조해져 빠르게 결판을 내려고 안달이 난 상황.

  전술의 천재인 카이사르에게는 상대방의 움직임이 예상하기 싫어도 그러지 못할 정도로 훤히 내다보였다.

  "임페라토르를 위하여!"

  "로마 인빅타!"

  그토록 기다리던 돌격 명령이 떨어진 그 순간.

  서로 뒤질세라 엄청난 기세로 기병의 선두에서 튀어나가는 두 인영이 있었다.

  스파르타쿠스와 베르킨게토릭스였다.

  먼저 적과 접촉한 쪽은 스파르타쿠스였다.

  로마 기병대의 최전선에 서는 중장기병들은 이전과는 모습이 또 달랐다.

  이전보다 더 길어진 대형 창에 독수리의 날개를 연상시키는 장식을 등에 달고 있었다.

  이것이 바로 마르쿠스가 중무장 기병의 최종단계로 생각한 완성형의 모습이었다.

  이전보다 더 길어진 랜스는 사거리 싸움에서 우위를 잡으려는 실용적인 목적이 있었다.

  랜스의 길이가 길어진 만큼 무게를 줄였지만, 어차피 흉노군의 갑옷은 이런 가벼운 랜스로도 손쉽게 뚫을 수 있으니 상관없었다.

  반면 등에 달린 독수리의 날개 장식은 사실 실제 전투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는 물건이었다.

  이 날개 장식은 역사상 최강의 기병들 중 하나로 불리는 윙드 후사르에서 착안한 것이다.

  전투에 쓸데없는 장식을 달고 있는 건 거추장스럽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은 달랐다.

  적으로서는 도저히 손을 쓸 수 없는 괴물 같은 중기병이 중후한 날개까지 달고 달려오면 그 위압감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그리고 그 뒷모습을 보며 함께 달려가는 아군은 절대로 질 리가 없다는 확신을 가져다준다.

  때문에 마르쿠스는 일부러 로마군의 상징이라고도 할 수 있는 독수리의 모습을 형상화하는 데 주력했다.

  선봉에서 적을 격멸하기 위해 내달리는 건 로마의 상징 그 자체다.

  효과는 바로 나타났다.

  생전 처음 보는 적 기병의 돌격에 용맹한 흉노군조차 주춤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냥 겉모습만 요란한 속 빈 강정이라면 몰라도 로마 중기병의 무시무시함은 이미 그들에게도 널리 알려져 있었다.

  실제로 바야투르가 마르쿠스와 붙었을 때는 적 기병과 정면 승부를 피하고 발만 묶는 데 모든 정예를 투입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이번엔 그런 전술도 쓸 수가 없었다.

  돌격해오는 중장기병의 수가 이전 회전보다 훨씬 더 늘어나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흉노 기병은 양쪽으로 나뉜 상태고 로마군의 기병은 거의 한쪽에 집중된 상태라 전체적인 수도 별 차이가 없었다.

  "당황하지 말고 침착하게 싸워라! 적의 중기병은 강하긴 해도 말에서 떨어트리면 무력화되는 건 마찬가지다! 반대쪽의 기병대가 적의 우익을 포위할 때까지만 버티면 된다!"

  바야투르는 다른 자들과는 다르게 냉정하게 상황을 파악하고 지시를 내렸다.

  어느 쪽의 주 전력이 상대방을 먼저 무력화하냐가 이번 전투의 분기점이 될 터.

  평상시의 흉노군이라면, 그리고 싸우는 상대가 모든 전력을 집중한 로마군이 아니었다면 그의 생각대로 흘러갔을 것이다.

  "흉노족을 모조리 말살하라!"

  스파르타쿠스가 돌격하며 찌른 장창에 흉노 기병 셋이 한꺼번에 꿰뚫려 말에서 떨어졌다.

  핏물을 뿜으며 날아가는 적군의 육신의 쑤셔 박는 랜스 돌격이 이어졌다.

  "알탄! 모습을 보여라!"

  압도적인 괴력을 보이는 건 베르킨게토릭스도 마찬가지였다.

  스파르타쿠스 같은 무위는 갖추지 못했으나 그의 힘은 어디 가서 뒤지지 않았다.

  거기에 마르쿠스가 준 장비가 더해지자 그야말로 사자에 날개가 돋아났다.

  판금갑옷 위에 걸친 사자 가죽이 삽시간에 흉노 기병들의 피로 흠뻑 젖었다.

  거칠 게 없는 돌진이었다.

  흉노의 정예로 칭송받는 전사들이 마치 꼬치에 꿰인 것처럼 창끝에 박혀 들었다.

  마치 무리 지어 있는 양떼에 흉포한 독수리와 사자가 뛰어든 것만 같았다.

  뒤에서 따라가는 아군들마저 혀를 내두를 기세였다.

  적들의 사기를 꺾어 놓는 게 최전방에서 돌격하는 선봉대의 임무다.

  그 점을 놓고 보면 저 두 사람이 이끄는 부대보다 강한 선봉대는 존재하지 않을 듯싶었다.

  "무지막지하군."

  "생각보다 더 효과가 좋군요."

  멀리 떨어져 있는 마르쿠스와 카이사르의 눈에도 두 맹장의 활약상이 똑똑히 보였다.

  독수리의 날개가 적을 덮칠 때마다 마치 모세의 기적처럼 적들이 쫙 갈라졌다.

  "기병들의 뒤에 저 날개 장식을 다는 건 솔직히 조금 의문이 남긴 했지만 아무래도 자네 생각이 옳았던 모양일세. 확실히 전투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적의 사기를 낮추고 이쪽의 전의를 끌어올리기만 하면 되는 거니까."

  "물론 위험이 없는 건 아닙니다. 로마의 상징을 그대로 짊어진 이상 저 기병대는 절대 무너져서는 안 됩니다. 아니, 적에게 고전하는 모습조차 보여서는 안 되겠죠. 절대적인 불패의 상징으로 남아야 합니다."

  "그거라면 문제없을 것 같은데. 지금 자네가 만든 저 기병을 상대할 수 있는 자들이 이 세상에 몇이나 있겠나."

  마르쿠스는 자신감 넘치는 미소로 답을 대신했다.

  우오오오오!

  아군의 함성이 끝도 없이 고조되는 게 느껴졌다.

  선봉으로 나아간 중장기병에 이어서 나머지 기병대가 적들과 충돌했다.

  격렬한 전투가 여기저기서 벌어졌다.

  저번과 달리 효과적으로 로마군의 중장기병에 대처하지 못한 탓인지 흉노의 기병대는 눈에 띄게 밀렸다.

  스파르타쿠스나 베르킨게토릭스의 부대와 정면으로 맞서지 않으려고 물러서면 당연히 빈틈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 사이로 뒤따라온 로마 기병대가 무자비하게 창을 내지르고 검을 후려쳤다.

  반대로 로마군의 우익은 흉노군에게 쉽사리 돌파당하지 않았다.

  카이사르는 아군의 기병 지원이 부실한 우익은 처음부터 버티기에 특화되어 있는 편성을 해놓았다.

  전투 경험이 풍부한 베테랑 보병들을 거의 전부 우익에 집중시켰고, 적의 궁기병을 견제할 편전사수들과 숙련된 궁병들도 전부 우익 쪽으로 이동시켰다.

  상황이 이러니 제아무리 흉노 기병들이라 할지라도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었다.

  미친 듯이 날아오는 적군의 화살이 잠잠해질 때까지는 접근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싸움의 향방이 이상하게 흘러간다는 건 흉노의 지휘관들도 조금씩 느끼고 있었다.

  왜 이렇게 된 건지 이해가 잘 가지 않았다.

  로마군의 움직임이 너무 좋아서?

  로마군이 그들의 상상 이상으로 강해서?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었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자신들의 움직임이 조급하고 단순해졌다는 자각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바야투르는 그나마 냉정을 유지하고 최선의 지휘를 하고 있었으나 안타깝게도 전쟁은 그 혼자 하는 게 아니었다.

  게다가 이번 전투는 바야투르가 자신의 최고 정예 7만만 거느리고 하는 회전이 아니다 무려 20만에 가까운 대규모 전사들이 투입된 고대사에서 규모를 찾아보기 힘든 대회전이었다.

  이들을 능수능란하게 움직이기 위해서는 부족장들의 역할이 중요했다.

  하지만 가족들을 학살당해 복수심으로 눈이 뒤집혔거나, 언제 가족이 습격당할지 몰라 초조해하는 이들이 이전처럼 완벽한 지휘를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이들은 기계가 아닌 사람이기 때문이다.

  모두가 바야투르처럼 극한의 상황에서도 냉정함을 유지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다른 선우들은 그나마 나았지만, 그들도 불리한 전황에 조금씩 당황하는 모양새였다.

  "알탄! 활로를 뚫는다!"

  닥쳐오는 로마군의 기병 하나를 베어 죽이며 바야투르가 앞으로 나아갔다.

  "제가 보좌하겠습니다!"

  알탄과 그가 이끄는 정예병들이 무기를 쥔 손에 힘을 더했다.

  비록 지금 전장에서 적을 압도하고 있지는 못하더라도 의심할 여지 없는 흉노 최강의 전력이었다.

  그들의 진격에 다른 기병들이 필사적으로 버티며 길을 열어주었다.

  "놈들의 핵심전력이 좌익을 돌파하려는 것 같습니다!"

  "알고 있다. 내가 가만히 있을 수는 없겠군."

  바야투르의 모습을 확인한 스파르타쿠스가 말고삐를 휘어잡았다.

  달려드는 흉노 전사의 목을 가볍게 날려버린 그가 방향을 틀었다.

  "모두 내 뒤를 따라라! 적의 수뇌는 이 스파르타쿠스가 직접 맡겠다!"

  반대편에서 한창 기세를 올리고 있던 베르킨게토릭스의 눈에도 돌격하는 스파르타쿠스의 모습이 들어왔다.

  어디를 그렇게 급하게 가나 둘러본 그는 저 멀리서 진격하는 바야투르와 알탄을 확인하고 벼락을 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다.

  '저놈이다!'

  직접 본 적은 없지만 놈의 인상착의만큼은 수없이 전해 들어 눈을 감고도 그릴 수 있다.

  베르킨게토릭스는 확신했다.

  자신의 가족을 학살한 원수.

  갈리아를 초토화시킨 흉노의 선우 알탄이 틀림없었다.

  "우오오오!"

  삽시간에 세 명의 적을 베어 넘긴 그가 말을 몰아 달려갔다.

  그 무시무시한 돌파에 감히 누구도 앞을 막을 엄두를 내지 못했다.

  "거기 그대로 기다려라, 알탄! 네놈의 목을 베는 건 그 누구에게도 양보할 수 없다!"

  목표를 향해 나아가면서도 움직임 자체엔 흔들림이 없었다.

  기병들 사이로 달려가며 좌우로 끊임없이 창칼을 꽂아 넣었다.

  우르르 무너지는 기병들을 뚫고 일직선으로 목표를 향해 나아갔다.

  베르킨게토릭스와 스파르타쿠스는 거의 동시에 바야투르의 앞에 도달했다.

  베르킨게토릭스가 이것만큼은 양보할 수 없다는 듯 살의로 눈을 불태우며 알탄을 가리켰다.

  "저놈에게 내 가족이 전부 죽었소. 저놈만큼은 내게 양보해 주시오."

  "그렇게 하시오. 난 처음부터 저놈에겐 그리 관심이 없었으니."

  스파르타쿠스가 말머리를 틀어 바야투르 쪽을 향했다.

  그가 검을 뽑아 들고 상대를 겨누었다.

  말은 통하지 않았어도 눈빛만으로도 의도는 명백히 전해졌다.

  '이전의 싸움을 계속하지 않을 거냐?'

  "제길."

  바야투르의 입에서 투박한 한숨이 흘러나왔다.

  마음 같아서는 그도 전에 끝내지 못한 승부의 마무리를 짓고 싶었다.

  하지만 상황을 보아하니 이전처럼 완전히 대등한 결투를 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러면 냉정하게 바야투르의 승산은 1할도 되지 않을 터.

  여기서 스파르타쿠스와 싸우는 건 거의 자살행위나 마찬가지였다.

  '그렇다고 등을 보이고 도망가면······.'

  바야투르는 자신에게 쏟아지는 전사들의 희망 어린 시선을 자각하고 있었다.

  전황이 어렵지만 만약 여기서 독수리 날개를 단 기병을 이길 수만 있다면 이쪽의 사기를 확 드높일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럴 수 있는 가능성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다른 기병이라면 몰라도 눈앞의 상대는 저 갑옷을 입기 전에도 자신 이상의 실력을 보여준 스파르타쿠스다.

  바야투르의 망설임을 꿰뚫어 본 알탄이 무기를 뽑아 그의 옆으로 다가왔다.

  "천태선우님께서 저런 놈들과 어울리실 필요는 없습니다. 여긴 저에게 맡겨주십시오. 최대한 빠르게 정리하고 따라가겠습니다."

  "알탄······."

  "놈들과 싸우고 있으면 좌익의 돌파만 늦어질 뿐입니다. 먼저 가십시오."

  바야투르가 알탄과 로마군의 두 장수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알탄은 흉노에서도 이름난 맹장이지만 그가 아무리 애를 써도 스파르타쿠스 한 명의 발목을 잡는 것조차 쉽지는 않을 것이다.

  게다가 그 옆에 사자 가죽을 뒤집어쓴 놈의 실력도 만만치 않아 보였다.

  이 자리를 알탄에게 맡기는 건 그냥 시간을 끌다가 죽으라는 말밖에 되지 않는다.

  하지만 바야투르는 망설임 없이 몸을 돌리고 나직하게 명령을 내렸다.

  "죽이고 따라와라."

  "예."

  바야투르는 스파르타쿠스에게 시선을 주지 않고 그대로 말을 박찼다.

  상대방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나버릴 거라 예상치 못했던 스파르타쿠스는 잠깐 반응이 늦었다.

  그가 막 바야투르를 따라 말고삐를 움켜쥐기도 전에 알탄이 목소리를 높였다.

  "전사들이여 저자의 앞을 막아라. 저자가 천태선우님의 뒤를 쫓아서는 안 된다!"

  부하들에게 명령을 내리는 동시에 그는 만곡도를 뽑아 들고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베르킨게토릭스에게로 향했다.

  "난 그렇게 눈을 치켜뜨고 있는 놈들을 잘 알고 있다. 나한테 원한이라도 있나 보구나. 하지만 그렇게 날 보던 놈들은 지금까지 누구도 예외 없이 모가지가 날아갔지. 네놈도 과연 목이 잘리고도 끝까지 그렇게 눈을 치뜰 수 있나 한 번 보겠다."

  무슨 말을 지껄이고 있는지 도통 알 수 없었지만, 도발이라는 것만큼은 확실했다.

  베르킨게토릭스는 크게 한 번 심호흡을 하고 검을 들어 자신을 가리키며 말했다.

  "갈리아. 아르베르니족. 베르킨게토릭스. 죽더라도 이 이름만큼은 새기고 가라."

  피차 서로 간에 더 말을 나눌 이유는 없다.

  베르킨게토릭스가 사냥감을 앞둔 사자처럼 포효하며 거세게 몸을 날렸다.

  < 229. 대회전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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