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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6. 개선 (237/326)

  < 236. 개선 >

  236.

  개선식은 언제나 로마인들의 가슴을 뛰게 하는 단어다.

  자국에 대한 자부심으로는 둘째라면 서러운 게 바로 로마인들이다.

  그리고 개선식은 그 자부심을 구체적인 형태로 만끽할 수 있는 축제의 장이었다.

  로마 역사상 가장 큰 승리라고 할 수 있는 흉노전쟁의 개선식은 총 세 번에 나눠서 치러지기로 했다.

  첫 번째는 카이사르가 흉노족의 대규모 침입을 끝끝내 저지해 히스파니아와 이탈리아 본토를 수호한 걸 기념하는 개선식이었다.

  그리고 사흘 뒤엔 마르쿠스가 그리스 지역을 되찾고 흉노족을 몰아낸 걸 기념하는 개선식이 열릴 예정이었다.

  마지막으로 카이사르와 마르쿠스가 함께 흉노족을 토벌하고, 보스포루스까지 로마의 영토를 확장한 걸 기리는 개선식이 치러질 것이다.

  당연히 마지막 날짜에 열리는 개선식의 규모가 가장 장엄하고 성대할 터였다.

  이러면 상대적으로 첫날에 열리는 개선식이 초라해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카이사르는 전혀 걱정하는 눈치가 아니었다.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첫날 개선식이라고 해도 그건 어디까지나 마지막 날과 비교하면 그런 것일 뿐이다.

  이미 첫날 카이사르가 치르는 개선식의 규모만 해도 역대 그 어느 개선식에 꿀리지 않을 정도로 장엄했다.

  주목받는 걸 좋아하는 성격답게 그는 이번에도 평범한 개선식과는 다른 여러 요소를 집어넣었다.

  일단 기본적인 행렬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정무관과 원로원 의원들이 선두를 맡고, 그 뒤를 무희들과 악사가 음악을 연주하고 춤을 추며 따라갔다.

  전리품을 실은 마차는 그다지 눈에 띄지 않았고 대신 전쟁의 광경을 묘사한 장식과 그림들이 한가득 대열에 합류했다.

  평범함과 거리가 먼 것은 이 행렬에서 가장 주목받게 될 카이사르의 복장이었다.

  우선 금실로 독수리 문양을 새겨넣은 자주색 토가를 화려한 비단으로 감쌌다.

  머리에 쓴 월계관도 황금을 녹여내 태양을 받으면 눈부시게 반짝여 눈길을 끌었다.

  특히 이 월계관에는 세심하게 많은 공을 들였다.

  대중들이 최근 급속하게 벗겨지고 있는 머리카락을 눈치채지 못하게 하려면 월계관 쪽으로 시선을 돌려야 하기 때문이다.

  카이사르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마차를 이끄는 백마들에게도 포인트를 주었다.

  마르쿠스에게 받은 장비들을 말들에게 입혀 한층 더 중후한 멋을 더한 것이다.

  물론 마차를 끄는 말들이 갑옷을 입으면 체력에 한계를 보이기 때문에 두 마리의 말을 더 붙이는 세심함도 잊지 않았다.

  로마인들도 기마용 장비들을 보지 않은 건 아니지만 판금으로 만들어진 중장비를 본 적은 없었다.

  그런 그들에게 육중한 갑옷을 걸치고 있는 말들은 꼭 말이 아닌 신화 속에 나오는 다른 동물처럼 보였다.

  마르스 평원에서 출발한 행렬은 금방 카피톨리노 언덕을 돌아 세르비우스 성벽 터에 당도했다.

  본래 성벽이 있는 곳이었지만 마르쿠스가 허물어 버렸기 때문에 지금은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오오오! 저기 온다!"

  "카이사르! 카이사르! 카이사르!"

  로마를 구한 위대한 영웅의 등장에 잔뜩 흥분한 시민들이 발을 쿵쿵 구르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번 개선식이 압도적인 것은 행진에 참전하는 군단병들의 수도 한몫을 했다.

  베르킨게토릭스가 이끄는 정예병들은 갑옷 위에 사자 가죽을 걸치고 투구에는 말총 장식을 달았다.

  이 엄청난 숫자의 병사들의 행진에 일반 시민들은 장엄함을 느꼈지만, 원로원의 귀족들은 정반대의 심정을 느꼈다.

  그들은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들이 카이사르에게 점점 종속되고 있다는 불안감을 떨쳐내지 못했다.

  당장 이번 개선식은 일반적인 고등 정무관만이 아니라 집정관 두 명까지 참석을 강제 받았다.

  개선장군이 집정관보다 더한 권한을 가지고 있는 삼두의 일각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집정관 두 명은 직접 행렬에 참가하진 않았어도 신전 연단에서 다른 법무관들과 함께 카이사르의 마차를 기다렸다.

  카이사르의 행렬을 이끄는 의원들은 대부분이 젊은 민중파의 의원들이었는데 이들은 하나같이 열렬한 카이사르의 신도들이었다.

  이 점이 또 여러 중진들의 심기를 거스르는 요인이 됐다.

  "원로원은 이제 카이사르의 딸랑이 노릇을 하기로 노선을 정한 겁니까?"

  시민들에게 표정이 보이지 않는 곳에 자리를 잡은 카토가 이죽거렸다.

  그리 큰 소리는 아니었어도 옹기종기 모여 있는 중진들의 귀에는 천둥소리처럼 선명하게 들렸다.

  키케로가 곤혹스러운 얼굴로 카토의 귀에 속삭였다.

  "경사스러운 자리이니 너무 적의를 드러내진 말게. 우리에게 득이 될 게 없으니."

  "···이것도 최대한 자제한 겁니다. 이게 단순히 화려하기만 한 개선식이라면 저도 이렇게 화를 내진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이건 아니지요. 카이사르는 너무 많은 전통을 어기고 있어요."

  원로원은 이미 개선식이 어떤 절차로 치러질 것인지 전부 통보를 받은 상태였다.

  일단 카이사르와 마르쿠스의 개선식은 규모 자체는 비슷했다.

  일반 대중들이 보기에는 전혀 다른 점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원로원 중진들의 눈에는 카이사르의 요구한 특권이 아주 고깝게 보였다.

  대표적인 게 바로 개선장군을 호위하는 릭토르단의 수였다.

  집정관급의 개선장군이 거느리는 릭토르단의 수는 통상적으로는 24명이었다.

  마르쿠스는 이를 준수해 24명의 릭토르단을 거느리겠다고 했다.

  대신 그들의 복장을 자신이 원하는 대로 손보겠다고 했을 뿐이다.

  반면 카이사르는 종래의 24명이 아닌 무려 그 3배에 달하는 72명의 릭토르단을 거느렸다.

  어차피 수만 명의 군사들이 행진하고 있으니 시민들은 릭토르단이 뭘 하고 있는지 볼 수도 없다.

  하지만 이런 사소한 행위 하나하나가 원리원칙주의자인 카토에게는 참을 수 없는 방종으로만 느껴졌다.

  "72명이나 되는 릭토르를 이끄는 카이사르의 저의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는 자신이야말로 로마의 최고 권력자라는 걸 은연중에 드러내고 있는 겁니다. 자신은 고작 집정관이나 총독 따위가 아니라는 거죠. 분명 아직도 왕이 될 야심을 버리고 있지 못한 겁니다."

  "왕이라니··· 또 그 소리인가?"

  몇몇 의원들이 질렸다는 듯 인상을 찌푸렸다.

  "카이사르의 과시욕이 강하다는 데에는 동감하네. 하지만 그걸 넘어서 왕이 되고 싶어 한다는 건 너무 나간 억측이 아닌가?"

  "솔직히 이번 전쟁의 공로를 생각하면 저 정도 특별대우를 원하는 건 잘못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민중파에 가까운 의원들이 한마디씩 퍼붓자 카토도 더 핏대를 세우진 못하고 성질을 죽였다.

  하지만 그는 그렇다고 자신의 의견을 순순히 굽힐 마음은 없었다.

  그는 옆자리에 앉아있는 자신의 조카 브루투스에게 은밀하게 속삭이며 저 멀리 보이는 카이사르의 행렬을 가리켰다.

  "네 눈에는 어떻게 보이느냐? 내가 정말 과민반응을 하는 거라고 생각하니?"

  "···저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그건 네가 카이사르와 사적으로 친하기 때문에 애써 네 직감을 무시하기 때문일 게다. 이래서 내가 누이에게 널 카이사르와 가깝게 지내지 못하게 하라고 했던 것인데."

  "그래도 친하게 지냈기 때문에 알 수 있는 것도 있습니다. 카이사르 님은 변혁을 추구하긴 해도 무언가의 근본을 바꾸려는 사람은 아닙니다."

  브루투스의 객관적인 평가를 들은 카토의 얼굴에 호기심이 어렸다.

  "그건 즉 카이사르가 공화정을 아예 뒤흔들지는 않을 거라고 확신한다는 뜻이더냐?"

  "아니요. 카이사르 님이 로마의 뿌리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느냐에 따라 갈릴 거라는 말입니다. 만약 그분께서도 공화정 체제가 로마의 근본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면 이걸 어떻게 하려는 마음은 없을 겁니다. 하지만······."

  브루투스는 차마 끝까지 말을 잇지 못하고 대충 흘렸다.

  저번에 마르쿠스와 나눴던 대화가 줄곧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어째서 마르쿠스 님은 그때 확답을 주지 않았던 걸까.'

  브루투스는 이왕 이렇게 된 거 속 시원히 해답을 듣고자 마르쿠스에게 구체적으로 물음을 던졌었다.

  하지만 마르쿠스는 자신이 대답해줄 문제가 아니라며 답변을 거부했다.

  대신 의미심장한 한마디를 남겼을 뿐이다.

  '자신이 직접 보고 듣고 느낀 바에 의해 평가를 내리라고 했었지. 그런 뒤 다시 찾아오라고. 확실히 틀린 말씀은 아니야.'

  사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타인의 식견에 묻어가려고 했던 자신의 모습이 부끄럽기도 했다.

  자신도 눈과 귀가 있고 생각할 수 있는 머리가 있는데 스스로 통찰하지 못할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답을 내는 걸 포기하고 타인에게 의존하는 건 곧 자신의 지성에 사망 선고를 내리는 것과 다름없었다.

  '하지만 내가 볼 땐 아무리 봐도······.'

  브루투스는 신전에 도착해 의식을 마무리하는 카이사르의 모습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가 볼 때 카이사르는 다른 의원들과는 확실히 차별화되는 무언가가 있었다.

  이야기를 나눠 보기만 해도 확실히 체감이 됐다.

  지성으로만 보면 키케로나 카토, 그리고 자신도 그리 밀린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카이사르에게는 그런 피상적인 것과는 관계없이 사람을 압도하는 강렬함이 있었다.

  제왕이 되기에 저보다 적합한 사람은 또 없으리라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는 이였다.

  그래서 카토가 더욱 위기감을 느끼는 게 아닌가 싶었다.

  물론 그런 위기감은 카토만 느끼는 게 아니었다.

  에둘러 점잖게 표현하고는 있어도 키케로도 요새 부쩍 우려 섞인 말을 쏟아내고 있었다.

  지금 당장 이 개선식만 봐도 그렇다.

  카이사르의 말이라면 목숨이라도 내던질 것 같은 충성스러운 병사가 저토록 많이 있다.

  "저들이 반란이라도 일으킨다면 우리가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 저 환호하는 시민들의 모습을 보아라. 아마 카이사르가 우리 의원들의 목을 줄줄이 매달아도 시민들은 카이사르의 편을 들어줄 게다."

  카토의 불안감의 원천은 자신들이 카이사르에게 대항할 수 있는 수단이 전무하다는 데에 있었다.

  사실이었다.

  원로원이 기를 쓰고 병사들을 모아봤자 2개 군단에서 3개 군단이나 되면 다행일 것이다.

  반면 카이사르가 발을 한 번 구르기만 해도 그의 명을 받을 충실한 군단이 최소 10개는 됐다.

  시민들의 지지도 항상 정쟁만 일삼는다는 인식이 박힌 원로원보다 카이사르 쪽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유일한 희망은 마르쿠스가 카이사르를 견제하는 건데··· 유감스럽게도 그는 로마에 오래 머물 생각이 없나 보더군."

  "예. 저도 들었습니다. 개선식이 끝나고 몇 달 정도만 체류한 뒤에 다시 안티오키아로 가실 거라더군요. 아직 할 일이 많으시다고······."

  "그런 점에서도 두 사람의 차이가 나타나는 법이다. 카이사르라고 갈리아나 브리타니아에서 할 일이 없겠느냐. 다만 카이사르는 자신이 관할하는 속주의 일 이상으로 로마에서 무언가를 하려고 하는 게지."

  점점 더 마음이 무거워진 브루투스의 눈에는 이제 더 이상 화려한 개선식의 광경이 들어오지 않았다.

  카토는 카이사르의 대관식이나 다름없는 모습을 더 보기 싫다며 휙 자리를 떴다.

  그래도 다행히 사흘 뒤 열린 마르쿠스의 개선식은 불안해하던 원로원의 마음을 달래주었다.

  그의 개선식은 카이사르 못지않게 웅대했지만 여러 군데에서 기본을 충실히 지키고 있다는 게 티가 났다.

  그럼에도 카이사르 이상으로 눈길을 끄는 장면들이 확실히 보였다.

  무엇보다 로마 시민들의 이목을 잡아끈 것은 마르쿠스가 운용하는 최강의 기병단.

  아퀼라누스였다.

  시민들은 독수리의 날개를 쫙 펼치고 지나가는 아퀼라누스들에게 눈길을 고정한 채로 감탄 섞인 말들을 주고받았다.

  "오오! 저 기병들은 대체 뭐지?"

  "자넨 그것도 모르나? 저게 바로 마르쿠스 총독이 만든 최강의 기병대잖아."

  "흉노 놈들은 상대도 안 됐겠는데?"

  "아무렴. 그냥 흉노 놈들을 닥치는 대로 쓸고 다녔다는데? 저기 옆집 가비우스의 장남이 이번에 전쟁에 참가했잖아. 집에 와서 아주 아퀼라누스 아퀼라누스 하고 노래를 부르고 다녔다는군."

  원로원 의원들에게 심적 안정을 안겨다 준 두 번째 개선식을 지나 열린 마지막 개선식은 분명 그해의 최대의 구경거리였다.

  수십만의 인파가 지켜보는 가운데 바야투르의 갑옷을 입은 흉노족 포로가 로마인들의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폼페이우스와 마르쿠스가 건립한 모든 극장들에서 일제히 연극이 상영되었다.

  당연히 연극의 대미는 마르쿠스가 바야투르를 처형하고 로마의 승리를 선언하는 장면이었다.

  개선식이 마무리된 뒤에도 축제는 쭉 이어졌다.

  마르쿠스는 연달아서 검투사 경기, 카드와 체스 대회, 그리고 요새 부쩍 공을 들이고 있는 마상창 대회를 선보였다.

  그런 뒤 로마의 자유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엄청난 규모의 공공연회를 열었다.

  과장 없이 상다리가 휘어질 정도로 음식이 올라왔고 포도주가 물처럼 흘러내렸다.

  노예시장에는 시장의 균형이 흔들리지 않도록 통제해야 할 정도로 새로운 노예공급이 폭증했다.

  하루 자고 나면 다음 날에는 로마의 어딘가에서 새로운 건물이 올라가고 있었고, 마르쿠스의 주도하에 새로운 즐길 거리나 제도가 하나둘씩 소개됐다.

  물론 모두가 반길만한 변화만 있는 건 아니었다.

  카이사르는 드디어 원로원이 가장 피하고 싶었던 화두를 공개적으로 꺼내 들었다.

  "원로원의 정원수를 확대해 더 다양한 계층의 목소리를 들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필요하다면 토론회도 열 생각이 있으니 모두 적절한 의견을 제시하도록 하십시오."

  법안의 가부를 묻는 게 아닌 사실상의 통보나 마찬가지였다.

  원로원은 문자 그대로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 236. 개선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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