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7. 음모 >
237.
원로원은 카이사르의 이번 발표를 사실상 자신들에게 싸움을 거는 거라고 받아들였다.
"카이사르는 로마인이 아니었습니까? 아니, 이건 말이 안 되는 결정입니다."
"문명화조차 되지 않은 야만족들을 원로원에 들이다니요! 이건 원로원을 능멸하려는 의도가 있다고밖에 볼 수 없습니다."
"절대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모두가 예상했듯 귀족파를 중심으로 거센 반발이 터져나왔다.
특히 카토는 포로 로마눔의 로스트라 연단에 올라 카이사르를 공개적으로 비판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이건 그리 좋은 선택이 아니었다.
이미 카이사르가 하는 모든 일에 지지를 보낼 준비가 된 시민들에게는 도리어 원로원의 행태가 고깝게 보였기 때문이다.
물론 로마 시민들에게도 원로원 의석을 피정복민들에게 열어주는 게 그리 좋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이미 베르킨게토릭스와 수레나스라는 전쟁영웅이 원로원에 입성해 있는 게 현실이었다.
게다가 적어도 이 두 사람에 한해서만큼은 로마 시민들도 열렬한 지지를 보내고 있었다.
이제 와서 속주 출신이 원로원에 들어오는 건 말이 안 된다는 외침이 공허하게 들릴 수밖에 없는 이유였다.
게다가 전쟁의 역사가 길어질수록 속주민들 중에서도 로마 시민권자가 되는 사람들의 수는 조금씩 계속 늘어나고 있었다.
로마에도 이렇게 시민권을 얻은 사람들이 들어와 살고 있는 실정이었다.
시대가 변하고 있다는 걸 느끼지 못하는 로마 시민은 그리 많지 않았다.
무엇보다 일반 시민들은 원로원이 어떻게 돌아가든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점이 가장 컸다.
"어차피 그들만의 세상인데 옳다 그르다를 논하는 게 의미가 있나?"
"자기네끼리 헤쳐 먹다가 항상 아쉬울 때만 시민들에게 호소하는 게 원로원이잖아?"
"차라리 카이사르가 확 다 뒤집어 엎어버렸으면 좋겠구만."
"그냥 이참에 카이사르와 마르쿠스가 종신 집정관을 하는 게 우리에게 가장 좋지 않을까?"
로마인들은 결코 바보가 아니었다.
사람들은 고난이나 어려움이 당연하다고 느끼고 있을 때는 그게 불합리하다는 걸 느끼지 못한다.
하지만 그 모든 일이 지나거나 해결된 이후에는 자신들이 얼마나 손해를 보았는지 자연스럽게 따지게 된다.
이는 인간의 본성이었으며 고대 시대라고 딱히 다를 건 없었다.
지금 되돌아보면 원로원 주도의 체제일 때 로마는 거의 총체적인 난국 그 자체였다.
자영농들은 날이 갈수록 어려워졌었고, 무료 배급에 의존해야만 하는 사람들의 수가 정점을 찍던 때였다.
원로원에서는 허구한 날 권력투쟁만 일삼았으며 빈말로도 시민들의 삶을 돌보고 있다고는 하지 못했다.
당장 권력을 잡은 독재자 술라가 원로원과 귀족 계급이 모든 이익을 독점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해 놨으니 어쩔 수 없었다.
이런 사회의 병폐를 차례차례 뿌리뽑은 건 원로원이 아닌 마르쿠스의 개혁이었다.
자영농의 부흥도, 금융의 안정화도, 공공위생이나 도시의 치안 개선마저 전부 마르쿠스가 한 일이라는 걸 로마 시민들은 잘 알았다.
여기에 힘을 보탠 건 원로원이 아니라 카이사르와 폼페이우스였다는 사실 또한 모르는 이가 없었다.
카이사르의 농지법 개혁으로 다시 자영농이 된 시민들과 그로 인해 혜택을 본 사람들의 수는 이제 거의 십만을 넘어서고 있었다.
여기에 카이사르가 전쟁으로 거둔 업적까지 고려한다면 그를 지지하지 않는 건 곧 역적이나 다름없었다.
카토는 카이사르를 비판하는 연설을 한 번 했다가 그날부로 성난 시민들에게 돌을 맞아 죽을 뻔하기까지 했다.
원로원은 카이사르의 결정을 이제 와서 뒤엎는 건 무리라는 결론을 내렸다.
유일한 해결책은 마르쿠스가 나서주는 것이었지만 이마져 여의치 않았다.
개선식을 치른 개선장군 두 명이 대립하는 모양새를 취하면 로마에 어떤 혼란이 일어날지 모른다.
게다가 마르쿠스의 클리엔테스 중에는 그 이민족 출신이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었기에 쉽게 반대의견을 낼 수 없는 처지였다.
"이렇게 된 이상 언제나 그랬듯이 타협책을 쓸 필요가 있습니다."
이번 카이사르의 결정에 가장 불만을 가지고 있는 이는 의외로 카토가 아닌 키케로였다.
공화정 체제에 누구보다 애착이 강한 그로서는 원로원을 흔들려는 카이사르의 시도를 도저히 좋게 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이 순간을 기점으로 카이사르에 대한 손톱만큼의 기대조차 접어버렸다.
"키케로, 어떤 식으로 타협을 하자는 겁니까?"
"카이사르가 원로원 의석수를 확대하려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그거야 우리를 깔아뭉개고 싶어서 그러는 것이겠죠."
가이우스 트레보니우스가 살벌한 목소리로 답하며 주먹을 움켜쥐었다.
그는 개선식에서 카이사르가 연단을 지나갈 때 기립하지 않았던 극소수의 의원들 중 한 명이었다.
불만을 드러내기엔 효과적인 수단이기는 했으나 현명한 방법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그 광경을 목격한 시민들과 카이사르의 지지자들은 그 날 이후 그에게 엄청난 공격을 가했기 때문이다.
굳이 카이사르가 직접 나서서 그를 비판할 필요조차 없었다.
로마의 영웅을 배려하지 않는 쫌생이라는 딱지가 찍힌 그는 어딜 가더라도 시민들에게 조롱을 당하기 일쑤였다.
그래서인지 카이사르라면 이제 이를 가는 수준이 됐지만 키케로는 그런 그를 별로 믿음직스럽게 보진 않았다.
"트레보니우스, 그건 너무 카이사르를 단순하게 판단하는 겁니다. 그는 절대로 감정적인 이유만으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카이사르가 노리는 건 원로원의 힘을 약화시키면서 자연스럽게 자신의 세력을 불리기 위함이에요."
"···자신의 힘을 불린다?"
여전히 긴가민가하는 사람들이 있자 카토가 답답하다는 듯 가슴을 치며 대화에 끼어들었다.
"이런 것까지 하나하나 설명해줘야합니까. 상식적으로 생각을 해보세요. 카이사르가 정원을 늘린 원로원을 누구로 채워 넣을 것 같습니까.
당연히 자기를 따르는 갈리아와 게르마니아, 브리타니아 야만족들을 대량으로 투입하겠죠. 그들이 카이사르를 위한 거수기 역할을 할 텐데 그러면 앞으로 카이사르는 굳이 삼두체제를 쓸 필요도 없어요. 그냥 원로원을 통해 법을 통과시켜 버리면 됩니다.
"
"그러니까 본인이 직접 손을 쓰지 않고도 로마를 좌지우지 할 수 있는 체제를 마련해두려는 거다 이 말이로군요."
여기저기서 카이사르를 성토하는 의견이 홍수처럼 쏟아졌다.
"카이사르가 궁극적으로 원하는 게 독재관의 길입니까?"
"독재관이라면 다행이지 이건 합법적으로 왕이 되기 위한 밑거름을 깔고 있는 게 아닙니까?"
누군가의 입에서 '왕'이라는 단어가 언급되자 순간 좌중의 분위기가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모두의 시선이 그 말을 내뱉은 젊은 의원에게 쏠렸다.
브루투스의 매제이자 마르쿠스와 어린 시절 우정을 나눈 바 있는 열렬한 공화주의자, 카시우스 롱기누스였다.
그가 내뱉은 말의 파장은 상상이상으로 컸다.
카이사르라면 자다가도 이를 갈 정도인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조차 근엄한 목소리로 주의를 줄 정도였다.
"자네의 분노는 능히 짐작하네만 단어 선정을 조금 더 조심할 필요가 있네."
로마에서 왕은 곧 사회적인 금기와도 같았다.
이를 논한다는 건 좋든 싫든 논란의 한가운데로 끌려들어가는 지름길이다.
원로원은 이 입에 담기조차 불경한 단어가 화제 거리로 오르락내리락 하는 걸 원치 않았다.
만약 그랬다가 시민들이 정말 카이사르가 왕이 되는 게 낫겠다는 말이라도 한다면 어떻게 한단 말인가.
그런 미래는 악몽으로도 꾸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카시우스는 자신의 의견을 굽히지 않았다.
"그렇게 현실을 외면하고만 있으면 정작 필요할 때 행동에 옮기지 못하게 됩니다. 저는 그동안 쭉 카이사르의 행보를 지켜봤습니다. 개선식 때도 그랬고 지금도 원로원을 자신의 수족들로 채우려는 시도를 하는 이유는 명백합니다. 카이사르는 공화정을 무너뜨리려고 하는 겁니다."
"저도 카시우스의 의견에 동감하는 바입니다."
카토가 적극적으로 지원사격을 날렸다.
든든한 지원군을 얻었다고 판단한 그는 카시우스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의원들의 불안감을 계속 부채질했다.
"여러분, 카이사르의 행보는 이것만이 끝이 아닙니다. 지금 그는 자신을 신성시하려는 작업에 들어갔습니다. 그는 지금 은근슬쩍 퀴리누스 신의 신전에 자신의 조각상을 가져다 두었습니다. 퀴리누스 신이 누구입니까. 바로 로마의 위대한 건국자 로물루스가 신격화된 대상입니다. 카이사르는 은근슬쩍 자신을 퀴리누스 신과 동일시하려는 의도를 내비친 겁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그가 왕이 되려 한다는 증거가 되지 않습니다."
"그렇습니까? 뭐 그럴 수도 있겠죠. 로마의 신으로 등극하고, 원로원을 자신의 손아귀에 틀어쥐고, 스스로도 독재관에 버금가는 권한을 쥐고 있어도 왕이 아닐 수는 있겠지요. 하지만 카이사르가 이제 슬슬 왕이 되어볼까 하는 마음을 먹는다면 여러분이 막을 수 있습니까?"
사실 카이사르의 조각상을 퀴리누스 신전에 가져다 둔 건 카이사르가 시킨 일이 아니었다.
카이사르가 권력과 인기를 얻기 시작하자 그의 열렬한 지지자들이 폭주하며 벌어진 일종의 해프닝에 가까웠다.
마르쿠스는 적어도 로마에서는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예전부터 주의를 했지만, 카이사르는 굳이 남들이 벌이는 일까지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런 아첨을 기뻐해서라기보다는 공적인 일이 아닌 경우에는 남들에게 별다른 간섭을 하지 않는 게 카이사르의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르쿠스가 건넸던 부탁도 있었기에 카이사르는 자신의 지지자들을 일부러 더 날뛰게 만들었다.
이게 원로원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 거라는 걸 알았어도 개의치 않았다.
"신들에게 바치는 경의를 카이사르에게도 바쳐야 한다면 전 의원직을 내려두고 원로원을 떠날 겁니다."
카토의 선언에 카시우스를 비롯한 귀족파 의원들 상당수가 고개를 끄덕여 동의했다.
트레보니우스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 머리를 긁적였다.
"굳이 원로원을 나갈 필요가 있습니까? 어차피 카이사르가 무슨 수를 쓰더라도 독보적인 1인자는 될 수 없어요. 전 마르쿠스가 카이사르에게 결코 밀리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그 마르쿠스가 내년이면 다시 안티오키아로 돌아간다는 사실은 알고 있겠죠?"
"그럼 여기에 머물러 달라고 하면 되지 뭘 걱정하는 겁니까?"
"생각이란 걸 좀 하세요! 그리스가 완전히 다 재건이 되지 않았는데 마르쿠스가 어떻게 계속 여기에 있을 수 있겠습니까."
카토가 분노에 가득 찬 목소리로 소리치자 트레보니우스는 그제야 얌전히 입을 다물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키케로는 내심 절망에 가까운 참담함을 느꼈다.
카이사르에게 반감을 품은 이들은 많지만 제대로 된 지성을 갖춘 이들의 수는 극히 적었다.
기껏해야 카토와 카시우스, 그리고 아직 태도가 확실치 않은 의원 셋 정도가 전부였다.
무엇보다 영향력이 있는 인물이 눈에 띄지 않았다.
카토야 귀족파 사이에서나 발언권이 강한 것이지 일반 시민들의 인기는 절망적이었고, 카시우스 역시 지지도가 떨어졌다.
결국 따지고 보면 키케로 한 명밖에 없는 셈인데 자신만으로는 카이사르를 막아낼 자신이 없었다.
'마르쿠스가 나서준다면 든든하겠지만···아니야, 그가 전면에 나선다면 오히려 내전이 벌어질지도 몰라.'
키케로는 귀족파의 회의가 끝날 때까지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사색에 잠겼다.
예상대로 회의는 절망적일 정도로 끔찍하고 생산적이지 못했다.
구체적으로 나온 결론은 없었다.
회의가 끝나고 오래도록 자리를 지키고 있는 키케로에게 카시우스가 다가와 슬쩍 말을 걸었다.
"고민이 많아 보이시는군요."
"온건한 지식인치고 지금 시국에 고민이 없는 자가 있겠나."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하지만 그 고민의 근원은 행동하지 않고서는 결코 해결되지 않을 겁니다."
"행동하려고 해도 딱히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으니 고민하는 게지. 그나마 생각해볼만한 방법은 카이사르와 토론을 벌여서 깔끔하게 이기는 것 정도인데······."
"카이사르의 언변과 지식은 키케로님과 대등한 수준입니다. 게다가 이런 말씀 드리기 죄송스럽지만 카이사르에겐 키케로 님에게 없는 이점이 하나 더 있습니다. 바로 자신의 인기를 이용해 시민들을 선동하는 힘이지요. 공개 토론에서 그를 이기긴 힘들 겁니다."
카시우스의 냉철한 분석에 키케로도 동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학술적인 토론이라면 몰라도 시민들이 자리하는 곳에서는 카이사르를 이길 자신은 키케로라고 해도 없었다.
아마 제대로 된 논거를 펼치기도 전에 성난 시민들의 야유에 그의 목소리가 묻혀버릴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해봐야지. 그런 뒤에 카이사르에게 타협안을 제시해 최대한 손해를 덜 보는 식으로 법안을 만들 걸세. 그게 할 수 있는 최선 아니겠나."
"아니지요. 그게 최선은 아닙니다. 고전적이기는 해도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따로 있다는 걸 잘 아시지 않습니까."
"···자네, 대체 무슨······."
키케로가 딱딱하게 굳은 시선으로 천천히 카시우스를 돌아보았다.
농담이라도 하냐고 물으려 했지만 카시우스의 표정은 한없이 진지하고 무거웠다.
한참 동안이나 침묵이 두 사람 주변을 맴돌았다.
몇 번이나 입을 떼려다가 멈칫거린 카시우스가 이내 크게 숨을 들이키고는 은밀한 목소리로 선언했다.
"로마가 예전의 모습을 되찾을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 문제의 싹을 아예 뽑아버리는 겁니다."
키케로의 눈동자가 그의 혼란스러운 심정을 대변하듯 파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 237. 음모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