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8. 음모 >
238.
키케로는 주변을 둘러볼 뿐 별다른 대답을 하지 않았다.
일단 실내에는 그와 카시우스밖에 없었지만 이런 이야기는 언제 어떻게 새어나갈지 모르는 법이다.
키케로는 몇 번이나 주위에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하고도 한껏 목소리를 낮추며 물었다.
"자네가 지금 얼마나 무서운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자각하고 있는가?"
"물론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럴 수밖에 없다는 걸 키케로 님도 아시지 않습니까."
"그럴 수밖에 없다니, 이보게······."
"키케로 님이 저희에게 합류하지 않아도 이 일을 밀고할 분은 아니라고 확신하니 솔직히 말하겠습니다. 이미 저와 뜻을 함께 하기로 한 동료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는 공화정의 순수성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문제의 싹을 자르는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키케로는 카시우스가 말한 '저희'라는 단어에 주목했다.
처음에는 허무맹랑한 소리라 여겼는데 어느정도 체계를 갖춘 계획이라면 한 번 들어볼 여지는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무모··· 아니, 용감한 계획에 참여하기로 한 사람의 수가 제법 되나?"
"놀라지 마십시오. 키케로 님께서 들어오신다면 스물 한 명입니다. 게다가 거의 전원이 현역 원로원 의원이고 절반이 고등정무관을 지낸 경험이 있는 파트라키입니다."
키케로가 입을 떡 벌렸다.
원로원 정원이 600명이라는 걸 감안한다면 스무 명은 그렇게 많은 수는 아니다.
하지만 그들이 전부 로마에서 이름난 귀족 가계의 일원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성공하든 실패하든 로마에 엄청난 파장을 몰고 올 수밖에 없으리라.
"잠깐, 잠깐. 자네들은 정말로 카이사르를··· 그··· 죽일 생각이란 말인가? 그게 가능하다고 보나?"
키케로의 목소리는 갈수록 작아져 마지막은 거의 들릴 듯 말 듯했다.
카시우스는 확신에 찬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참가하기로 한 면면들을 들으시면 키케로 님도 그렇게 생각하실 겁니다."
"일단 들어보고 결정하겠네."
"트레보니우스와 바실루스, 라베오, 카이킬리우스와 세르빌리우스 형제, 술피키우스 갈바, 그리고 마일리우스, 그리고 데키무스 브루투스까지 있습니다."
"데키무스? 그는 카이사르의 사람 아니었나?"
"그러니까 제가 자신만만해하는 겁니다. 카이사르의 측근까지 저희에게 가담했으니 얼마나 기회를 노리기 쉽겠습니까."
키케로는 아직 미심쩍은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그만큼 데키무스의 합류는 충격이 컸다.
데키무스는 카이사르의 먼 친척이면서 갈리아 전쟁부터 줄곧 그의 휘하에서 활약한 인재였다.
그런 그가 카이사르의 암살 계획에 한 발 걸치고 있다는 게 쉽사리 믿기지 않았다.
"혹시 첩자가 아닐까? 섣불리 사람들을 믿었다가 계획이 카이사르의 귀에 들어가면 그 날이 귀족파의 종말일세."
"그럴 일은 없습니다. 철저하게 확인을 한 뒤에 모임에 받아들였으니까요. 처음부터 목적을 털어놓고 설득하는 사람은 키케로 님이 처음입니다."
"데키무스가 뭐가 아쉬워서 카이사르를 배신한다는 말인가?"
"그··· 조금 개인적인 이유가 섞여 있습니다. 하지만 절대 배신할 이는 아닙니다. 제가 그건 확실히 보증하지요."
데키무스가 암살 계획에 참여한 건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카이사르가 자신에게 정당한 대우를 해주지 않는다는 불안감이 상당수 작용했다.
하지만 이런 걸 누설하면 데키무스가 너무 그릇이 작은 사람으로 비칠 우려가 있어 카시우스는 입을 다물어주었다.
그것보다는 공화정을 지킨다는 대의를 위해 상관을 친다는 명분을 내세우는 게 여러모로 좋았다.
키케로는 대충 납득하긴 했어도 아직 암살에 대한 확신을 가지지는 못했다.
일단 그가 보기엔 계획에 가담한 사람들의 면면이 썩 훌륭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냉정하게 봤을 때 스무 명 중에서 제대로 된 인재는 한 손을 넘지 않는군."
"그래도 신념으로 무장한 동지들입니다. 일단 이런 계획에서는 그 무엇보다 비밀을 엄수하는 게 중요합니다. 그리고 키케로 님조차 지금까지 전혀 사실을 몰랐다는 점에서 이들의 입이 무겁다는 건 증명된 사실이라 할 수 있겠죠."
"그래. 그거 하나만큼은 믿어주겠네. 하지만 자네는 이 계획이 실패했을 때는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생각은 해보았나?"
"저희들 모두 다시는 로마에 발을 붙일 수 없겠죠."
"고작 그 정도가 아닐세. 카이사르는 암살미수라도 벌어지면 이를 빌미로 옵티마테스를 아예 해체해 버릴 거야. 능히 그럴 능력이 있는 사람이고 암살이란 그걸 행하기에 충분한 명분이 되니까."
카시우스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현실적으로 암살이 얼마나 큰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지 모를 리가 없었다.
하지만 그 외에는 방법이 없다고 여길 정도로 그들의 마음은 절실했다.
"키케로 님. 이대로 가면 어차피 옵티마테스는 유명무실한 존재가 될 뿐입니다. 그러느니 뭐라도 해보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어차피 마르쿠스가 안티오키아로 돌아가 버리면 그 누구도 카이사르를 견제할 수 없게 됩니다. 그 전에 승부를 봐야 합니다."
"그래. 계획이 성공해서 카이사르를 치운다고 가정해 봄세. 그런데 자네들은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간과하고 있네. 우리가 카이사르를 암살하면 과연 시민들이 우리를 반겨줄 거라고 생각하는가? 당연히라는 수준 낮은 답변이 돌아온다면 나는 자네들과 함께할 수 없네."
"그건 저희도··· 어느 정도는 생각이 있습니다."
카시우스가 살짝 말을 더듬거렸다.
"그러니까··· 일단 저희 쪽에서도 그런 말이 나오긴 했습니다. 암살을 하는 것 자체는 좋긴 한데 그 다음에 어떻게 할 거냐고요."
"내가 듣고 싶은 것도 바로 그걸세. 자네는 지금 시민들에게 압도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는 로마 최고의 영웅을 탄핵도 아닌 암살을 하자고 하고 있는 것일세."
"그래서 저희에게는 키케로 님이 필요한 겁니다. 암살 이후의 혼란을 진정시키고 시민들을 설득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사람이 필요하니까요."
"나보고 성난 시민들을 달래는 역할을 하라 이건가?"
키케로가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흘렸다.
그가 혀를 차며 나직하게 말을 이었다.
"생각을 해보게, 카시우스. 카이사르를 암살한 뒤에 시민들 앞에서 뭐라고 하면 좋을까? 증명은 할 수 없지만 카이사르는 왕이 되고 싶어 했으니 정의의 심판을 내렸다? 시민들이 그 말을 믿어줄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물론 그런 순진한 생각을 하는 건 아닙니다. 시민들은 우리가 권력을 얻기 위해 카이사르를 암살했다고 여기겠죠."
"그래. 그리고 분노한 카이사르의 지지자들이 자네들을 어떻게 할지는 안 봐도 훤히 내다보이네. 재판조차 받지 못하고 돌에 맞아 죽을 가능성이 9할 9푼 정도는 되지 않을까 싶은데."
"지금 당장 카이사르를 암살하면 그렇게 되겠지요. 하지만 그가 왕이 되려고 한다는 명확한 야심을 끌어낼 수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지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저희는 지금 그 부분에 최대한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카이사르를 자극해서 그가 공화정을 무너뜨리려는 야망을 숨기고 있다는 걸 까발릴 겁니다. 그 다음에 카이사르를 단죄하고 시민들에게 저희들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거죠.
"
완전히 말이 되지 않는 계획은 아니었다.
카이사르가 왕이 되려는 야욕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만 증명할 수 있다면 암살의 명분은 확보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문제점은 남아 있었다.
"지금까지 말을 질질 끈 걸로 보아 증거를 확보하는 쪽으로는 전혀 진전된 게 없나 보군."
"···부정하진 않겠습니다. 하지만 그건 저희 쪽에 정밀한 계획을 세울 수 있는 사람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키케로 님의 지혜를 구하는 것이고요. 키케로 님이 합류해주신다면 계획은 반드시 성공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카이사르가 사라진다고 로마가 이전처럼 돌아갈 수 있을까?"
키케로는 선뜻 확답을 내리지 못했다.
원 역사에서 키케로는 카이사르의 암살에 직접 가담하지는 않았지만 암살자들을 열렬하게 지지했다.
종신 독재관에 올라 로마를 자신의 뜻대로 좌지우지하는 카이사르가 사라져야 공화정의 순수성이 유지될 거라 판단한 까닭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확신을 가질 수 없었다.
현재의 카이사르는 독재관도 아니었을뿐더러 로마에 공헌한 정도가 너무 높았다.
카시우스처럼 젊은 혈기를 지닌 이들은 문제의 원인을 단순화하는 습성이 있었다.
지금도 그는 카이사르 하나를 쳐내면 모든 게 잘 풀릴 거라고 진심으로 믿는 듯 보였다.
"당연합니다. 우선 카이사르가 사라지면 민중파는 힘을 잃습니다. 왕이 되려고 했던 자를 떠받던 이들이 어떤 발언권을 가지겠습니까.
원로원은 다시 옵티마테스 위주로 재편되겠죠. 카이사르가 추진했던 원로원의 정족수를 늘리는 것도 전부 폐지될 겁니다.
그리고 갈리아와 브리타니아, 게르마니아에도 다시 총독들을 파견할 수 있을 테고 마르쿠스 역시 카이사르를 견제하기 위해 가져갔던 수많은 권한들을 다시 내려놓겠지요. 로마의 질서는 다시 예전처럼 원로원이 주도할 수 있게 될 겁니다.
"
"마르쿠스와는 이야기해 보았나?"
"그럴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어차피 그는 곧 있으면 안티오키아로 돌아간다고 했으니까요. 그리고 일단 카이사르는 그의 장인이기도 하니 장인을 암살할 거라고 하는 건 조금······."
"일단 마르쿠스의 성격이 누구를 암살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지. 카이사르를 어떻게 해야 한다는 판단이 들면 아마 정공법으로 나설 확률이 높네. 마르쿠스에게 말하지 않는다는 판단은 옳아."
키케로는 주변을 빙글빙글 돌며 고민에 잠겼다.
참가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사실 키케로의 본심은 이 일에서 빠지고 싶다는 쪽에 가까웠다.
암살이란 방법도 솔직히 그리 마음에 들지 않았고 성공까지의 길도 너무 험난하게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가 하나 있었다.
여기서 키케로가 참가하지 않는다고 과연 저들이 멈출까?
지금 카시우스의 모습을 보면 단연코 아니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 암살자들의 면면을 봐서는 일이 썩 잘 풀릴 것 같지는 않았다.
설령 암살에 성공한다고 해도 분노한 군중들에게 쓸려나가지나 않으면 다행이리라.
그리고 십중팔구는 그들만 망하는 게 아니라 귀족파 전체가 몰락하게 될 가능성이 높았다.
키케로로서는 가만히 있다가 불똥이 튀는 정도가 아니라 산사태에 깔려 죽는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
그리고 만에 하나 성공했을 시 대의에 참가하기를 거부한 겁쟁이라고 비난 받을 우려도 있었다.
이러기도 저러기도 쉽지 않은 상황.
그렇다면 차라리 계획에 슬쩍 발만 걸쳐두고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적절하게 통제를 하는 게 낫지 않을까.
이내 결정을 내린 키케로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좋아. 대신 한 가지 조건이 있네. 계획을 진행하는 데 있어서 내 의견을 반드시 들어줘야 하네. 그게 아닐 시 나는 자네들에게 다른 목적이 있다고 생각하고 즉시 이탈할 걸세. 불만 없겠지?"
"물론입니다. 아무리 이해하지 못할 의견을 제시하신다고 해도 믿고 따르겠습니다."
"그리고 하나 더. 아무래도 이 정도 인원만으로는 도무지 믿음이 안 가. 대외적으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사람과, 카이사르의 야심을 적나라하게 끌어낼 수 있는 사람이 더 필요하네."
"저희도 여러번 그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물론 적절한 후보도 생각해 놓았고요. 키케로 님을 설득한 이후에는 카토 님과 브루투스를 데려오려고 했습니다."
키케로가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그 둘은 키케로 역시 나무랄 데가 없는 인사였다.
브루투스는 공화정을 연 상징적인 가문의 후계자이자 세르빌리우스 가문의 혈통까지 이어받은 명문 중의 명문이었다.
그리고 카토는 인망은 딸려도 카이사르와 논쟁하며 그의 성질을 가장 잘 긁어댈 수 있는 논객이다.
이 두 사람만 끌어들여도 암살 계획은 한층 더 구체적인 현실성을 띠게 될 것이다.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카시우스와 키케로는 그대로 카토의 저택을 찾아갔다.
서재에서 책을 고르고 있던 카토는 뜻밖에 방문한 손님들을 반갑게 맞이했다.
"여기까지 웬일들인가? 오늘 회의는 진즉에 끝났을 텐데. 그런데 카시우스 자네 표정이 그리 썩 좋지는 않군."
"나라꼴이 이 모양이니 당연하지요. 카이사르가 로마의 왕이 되려는 야심을 착착 진행시키고 있는데 말입니다."
카토가 눈살을 찌푸리며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그 자를 좌절시키기 위해 계속 노력해봐야지."
"그게 전부입니까?"
"전부라니? 그럼 이거 외에 또 뭐가 있단 말인가?"
"이제 언어에 의존할 수 있는 시간은 그 끝을 보이고 있습니다. 행동으로 보여야 할 때가 다가왔다고 생각하시지 않습니까?"
카시우스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카토가 두 눈을 껌뻑였다.
"행동? 무슨 행동?"
"저희는 선조들에게서 물려받은 이 자랑스러운 공화정을 지켜나가야 하는 의무가 있습니다. 예, 카이사르를 죽이는 거야말로 이 의무를 이행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입니다."
"카이사르를 죽이는 게 공화정을 지키는 길이라고?"
카토가 더할 수 없을 만큼 입을 딱 벌린 채 그대로 굳어버렸다.
카시우스는 카토가 쌍수를 들어 환영할 거라고 예상했다.
카이사르를 미워하는 이로는 원로원에서 카토를 따라갈 자가 없지 않던가.
반면 키케로는 어딘가 불안한 시선으로 카시우스와 카토를 번갈아 바라보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카토가 시뻘게진 얼굴로 포도주 잔을 내던지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암살이라니! 무슨 미친 소리를 하는 게야! 부끄러움도 모르는 소인배들 같으니. 당장 내 집에서 썩 나가게!"
카시우스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 238. 음모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