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0. 음모 >
240.
"카시우스가 온 적이 있냐고?"
다소 뜬금없는 질문에 마르쿠스의 눈가가 살짝 가늘어졌다.
브루투스는 할 수 있는 최대한의 태연한 표정으로 마르쿠스의 눈을 똑바로 응시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카시우스와는 어렸을 무렵부터 친구였다고 들었습니다."
"서로 철없던 시절에 같이 어울려 다니긴 했었지. 물론 최근에도 만난 적은 있네."
"역시 그러시군요. 그때 카시우스가 뭔가··· 묘한 질문을 한 적은 없었습니까? 아니면 고민이 있어 보였다던지······."
"딱히 그런 기색은 없었네. 왜, 카시우스가 요새 힘든 일이라도 있나?"
"아뇨, 그건 아닙니다."
브루투스가 소심하게 고개를 저으며 한마디 덧붙였다.
"그저 그럴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서 물어본 것뿐입니다."
"그래도 자네가 여기까지 와서 굳이 그런 걸 물어본다면 무슨 일이 있었다는 건데··· 괜찮으니 사양 말고 말해 보게."
"정말 별거 아닙니다. 그냥 최근에 좀 얼굴에 그늘이 져 있어서 걱정됐던 것뿐입니다. 아무래도 카시우스와 친하기도 하면서 여러 정보를 접하고 계실 마르쿠스 님이면 뭔가 더 알고 계시지 않을까 해서 여쭤본 거였습니다."
"그랬군. 기대에 부응해주지 못해서 미안하지만 난 최근에 일이 많아서 별다른 기색은 알아차리지 못했네. 내가 나중에 한번 넌지시 물어보면 될까?"
브루투스가 다급히 고개를 흔들며 그럴 필요 없다고 강조했다.
"별일 아닌데 제가 과민반응을 했을 수도 있으니 조금 더 기다려 보겠습니다. 너무 캐내는 모양새면 카시우스도 기분이 나쁠 수 있으니까요."
"그래? 그러면 자네가 좋을 대로 하게. 그나저나 정말로 카시우스에 관한 문제만 물어보러 여기까지 온 거였나?"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브루투스가 어색한 웃음을 흘리며 차를 한 모금 마셨다.
본래 목적은 카시우스가 얼마나 이야기를 흘리고 다녔는지 캐보는 거였지만, 상식적으로 그런 질문만 던지고 돌아간다면 어색하기 짝이 없을 것이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브루투스는 몇 가지 궁금했던 이야기를 속 시원히 물어보기로 했다.
"마르쿠스 님은 혹시 동방으로 돌아간 뒤 로마의 정국을 제어할 방법에 대해 생각해 보셨습니까?"
"당연히 생각은 해두었지. 안 그래도 여기 옥타비우스와 그 문제로 이야기를 하고 있던 참이라네. 이 아이의 정치적인 식견은 정말 놀라울 정도거든."
"그, 그렇습니까? 실례가 안 된다면 저도 이야기를 들어봐도 괜찮을까요?"
"물론. 구체적으로 무엇이 알고 싶은지 말해 보게."
편하게 질문을 해보라고 듣긴 했어도 브루투스는 막상 쉽사리 입을 열지 못했다.
그가 알고 싶었던 건 사실 이렇게 가볍게 물어볼 만한 무게의 사안이 아니었다.
자칫하면 로마가 반으로 나눠져 대립하게 될지도 모른다.
브루투스는 그 사실을 자신의 귀로 듣는 게 두렵기도 했다.
"그··· 귀족파들 사이에서는 요새 불안하다는 이야기가 꽤 많이 나오고 있다고 합니다. 마르쿠스 님이 안티오키아로 간다면 카이사르 님을 견제할 수 있는 사람이 없으니까요.
예전처럼 카이사르 님은 갈리아에, 마르쿠스 님은 안티오키아에 머문다면 이런 걱정을 할 필요는 없겠지만요. 저번에 만찬에서 물어봤을 때 카이사르 님은 로마에 계속 남으실 거라고 하시더군요. 알고 계셨습니까?
"
"물론. 내가 자네보다 먼저 알았을걸?"
"그럼 귀족파에서 여러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는 사실 역시 아시겠군요. 그··· 적극적으로 대처를 하실 생각은 없으십니까? 마르쿠스 님이 나서 준다면 지금 불안해하는 사람들도 안심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글쎄··· 아마 말만 해서는 별 소용이 없을 것 같은데. 눈에 보이는 뭔가를 내놓지 않는다면 공허한 메아리에 지나지 않을 걸세. 몇 달 정도는 잠잠해진다고 해도 곧 언제 그랬냐는 듯 원래 상태로 돌아오지 않겠나."
카시우스가 보이던 편집증에 가까운 의심을 떠올린 브루투스는 차마 반박하지 못했다.
그 어떤 말을 해도 이미 그의 의심을 벗기는 건 불가능할 것이다.
카이사르가 아예 모든 자리를 내려놓고 물러나면 모르겠지만 카이사르가 그럴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실제로 마르쿠스 님이 로마를 비우면 카이사르 님의 권력만이 너무 비대해지는 상황이 옵니다. 견제와 균형을 위해서는 두 분이 잘 조율하셔서 그런 불안감을 방지해야······."
"물론 어떻게 하는 게 좋을지는 계속 고민해보고 있네. 옥타비우스, 자네의 의견은 어떤가?"
지금까지 침묵을 지키고 있던 옥타비우스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브루투스 님의 말대로입니다. 역시 가장 중요한 건 안전장치입니다. 지금 원로원이 불안해하는 건 최악의 경우가 터졌을 때 자신들이 상황을 제어할 수 있다는 확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무엇도 할 수 없다는 현실을 알고 있으니 불안해하는 것이죠. 원로 원 최종권고 따위는 이제 아무런 의미도 없으니까요."
정확한 의견이었다.
지금까지 원로원은 자신들의 기득권이 위협받는다고 판단하면 언제나 최종권고를 발동해 왔다.
농지법을 개혁하려던 그라쿠스 형제에게도, 다시 한번 농지법의 통과를 주장한 사투르니누스에게도.
그리고 부채 전액탕감을 주장했던 카틸리나도 원로원 최종권고를 발동해 찍어눌렀다.
하지만 이들이 전가의 보도처럼 휘둘러댄 이 최종권고는 카이사르 앞에서는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원로원이 카이사르를 국가의 적으로 규정한다고 해봐야 누가 호응을 해주겠는가.
로마 시민들은 코웃음을 치며 카이사르를 모함하는 원로원이야말로 국가의 적이라고 규탄할 것이다.
최종권고를 발동해 무장한 병사들을 로마 시내로 들이려고 해도 카이사르가 동원할 수 있는 군단의 수가 몇 배는 더 많았다.
게다가 병사들이 가진 전투력까지 고려한다면 비교하는 것 자체가 우스울 정도로 차이가 벌어진다.
옥타비우스는 이런 점을 냉정하게 짚어가며 설명을 이어나갔다.
"원로원이 무력을 사용하려고 하면 카이사르 님은 오히려 기회가 왔다고 판단할 수도 있습니다. 원로원도 그걸 모르지는 않을 테니 패망으로 향하는 지름길을 고를 이유는 어디에도 없겠죠. 하지만 그렇다고 정공법을 쓰는 것도 무리입니다. 아마 선거란 선거는 모조리 패배하고 기반을 잃어버리는 결과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게 되겠죠."
"그러니까 그런 미래를 방지하려면······."
"원로원에게는 그럴 만한 힘과 능력이 없습니다. 제도를 만들어 놔도 안 돼요. 냉정하게 말해서 원로원은 카이사르 님을 견제할 능력 자체가 없습니다."
"원로원에도 능력 있는 자들이 많네. 당장 키케로 님이나 카토 님 같은 석학들도 계시지 않나."
브루투스는 반박하면서도 자신의 목소리에 확신이 서려 있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옥타비우스는 그저 쓴웃음을 지으며 빈 잔에 차를 따를 뿐이었다.
"진짜로 그렇게 생각하고 계십니까? 완전히 동등한 조건에서 경쟁을 한다면 원로원이 카이사르 님을 제어할 수 있을 거라고요? 오히려 승자독식의 선거구조로 간다면 모든 고등 정무관이 친카이사르파로 채워지는 걸 볼 수밖에 없다는 걸 잘 아실 텐데요."
"그래도 마르쿠스 님의 인기도 카이사르 님에 못지않네. 마르쿠스 님이 지지하는 후보를 쭉 세운다면 선거도 비등비등하게 겨룰 수 있지 않겠나."
"그 마르쿠스 님이 동방에 계셔서는 선거를 원활하게 지휘할 수가 없다는 게 문제겠지요. 원로원이 착각하고 있는 게 이 겁니다. 카이사르 님은 굳이 독재관의 자리에 오를 필요도 없어요. 하기로 마음만 먹는다면 얼마든지 지금의 체제하에서 모든 걸 마음대로 할 수 있습니다."
브루투스의 얼굴이 점점 어두워졌다.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카시우스가 폭주하는 그림이 선명히 그려졌기 때문이다.
사람이란 아예 희망이 없다고 판단하면 자포자기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 마련이다.
옵티마테스의 과격파들 역시 무슨 수를 써도 카이사르를 이길 수 없다는 걸 알면 그냥 죽여 버리자는 결론에 도달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다가오는 결말은 파국뿐이다.
신념에 가득 차서 행동하는 이들은 막을 방법도 없다.
'그렇다면 차라리 마르쿠스 님에게 이 사실을 말하고 티 나지 않게 수습해달라고 하면 어떨까?'
마르쿠스는 카시우스와 친구 사이기도 하니 그가 바보 같은 짓을 하는 걸 두고 보지는 않을 것이다.
마르쿠스의 영향력과 능력을 고려해 봤을 때는 충분히 이걸 없었던 일로 만들 수 있다.
그러나 문제가 없는 건 아니었다.
근본적인 원인이 제거되지 않는다면 언제라도 비슷한 일이 다시 일어날 수 있다.
옥타비우스가 말한 대로 원로원이 체감할 수 있는 안전장치를 마련해 놓아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근본적인 문제 해결 따위는 절대로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그렇다고 원로원이 계속 카이사르 님 한 명에 눌려 있어서는 건강한 체제가 유지될 수 없지. 이 상황을 타파하기 위한 좋은 방법은 정녕 없단 말인가?"
"한 가지 있긴 합니다."
옥타비우스가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브루투스가 멍하니 눈을 깜빡이며 자신도 모르게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그, 그게 대체 뭔가?"
"이미 한계에 달한 제도와 관습, 법을 유지하려고 하니 답이 없는 상황에 직면하는 겁니다. 지금 로마는 급변하고 있습니다. 과감하게 틀을 바꿔야지요. 그 정도의 개혁을 하지 않고는 공화정에 미래 따위는 없습니다."
"그 말은 지금··· 공화정을 버리기라도 하자 뭐 그런 건가?"
"아니요. 공화정은 로마의 뿌리이자 근본입니다. 어떻게 이걸 버리겠습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구조적인 틀을 손볼 필요가 없다는 건 아닙니다. 국가란 발전하기 마련이고 체제는 그 발전에 뒤처지지 않게 함께 나아가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도태될 뿐입니다."
옥타비우스가 말하는 게 왕정으로의 전환이 아니라는 걸 깨달은 브루투스는 잠깐 거칠어졌던 호흡을 가다듬었다.
마르쿠스가 그런 그를 똑바로 바라보며 핵심적인 질문을 던졌다.
"브루투스. 애초에 공화정이란 뭐라고 생각하나?"
※※※
브루투스와의 이야기는 생각보다 더 길어져 밤까지 이어졌다.
얼떨떨한 얼굴로 돌아가는 그를 배웅한 마르쿠스는 느긋하게 응접실의 의자에 몸을 뉘였다.
새로 찻잎을 갈아온 옥타비우스가 공손하게 그의 앞에 잔을 내려놓았다.
"예상대로의 반응이더군요."
"그래. 아마 며칠 내로 답을 들려주겠지."
"떠날 때의 표정을 보니 눈동자에 명백한 흥분이 서려 있었습니다. 아마 오늘밤은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할 것 같더군요."
"밤을 꼬박 세면서 오늘 한 이야기를 곱씹어보겠지. 그나저나 처음에 했던 이야기는 어떻게 생각하나?"
엷은 미소를 짓고 있던 옥타비우스의 눈이 순간 날카롭게 변했다.
얼음장처럼 차가운 미소와는 정반대로 부드러운 목소리가 그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카시우스와 관련된 질문 말씀하시는 건가요?"
"그래."
"마르쿠스 님의 생각대로가 아니겠습니까. 다만 미끼를 던지는 대로 족족 물어버리는 걸 보는 것도 조금··· 뭐라고 해야 할지 복잡한 심정이 드는 건 사실입니다. 그래도 예정대로니 모른 척 눈 감고 계시면 될 거라 생각합니다."
"좋아. 이 건은 그럼 네가 제안했던 계획에서 수정 없이 그대로 가기로 하지."
마르쿠스가 시선을 돌려 눈앞에 놓인 보고서들을 훑어보았다.
모든 일은 차질 없이 진행되고 있다.
로마는 이제 변해야 할 때가 왔다.
새로운 제국의 미래를 위해서는 이제 더 이상 구시대의 체제를 가만히 놔둘 수는 없는 것이다.
한 점의 동정심도 없이 싸늘한 옥타비우스의 얼굴과는 달리 마르쿠스의 얼굴에는 일말의 씁쓸한 미소가 감돌고 있었다.
< 240. 음모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