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1. 로마의 미래 >
241.
믿었던 카토와 브루투스의 협력을 받지 못한 카시우스 일파는 마음이 급해졌다.
그러는 동안 카이사르는 착착 자신의 개혁을 통과시켰다.
키케로와 카토가 기를 쓰고 개혁을 막으려 했지만, 시민들은 무조건 카이사르를 지지하는지라 쉽지 않았다.
원로원의 정원이 늘어나는 건 이미 기정사실이라 봐야 했다.
카이사르는 절대 자신이 다스리는 지역만을 편애하지는 않았다.
갈리아, 게르마니아, 브리타니아에 외에도 북아프리카와 동방 속주는 물론 쿠시, 악숨까지 의석이 배정되었다.
마르쿠스는 앞으로 지금보다 더욱 로마에 타지역 사람들이 몰려들 거라고 판단하고 한 가지 새로운 작업에 착수했다.
바로 현대의 최고급 호텔에 해당하는 새로운 숙박시설을 짓는 것이었다.
로마에도 당연히 여관 비슷한 시설은 있었지만 의외로 고급 식당이나 술집은 발달하지 못했다.
마르쿠스는 호텔사업을 통해 단순히 돈을 버는 것만이 아니라 새로운 문화를 상류층과 타지역에 효과적으로 전파할 계획이었다.
자기 가문에서 일하는 가장 훌륭한 요리사들을 배치했고, 커피와 같은 신문물을 대대적으로 홍보하며 관심을 끌었다.
아마 나중 가면 식기와 나이프, 포크 같은 것들도 만들어서 상류층을 중심으로 퍼트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
마르쿠스가 이렇게 다른 쪽에 정신이 팔려 있는 듯 보이는 사이 카이사르 암살 모임의 회원들은 비밀리에 회동을 가졌다.
카시우스와 데키무스는 계획의 실행 시기를 앞당겨야 한다고 소리 높여 외쳤다.
"보십시오. 카이사르는 지금 로마를 거머쥐려는 작업을 착실하게 진행 중입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당장 내년부터 저희는 저 머리와 수염을 기르는 야만인들이나 헐벗고 다니는 야만스러운 인간들과 함께 원로원 의석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어야 할 겁니다."
"그들이 라틴어를 할 수 있기는 합니까?"
카이사르와의 토론에서 망신을 당한 가이우스 카스카가 이를 갈며 물었다.
"하기야 하겠지요."
트레보니우스가 조소를 흘렸다.
"아마도 우리가 알아들을 수 없을 정도로 웅얼대는 수준이겠지만요."
"그래도 그리스나 시리아 쪽은 말이 통하겠죠. 이집트도 그렇고요. 그쪽이야 로마 경제에 많은 공헌을 하는 것도 사실이니 한두 명 정도 오는 건 참아줄 수 있는데······."
"갈리아와 게르마니아 야만인 놈들은 아무리 봐도 아니죠. 그놈들은 그냥 노예로나 쓰는 게 딱이지 않습니까."
바실루스의 격한 의견에 키케로가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그런 말을 외부에서 한다면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을 거란 걸 알아두게. 이미 갈리아인인 베르킨게토릭스가 원로원 의석을 받은 상황이니까."
"그건 그렇지만······."
키케로가 자리에 모인 면면들을 둘러보니 절로 한숨이 나왔다.
어디 한숨뿐인가.
기분이 좋지 않은 걸 넘어 불쾌하다는 느낌까지 들었다.
당장 저 바실루스만 해도 집에서 노예들을 학대하는 걸로 악명이 자자한 이였다.
그만이 아니라 이미 살인죄로 기소를 받은 전적이 있는 렌토에 도를 넘은 횡령으로 의석을 박탈당할 뻔한 푸블리우스 카스카까지.
저들은 입으로만 고귀한 사명을 외칠 뿐 현실은 그냥 카이사르에게 기득권을 빼앗기기 싫은 것이다.
'저런 수준 낮은 이들까지 끌어들일 정도로 과격파가 심적으로 궁지에 몰린 것인가. 말세로다 말세야.'
키케로는 초인적인 인내력으로 당장이라도 이 자리에서 뛰쳐나가고 싶은 기분을 억눌렀다.
카시우스나 데키무스는 절대 이 한량들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만약 키케로마저 자리를 비운다면 이 모임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까.
모르긴 몰라도 이들이 귀족파의 종말을 불러올 재앙이 될 거라는 사실만큼은 확신할 수 있었다.
그는 그나마 말이 통하는 다른 의원들을 둘러보며 끝까지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걸 강조했다.
"암살을 앞당겨야 한다는 카시우스의 주장은 조금 더 생각해봐야 합니다. 암살을 하는 것까진 좋다 이겁니다. 하지만 그 이후에는 어떻게 할 겁니까. 시민들에게는 뭐라고 설명을 하고요."
"왕이 되려는 자를 죽였다고 하면 되지요."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데키무스의 심드렁한 대답에 키케로가 날카롭게 말했다.
"시민들이 잘도 믿어주겠군. 아, 명망 있는 귀족들이 저렇게 말하니 카이사르는 정말 나쁜 사람이었던 모양이야. 우리가 지금까지 속고 있었어. 우와, 원로원 만세. 뭐 이런 반응이 나올 거라고 기대하는 건가?"
"물론 쉽지 않을 거라는 건 압니다. 하지만 키케로 님 말씀처럼 계속 신중하게만 있으면 영원히 계획을 실행하지 못합니다. 언제까지 기다려야 한단 말입니까."
"자네들이 열심히 머리를 굴려서 카이사르의 야심을 드러낼 때까지 기다려야지! 아무튼 절대로 지금 암살을 해서는 안 되네. 그랬다간 차라리 카이사르가 독재를 하는 게 나았다고 여길 정도로 로마에 큰 혼란이 찾아올 거야."
"그런 상황이 된다면 그때는 마르쿠스에게 수습해 달라고 하면 되지요. 그라면 충분히 혼란에 빠진 시민들을 잠잠하게 만들 수 있을 겁니다."
"그러면 시민들은 마르쿠스를 최소 독재관으로 세우길 바랄 텐데? 그리고 마르쿠스는 안티오키아로 돌아가야 한다는 걸 잊었나? 그냥 카이사르가 아닌 그에게 로마의 왕이 되어 달라고 부탁하지 그러나."
키케로의 신랄한 일침에 데키무스의 얼굴이 붉어졌다.
그가 막 입을 열려던 찰나 트레보니우스가 중간에 끼어들었다.
"아아, 진정들 하십시오. 우리끼리 논쟁을 하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그렇게까지 특출난 사람은 아니었어도 그는 엄연히 전직 집정관을 지낸 명망 있는 귀족이었다.
키케로와 데키무스도 트레보니우스의 중재에 마음을 가라앉히고 자리에 앉았다.
모두가 자신에게 집중하고 있다는 걸 확인한 트레보니우스가 낮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우선 지금까지 확정된 사안만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일단 카이사르는 현재 집정관이 아닙니다. 그래서 릭토르를 대동하고 다니지 않죠. 다행히도 이것만큼은 카이사르도 로마의 법을 따르고 있더군요.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그가 거리에 나오면 수백 명 이상의 지지자들이 그를 둘러싸고 긴 행렬을 만듭니다.
우리가 그를 공격하려 해봐도 별다른 효과를 거둘 순 없을 겁니다. 그러니 인적이 드문 곳을 골라서 실행에 옮겨야 그나마 성공률이 올라가지 않을까 싶습니다.
"
"잠깐, 트레보니우스. 지금 자네의 말은 카이사르를 매복하고 있다가 몰래 죽이자는 걸로 들리는데?"
"정확히 들으셨습니다. 무슨 문제라도?"
"당연히 문제가 있지!"
키케로가 머리를 쥐어뜯으며 울부짖었다.
그는 이제 진심으로 이 모임에 끼어든 게 후회가 되고 있었다.
"매복해서 그를 죽인다면 대체 로마인들이 카이사르를 누가, 왜 죽였는지 어떻게 알겠나. 그를 비열한 암살자들에게 희생당한 영웅으로 만들어 줄 뿐일세!"
"하지만 매복 공격하지 않으면 카이사르를 대체 어떻게 죽인다는 겁니까?"
"공개적으로! 모두가 보는 앞에서 그의 죄를 규탄하고 처단해야지. 그러니까 카이사르가 공화정을 무너뜨리고 왕정을 수립하려 한다는 증거가 필요하단 말일세. 자네들은 내가 지금까지 한 말을 대체 뭘로 들었나. 살인을 저질렀다는 인식을 주면 우리들은 죄다 끝장이야. 독재자를 처단한 해방자가 되어야 한단 말일세!"
모두의 얼굴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카시우스가 희석한 포도주로 바싹 마른 입술을 축이며 물었다.
"공개된 장소에서 카이사르를 습격하면··· 우린 그의 근처에도 가지 못할 겁니다."
"자네들의 목적이 정말로 숭고하고 로마를 해방시킨다는 신념이 있다면 감수해야 하네. 추악한 살인자가 될지 왕을 치는 공화정의 수호자가 될지는 우리의 입이 아니라 행동이 보여준다는 걸 잊지 말게. 시민들은 단순하기는 해도 바보가 아니라는 걸 잊어서는 안 돼."
"그러면··· 카이사르와 그의 심복들을 동시에 노릴 수밖에 없습니다. 카이사르는 보통 자신의 파벌들을 옆에 세워두는 버릇이 있습니다. 그들까지 한 번에 제거하는 걸로 한다면······."
"그것도 안 돼. 제거한다면 오직 카이사르 한 명만. 그 이상 누구를 죽인다면 시민들을 이걸 비열한 권력 투쟁으로 인식할 게 틀림없네."
좌중에 싸늘한 침묵만이 감돌았다.
대체 어떻게 하면 공개적인 장소에서 카이사르 한 명만을 죽일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누구도 키케로의 의견에 반박하진 못했다.
그들의 대부분은 어렸을 때부터 고등교육을 받은 명망 있는 파트라키였다.
당연히 누구의 말이 더 합리적이고 옳은지는 분간할 지성이 있었다.
한참이나 머리를 싸매고 있던 카시우스가 천천히 상황을 정리했다.
"그러니까··· 우선 키케로 님의 말대로 하자면 거리에서 카이사르를 공격하는 건 아예 불가능합니다. 우리가 누구인지 드러내고 카이사르를 공격하려고 하면 당장 시민들에게 집단구타를 당할 테니까요."
"그러면 원로원 회의장은 어떤가?"
데키무스가 눈을 빛내며 소리쳤다.
모두의 이목이 쏠리자 잔뜩 흥분한 그가 속사포처럼 말을 쏟아냈다.
"원로원 회의장이라면 귀족들에게는 충분히 공개된 장소지. 꼭 시민들이 보고 있어야만 하는 건 아니지 않나. 원로원 회의에 참석하는 의원들과 정무관들이 보기만 해도 이는 충분한 대표성을 띠네. 거기서 거사를 결행하면 될 거야. 여기엔 불만 없으시겠죠, 키케로?"
키케로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자 모두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장소가 정해졌다고 문제가 다 해결된 건 아니었다.
가장 중요한 시기와 방법이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카시우스가 딱딱한 얼굴로 데키무스가 고려하지 않은 점을 지적했다.
"원로원 회의장이라고 해도 무조건 계획이 성공하는 건 아닙니다. 카이사르는 릭토르를 대동하지 않지만 다른 집정관은 릭토르를 대동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카이사르파의 집정관은 우리가 카이사르를 어떻게 하려고 하는 즉시 릭토르들을 동원해 우리를 제압할 겁니다."
"그러면 마르쿠스가 추천한 쪽을 미리 매수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그가 회의를 주관하는 시기에 암살을 거행하면 되겠지요."
"카이사르를 공격할 테니 릭토르들을 물려라··· 라고 한다면 순순히 우리 말을 따라줄까요? 마르쿠스는 암살에 그리 우호적이지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카이사르는 자신의 장인이기도 하고, 만약 그가 왕이 되려는 흑심을 품고 있다고 해도 자신이 저지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할 테니까요."
물론 마르쿠스가 나서서 카이사르와 대립한다면 그땐 카이사르와 섹스투스의 대립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내전의 시작이다.
암살자들은 그런 위험을 감수하느니 카이사르를 암살하는 게 훨씬 나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마르쿠스가 동의할 거란 보장은 없었다.
보다 못한 키케로가 재차 입을 열었다.
"릭토르들을 떼어놓을 방법이야 많지. 요는 회의에 참석할 집정관을 다른 곳에서 붙들어 두기만 하면 되지 않나. 그거야 적당한 건수를 만들어서 회의에 몇 시간 늦게 오게 하면 그만일세."
"아, 그렇군요. 집정관이 늦는다면 당연히 릭토르들도 늦게 올 테니······."
"원로원 회의장 같은 신성한 곳에서 피를 뿌리려면 무엇보다도 정당성이 우리에게 있어야 한다는 걸 잊지 말게."
"물론입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거사일을 카이사르가 원로원 의석 확대에 관한 건으로 최종토론을 하자고 한 3월의 이두스로 맞추고자 합니다.
여기서 저는 총공세를 펴서 어떻게든 카이사르가 왕이 되고자 하는 야심을 밝히도록 만들 겁니다. 카토 님도 암살은 반대하지만, 카이사르의 속내를 헤집는 건 흔쾌히 찬성할 테니 적극적으로 협조해주겠죠. 우리는 여기서 카이사르의 말꼬리를 잡아서 그가 공화정을 무너뜨리려 한다고 선포하고 바로 정의의 심판을 내리면 됩니다. 그 다음 독재를 꿈꾸는 압제자를 처단했다고 소리 높여 선포하면 계획은 성공입니다.
"
이들이 알 리가 없겠지만 3월의 이두스는 원 역사에서도 카이사르가 암살당한 날이었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생사의 분기점은 다시 한번 같은 날짜, 같은 장소에서 갈라지게 됐다.
운명을 조종하는 포르투나 여신은 과연 누구의 손을 들어줄 것인가.
귀족파 의원들은 자신들이 여신의 선택을 받을 거라 믿으며 늦은 밤의 어둠 속으로 녹아들었다.
< 241. 로마의 미래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