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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2. 로마의 미래 (243/326)

  < 242. 로마의 미래 >

  242.

  암살자들이 계획을 꾸미는 것과는 별개로 겉으로 보기에 로마의 정계는 평온함 그 자체였다.

  폭풍전야의 고요함이라고 해야 할까.

  귀족파는 최대한 아예 카이사르의 눈에 띄지 않기로 작정한 듯 보였고, 민중파는 항상 그랬듯 카이사르의 모든 의견에 찬동했다.

  그러나 불온한 징조를 전하는 이들은 언제나 나오기 마련이다.

  카이사르의 주변인들은 저잣거리에 도는 소문에 끊임없이 주의를 기울이고 경고를 건넸다.

  그 중 대표적인 이가 카이사르의 아내인 칼푸르니아였다.

  그녀는 카이사르가 호위 없이 공적인 자리에 참석하는 데에 굉장히 불안해했다.

  "제발 릭토르들을 대동하고 다니시면 안 되나요? 나쁜 마음을 먹는 이들이 나올 수도 있잖아요."

  "언제나 나를 지지하는 시민들이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데 무얼 걱정한단 말이오."

  "하지만 일반 시민들이 참가할 수 없는 자리에서는 맨몸이나 다름없잖아요."

  "시민들이 참가할 수 없는 장소라고 해봐야 공적인 회의실 정도인데 그런 곳은 다른 정무관들이 릭토르를 대동하고 있소. 그러니 굳이 내가 릭토르들을 끌고 다니며 주변에 위압감을 줄 필요가 없지."

  카이사르는 별로 대수롭지 않게 답하면서도 아내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평소와는 다르게 눈에 힘이 없고 수심이 가득했다.

  그가 칼루프니아의 손을 꽉 잡으며 재차 물었다.

  "왜 그렇게 불안해하는 것이오? 어디서 좋지 않은 말이라도 들었소?"

  "저번에 거리에 나갔을 때 점쟁이가 조심하라고 주의를 줬어요. 불길한 예언을 굉장히 잘 맞춘다는 용한 점쟁이였는데······."

  "점쟁이란 원래 그런 식으로 불안감을 조성하는 이들이라오. 그래야 그들이 돈을 벌어 먹고 사니까. 나는 지금 로마의 여러 인습을 깨부수는 중이오. 하지만 다른 이들이 보기엔 전통을 파괴하는 자로 보일 수도 있지. 그러니 존중할 만한 가치가 있는 전통은 확실히 따른다는 인식을 주변에 심어줄 필요가 있소. 릭토르를 대동하지 않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고."

  "그러면 최소한 마르쿠스처럼 호위를 데리고 다니시는 건 어때요?"

  오늘따라 집요한 아내의 태도에 카이사르는 문득 곤혹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하나 싶었지만 일단 아내를 달래주는 게 최선일 것 같아 적당히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해보겠소. 하지만 호위를 구하는 것도 그리 쉽게 결정할 일은 아니라오. 이번 달 일정이 끝나면 천천히 생각해보기로 하지. 나는 오늘 일정을 끝내자마자 레피두스가 여는 만찬에 참석해야 해서 슬슬 나가봐야 하오."

  칼푸르니아는 완전히 만족한 것 같지는 않았지만 일단은 납득하고 물러섰다.

  카이사르는 진홍색과 자주색으로 물들인 튜닉을 입고 그 위로 거대한 토가를 둘렀다.

  준비를 마친 그는 그대로 관저 밖으로 나가 사크라 가도를 타고 카피톨리노 언덕의 신전으로 향했다.

  최고 신관으로서의 일을 마치고 클리엔테스들과의 면담까지 전부 끝내자 저녁 시간이 됐다.

  그는 레피두스가 연 저녁 만찬에 참가하기 위해 팔라티노 언덕으로 발길을 돌렸다.

  카이사르의 연인인 세르빌리아의 사위이기도 한 레피두스는 카시우스와 동서지간으로 이전부터 카이사르와 꽤나 친밀한 관계였다.

  거기에 우수한 행정력을 갖추고 있어 마르쿠스 역시 상당한 총애를 보내고 있었다.

  로마의 두 실권자와 두루 친하다보니 자연히 돈을 벌 기회도 많았다.

  금융의 흐름을 꿰뚫어보는 재능이 있는 그는 몇 년 사이에 막대한 부를 축적해 로마에서도 손에 꼽히는 대저택을 구입했다.

  포로 로마노가 그대로 내려다보이는 최고급 저택은 그가 초대한 명사들로 가득 찼다.

  자리에 모인 이들의 면면을 둘러보면 민중파와 귀족파의 구분이 없었다.

  카이사르와 마르쿠스, 그리고 안토니우스와 키케로, 브루투스, 카토, 피소, 등등 로마에서 손꼽히는 인사들이 모두 한 자리에 모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레피두스는 그 중에서도 당연히 마르쿠스와 카이사르를 가장 상석으로 모셨다.

  이윽고 손님들이 속속 도착하고 그들은 레피두스가 안내해준 자리에 착석했다.

  "오른만에 뵙습니다, 장인어른."

  마르쿠스가 공손하게 인사를 건네며 옆에 앉아 카이사르가 환하게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자네 얼굴을 보니 이제야 내 숨통이 좀 트이는 것 같네. 요새는 하도 답답한 사람들만 내 주변에 득실 거려서 말이야. 지금 하고 있는 사업은 잘 되가나?"

  "예. 다음 달 중으로 시설들의 문을 열 생각입니다. 개점 기념 만찬을 열 생각인데 부디 참가하셔서 자리를 빛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기꺼이 가지. 저번에 자네가 주었던 그 검은색 음료···커피라고 했었나? 처음에는 쓰기만 하다고 생각했는데 묘한 매력이 있더군. 이상하게 계속 마시고 싶은 맛이라고 해야 하나?"

  "이미 저희 저택 식구들은 커피에 푹 빠져 있습니다. 율리아가 하루에 대여섯 잔을 마시려고 하길래 말리느라 진땀을 뺐을 정도입니다."

  "저런. 나도 저번에 밤에 한 잔 마셨다가 잠이 안 와서 혼났네. 그래도 밤을 새서 처리해야 할 일이 있을 땐 정말 좋겠더군."

  두 사람이 웃으며 환담을 나누는 동안 연회는 화기애애하게 흘러갔다.

  레피두스는 요리와 포도주에는 굉장히 까다로웠기 때문에 모두가 질 높은 식사에 만족했다.

  가벼운 생선요리에는 가장 잘 어울리는 백포도주를, 무거운 육류 요리에는 특별히 엄선한 키오스산 적포도주가 곁들여졌다.

  거기서 끝이 아니라 후식으로 딸려 나오는 요리에 맞춰 무려 4종류의 서로 다른 포도주가 제공됐다.

  "이걸 맛보니 오늘 쌓인 피로가 쑥 내려가는군."

  카이사르가 중얼거리며 연신 잔을 들이켰다.

  "자네는 어떤가? 율리아도 갑자기 불안하다고 하면서 자네를 달달 볶을 때가 있나?"

  "아무래도 전쟁에 나가는 일이 많다보니 그럴 땐 항상 불안해하죠. 그래도 티를 내지 않으려고 굉장히 노력하는 게 보입니다. 오히려 제가 그녀의 건강 상태를 더 염려하는 일이 많지 않나 싶은데요. 무슨 일이 있으셨습니까?"

  "점쟁이가 불안한 예언을 했다면서 릭토르를 다시 데리고 다니라고 하지 뭔가. 그럴 수 없다는 이유를 설명하니 자네처럼 호위를 대동하고 다니라더군. 나도 스파르타쿠스 같은 심복이 있다면 왜 옆에 두지 않겠나. 주변에 그런 사람이 없으니 문제지."

  스파르타쿠스는 최근 평민 재무관 선거에 당선되어 원로원 의원의 자격을 획득했다.

  덕분에 원로원 회의가 열릴 때에도 당연하다는 듯 마르쿠스의 옆을 지킬 수 있었다.

  "베르킨게토릭스는 어떻습니까? 그를 옆에 둔다면 든든하지 않을까요?"

  "그럴 수 있으면 좋겠지만 지금 눈이 돌아갈 정도로 바쁜 모양이더군. 갈리아를 대표하는 입장이다 보니 신경써야 할 게 아주 많은 모양이야."

  "하긴 수레나스도 비슷한 상황이니까요."

  마르쿠스가 달콤한 치즈의 감촉을 혀로 느끼며 기분 좋게 웃었다.

  오랫동안 매진한 행정제도의 개편으로 동방 속주에서 그가 처리해야 할 일은 거의 절반 이하로 줄었다.

  아직 전문적인 관료 제도를 도입하는 건 시기상조였으나 그 초석만큼은 확실히 깔아둔 상태였다.

  게다가 자신이 로마에 있는 동안은 푸블리우스와 셉티무스에게 대부분의 권한을 위임해 놓았으니 신경 써야 할 게 거의 없었다.

  호텔의 건설이나 새로운 제도의 구상은 사실 귀찮은 축에도 들지 않았다.

  마음 같아서는 앞으로 몇 년 동안은 로마에서 일하는 척 하면서 계속 눌러앉고 싶었다.

  마르쿠스는 식사 중에도 서류를 처리하고 있는 카이사르처럼 워커 홀릭은 아니었고 그렇게 되고 싶지도 않았다.

  카이사르는 무상 곡물 분배에 관한 개정안을 들여다보며 마지막으로 확인차 질문을 던졌다.

  "어쨌든 자네도 내가 릭토르를 데리고 다니는 데에는 찬성하지 않는 거겠지?"

  "굳이 릭토르를 끌고 다닐 필요는 없죠. 저도 그러지 않고 있는데요."

  "자네랑 나랑은 상황이 조금 다르긴 하지만···어쨌든 알겠네. 자네 생각도 그렇다니 지금 이 상황을 계속 유지하도록 함세."

  "그런데 장모님은 어째서 갑자기 그런 이야기를 꺼내신 겁니까?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을 텐데요."

  칼푸르니아가 카이사르가 암살당하는 날 불길한 꿈을 꾸었다는 건 널리 알려진 이야기였다.

  그게 후대의 호사가들이 지어낸 이야기이든 아니면 진짜 우연의 일치였든 카이사르에게 불길함을 경고하는 사람들은 상당히 많았다.

  카이사르가 그들의 경고를 듣지 않은 건 여러 이유가 있었으나 너무 과한 자신감이 한몫 했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아내가 뜬소문을 좀 들은 모양이더군. 아무래도 나는 관저에서 살다보니 다른 귀족들보다도 훨씬 더 시민들과 가깝게 지내지 않나. 당연히 여러 근거 없는 소문들도 여과 없이 들려온다네."

  "그렇군요. 불길한 소문을 듣는다면 걱정이 될 수밖에 없긴 하죠."

  "정치인 치고 뜬구름 잡는 소문에 시달리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나. 나를 암살하고 싶은 사람이야 청년 시절부터 차고 넘쳤을 텐데."

  "뭐···장인 어르신께 아내를 뺏겼다고 생각할 수많은 남성들의 분노를 생각해보면 그렇긴 하겠습니다만."

  마르쿠스의 뼈있는 한 마디에 카이사르의 얼굴에 쓴웃음이 어렸다.

  "여러 여자를 거느리는 걸로는 자네도 만만치 않던데. 이집트의 파라오들께선 안녕하신가?"

  "물론 잘 지내고 계십니다. 지금쯤 로마로 오는 배를 타고 있지 않을까 싶군요."

  "이집트의 파라오가 로마로 온다고?"

  "관광 목적도 있겠지만 원로원 의석이 확대되면 그에 관해서 조율할 사항들이 몇 개 있을 테니까요. 사신이 아니라 파라오가 직접 로마에 있다면 조금이라도 더 유리한 조건으로 협정을 맺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 거겠죠."

  카이사르가 흥미롭다는 듯 서류더미에서 시선을 거두었다.

  안 그래도 이집트의 파라오들과 한번쯤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까닭이다.

  "로마에 도착하면 자네가 한번 자리를 만들어주게. 내 기꺼이 참석할 테니."

  "알겠습니다."

  원 역사에서 클레오파트라와 카이사르의 관계를 떠올린 마르쿠스는 묘한 기분을 느끼며 고개를 끄덕였다.

  ※※※

  3월의 이두스는 카이사르가 원로원 의석의 확대를 최종적으로 결정짓겠다고 선언한 날이었다.

  워낙 사안이 중요했던 만큼 이날은 마르쿠스도 회의에 참석했다.

  그가 주랑에 들어서니 500명이 넘는 의원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마르쿠스를 알아본 이들은 황급히 다가와 앞다투어 인사를 청했다.

  "업무가 바쁘시지 않습니까? 용케도 시간을 내셨군요."

  "중요한 일이니 참가를 해야지요. 그런데 이제 곧 회의가 시작할 텐데 집정관이 보이질 않는군요."

  "아, 루키우스는 콜로세움에서 잠깐 일이 터져서 늦는다고 했습니다. 어차피 회의가 시작해봐야 카이사르와 귀족파가 격렬하게 논쟁을 벌일 테니 표결은 한참 뒤에나 하지 않겠습니까. 집정관이 한두 시간 늦는다고 문제는 없을 겁니다. 끝까지 오지 않는다면 마르쿠스 님이 대신 회의를 주관하셔도 상관 없을 테고요."

  마르쿠스가 고개를 까딱이며 자신의 자리에 가서 앉았다.

  스파르타쿠스는 자연스럽게 그의 오른편에 섰고, 왼편에 앉은 수레나스는 품에 안고 있는 엄청난 양의 서류더미에서 눈을 떼지 않고 있었다.

  '슬슬 시작할 때가 됐나.'

  마르쿠스는 계단 아래 모여 있는 스무 명이 넘는 귀족파 의원들을 지긋이 바라보았다.

  카이사르에게 격렬하게 반대를 하는 그들이 모여 있는 걸 누구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트레보니우스는 주변 모두에게 일부러 들으라는 듯 토론에서 자신들이 펼칠 논거를 장황하게 떠들고 있었다.

  카시우스는 긴장으로 얼굴이 까맣게 죽어 있었고, 키케로도 눈 밑에 다크서클이 가득 끼어 있었다.

  문득 그가 고개를 들어 마르쿠스가 있는 방향을 돌아보았다.

  시선이 마주치자 마르쿠스가 손을 흔들며 미소를 지었다.

  키케로가 최대한 태연한 척 웃으며 다가와 인사를 건넸다.

  "오늘은 회의에 참석했군. 최근에는 계속 빠지더니."

  "아무리 바쁜 일이 있어도 이런 중요한 사안엔 빠질 수 없죠."

  "그래···공화정이 작살나는 순간이 될 수도 있으니. 자네가 카이사르를 막아줬다면 참 좋았겠는데."

  "죄송하게 됐습니다. 다른 건 몰라도 이 사안은 저도 중립을 지킬 수밖에 없어서요. 그래도 내심 키케로 님과 카토 님이 논쟁에서 승라하길 바라고 있습니다."

  "···그래. 그래야지."

  키케로는 마르쿠스의 격려에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막 회의장 내부로 들어온 카이사르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나는 이제 돌아가 봐야겠네. 아무래도 동료들과 입을 좀 더 맞춰봐야 할 것 같아서."

  짧은 한숨을 여러 번 내쉰 키케로가 호흡을 고르며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행운을 빌겠습니다."

  마르쿠스는 속내를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위태롭게 돌아서는 키케로를 배웅했다.

  고관석 단상에 자리를 잡은 카이사르는 이 긴장된 분위기를 아는지 모르는지 평소처럼 우렁찬 목소리로 회의의 개시를 선언했다.

  < 242. 로마의 미래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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