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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4. 로마의 미래 (245/326)

  < 244. 로마의 미래 >

  244.

  넋이 나가있던 암살자들은 카시우스의 외침에 이를 갈며 브루투스를 노려보았다.

  "역시 네놈이 밀고한 게로구나!"

  트레보니우스가 악에 받쳐 소리 질렀다.

  그의 뒤를 이어 암살자들이 마구잡이로 욕설과 고성을 내질렀다.

  "브루투스의 피를 잇는 자가 공화정을 망하게 하는 악적 편에 서다니 부끄러운 줄 알아라!"

  "계획에 참여할 배짱이 없는 졸부인줄만 알았는데 그조차 과대평가한 것이었다니."

  "제가 뭐라고 했습니까. 저 놈은 카이사르의 사생아가 맞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브루투스는 그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멍청히 자리에 서 있었다.

  지금 쏟아지는 비난이 정확히 자신을 향하고 있다고 자각하는데만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내가 카이사르 님에게 암살을 밀고했다고?"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란 말인가.

  암살자들이 한 결 같이 브루투스에게 비난을 쏟아내자 카토조차 의심 섞인 시선을 보내왔다.

  카토 역시 암살을 대놓고 반대한 인물이었으나 굳이 카이사르에게 그 소식을 말해주진 않았다.

  그럴 의리도 없었고, 무엇보다 오늘 암살을 거행한다는 사실 자체를 몰랐기 때문이다.

  "정말 자네가 카이사르에게 말한 건가?"

  "그럴 리가 없지 않습니까! 이보게, 카시우스. 대체 무슨 근거로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건가. 내가 자네들에게 협력하지 않은 건 사실이지만 아무리 그래도 가족을 팔아넘기는 짓은 하지 않는단 말일세."

  조금 전만 하더라도 비명을 지르며 도망가려던 원로원 의원들은 어느새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상황을 주시하고 있었다.

  카이사르도 병사들에게 당장 암살자들을 체포하라는 명령을 내리지 않고 일부러 논쟁이 격화되도록 놔두는 중이었다.

  "우리 외에 이번 계획을 아는 사람은 카토 님과 브루투스 자네 둘 뿐이었네. 하지만 카토 님은 오늘 계획을 실행한다는 사실조차 모르셨네. 그러니 당연히 자네가 밀고 했다고 볼 수밖에 없지."

  "아니, 그러니까 나는······."

  브루투스는 자신도 일정을 몰랐다고 반박하려 했으나 어제 있었던 일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카시우스가 분명 말하긴 했었다.

  오늘은 굉장히 의미 있는 날이 될 거라고.

  하지만 그 말만으로 오늘 암살을 결행할 거라고 어떻게 예상하겠는가.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원로원 정족수 확대를 최종의결하는 날이니 이걸 부결시킬 묘안이 있다고 받이 들이는 게 정상이었다.

  암살을 저지를 가능성을 고려하긴 했으나 아무리 그래도 원로원 의사당에서 칼을 빼들고 달려들 줄은 예상조차 하지 못했다.

  주변에 있는 수백 명의 의원들이 보내는 묘한 시선을 알아차린 브루투스가 암살자들에게 사나운 눈길을 보냈다.

  "자신들이 입을 잘못 놀렸을 경우는 생각하지 않고 생사람을 배신자로 몰아가는 건 대체 무슨 경우란 말인가. 나는 처음부터 그쪽에 협력하지 않았으니 배신자라고 불릴 이유도 없지만, 그렇다고 친했던 사람들을 밀고할 정도로 밑바닥도 아니네!"

  브루투스의 항변에도 암살자들은 그가 배신자라는 확신을 거두지 않았다.

  이번 암살 계획은 극도로 비밀리에 진행되었기에 가족들에게조차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걸리면 바로 목이 달아날 게 뻔한데 누가 섣불리 입을 놀릴 수 있을까.

  증오에 가득찬 데키무스의 목소리가 의사당을 쩌렁쩌렁 울렸다.

  "이 비겁한 겁쟁이들! 스스로의 손을 더럽힐 용기조차 없으면서 공화정의 미래를 부르짖는 위선자들 같으니! 너희들은 그저 입만 산 쓰레기들에 불과해! 어디 앞으로도 지금처럼 뜻이 있는 자들을 팔아넘기며 자리보전에만 급급해 보아라. 그렇게 카이사르의 노예로 전락한 너희들에게 미래가 있을 것 같으냐!"

  점점 비난이 브루투스만이 아니라 다른 쪽으로도 확산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구경하고 있던 원로원 의원들은 암살자들에게 동조하기는커녕 차갑게 코웃음을 칠 뿐이었다.

  "원로원에 무기를 숨겨 들어온 자들에게 비겁자라고 불리다니 살다 보니 별 일도 다 있군."

  피소의 싸늘한 한 마디가 모두의 심경을 대변해주었다.

  그 어떤 논쟁이 있더라도 원로원에서 물리적인 수단을 쓰는 건 결코 용납되지 않는다.

  이는 수많은 의원들이 깊이 공감하는 절대적인 철칙이기도 했다.

  만약 누군가가 칼을 숨겨와 찌를 수 있다면 어떻게 자유로운 의견을 개진할 수 있겠는가.

  그런 점에서 본다면 이번 암살자들의 행보는 원로원을 원로원답게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절대 용서할 수 없는 대죄였다.

  "그 어떤 일이 있더라도 의사당 내에서 사람을 죽이려고 한 저들의 행위는 용납될 수 없습니다."

  "잠깐, 그러고보니 오늘은 왜 릭토르를 대동한 정무관들만 회의에 참석하지 않은 거지?"

  의원들은 수상한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라는 걸 알아차렸다.

  그리고 릭토르들을 대동해야 할 집정관이나 법무관들이 귀족파의 사람들에게 발이 묶여 회의장으로 오지 못했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당연히 민중파에 속한 의원들은 격분했다.

  "이렇게까지 비열한 수를 써서 사람을 시해하려 하다니!"

  카이사르의 장인인 피소가 얼굴이 시뻘개진 채 발을 쾅쾅 굴렀다.

  "언제부터 원로원이 저런 무뢰배들이 흉계를 꾸미는 곳으로 전락해 버렸다는 말인가. 감히 로마의 전직 집정관이자 현 총독을 원로원 의사당에서 멋대로 살해하려고 해?"

  "옳습니다. 로마 시민들이 어째서 안심하고 어디든 돌아다닐 수 있을까요. 바로 로마 시민이라면 어떤 상황에서라도 목숨을 보장받기 때문입니다. 그 누구도 정당한 절차 없이는 로마 시민의 목숨을 뺏을 수 없습니다. 그걸 누구보다 잘 아는 자들이 다른 장소도 아닌 이곳 원로원에서 이런 짓을 저지르다니······."

  "이건 그냥 넘어갈 사안이 아닙니다. 확실하게 징계를 내려 다시는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암살자들에게 대가를!"

  분노에 가득 찬 수백 명의 의원들이 주먹을 들어 올리며 암살자들의 처벌을 요구했다.

  분위기를 탔다고 판단한 피소는 아예 원로원 최종권고를 발동하자는 제안을 올렸다.

  암살자들의 시민권의 효력을 정지시키고 재판을 받을 권리마저 박탈하는 초강수였다.

  사방에서 처벌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들끓자 카이사르는 못 이기는 척 병사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의원들의 요구가 이토록 심하니 일단 정식으로 검토를 해보겠습니다. 이 자리에서 즉시 처결을 내리긴 어려우니 우선 저들을 적당한 곳에 가둬두도록 하겠습니다. 끌고 나가도록!"

  암살자들은 나름 저항해 보려 했으나 완전 무장을 갖춘 정예병들을 상대로 반항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순식간에 제압된 그들은 의사당 밖으로 질질 끌려 나갔다.

  반응은 각양각색으로 체념한 듯 고개를 푹 숙인 이도 있었고, 여전히 고래고래 악을 쓰며 분을 삭이지 못한 자들도 있었다.

  카시우스와 데키무스는 명백히 후자였다.

  그들은 브루투스와 카이사르에게 번갈아 욕설을 내뱉으며 바닥에 침을 뱉었다.

  "로마는 우리 원로원이 이끌어 나가야 한다. 절대로 카이사르 같은 개인의 손에 들어가게 해서는 안 돼!"

  "브루투스, 네놈은 위대한 선조의 이름에 먹칠을 한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은 거다!"

  끌려가지 않으려 필사적으로 버티고 있던 카시우스가 마르쿠스의 근처에 이르렀을 때였다.

  그가 온 힘을 다해 마르쿠스의 토가 자락을 잡으며 매달렸다.

  "마르쿠스, 도와주게. 자네라면 우리를 구해줄 수 있지 않나. 여기서 공화정을 위한 결단을 내려야 하네!"

  지금까지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있던 마르쿠스가 낮은 한숨을 내쉬며 옛 친우를 돌아보았다.

  "카시우스······."

  "카이사르를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자네밖에 없지 않은가. 일단 자네의 힘을 써서 우리에게 선처를 좀 내려주게.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든······."

  카시우스의 눈이 다급함으로 물들었다.

  그가 마르쿠스의 토가 자락을 붙들고 있으니 병사들도 혹여나 마르쿠스의 옷이 찢어질까 싶어 강제로 더 끌고나가지 못했다.

  마르쿠스가 카시우스의 손을 자신의 옷자락에서 떼어내며 작은 소리로 속삭였다.

  "노력해 볼 테니 일단 지금은 가만히 있게."

  "저, 정말인가? 고맙네. 역시 공화정의 영웅은 자네 밖에 없어."

  철석같이 마르쿠스의 말을 믿은 카시우스는 그제야 안심하고 병사들의 손에 이끌려 의사당 밖으로 내쳐졌다.

  그래도 키케로는 직접 칼을 들지 않고 뒤에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기에 연행되지는 않았다.

  천만 다행이라고 할 수 있었지만 그를 쏘아보고 있는 카토의 시선이 영 곱지 않았다.

  키케로는 혹시라도 자신이 카시우스와 함께 있었단 증언이 나올까봐 부랴부랴 의사당을 떠나 저택으로 돌아가 버렸다.

  3월의 이두스에 열린 원로원 회의는 그렇게 누구도 예상치 못한 파란 속에서 막을 내렸다.

  그러나 원로원 회의가 중단되었을 뿐 아직 운명의 날은 다 지나가지 않았다.

  이건 끝이 아닌 시작에 불과할 뿐이었다.

  ※※※

  카이사르는 내일 다시 모여 암살자들에 대한 처우를 확실히 결정짓기로 했다.

  물론 이들에 대한 결론이 어떻게 나올지 예상하지 못하는 이들은 없었다.

  최대가 사형, 최소가 전재산 몰수에 이은 영구 추방 확정이다.

  문제는 저 암살자들과 함께 처벌을 받는 자들의 범위였다.

  암살에 참가한 이들이 직접 칼을 빼든 저들에게만 국한되어 있단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정무관들이 회의에 늦어지도록 손을 쓴 이들도 공범일 테고, 아직 드러나지 않은 자들이 더 있을지도 모른다.

  의원들은 혹시라도 자신이 덤터기를 쓰는 일이 없도록 암살자들의 가문과 완전히 손을 끊으려 했다.

  조금이라도 책이 잡힐 일이 있으면 안 되니 자연히 발걸음이 분주해졌다.

  의원들이 우르르 빠져나가 버린 넓은 의사당에는 이제 카이사르와 마르쿠스, 그리고 그를 따르는 스파르타쿠스와 수레나스만이 남아 있었다.

  마르쿠스가 자신의 심복들을 돌아보며 손가락으로 입구쪽을 가리켰다.

  "먼저 가서 기다리고 있어."

  "예."

  완전히 둘만 남게 되자 카이사르가 피식 웃으며 다가와 마르쿠스의 옆자리에 앉았다.

  "오늘은 자네 덕분에 살았네. 설마 무장한 병사들을 옆에 대기시켜 놓을 줄은 몰랐어."

  "많이 놀라셨을 텐데 침착하시더군요."

  "자네가 어떤 일이 일어나도 놀랄 필요 없다고 말했으니까. 그게 설마하니 암살 시도일 거라고는 나도 생각지 못했네."

  "정말로 그런 가능성을 고려하지 못하셨습니까?"

  마르쿠스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머리를 긁적였다.

  카이사르가 헛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 안 좋은 버릇 중 하나인데 가끔 저들이 얼마나 어리석은지를 종종 까먹곤 한다네. 이 정도면 되겠지 했는데도 언제나 내 예상을 훌쩍 뛰어넘을 정도로 멍청하니···애초에 나를 죽인다고 해봐야 저들이 뭘 더 할 수 있겠나. 나를 죽여도 저들이 원하는 건 그 무엇도 손에 넣을 수 없는데 설마 그것조차 계산이 안 될 정도로 바보였던 것인가."

  "사람은 늘 그렇게 이성적으로만 움직이진 않습니다. 감정에 의존해 이상한 결정을 내리는 사람들이 오히려 더 많을 겁니다. 아실 거라고 생각했는데요."

  "아무리 그래도 원로원에 칼을 숨기고 들어올 거라고는 생각하기 어렵지. 그런데 자네는 어떻게 이 계획을 사전에 안 건가? 저들의 반응을 보아하니 자네가 알고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한 것 같던데."

  암살자들의 예상과는 정반대로 카이사르는 이번 일이 어떻게 진행된 건지 전혀 알지 못했다.

  당연히 그들의 계획을 밀고한 이도 브루투스가 아니었다.

  "자세한 건 다 끝나고 나서야 말씀드릴 수 있겠지만 제가 신뢰하는 누군가가 이미 다 손을 써두었습니다. 브루투스에게는 좀 미안하게 됐네요. 진심으로 억울해 하는 것 같던데."

  "그 아이야 뭐···그래도 이번 기회로 확실히 어디에 설지 정할 수 있을 테니 다행이라고 생각하네. 어쨌든 이제 저들의 처분만 결정하면 되는데 뭐 생각해둔 바가 있나?"

  마르쿠스가 살며시 눈을 감았다.

  그가 아까 전 카시우스가 붙들고 늘어졌던 토가 자락을 손으로 툭툭 털며 입을 열었다.

  "이미 짐작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치워버려야지요."

  < 244. 로마의 미래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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