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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5. 로마의 미래 (246/326)

  < 245. 로마의 미래 >

  245.

  카이사르 암살 미수 사건은 채 하루도 되지 않아 로마 전역에 퍼져나갔다.

  로마 시내의 분위기는 순식간에 화산처럼 분노로 들끓었다.

  포로 로마노로 쏟아진 시민들은 서로 정보를 교환하며 암살자들의 신상을 캐고 다녔다.

  "주모자는 카시우스와 데키무스를 비롯한 귀족파라더라!"

  "데키무스는 카이사르의 친척 아닌가? 그런 사람이 암살을 하려고 했다고?"

  "권력에 눈이 먼 게지. 쳐 죽일 놈들 같으니!"

  "듣기로는 원로원 의사당에 칼을 숨기고 들어갔다는데?"

  이상할 정도로 정확한 정보들이 시민들에게 전달되었다.

  당연히 한데 모인 군중들의 규모는 점점 더 커져나갔고 시민들의 분노가 로마 전체를 뒤덮기 시작했다.

  심지어 어디서 유출됐는지 암살자 중 한 명이 휘두르려고 했던 칼이 증거품으로 제시됐다.

  반강제로 끌려오다시피 한 민중파 의원 한 명이 당시의 상황을 상세히 진술했다.

  이윽고 완벽한 전말을 알게 된 시민들은 더 이상 포로 로마노에만 머물지 않았다.

  로마 전역으로 흩어진 이들은 삼삼오오 짝을 지어 살의로 가득 찬 구호를 외치며 돌아다녔다.

  "암살자들을 죽여라!"

  "놈들이 카이사르에게 하려고 했던 짓을 그대로 돌려주자!"

  "로마의 영웅을 죽이려고 한 역도들은 대가를 치러라!"

  "죽여라! 죽여라! 죽여라!"

  암살자들의 피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끝없이 울려 퍼졌다.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한 귀족들은 빠르게 움직였다.

  시민들은 암살자들을 죽이기 위해 돌아다니고 있었지만 그들은 이미 카이사르에게 구금된 뒤였다.

  무장한 병력들로 그들을 가둔 건 틀린 판단이 아니었다.

  암살자들이 도망가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성난 군중들에게 암살자들이 살해당하지 않도록 지키기 위한 의미가 더 강했다.

  완전 무장한 군단병들이 아니었다면 이미 암살자들을 가둔 저택은 성난 시민들의 파도에 휩쓸려 나갔을 것이다.

  상황이 이러니 위험해진 건 암살자들의 가족들이었다.

  분노를 쏟아낼 대상을 찾지 못한 시민들이 바로 다음 타겟으로 암살자들의 가족을 지명했기 때문이다.

  이미 성난 폭도로 돌변한 시민들을 제지할 수 있는 사람들은 없었다.

  암살자들의 가족들은 자신들의 집을 버리고 가까운 친척이나 지인의 집으로 도망가야 했다.

  "이상해, 정말로 이상해······."

  키케로는 시민들의 동향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어떻게 이렇게 신속하게 움직일 수 있는 거지? 아직 암살 시도가 일어난 지 하루도 채 되지 않았거늘."

  자택으로 피신해 있던 키케로는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끼고 마르쿠스의 저택으로 피신해 있었다.

  불길한 예감은 어김없이 적중했다.

  아니나 다를까 키케로도 이 사건에 연관되어 있을지 모른다는 소문이 반나절도 안 되어 튀어나온 것이다.

  팔라티노 저택에 위치해 있던 호화 저택이 폭도들에게 박살 나는 건 그로부터 두 시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소문의 흐름이 지나칠 정도로 빨라. 그리고 정확성 역시 이상할 정도로 높고."

  "그럼 정말로 키케로 님도 카이사르 님 암살 계획에 연루되어 있었습니까?"

  마르쿠스가 혼란에 휩싸여 있는 키케로의 앞에 커피잔을 내려놓으며 물었다.

  자신이 말실수을 했다는 걸 자각한 키케로가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아니, 나는 아닐세. 정확히 말하면 나는 그들을 제어하려고 했던 것뿐이야. 자네도 알지 않나? 이 계획이 실패하면 우리들이 얼마나 막대한 피해를 입을지. 난 그들이 어설픈 시도를 해서 우리를 파멸로 몰아가지 않도록 고삐를 잡으려고 했던 거였네."

  "그런 것치고는 치졸하기 짝이 없는 방법으로 계획이 실행된 것 같습니다만."

  "···변명의 여지가 없군. 내 자리에 자네가 있었다면 더 솜씨 좋게 그들을 제어할 수 있었겠지만··· 나로서는 뭘 더 어떻게 할 수가 없었네."

  커피잔을 입으로 가져가는 그의 손이 파르르 떨렸다.

  평소에 보이던 지적이고 여유로운 모습은 편린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계획이 실패하면 어떻게 할지 생각해둔 건 있으십니까?"

  "실패하면 도주하는 게 최선이 아닐까 하는 이야기가 나오긴 했었네. 일단 브룬디시움으로 내려가 거기서 배를 타고 그리스나 시리아로 도망갈 계획이었지."

  마르쿠스가 헛웃음을 삼켰다.

  익숙하지 않은 짓을 할 때도 빈틈없이 일을 처리하는 이들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귀족파들도 마찬가지였다.

  원로원 의사당에서 칼을 휘둘러 사람을 죽인다는 초유의 음모를 계획하긴 했지만 그들의 움직임은 허술하기 짝이 없었다.

  실패했을 시의 탈출로도 그렇다.

  상식적으로 암살이 실패했는데 그들이 어떻게 몸 성히 브룬디시움으로 도망칠 수 있겠는가.

  진짜로 그럴 생각이 있었다면 사전에 마차부터 배편까지 전부 수배해 뒀어야 한다.

  그리고 시민들의 분노가 폭발하기 전에 로마를 빠져나갔어야 성공적으로 도주할 수 있었으리라.

  '이 정도로 어설픈 줄 알았다면 미리 손을 써 둘 필요도 없었겠군.'

  키케로가 위화감을 느낀 것처럼 시민들이 폭주는 우연의 산물이 아니었다.

  시민들의 분노를 끓어오르게 한 것도, 그들의 움직임을 유도한 것도 전부 옥타비우스가 사전에 짜놓은 계획이었다.

  목적은 당연히 암살자들을 완전히 고립시키고 그들을 심적으로 압박하는 것.

  상황에 따라서는 본보기로 몇 명을 희생시킬 생각까지 한 듯 보였지만 상황을 보니 그럴 필요까지는 없었다.

  암살에 연루된 자들 중 현재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는 사람은 키케로가 유일했다.

  암살 모의에 조금이라도 발을 담근 이들은 모두 체포됐고 신변의 자유를 박탈당한 채 구금되어 있었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는 제아무리 키케로라고 해도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마르쿠스, 자네의 영향력으로 어떻게 할 수 없겠나?"

  "글쎄요··· 사전에 제게 이야기를 해주셨다면 모를까 이런 상황이면 저도 나서기 곤란합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장인어른이 암살당할 뻔했는데 제가 대놓고 암살범들을 편들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것도 그렇지··· 그럼 정말로 답이 없는 건가?"

  "뭐, 할 수 있는 최대치는 그들이 재판을 받을 수 있도록 해주는 거겠죠. 키케로 님이 그들을 변호하시겠습니까?"

  키케로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이런 상황에서 재판 따위를 받는다고 한들 뭐가 달라지겠는가.

  전 로마의 관심이 집중될 재판인 만큼 분명 포로 로마노에서 열릴 터.

  만약 변호인이 암살범들을 비호하려고 한다면 성난 군중들에게 뭇매를 맞고 목숨이 위험해질지도 모른다.

  게다가 키케로는 현재 암살자들과 공범이라는 의혹까지 받고 있었다.

  제아무리 키케로라고 해도 이런 상황에서 제대로 된 변론을 펼칠 자신은 없었다.

  "내가 볼 때 재판은 그리 좋은 방법이 아닌 것 같네. 어차피 그들이 받을 처벌은 뻔해. 시민들은 무조건 사형을 외칠 테고 법무관은 그들의 기대에 완벽하게 응해주겠지.

  로마 시민이라면 사형 대신 국외추방을 선택할 수 있지만 그런 원칙이 제대로 적용될 거라고는 기대하지 않네. 아마 기소 측은 원로원 최종권고를 발동하라고 하지 않을까? 그리고 카이사르는 분명 못 이기는 척 그 말을 받아들여 최종권고를 발동하겠지. 피고들에게 남은 건 추방조차 선택하지 못하고 죽는 것뿐일세.

  "

  "일리가 있는 말씀이군요.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그들을 몰래 풀어주는 일 따위는 할 수 없습니다. 그랬다가는 진짜로 폭동이 일어날걸요"

  "나도 알고 있네. 그러니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카이사르가 직접 그들을 국외추방 정도로 끝내는 걸세. 피해를 입을 뻔한 당사자가 직접 일을 그렇게 마무리한다면 시민들도 뭐라 하진 않을 테니까.

  카이사르도 자신이 그토록 강조하는 관용에 걸맞은 행보를 보이는 것이니 정치적으로 손해는 아니라고 보네. 문제는 사람인 이상 분노가 없을 수가 없단 건데··· 자네가 이걸 설득해 줘야 하네.

  "

  "그러니까 쉽게 말해서 장인어른께 선처를 바란다는 부탁을 해달라는 거로군요."

  키케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볼 땐 국외추방이 현재 암살자들이 받을 수 있는 가장 가벼운 형벌이었다.

  물론 전 재산 몰수에 영구추방이라는 조항이 따라붙겠지만 그래도 죽지만 않으면 된다.

  영구추방형을 받는다고 해도 정치적인 지형이 변하면 언제든 다시 번복될 수 있다.

  실제로 그렇게 로마로 다시 돌아온 사람들은 수십 명이 넘는다.

  그게 아니더라도 안티오키아나 그리스는 마르쿠스의 영역이다.

  그쪽으로 추방당한다면 부족함 없는 생활을 하며 재기를 도모할 수 있으리라.

  키케로의 의도를 간파한 마르쿠스가 묘한 미소를 머금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걱정 마십시오. 그 정도쯤이야 어렵지 않을 겁니다."

  ※※※

  "···라고 하니 선처를 부탁드린다고 하더군요."

  조용히 마르쿠스의 말을 경청하고 있던 카이사르의 입가에 쓴웃음이 떠올랐다.

  "암살 시도가 실패한 뒤에 피해자에게 선처를 바란다니 참으로 편리한 사고방식이로군."

  "그게 바로 귀족파의 매력이죠."

  "치명적인 매력이로군."

  가볍게 커피잔을 입으로 가져간 카이사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건 저번에 먹은 것과는 맛이 조금 다른 것 같은데?"

  "커피에 물 대신 우유를 탄 겁니다. 아직 쓴맛에 적응하지 못한 사람들은 이쪽을 더 좋아할 것 같더군요."

  "이것도 꽤 괜찮군. 확실히 여성들이 선호할만한 맛이야. 이걸 그 호텔인가 뭔가 하는 곳에서 본격적으로 팔 거라 이 말이지? 돈을 쓸어 담겠군."

  "지금은 일단 귀족들의 사치품으로 시작하겠지만 십 년 안에 설탕과 함께 공급을 안정화시킬 겁니다. 그러면 시민들도 편하게 즐길 수 있겠죠."

  현재 커피의 가격은 도저히 시민들이 즐길 수 있는 수준은 아니었다.

  당장 커피 자체의 가격만 해도 중국산 차보다 조금 싼 정도였다.

  아직 생산량이 그렇게까지 많진 않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여기에 설탕까지 곁들여 먹어야 한다는 점이다.

  아직 커피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일수록 더 설탕을 많이 쳐야 했으니 가격이 비쌀 수밖에 없다.

  때문에 아직까진 귀족과 기사계급의 전유물로 남겨둘 수밖에 없었다.

  잠시 말없이 커피의 향을 즐기고 있던 카이사르가 천천히 잔을 내려놓고 고개를 까딱였다.

  "그래. 자네 좋을 대로 하게. 이번 일은 처음부터 끝까지 자네가 계획을 세웠으니 자네의 뜻에 따라주는 게 도리겠지."

  "감사합니다. 그러면 일단 그들과 면회를 좀 해봐야겠군요."

  "그들에게 딱히 더 할 말이 있나?"

  "선택권을 줘야지요. 의기를 지켜 담담히 처형을 받아들일 것인지 국외추방을 선택할 것인지. 만약 전자를 고르겠다면 기꺼이 의사를 존중할 용의가 있습니다."

  카이사르가 웃음을 터트렸다.

  "죽음을 고른다고? 그런 자들이 한 명이라도 있을 거라고 보는가?"

  "당연히 없겠죠."

  카토가 암살에 참가했다면 모를까 지금 암살범들 가운데 그럴만한 신념이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니, 애초에 그 정도의 신념이 있었다면 암살에 참여했을 리가 없다.

  "내 장담하지. 아마 한 명도 빠짐없이 국외추방을 선택할 게야. 하지만 그래도 자존심은 있는 이들이니 고민하는 척은 하지 않을까? 자네가 적당히 등을 밀어줄 필요가 있을 걸세."

  "살아서 후일을 도모하는 게 좋다는 류의 말을 듣고 싶어 한다면 원하는 대로 해줘야죠."

  "그럼 정말로 국외추방으로 끝낼 셈인가? 나야 상관없지만, 자네는 좀 더 확실한 방법을 선호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군."

  "저도 그렇게까지 냉혈한은 아닙니다."

  마르쿠스가 묘한 어조로 한 마디를 덧붙였다.

  "어디까지나 저는 말이죠."

  < 245. 로마의 미래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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