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46. 로마의 미래 (247/326)

  < 246. 로마의 미래 >

  246.

  카이사르의 관저에서 나온 마르쿠스는 곧장 암살자들이 구금되어 있는 곳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시민들이 다가와 이번 암살 미수에 관한 마르쿠스의 의견을 물었다.

  "안 그래도 카이사르 님과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이번 일에 관한 처분은 전적으로 카이사르 님의 뜻에 따라 결정될 겁니다. 그게 옳다고 생각하고요."

  마르쿠스의 단호한 대답에 시민들은 크게 만족해하며 흩어졌다.

  그들이야 당연히 카이사르가 사형을 선고할 거라 생각했지만, 설령 그렇지 않다고 해도 그게 카이사르의 의지라면 받아들일 것이다.

  오히려 카이사르는 자신의 목숨을 노린 암살자들일지라도 로마의 법에 따라 추방을 선택했다며 찬양할지도 모른다.

  로마의 법을 무시하고 신성한 원로원 의사당에서 무기를 휘두른 암살자들.

  그리고 그런 자들조차 법적인 절차에 따라 처벌한 카이사르.

  세 살짜리 아이가 봐도 누가 올바른지 알 수 있을 정도로 차이가 확 갈리지 않는가.

  아마 처분이 발표되면 시민들은 언제 암살자들을 죽이라고 했냐는 듯 돌변해 카이사르의 관용을 칭송할 게 뻔하다.

  사실 카이사르의 입장에서 가장 꺼려지는 건 암살자들이 끝까지 자신들의 정당성을 주장하며 목숨을 바치는 것이었다.

  지금에야 분노에 찬 시민들은 적극적으로 사형을 주장할 테지만 이런 건 언제나 시간이 흐르며 재평가를 받는 법이다.

  암살자들이 정말로 공화정의 수복을 위해 목숨을 내던진다면 이는 장래에 카이사르에게 정치적인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있었다.

  모두 처형하는 건 생각해보니 좀 심하지 않았느냐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카이사르는 언제나 최종 권고의 위법성을 주장했는데 본인이 그걸 이용한다는 비판도 나올 수 있었다.

  만약 귀족파가 정말로 자신의 목숨을 바쳐서 카이사르를 막을 생각이었다면 이런 점을 이용했어야 한다.

  그러나 카이사르도, 마르쿠스도 확신하고 있었다.

  암살자들 중에 그런 기개를 지닌 이는 단연코 한 명도 없다.

  그리고 예상은 그대로 적중했다.

  마르쿠스가 도착하기 전까지만 해도 암살자들은 거의 공황상태에 빠져 있었다.

  공화정의 수복이라든가 독재자를 처단한다는 대의 따위는 이미 머릿속에 있지도 않았다.

  구금당하고는 있어도 당연히 병사들에 의해 로마 시내의 소식은 귀에 들어왔고, 성난 시민들의 고함소리도 계속 귓가에 메아리쳤다.

  자신있게 암살을 주도했던 카시우스와 데키무스는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쥔 채 연신 한숨을 흘리고 있었다.

  트레보니우스도 별 다를 건 없었다.

  그는 벽에 이마를 받으며 일이 대체 왜 이렇게 흘러갔는지 한탄을 늘어놓았다.

  "···대체 어디부터 잘못된 거지."

  카시우스가 힘없이 고개를 들어 대답했다.

  "계획에 세어나간 게 분명합니다. 배신자는 부르투스가 확실해요."

  트레보니우스가 날카로운 눈빛으로 카시우스를 쏘아보며 소리쳤다.

  "브루투스를 끌어들이려고 한 건 자네였어! 잊지 말게. 브루투스 때문에 계획이 망한 거라면 이건 모두 자네 탓이란 말일세!"

  "제 탓이라고요? 제가 브루투스를 끌어들이는 게 어떻냐고 했을 때 여기 있는 모든 사람들이 찬성하지 않았습니까! 다시 생각해보는 게 좋다는 말을 한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었다면 저도 제 탓이라 인정하겠습니다."

  "그건 어디까지나 자네가 브루투스를 끌어들일 수 있다고 자신만만해 했기 때문이지. 공화정의 문을 연 사람의 핏줄이 우리에게 합류하는 건 상징적인 의미가 크니까! 하지만 꼴이 이게 뭔가!"

  조용히 신세를 한탄하고 있던 데키무스가 나직이 중얼거렸다.

  "어떻게 브루투스의 피를 이어받은 자가 공화정을 배신할 수 있는 거지? 이해할 수가 없어······."

  그의 말에 모두가 동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정황상 브루투스의 배신이 확실해 보였으나 아직도 쉽사리 믿기진 않았다.

  트레보니우스가 이를 갈며 증오에 찬 추론을 토해냈다.

  "그놈의 친 아비가 카이사르라는 소문이 사실인가 보지. 그렇다면 그 놈은 브루투스의 핏줄이 아니네. 율리우스와 세르비우스의 핏줄이지."

  "트레보니우스, 그건 헛소문이라고······."

  "그게 헛소문이 아니니 우리가 지금 이런 꼴이 된 게 아닌가!"

  "그래도 아직 완전히 끝나진 않았습니다. 키케로 님이 밖에 있으니까요. 그분이 마르쿠스 님과 접촉한다면 분명 뭔가 수를 내오겠죠."

  데키무스가 애써 침착한 태도로 트레보니우스의 어깨를 두드렸다.

  마르쿠스가 실내로 들어온 건 바로 그 무렵이었다.

  부정적인 말을 한 마디 더 하려던 트레보니우스는 마르쿠스의 모습을 확인하자마자 허겁지겁 달려와 토가자락을 붙잡고 늘어졌다.

  "마르쿠스! 자네만 기다리고 있었네. 지금 상황이 어떤가? 자네라면 우리를 살려줄 수 있겠지? 응?"

  "진정하십시오. 일단 앞으로의 일정을 설명 드리겠습니다."

  마르쿠스가 부드럽게 트레보니우스의 손을 떼내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암살자들은 한 줌의 희망을 품은 눈빛으로 그의 입이 열리기만을 기다렸다.

  "우선 어째서 이런 일을 저지른 거냐는 말은 하지 않겠습니다. 이미 지나간 일로 왈가왈부해도 달라질 건 없을 테니까요. 다만 바깥의 상황은 좋지 않습니다. 이미 들으셨겠지만 시민들은 여러분의 즉결처형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원로원 최종 권고를 발동하라며 집정관의 집 앞에서 농성을 벌이는 이들도 많습니다."

  "최종권고라니···이 무슨······."

  카시우스가 입을 떡 벌렸다.

  원로원의 이권을 수호하기 위한 초법적인 병기가 자신들을 향할 수도 있다는 사실에  그저 어안이 벙벙할 따름이었다.

  그리고 자신들이 완전히 주류에서 밀려났음을 인지할 수밖에 없었다.

  트레보니우스가 불안에 가득한 표정으로 물었다.

  "최종권고가 발동될 거라고 보는가? 그러니까 카이사르가···그걸 허용할 거라고?"

  데키무스가 퉁명스레 덧붙였다.

  "카이사르가 허용할 필요가 어디 있습니까? 그냥 집정관이 최종권고를 발동하는 걸 구경하고만 있으면 될 텐데요."

  "아니, 하지만 카이사르는···그···최종권고의 위법성을 항상 비판했으니까."

  "아, 그러니까 카이사르가 자신의 정치적인 신념을 지켜서 우리에게 향하는 최종권고에 제동을 걸지 않겠냐는 겁니까? 그럴 리가요. 나서서 우리를 죽이려고 하진 않아도 못이기는 척 지켜만 보면 되는데 왜 그걸 마다하겠습니까. 카이사르 같은 정치의 달인이."

  데키무스의 냉정한 분석에 암살자들의 얼굴에 절망이 감돌았다.

  듣고 보니 카이사르가 자신들의 목숨을 살려줄 이유가 전혀 없었던 것이다.

  상식적으로 지금이 귀족파의 기둥뿌리를 뽑을 절호의 기회인데 그가 마다할 리가 없었다.

  마르쿠스는 암살자들이 또다시 공황상태에 빠지기 전에 재빠르게 대화에 끼어들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래서 제가 온 겁니다."

  "······?"

  "이미 카이사르 님과 이야기를 마쳤습니다. 선택지를 두 개 줄 테니 여러분이 원하시는 대로 하라더군요."

  "우리에게 선택권이 있다는 말인가? 정말로?"

  "예. 우선 마지막까지 공화정의 수호자를 자처하길 원한다면 바람대로 재판장에 세워주겠다고 하셨습니다. 다만 어떤 식으로 결론이 날지는···모두 아시리라 믿습니다."

  암살자들이 일제히 빨리 다음 선택지를 말하라는 듯 초조하게 발을 굴렀다.

  누가 미쳤다고 재판 따위를 받겠는가.

  당연히 최종권고가 발동되고 추방조차 선택하지 못한 채 사형당할 게 뻔한데.

  공화정을 위해서였다고 소리를 높여봐야 그걸 들어줄 시민들은 지금 아무도 없었다.

  지금 암살자들의 머릿속을 지배하고 있는 생각은 오직 살고싶다는 일념 하나 뿐이었다.

  그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는 마르쿠스는 자연스럽게 그들이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탈출구를 열어주었다.

  "두번째는 영구적인 국외추방입니다. 당연히 전 재산은 로마의 국고로 귀속될 겁니다. 저는 그리스 쪽이 어떠냐고 했지만 카이사르 님은 그래서는 추방이 아니라 요양이라고 판단한 듯합니다. 추방지는 나바테아 왕국 남쪽의 아라비아 반도로 결정됐습니다."

  "아라비아 반도? 거기가 어디지?"

  "제가 이전에 복속시킨 지역입니다. 아프리카에서 홍해를 타고 동쪽으로 건너가면 나오는 지역입니다."

  암살자들이 복잡한 감정이 담긴 시선을 주고받았다.

  그래도 그들의 눈동자 깊숙한 곳에는 공통적으로 안도의 빛이 서려 있었다.

  꼼짝없이 죽게 생겼다고 여겼는데 한줄기 서광이 비친 느낌이랄까.

  원로원 의원의 신분으로서는 듣도 보도 못한 지역으로 쫓겨난다는 게 굴욕이었지만 그래도 목숨은 건질 수 있다.

  여기에 모인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것만으로도 만족할 수 있었다.

  오히려 지금 아쉬워하는 건 조금이라도 재산을 챙겨갈 수는 없을까 하는 이유 때문이었다.

  트레보니우스는 언제 죽을상을 짓고 있었냐는 듯 입이 거의 귀밑까지 걸렸다.

  "역시 마르쿠스로군! 자네가 카이사르를 설득할 수 있을 거라고 믿고 있었네! 그런데 대체 어떻게 설득한 건가?"

  "저명한 귀족들을 처형하는 건 인도적 관점에서도 좋지 않고 장래에 정치적으로도 부담을 질 수 있다고 설득했습니다. 다행히 계산이 빠른 분이라 무난하게 납득해주시더군요."

  "그렇지. 우리 같은 파트라키들을 처형하는 건 그에게도 꽤 부담이었을 거야. 한 명도 아니고 스무 명이 넘으니까."

  "그런데 꼭 아라비아로 가야하는 건가? 차라리 이집트로 가는 게 나을 것 같은데······."

  카시우스가 물었다.

  그들에게 있어서 아라비아란 벌거벗은 야만인들이 활보하는 지역이라는 인식밖에는 없었다.

  "아라비아 남부는 어엿한 왕국들이 들어서 있네. 로마보다도 더 더운 지역이긴 하지만 지내는데 부족함은 없을 거야"

  "아, 그런가? 그럼 다행이군. 문명화된 곳이라면 그래도 참을만하겠지. 우리가 거기서 몇 년 버티면 자네가 다시 로마로 우리를 불러줄 수 있나?"

  "로마는 어려울 수도 있겠지만···시리아쪽으로는 추방지를 바꿀 수 있을지도 모르지."

  그 말만으로도 암살자들은 크게 만족해했다.

  안티오키아가 현재 엄청난 발전을 거듭해 로마 못지않은 대도시가 됐다는 소문은 그들도 익히 들었던 까닭이다.

  안티오키아에서 지낼 수만 있다면 추방생활도 충분히 참아낼 수 있다.

  "그럼 당장 가서 카이사르에게 말해주게. 우리는 기꺼이 추방을 받아들이고 아라비아로 가겠다고. 그리고 반드시 결정을 번복하지 않겠다는 확약도 받아주면 고맙겠네."

  "그러려면 여기 있는 모든 사람들도 재판장에서 서지 않고 국외추방을 받아들이겠다는 의사를 문서로 남겨야 하네."

  "당연히 하지. 지금 이 자리에서 하겠네."

  암살자들은 앞다투어 마르쿠스가 내민 종이에 서명을 하고 인장을 찍었다.

  이걸로 목숨을 건졌다.

  완전히 안도한 암살자들은 자리에 주저앉아 안도의 한숨을 내쉬거나 소리 내어 웃는 등 각자 기쁨을 만끽했다.

  트레보니우스는 몇 번이나 마르쿠스의 손을 잡고 고맙다는 인사를 건넸다.

  데키무스와 카시우스도 별 다를 건 없었다.

  카이사르를 죽이고 공화정의 질서를 수복한다는 대의 따위는 이미 한참 전에 머리에서 사라졌다.

  목숨이라도 건져야 공화정의 미래를 도모하든 말든 할 게 아닌가.

  그들에게 있어서는 여기서 무사히 빠져나가는 게 가장 중요했고 공화정의 재건은 그 다음 문제였다.

  "딱히 고마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로마에서 아라비아까지는 상당히 거리가 머니 준비를 잘하셔야 할 겁니다. 그럼 무운을 빌겠습니다."

  마르쿠스는 대수롭지 않게 몇 마디 조언을 남기고 자리를 떴다.

  그렇다.

  로마에서 아라비아까지는 엄청나게 거리가 멀다.

  단순히 물리적인 거리만이 문제가 아니라 한참이나 배를 타고 가야 한다.

  그러니 어떤 일이 벌어질지 누가 알겠는가.

  < 246. 로마의 미래 > 끝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