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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3. 변혁 (254/326)

  < 253. 변혁 >

  253.

  마르쿠스는 자신을 향한 시민들의 확고한 지지를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이건 단순히 유망한 정치인을 향한 신뢰 수준이 아니었다.

  마르쿠스를 바라보는 로마 시민들의 시선은 이제 숭배에 가까웠다.

  다분히 이렇게 되도록 유도한 것이긴 해도 더할 나위 없이 계획대로 흘러갔다.

  물론 지금까지 마르쿠스가 한 일들이 그만한 가치를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정치 싸움이 한창이던 때에 일부러 거리를 두고 있던 것도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원로원 의원들이 파벌 싸움에 한창일 때 마르쿠스는 묵묵히 로마와 시민들의 편의를 위해 힘쓴다.

  은연중 이런 인식을 심어주기 위해 바람잡이들까지 동원해 여론을 조성한 까닭이다.

  카이사르는 마르쿠스와 대부분의 사안을 합의해 처리했으나, 딱 한 번 두 사람의 의견이 일치하지 않았던 적이 있다.

  카이사르는 본격적으로 개혁을 추진하기 위해 슬슬 독재관이라는 기존의 칭호를 활용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마르쿠스는 이 호칭을 사용하는데 극구 반대하고 나섰다.

  "독재관이라는 명칭 자체가 문제입니다. 독재, 지배, 억압을 연상케 하는 그 어떠한 단어도 우리가 맡을 관직에 들어가서는 안 됩니다."

  "하지만 독재관은 엄연히 로마에 옛날부터 존재하는 관직일세. 지금이 혼란스러운 비상시국이라는 건 자명하니 원로원도 반대를 하지는 않을 텐데?"

  "원로원이 반대를 하지 않는 걸 넘어 스스로 들어다가 바치게 해야 합니다. 물론 그래도 독재관이라는 칭호는 안 됩니다. 차라리 지금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이름을 만들어야겠지요."

  마르쿠스가 줄곧 삼두를 고집했던 이유도 같은 맥락에서였다.

  일단 권력이 세 개로 쪼개진 뉘앙스를 풍기는 것만으로도 독재를 한다는 인식은 현격하게 옅어지는 법이다.

  집정관조차 두 명이니 세 개로 나뉜 권력은 그렇게 막강해 보이지 않는 것이다.

  그의 말뜻을 이해한 카이사르는 독재관에 취임하겠다는 계획은 백지로 돌렸다.

  자연히 원로원에서 주려는 온갖 훈장도 자연스럽게 거부했다.

  "여러분들의 혼란을 위해 이 자리에서 확실히 못을 박겠습니다. 나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독재관에 취임할 의사가 없다는 걸 밝혀두겠습니다. 로마는 언제나 권력의 균형과 견제를 중시합니다. 저는 앞으로도 마르쿠스 메소포타미쿠스와 협력하며 모두 상생할 수 있는 방법으로 로마를 이끌어나가겠다는 걸 유피테르 신 앞에서 맹세하겠습니다."

  카이사르가 모든 원로원 의원들의 앞에서 신의 이름까지 빌려 한 맹세는 금방 포로 로마노에 전문이 실렸다.

  독재관은 물론 영도자라는 호칭마저 한사코 거부하고 있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민중파는 그러지 말고 한 달만이라도 독재관에 올라 비상시국을 빠르게 끝내자고 건의했으나, 카이사르의 대답은 한결 같았다.

  "굳이 독재관이 되지 않아도 절차에 맞게 문제를 해결하면 됩니다."

  지금까지와는 또다른 카이사르의 변화를 원로원은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카토조차 카이사르가 한 번 암살의 위험을 겪고 나니 조금은 성숙해진 것 같다는 평을 남겼을 정도다.

  하지만 마르쿠스와 카이사르가 처음부터 한 편이었던 이상 적법한 절차라는 건 아무 의미가 없었다.

  새롭게 원로원 의원으로 들어오는 속주의 유력자들도 예외 없이 두 사람의 수족이었다.

  게다가 강경 귀족파는 이미 쓸려나갔고 남은 이들은 눈치를 볼 수밖에 없으니 자연히 반대를 입에 담는 이도 사라져갔다.

  남은 유일한 비판세력은 카토 정도였다.

  문제는 그 카토의 영향력은 날이 갈수록 줄어드는 게 눈으로 보여 실질적인 견제를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는 알렉산드리아로 망명한 키케로의 편지가 꽤나 큰 역할을 했다.

  키케로는 자신과 연이 닿아있는 귀족들에게 쉴 새 없이 편지를 보내며 카토의 평판을 깎아내렸다.

  암살자들의 암살을 밀고한 이도 브루투스가 아닌 카토라는 사실은 은연중 계속 드러냈다.

  카토가 친화력이 좋은 이였다면 금방 꼬리가 밟혔을 테지만, 안타깝게도 카토는 그런데 연연하는 이가 아니었다.

  그는 원래부터 너무 맑은 물이라 물고기가 모이지 않는 유형의 사람이었다.

  옆에서 키케로가 조율해 주지 않으면 외부에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하기가 어려웠다.

  그런데 정작 그 키케로가 치밀한 물밑 공세를 펼치니 자연스레 고립될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와 뜻을 함께하는 몇몇 의원들이 있었으나 안 그래도 정족수가 늘어난 원로원에서 이들은 완벽한 비주류에 불과했다.

  카이사르가 독재를 꿈꾸고 있다는 주장은 씨알도 먹히지 않았고, 오히려 카이사르를 돋보여주는 역할로 전락한지 오래였다.

  한편 마르쿠스는 로마를 완전히 자신의 색깔로 물들이는 작업에 본격적으로 착수했다.

  우선 시민들이 눈으로 볼 수 있게 겉모습부터 대대적인 개선에 들어갔다.

  벽돌 하나하나와 낡은 대리석들까지 전부 갈아엎는 대공사가 시작 되었다.

  노후한 신전은 다시 빛나는 색을 되찾았고, 광장과 정원은 한층 더 아름다운 모습으로 탈바꿈했다.

  공중목욕탕의 시설도 더욱 세련된 것들로 바뀌었다.

  사람들의 감탄을 절로 자아내는 이집트산 가구가 대량으로 들어왔고 그리스의 조각품들이 적절하게 비치되었다.

  시민들에게 개방된 공공도서관에도 오롯이 재미만을 추구한 책들이 새롭게 들어왔으며, 경기장에서 열리는 대회수도 1.5배로 늘어났다.

  여기에 소요된 막대한 예산은 전액 마르쿠스의 사비로 이루어졌다.

  이미 동방의 금권을 완전히 장악한 마르쿠스의 부는 이미 사람들이 가늠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선 지 오래였다.

  이렇게 마르쿠스와 카이사르는 원로원의 안과 밖에서 로마를 잠식해 나갔다.

  이 교묘한 행보는 동맹인 카이사르조차 혀를 내두를 정도로 군더더기가 없었다.

  "이렇게 모든 걸 움켜쥔 다음에는 어떻게 할 셈인가? 원로원을 해체할 마음은 없는 것 같은데."

  "사실상 로마를 이끌어나가는데 거창한 권한 따위는 필요 없습니다. 일단 체계만 잡아놓으면 그걸로 절반 이상은 완성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우리는 국고와 군대, 그리고 거부권만 손에 쥐고 있으면 됩니다. 사실상 이 세 가지만 있으면 로마의 모든 걸 좌지우지 할 수 있어요."

  국고는 이미 틀어쥔 지 오래였고, 군권도 현재 마르쿠스와 카이사르가 로마의 전 군단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었다.

  마르쿠스는 여기에 한 가지 계획이 더 있었다.

  로마의 군대 체계를 더 효율적으로 바꾸면서 군의 통수권까지 자신이 완벽히 틀어쥐는 일석이조의 계획이다.

  로마와 시리아 속주에 이미 적당한 부지를 골라 건설에 착공했고 적어도 내년쯤에는 그 실체를 공개할 예정이었다.

  "군더더기는 쳐내고 핵심만 취하겠다는 거로군."

  "그리고 천천히 원로원을 길들일 생각입니다. 저희 둘이 없다면 스스로 무엇도 할 수 없는 의존적인 집단으로요. 그렇게 되면 설령 우리가 물러나려고 해도 그들이 우리를 놓아주지 않을 겁니다."

  마르쿠스의 예상은 완벽히 들어맞았다.

  여러 가지 개혁이 처리된 지 반 년도 지나지 않아 사람들은 지금이 로마 역사상 유례없는 황금기라는 사실을 확실히 자각했다.

  원로원조차 아무런 불만이 없었다.

  카이사르는 예상외로 원로원의 권한을 더 이상 빼앗지 않았고, 마르쿠스는 여전히 적극적으로 원로원의 권리를 대변해주었다.

  적어도 겉으로 보기엔 원로원이 자신들의 권한을 잃지 않은 것으로만 보였다.

  불법, 탈법 행위는 엄격하게 처벌됐지만 굳이 그런 걸 저지르며 부를 축적할 필요가 없었다.

  로마가 이전과 비교할 수조차 없을 만큼 풍족해졌기 때문에 가만히만 있어도 이전보다 더 부유한 삶을 누릴 수 있었던 까닭이다.

  이런 분위기를 알고 있는 카이사르는 10월의 열 두번째 날 원로원을 소집해 폭탄선언을 했다

  "로마는 나날이 발전해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외적들의 위협은 사라졌고 내부도 안정되었습니다. 불쌍한 암살자들처럼 그릇된 정의를 품고 사고를 치는 이들도 이제는 없습니다.

  두려움과 혼란은 모두 사라졌고 로마는 앞으로 영광의 길만을 걷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제 제 권한을 내려놓을 때가 됐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갈리아 총독을 제외한 모든 권한을 내려놓고 갈리아를 완전히 로마화시키는데 제 남은 힘을 써보겠습니다.

  그런 뒤 목표를 이루면 로마로 돌아와 조용히 한 명의 시민으로서 살아가고자 합니다. 이는 마르쿠스와도 합의가 된 사항이고 마르쿠스 역시 저와 같은 결정을 하겠다고 약속해주었습니다.

  "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의사당에 엄청난 소란이 일었다.

  "무슨 소리입니까! 안 됩니다, 카이사르! 절대 안 돼요!"

  벌떼처럼 웅웅대는 소리가 사방팔방에서 솟아났다.

  "위대한 카이사르! 당신이 중심을 잡아주지 않으면 대체 어떻게 한다는 말입니까."

  "마르쿠스도 함께 물러나는 건 절대 안 됩니다. 최소한 둘 중 한 명은 원로원을 지켜줘야 합니다!"

  피소를 위시한 민중파 의원들은 거의 앞으로 튀어나올 기세로 고래고래 악을 썼다.

  온건 귀족파로 분류되는 이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들은 아예 뒤쪽에 앉아 있는 마르쿠스에게 달려가 결정을 철회해달라고 싹싹 빌었다.

  "마르쿠스, 자네가 물러나면 원로원은 끝장일세! 자네가 우리를 계속 지켜줘야지!"

  "당신의 손으로 로마를 계속 지켜주십시오. 이렇게 간청 드립니다!"

  카이사르가 곤란하다는 듯 어깨를 으쓱 거리자 피소가 원로원을 쭉 둘러보며 소리쳤다.

  "로마는 카이사르와 마르쿠스가 필요합니다. 이번 기회에 이를 원로원의 이름으로 율령으로 만들어 확실히 반포하고자 합니다. 반대하는 의원 있습니까?"

  "찬성, 찬성이오!"

  "지금 당장 의결합시다!"

  이 익살극은 거의 한 시간이 넘게 지속됐다.

  카이사르와 마르쿠스는 심신이 지쳤으니 이제 물러나고 싶다고 호소했고, 원로원은 절대 받아들일 수 없노라 우겼다.

  민중파는 이미 카이사르가 없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하는지조차 판단이 불가능한 집단이었고, 귀족파 역시 별반 다르지 않았다.

  무엇보다 마르쿠스가 물러나면 동방에서 들어오고 있는 어마어마한 돈의 수급에 문제가 생길지도 모른다.

  그런 미래는 상상조차 하기 싫었다.

  아무리 봐도 그들에게 있어서는 쭉 지금 이 상태를 유지하며 기득권으로서의 이점만 누리는 게 최고의 선택지였다.

  카토조차 마르쿠스가 물러나는 건 시기상조라고 한 마디를 남겼다.

  카이사르만 물러난다면 쌍수를 들고 찬성했겠으나, 두 사람이 사라지는 건 로마에게 있어서 재앙이나 다름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사흘 후, 다시 자리에 모인 원로원은 카이사르와 마르쿠스의 퇴진을 허용할 수 없다는 법안을 만들어왔다.

  집정관인 파비우스가 엄숙한 목소리로 선언했다.

  "로마는 앞으로도 영원히 그대들의 헌신이 필요합니다. 따라서 우리 원로원은 그대들이 지금의 권한을 계속 유지하며 원로원과 로마의 시민들을 위해 힘써주기를 바라는 바입니다.

  두 사람이 건재한 이상 공화국은 언제나 번영할 것이며 행복에 가득한 시민들의 목소리가 끊어질 일은 영원히 찾아오지 않으리라 확신합니다.

  이에 원로원은 카이사르와 마르쿠스 두 사람에게 로마의 집정관이자 호민관의 권한을 영속적으로 부여하는 법안을 권고하고자 합니다. 두 사람은 앞으로도 공화국의 영광을 위해 매진해줄 것을 바랍니다.

  "

  이렇게까지 하는데 무슨 반론이 필요하겠는가.

  카이사르는 못이기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과분한 영광 받아들이겠습니다."

  마르쿠스도 쓴웃음을 지으며 원로원이 건네는 명패를 받아들었다.

  "막중한 책임에 어개가 무거워지는 걸 느낍니다. 공화국의 번영을 위해 평생을 매진하겠습니다."

  곧이어 우레와 같은 함성과 박수 소리가 의사당을 가득 채웠다.

  의원들은 물러나려는 카이사르와 마르쿠스를 자신들이 잘 붙잡았다며 만면 가득 안도의 미소를 띠었다.

  끊임없이 쏟아지는 갈채 속에서, 그들은 진심으로 공화정의 영광된 미래가 앞으로도 계속되리라 여겼다.

  하지만 사실 누구도 이런 형태의 체제를 공화정이라 부르지는 않는다.

  이 중대한 모순점을 자각하고 있는 의원들은 아직까지는 존재하지 않았다.

  < 253. 변혁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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