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6. 그건 로마의 것이다 >
266.
연금술사들과 만나고 대략 세 시간 후.
마르쿠스는 타디우스와 함께 저녁 만찬에서 앞으로의 일을 의논하고 있었다.
"직접 얼굴을 마주 보고 이야기를 나누는 건 실로 오랜만이로군. 그동안 잘 지냈나?"
"예. 그동안은 푸블리우스 님에게 보고를 올렸으니까요. 파르티아 점령 이후 처음인 것 같습니다. 위대한 샤한샤이시여."
"그 칭호는 로마에서 들으면 난리가 날 수도 있겠는데······."
"이미 로마에서 사실상의 지배자로 등극하셨다 들었습니다. 전 예전 샤한샤를 처음 뵀을 때부터 그런 날이 올 거라고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로마도 이제 샤한샤의 것이니 굳이 그들의 눈치를 볼 필요는 없지 않겠습니까."
타디우스는 로마인이긴 하지만 줄곧 동방에서 생활해서 그런지 이미 그쪽의 사고방식에 물들어 있었다.
확실히 단기간에 로마, 알렉산드리아, 파르티아 지역의 사람들을 봐서 그런지 그들의 차이점이 눈에 딱 보였다.
로마인들은 마르쿠스에게 극도의 공경심을 보이긴 했으나 그게 다였다.
알렉산드리아의 연금술사들은 조금 달랐다.
그들은 마르쿠스를 살아있는 신이라 여기고 복종하는 모습을 보였다.
다만 이쪽도 아직 조금 미묘한 것이 마르쿠스를 어떤 호칭으로 불러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듯했다.
신이긴 한데 이미 지고의 신인 아문-라와 호루스의 화신은 파라오였기 때문이다.
반면 옛 페르시아 지역은 예전부터 일관된 태도를 유지하고 있었다.
자신들의 기득권을 인정받은 현지 귀족들은 페르시아 일대를 정복한 마르쿠스를 왕 중 왕, 샤한샤라고 부르며 경애했다.
마르쿠스도 현지 통합을 위해서는 본인이 그렇게 떠받들어지는 게 유리하다고 생각해 제지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시리아 속주보다 동쪽에 있는 지역은 전부 마르쿠스를 샤한샤라고 불렀다.
한나라에서 마르쿠스를 황제라고 인식하고 있는 이유도 바로 이런 배경 때문이었다.
"사업은 요새 어떤가? 내가 듣기론 계속 호조를 보이고 있다고는 하던데."
"샤한샤께서 내려주신 배려 덕분에 매해 유례없는 호황을 맛보고 있습니다. 특히 차와 비단의 수입을 줄이고 공예품 쪽으로 시선을 돌린 뒤에 무역 흑자가 더욱 커졌습니다. 그런데 저를 직접 입궁하라 하신 건 혹시······."
"짐작대로다. 너에게 한 번 더 커다란 사업 기회를 주기 위해서지."
잠깐의 침묵이 이어졌다.
자신이 이끄는 상단의 현 상황과 여유자금과 인력을 빠르게 되짚어 본 타디우스가 기합이 팍 들어간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소신의 몸과 바꿔서라도 마르쿠스 님이 주신 임무를 다하겠습니다."
"이번에도 서로에게 커다란 이득이 될 수 있는 기회이니 너무 부담을 가질 필요는 없다. 너도 짭짤하게 돈을 벌면서 마음껏 즐기도록 해라."
"예! 어느 지역으로 가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곳의 모든 금과 은을 긁어모아 이곳으로 가져오겠습니다."
"훌륭한 마음가짐이다. 그러면 무엇을 해야 할지 설명해주마. 아, 그러기 전에 그 지역의 현 상황을 대략적으로 알려줘야겠군. 지금 인도 유역이 어떤 상황인지는 알고 있느냐?"
질문이 떨어짐과 동시에 타디우스의 눈에 기광이 스쳐 지나갔다.
지금까지 로마 상단은 인도와는 적극적으로 거래를 튼 적이 없었다.
한나라와만 무역을 하고 있었던 게 바로 작년까지의 일이었고, 올해부터 그 제한이 풀렸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판로를 다양화해야 하는 시점에서 마르쿠스가 직접 인도 이야기를 꺼냈으니 기대감으로 마음이 들뜨는 게 당연했다.
"인도에 관해서라면 한나라의 상인들에게도 여러 번 말을 들었습니다. 그들은 인도 지역을 신독, 혹은 천축이라고 하는데 이 지역도 그 역사가 아주 오래된 곳입니다. 알렉산드로스 대제 시기에는 이곳도 매우 강성한 통일 제국이 들어섰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다행히도 지금은 상황이 많이 혼잡하다고 합니다."
"제법 조사를 착실히 해놓았군. 말 그대로 현재 인도의 북부와 남부는 상황이 많이 다르다고 한다. 특히 북 인도의 경우는 특히 최근에 상당히 많은 사고가 일어났다는데 조사를 해봤다면 자네가 나보다 자세히 알 수도 있겠군."
"인도의 북부 지역은 현재 마땅한 주인이 없는 상태입니다. 원래 그 일대를 차지하고 있던 스키타이의 분파인 샤카족과 여러 군소 왕국들이 비단길을 통해 내려왔던 흉노에게 완전히 박살 나버렸으니까요."
"놈들이 의도치 않게 우리를 위해 길을 닦아준 셈인가."
원 역사대로라면 지금의 북인도는 한창 스키타이 일파가 위세를 떨치고 있어야 정상이다.
그 스기타이의 일파인 샤카족이 세운 인도-스키타이 왕국이 위세를 떨치고 있어야 했지만 흉노 침공이 모든 걸 뒤바꿨다.
통일 왕조도 아니고 북 인도의 전력을 완전히 통합하지도 못했던 인도-스키타이는 흉노에게 대항할 만한 힘이 없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쓸려나간 인도-스키타이는 흉노가 로마로 간 덕분에 완전히 멸망하지는 않았지만, 이제 초기만큼의 힘이 없었다.
"지금 샤카족이 세운 국가는 치안을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전력마저 부족하다고 합니다. 수렌 왕국이나 카렌 왕국의 힘만으로도 찍어 누를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그 정도라면 곧 새로운 세력이 득세해 나라가 바뀔 수도 있겠는데."
"그 빈틈을 저희가 찌르고 들어가면 혼란기에 상당한 이권을 확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참고로 남부도 하나로 통일되어 있지 않긴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파악하고 있는 것만 해도 사타바하나, 촐라, 판디아 등 여러 개의 왕국으로 나뉘어 있고 충돌하는 빈도도 꽤나 잦다고 합니다."
"파고들기에 최적의 상황이로군. 역시 구미가 당긴단 말이야."
아라비아해와 페르시아만이 지금 완전히 로마의 영역이었기 때문에 인도 남부로 향하는 루트는 확보되어 있었다.
게다가 북인도 지역은 그냥 무주공산이나 다름없어서 과장 좀 하면 가서 깃발을 꽂기만 해도 대충 점령이 끝나는 상황이다.
행동을 개시할 거라면 이보다 좋은 여건이 갖춰진 상황은 없다고 봐도 좋았다.
"한데 샤한샤께서 직접 군대를 보내실 거라면 저는 필요 없지 않겠습니까. 현지 인도라면 거기까지 왕래했던 상인을 수배해 붙여드리는 것까지는 도와드릴 수 있겠습니다만."
"아니. 당장 전쟁을 일으킬 수는 없다. 아무런 명분도 없고 이미 영토가 지나치게 넓어. 여기서 군대를 인도까지 보낸다고 하면 부정적인 반응이 나올 가능성이 높겠지. 내가 하는 일이니 대놓고 불만을 표출하진 못하겠지만 이쪽이 먼저 움직이는 건 역시 바람직하지 않을 것 같다."
"그렇다면 어찌······?"
"저쪽에서 시비를 걸도록 해줘야지. 무역이란 막대한 부를 창출하기도 하지만 없던 갈등도 만드는 분쟁의 씨앗이기도 하니까."
타디우스는 자신의 임무가 무엇인지 대강 감을 잡았다.
그가 포도주로 입술을 축이며 살짝 목소리를 낮추었다.
"그러니까 인도에 막대한 무역적자를 일으키면 되는 겁니까? 그쪽에서 조바심을 느낄 정도로 금과 은을 가져오면 되는 거로군요."
"그래. 그러니까 너에게도 막대한 돈을 벌 기회라고 한 거다. 상품은 이미 준비되어 있으니 가서 마음껏 실력을 발휘해봐. 얼마나 바가지를 씌우든 상관없으니까. 그리고 수입할 품목은 하나면 충분해."
"비싼 물건을 수입해야 한다면 흑자가 줄어들 수도 있습니다."
"걱정할 필요 없어. 그쪽에선 그냥 헐값이나 마찬가지일 테니까."
마르쿠스가 확보하려는 물질은 염초, 즉 질산칼륨이었다.
초석이라고도 불리는 이 가루는 기초적인 흑색 화약을 만드는 데 절대로 없어서는 안 될 필수 물질이었다.
기초적인 흑색 화약에 불과해도 이게 상용화가 되면 그 위력은 결전병기나 다름없는 힘을 지닐 것이다.
하지만 마르쿠스는 지금 바로 화약을 찍어낼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흑색 화약이 가지고 있는 특징이 아무래도 걸렸기 때문이다.
흑색 화약은 초석에 숯과 황을 일정 비율로 혼합하면 만들어진다.
숯과 황은 고대 시대에서도 아주 손쉽게 구할 수 있는 물질이라 초석만 있으면 지금 바로 화약을 찍어낼 수 있는 것이다.
문제는 이렇게 쉽게 만들 수 있다는 장점이 치명적인 단점으로 돌아올 수도 있단 점이다.
화약을 만드는 건 좋지만 이걸 대대적으로 무기를 쓴다면 기술 유출은 반드시 일어난다.
지금 마르쿠스가 절대적 우위를 지니고 있는 판금갑옷의 경우 갑옷이 유출되어도 그렇게까지 큰 의미가 있진 않았다.
다양한 기술의 복합체인 이 갑옷을 그대로 베낄 수 있는 기술을 지닌 국가는 현재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반면 화약은 좀 이야기가 달랐다.
개념만 알고 있다면 한나라나 인도의 왕조들은 몇 년 안에 이걸 무기로 응용할 가능성이 있다.
마르쿠스의 주도로 화학 기술이 급속도로 발전한다면 굳이 그가 알려주지 않아도 화약의 간단한 원리 정도는 순식간에 발견될 가능성이 높았다.
그러면 결국 화약이 퍼지는 건 상수로 놓고 계산해야 한다.
제작 난이도가 낮다는 건 그만큼 상당한 위험부담을 감소해야 하는 물건이란 뜻이기도 하다.
특히 어디선가 완성된 화포 같은 걸 한 번 보기라도 한다면 개발속도에 한층 더 탄력이 붙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이유 때문이라도 인도의 초석을 손에 넣을 필요가 있었다.
초석은 18세기까지 전쟁의 향방을 결정지을 수 있는 최고로 중요한 자원이었다.
초석이 없으면 화약을 만들 수가 없으니 당연했다.
사실 초석은 반드시 자연에서 캐야만 하는 게 아니라 충분히 생산이 가능했다.
하지만 아무리 생산을 해봐야 그 양에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역사에서 영국이나 프랑스가 인도를 차지하려고 그렇게 혈안이 되었던 것도 이 초석을 얻기 위해서였다.
이유는 간단했다.
신대륙의 초석 광산이 나오기 전까지는 전 세계 초석 생산량의 8할 이상을 차지하는 곳이 인도였기 때문이다.
물론 초석을 대량으로 들여오면 주변에서는 그걸 어디에 쓰려고 그러는지 의심할 수밖에 없다.
마르쿠스는 이를 위해 훌륭한 핑곗거리도 생각해 놓았다.
"이 초석은 성능이 아주 좋은 천연비료거든. 직접 만들 수도 있긴 한데 그건 아무래도 번거로우니 값싸고 자연적으로 생산이 왕창 되는 인도에서 긁어오는 게 나을 거야."
"비료로 쓰는 물품이라면 그쪽에서도 딱히 엄중하게 통제를 하진 않을 테니 손쉽겠군요. 가격도 그리 비싸지 않을 테고요. 알겠습니다. 커피와 포도주, 설탕을 팔고 그 초석이란 물질을 대량으로 들여와 보겠습니다."
훗날 질소고정법이 개발된다면 인도가 아닌 지역에서도 손쉽게 초석을 확보할 수 있겠지만, 이제 막 화학의 걸음마를 뗀 정도라 거기까진 갈 길이 멀다.
게다가 로마가 마음대로 초석을 만들 수 있다고 인도의 중요성이 떨어지게 되는 건 아니었다.
다른 자들의 손에 초석이 들어가는 일이 없도록 최대 생산지를 선점해 두는 건 그 자체만으로도 가치가 있었던 까닭이다.
언젠가 화약을 생산하게 된다고 하더라도 로마와 타국의 화약병기의 질과 양의 차이는 비교할 수조차 없을 것이다.
그러면 된다.
'문제는 나중에 전쟁에서 이긴다고 해도 인도의 그 광대한 땅을 직접 통치하는 건 불가능하다는 건데··· 영국의 방식을 좀 참고해봐야 할까.'
동인도 회사 같은 경우 타디우스를 이용하면 어떻게 비슷한 틀을 잡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동인도 회사가 국가의 내부에 끼친 부정적인 영향도 적지 않았기에 그대로 적용하는 건 역시 좀 꺼려졌다.
타디우스도 인도를 아예 점령하는 건 어렵지 않겠냐는 생각을 하긴 했으나 굳이 그걸 물어보진 않았다.
어차피 그는 상인이었고 그에게 주어진 역할은 다른 국가의 부를 긁어오는 일이었으니까.
나머지 일이야 어련히 마르쿠스가 알아서 하겠노라 생각하고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다할 따름이었다.
"샤한샤이시여, 그럼 상행은 언제부터 개시하면 되겠습니까. 내일이라도 바로 상인들을 소집해도 괜찮을까요?"
"인도 왕조들의 반응을 끌어내야 하니 빠르면 빠를수록 좋겠지. 파르티아 때처럼 훌륭한 수완을 기대해보겠다."
"결코 실망하시는 일은 없을 겁니다."
한나라에 이어 인도에까지 빨대를 꽂으면 어느 정도의 부를 모을 수 있을지 짐작조차 가지 않았다.
타디우스는 새어 나오려는 웃음을 필사적으로 참으며 표정을 보이지 않기 위해 고개를 조아렸다.
마르쿠스는 상인의 그런 탐욕을 오히려 긍정적으로 여겼다.
저렇게 돈을 탐하는 마음이 있어야 그만큼 상대방이 조바심을 느낄 정도로 돈을 털어오지 않겠는가.
곧 울상을 짓게 될 인도 왕조들의 모습을 떠올린 마르쿠스의 입가에도 흐뭇한 미소가 걸렸다.
< 266. 그건 로마의 것이다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