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1. 특이점이 온다 >
281.
예상했던 일이지만 위원회의 인물들은 대부분이 현 상황 자체를 이해하지 못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대부분이 50대 이상인 위원회의 사람들이 급속도로 발전 중인 금융에 대한 지식이 있으면 그게 이상한 일일 테니까.
"샤론의 수선화 가격이 너무 비싸다고요? 그럼 그냥 가격을 내리라고 하면 되는 거 아닙니까."
"아니, 그런데 가격이 그렇게 비싼 게 문제인가요? 비싸면 안 사면 되는 거 아닌지······."
"그냥 집정관 권한으로 그 꽃의 판매를 금지시켜 버리면 어떨까요?"
시장에 대한 이해라고는 쥐뿔도 없는 의견들에 마르쿠스의 얼굴이 점점 암담함으로 물들었다.
그의 표정이 점점 썩어가는 걸 목격한 파비우스가 다급하게 헛기침을 하며 위원회의 의원들 자중시켰다.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니 마르쿠스 님이 우리를 불렀겠지. 조금 더 깊이 있게 생각을 하고 발언하게."
"예? 물론 그렇긴 하겠지만······."
마르쿠스가 샤한샤라고 불리고는 있었지만 커다란 일을 결정할 때 무조건 자신의 마음대로 처리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물론 사실상 마르쿠스가 원하는 대로 모든 게 처리가 됐지만. 일단 표면상으로는 절차를 지키는 게 중요했다.
위원회가 마르쿠스의 말에 따르는 자동 거수기나 다름없다고 해도 일단 그들의 의견을 경청하는 건 필요하다.
그러나 지금 마르쿠스는 진심으로 그 과정을 없애버릴까 하는 충동을 느끼고 있었다.
"그런데 아까부터 궁금해 하고 있던 건데 선물 거래라는 게 대체 뭡니까?"
위원회 의원 중 한 명이 대표로 질문을 꺼내자 여러 사람의 고개가 동시에 수직으로 흔들렸다.
"쉽게 말해서 미래의 시점과 가격을 특정해서 물건을 사고 파는 계약을 말하는 것이다."
"···그냥 지금 사면 되는 거지 왜 미래 시점을 예상해서 계약을 하는 겁니까?"
"시간이 흘렀을 때 그 상품의 가격이 어떻게 변동할지 서로 생각이 다를 테니까."
경제에 대한 개념이 있는 의원들은 이제야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현재 로마는 환어음이나 어음은 물론 파생금융상품까지 나오고 있었다.
여기에 사방에서 막대한 양의 돈이 들어오며 유동성까지 폭증한 금융의 용광로나 마찬가지였다.
푸블리카니라고 불리던 초기 주식회사는 이미 본격적인 주식회사로 탈바꿈을 시작했다.
대표적인 게 타디우스가 사타바하나에서 세우고 있는 북인도주식회사였다.
기존에 존재하고 있던 대주주와 소액주주의 요건도 더욱 구체화 됐고, 새로운 법과 자본에 대한 소유를 증명하는 증서까지 만들어졌다.
마르쿠스는 이런 흐름을 전혀 따라가지 못하는 위원회 의원들의 모습이 처음에는 답답했으나, 지금은 일말의 위기감마저 느꼈다.
사회의 고위직에 있는 사람들이 현실과 괴리되면 괴리될수록 터져 나오는 사회 문제를 억누르긴 힘들어진다.
동방 속주만이 아니라 로마도 현 상태는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나마 지금 임명하려는 행정 관료들은 조금 더 나을지 모르겠지만, 그들도 완전히 믿을 수는 없었다.
'정기적으로 교육을 시켜야 할지도 모르겠군.'
어쩌면 지금이라도 금융 문제가 터져준 게 다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피할 수 없는 문제가 터진다면 일단 그걸 해결하는 게 당연한 급선무다.
그리고 이후에는 재발 방지를 위핸 대책을 세우는 것 역시 필수다.
지금 나이가 찬 의원들의 괴멸적인 현실감각을 고려하면 특단의 조치를 취하는 것마저 염두에 둘 필요가 있었다.
"지금 알아둬야 할 것은 무궁···샤론의 수선화 거품이 단지 꽃 하나를 둘러싼 소동이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로마의 현 시장체계를 근본적으로 되돌아보고 점검할 필요성을 일깨워준 것이지. 현 상황에 대한 지식이 없다면 죽을 힘을 다해 공부하고 학습하도록. 잔인한 말이지만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앞으로 이런 종류의 안건에 대해 논의가 열릴 때마다 배제될 수도 있으니까.
"
"으음······."
"노력하도록 하겠습니다."
위원회 의원들의 얼굴에 자연스레 침울한 빛이 감돌았다.
마르쿠스도 그 나이 먹고 새로운 걸 익힌다는 게 얼마나 힘들지 모르는 건 아니었다.
그러나 달리 방법이 없는 걸 어떻게 하겠는가.
따라오지 못하면 도태될 수밖에 없다.
'나중에 학자들을 시켜서 과목별로 간단한 입문서들을 만들 필요가 있겠군. 그리고 앞으로 고등교육을 할 수 있는 교육기관의 설립도 서둘러야······.'
마르쿠스가 잠시 혼자만의 생각에 빠진 사이 위원회는 다시 토론을 재개했다.
이번에는 한층 더 진지하게 의견이 오고갔고 뒤늦게 다시 현실로 돌아온 마르쿠스는 잠자코 대화를 지켜보았다.
앞으로의 교육을 위해서는 일단 로마에서도 최고 엘리트라고 불리는 이들의 밑바닥을 철저하게 볼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대화를 이끌어가는 사람은 주로 푸블리우스와 위원회의 대표 파비우스였다.
수레나스는 자신의 전공 분야가 아니라서 주로 대화를 듣는 쪽이었으며, 다른 의원들도 크게 다르진 않아 보였다.
"그러니까 현재 그 꽃의 가격이 폭등하는 건 앞으로 가격이 계속 폭등할 거라는 기대가 반영되어 있기 때문 아닙니까. 요는 그 기대만 꺾어주면 되는 거라고 보는데요."
"푸블리우스 님의 의견이 지당합니다. 하지만 중요한 건 어떻게 하면 그럴 수 있느냐겠죠."
"으음···글쎄요. 일단 법으로 꽃의 가격을 제한하려는 움직임만 보이는 건 어떨까요? 실제로는 추이만 지켜 보고요. 그러면 사람들도 꽃의 가격이 낮아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지 않을까요?"
"하지만 그건 당국의 신뢰도를 스스로 떨어트리는 행위입니다."
쭉 이야기를 듣고만 있던 수레나스가 조심스럽게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전장에서도 병사들이 지휘관의 명령에 신뢰를 가지지 못하게 된다면 장기적으로는 통제가 불가능해집니다. 이번 건도 별반 다르지 않다고 봅니다. 규제를 한다고 해놓고 안하면 단기적으로는 잠깐 영향이 있을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신뢰만 깎아먹는 결과가 나오지 않겠습니까."
"그건 또 그렇군요."
"저희 쪽에 부정적인 인상을 주는 방법은 최대한 피할 필요가 있습니다."
한동안 이야기가 오고 갔으나 별다른 대책은 나오지 않았다.
사실 당연히 해답이 나올 리가 없었다.
튤립 파동은 금융이 고도로 발달하고 있던 17세기의 네덜란드에서도 거품이 폭발하고 나서야 부랴부랴 수습에 나섰을 정도로 첨예한 문제였으니까.
그래도 마르쿠스의 옆에서 꾸준히 새로운 문물을 접하고 식견을 넓힌 푸블리우스는 나름대로 현실적인 의견을 말하기도 했다.
"이전에 모든 가격은 결국 수요와 공급에 의해 결정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지금 수요가 너무 높은 상황에 비해 공급이 적으니 가격이 폭등한 게 아닐까요? 그러니 공급을 늘려주면 해결이 될 수도 있습니다."
"여기에서 그 꽃의 씨앗을 대량으로 로마로 운송하자는 건가요?"
"예 그러면···아니, 그래도 안 되겠군요. 지금 가치가 폭등하고 있는 건 어디까지나 개량된 희귀품종이라고 하니까···일반 꽃의 공급만 늘려서는 해결이 안 되겠네요."
결국 시간이 흘러도 어떤 구체적인 방법도 도출되지 않자 마침내 마르쿠스가 입을 열었다.
"착안점은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전에 한 가지를 확실히 짚고 넘어가야지. 꽃의 가격을 폭등시킨 본질적인 원인이 무엇이냐는 거다."
"예? 그거야 꽃을 원하는 사람들이 많으니까······."
"어째서 그 꽃을 원하는 거지?"
"그거야 마르쿠스 님이 직접 로마로 가져온 품종이고 축복까지 더해져 있다고 생각해서 그런 거겠죠."
"그래. 그러니까 로마 사람들은 지금 최고가에 팔리는 샤론의 수선화에 나를 대입하고 있는 것이다. 그 꽃을 집에 키우고 있으면 자신에게도 축복이 내릴 것이다. 이런 종류의 미신이 꽤나 퍼져 있겠지."
꽃의 가격을 폭락시킬 방법은 몇 가지 있었으나 여기엔 몇 가지 조심해야 하는 사항이 있었다.
우선 수많은 서민층이 지금 상황을 일확천금의 기회로 여기고 있단 점이다.
시장이 과열되어 있는 상황에서 누군가가 개입해서 꽃의 가격을 폭락시켜 버리면 파산하는 사람도 많이 나올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번 기회로 한 방에 인생 역전을 해보려던 수많은 서민들의 원망도 쏟아질 것이다.
이미 현대에 있을 때 비슷한 사건을 경험해 본 적이 있는 마르쿠스는 사람들의 반응을 예상할 수 있었다.
마르쿠스는 이재훈이었을 시절 뒤늦게 코인을 샀다가 돈을 잃은 케이스라 그게 어떤 심정일지도 아주 잘 알았다.
문제는 무궁화가 마르쿠스와 밀접하게 엮여 있는 상징물이라는 점이다.
의도해서 그렇게 만든 게 아니었으나 어찌됐든 대중들은 그렇게 인식하고 있다.
여기서 저 꽃 때문에 신세를 망치는 이들이 나온다면 마르쿠스의 이미지에도 타격이 갈 수밖에 없었다.
전혀 합리적이지 않은 흐름이지만 원래 임계점을 넘어가면 사람의 사고는 합리적이지 않게 변한다.
보통 패가망신한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자신이 아닌 다른 곳에서 원인을 찾기 마련이다.
대놓고 마르쿠스에 대한 원망을 하는 사람들은 없을 테지만, 자신의 이미지에 조금이라도 해가 될 만한 일은 피하는 게 좋다.
안타깝지만 지금 상황은 아무도 피해를 입지 않고 상황을 종결키실 수 없었다.
어떤 수를 쓰더라도 무궁화의 가격은 폭락하고 파산하는 사람은 나온다.
그러니 성난 군중의 원성을 그대로 뒤집어써 줄 대상이 필요했다.
"화장실에서 볼일을 봤으면 뒤처리도 자신이 하는 게 맞겠지. 조금 불쌍하긴 해도 자업자득이니까."
마르쿠스는 카이사르에게 전달할 서신을 되도록 상세하게 써서 위원회의 사람들에게 보여주었다.
어차피 반대할 사람은 없었기에 만장일치로 마르쿠스의 안이 채택 되었고 곧장 역참을 통해 로마로 보내졌다.
이번 사건은 분명히 역사에 남을 만한 거품으로 기억되겠지만 마르쿠스에게는 좀 더 다양한 생각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탈리아 반도 전역에 들어서고 있는 은행과 증권거래소가 무르익기 시작했다는 점을 시사하는 것이기도 했다.
현재 로마가 차지하고 있는 어마어마한 영토나 경제 규모를 생각하면 이건 버블 경제 현상의 시작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튤립파동만이 아니라 미시시피 거품이나 남해 거품 같은 사건들이 줄지어 일어날 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역시 대대적으로 손을 봐야겠어. 마침 이번에 딱 좋은 명분도 생겼으니까.'
여전히 반쯤 혼이 빠져나가 있는 원로들을 바라보던 마르쿠스는 나지막하게 한숨을 내쉬며 자료들을 도로 정리했다.
※※※
동방에서 해결책을 마련해 보내는 동안 수도 로마의 분위기는 날이 갈수록 과열되고 있었다.
사람들은 뭐에 홀린 듯이 꽃을 재배했고 개중에는 막대한 빚까지 져가며 무궁화 재배에 열을 올리는 자들도 많았다.
평상시에는 어떤 일도 단칼에 처리해버리는 카이사르도 처음 겪어보는 사태에는 섣불리 손을 댈 수 없었다.
나름대로 여러 가지 대안을 세워보았으나 뒤에 이어질 파장을 고려하면 썩 마음에 드는 건 없었다.
그래도 역사에 남은 천재는 천재인 법.
마르쿠스의 서신이 도착하기 전에 그는 나름대로 쓸만한 해답을 찾아낼 수 있었다.
다만 이 방법을 쓰기 위해서는 마르쿠스에게도 협조를 구할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며칠 뒤 급편으로 도착한 마르쿠스의 서신을 본 카이사르는 오랜만에 새어나오는 웃음을 참지 않고 그대로 입 밖으로 터트렸다.
"역시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군. 좀 더 과격한 방식이기는 해도 마음에 드는군."
로마 최고 권력자의 의견이 일치한 이상 망설일 필요 따위는 없다.
홀가분하게 자리에서 일어난 카이사르는 그대로 릭토르를 소집해 원로원으로 향했다.
< 281. 특이점이 온다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