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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전] 카토라는 남자 (304/326)

  < [외전] 카토라는 남자 >

  "하, 버르장머리 없는 놈들······."

  자신도 모르게 욕설이 나온다.

  원로원 의원으로서 활동한 지 어언 25년.

  처음에는 젊음과 패기가 넘친다는 말을 듣던 나 카토는 어느새 원로원의 최고 중진이 되어 있었다.

  원로원의 평균 연령이 이 정도로 낮아진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카이사르, 그 인간의 은퇴가 결정적이었지."

  무려 카이사르라는 거물조차 권력에서 손을 뗐는데 너는 왜 아직도 버티고 있어?

  이런 시선이 나이든 의원들에게 쏟아졌으니 심약한 이들로서는 버틸 수 있었을 리가 없다.

  어차피 자신이야 카이사르보다 다섯 살이나 어렸으니 해당 사항 없다며 자리를 지킬 수 있었지만, 다른 사람들은 모조리 원로원을 떠나 버렸다.

  그때까지는 조금 쓸쓸한 마음이 들긴 했어도 참을만 했다.

  옛 공화정의 추억을 공유할 수 있는 이들은 하나둘 떠나갔어도 전부 다 사라진 건 아니었기 때문이다.

  브루투스도 남아 있었고, 마르쿠스도 아직 건재했다.

  아직 로마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게 많이 남아 있다.

  그런 확신이 분명 가슴속에 남아 있었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마음이 점점 깎여나가는 게 느껴졌다.

  나이 어린 의원들과 말을 섞다 보면 싫어도 알 수밖에 없다.

  최근 들어서는 더더욱 심해졌다.

  당장 오늘만 해도 원로원을 뛰쳐 나와서 카이사르나 키케로처럼 유유자적하게 살고 싶단 마음이 몇 번이나 치솟았는지 모르겠다.

  "효율과 멋에만 급급해 전통을 도외시하는 멍청이들 같으니. 그런 식으로 자신의 뿌리를 경시하면 잘도 시민들에게 모범이 되겠네."

  방금 전 있었던 일을 떠올리자 또다시 화가 솟구쳤다.

  본래 로마는 음식을 먹을 때 도구를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요리를 편하게 손으로 집어 먹고 닦는다.

  물론 위생적인 문제 때문에 반드시 손을 씻어야 한다는 관념이 생기긴 했다.

  그것까지는 자신도 아무런 불만이 없었다.

  실제로 손만 잘 씻어도 발병률이 극도로 낮아진다는 건 이미 통계적으로 입증이 되었으니까.

  하지만 최근 들어 도입되고 있는 여러 식기구들은 정말 마음에 들지 않았다.

  요상한 칼로 고기를 자르고 삼지창 같은 물건으로 고기를 찍어 먹는 건 전통과는 너무나도 멀리 떨어진 행위이지 않은가.

  처음에 이걸 도입한 사람은 마르쿠스였다.

  그는 이걸 표준으로 삼아야 한다고 강제하지는 않았다.

  다만 여러 가지 소스를 쓴 요리를 손으로 집어 먹으면 손이 끈적해지고, 냄새가 배어서 곧바로 서류작업을 하기 곤란해지는 부분이 있다.

  그러니 양해를 좀 구하겠다는 말을 들은 기억이 난다.

  마르쿠스가 얼마나 일을 많이 하고 있는지는 자신도 알고 있다.

  그래서 충분히 그럴만하다고 납득 했었다.

  하지만 마르쿠스의 행동을 젊은 의원들이 똑같이 따라 하기만 하는 건 그저 볼썽사나울 뿐이었다.

  "어째서 이런 도구를 쓰냐고요?"

  오늘 있었던 점심 만찬에서 한 번 주의를 줬더니 돌아오는 답이 아주 가관이었다.

  "요새 누가 음식을 손으로 집어 먹었습니까. 다 이렇게 하죠."

  "식사 예절이란 우리 선조들이 수백 년간 지켜온 전통일세. 그걸 자신들 좋을 대로 바꾸는 건 지양해야 하지 않겠나?"

  최대한 좋게좋게 말했는데도 젊은 의원들은 '이 인간은 무슨 소릴 하는 거지' 라는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한숨을 푹푹 내쉬며 손에 든 칼로 고기를 썰었다.

  "카토 님, 저희가 딱히 전통을 중시하지 않아서 이런 도구를 쓰는 게 아닙니다. 손으로 집어 먹는 것보다 이게 훨씬 더 위생적이니 그러는 것이죠. 게다가 저희들은 식사 이후 바로 회의에 들어가야 합니다. 음식 냄새가 풀풀 풍기는 손으로 회의 자료를 집어 들 수는 없는 노릇 아닙니까."

  "그러면 그전에 손을 더 확실하게 닦으면 되는 일 아닌가. 향료라도 뿌리던지."

  "굳이 그렇게까지 수고를 들일 시간이 아깝습니다. 그리고 현재 대부분의 로마 가정은 이런 식의 식사를 하는 게 기본입니다. 오히려 지금은 손으로 음식을 집는 사람이 극소수에 불과하겠죠."

  "그건 그들이 그저 마르쿠스를 따라 하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닌가. 위대한 아우구스투스가 하는 건 뭐든지 대단해 보이니까 아무런 생각 없이 똑같이 흉내를 내는 거겠지."

  "죄송하지만 설령 그 말대로라고 해도 그게 꼭 나쁘다고는 볼 수 없습니다. 그만큼 시민들이 아우구스투스를 존경하고 따르고 싶어한다는 뜻이니까요."

  젊은 의원은 한 마디도 지지 않고 따박따박 말대꾸를 하더니 옆에 앉아있는 조금 더 어려보이는 청년을 가리켰다.

  "실례지만 카토 님께서는 이 친구의 이름을 아십니까?"

  "···최근에 들어온 친구 아닌가. 아직 잘 모르는데."

  "이 친구는 갈리아 유력자의 후계자로 로마에 대해 더욱 알고 싶다는 마음으로 몇 년 전 시민권을 취득했습니다.

  그리고 로마에 수많은 공훈을 세워 마침내 원로원 의석을 얻는 데 성공했죠. 그럼에도 매일 새벽같이 젊은 의원들이 주최하는 소회의에 참여합니다.

  이 친구만이 아닙니다. 저희 모두가 그곳에서 언제나 사회, 경제적인 문제를 논의하고 필요한 입법 논의를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도, 우리도 순식간에 뒤처져서 아무것도 모르게 되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저희는 그 회의에서 단 한 번도 카토 님을 뵌 적이 없습니다. 카토 님께서 최근 한 번이라도 소회의에 나오셨다면 이 친구의 이름을 모를 리가 없습니다.

  "

  그 젊은 의원은 자신의 왼쪽 가슴을 세차게 내리치며 물었다.

  "실례를 무릅쓰고 묻겠습니다. 저희는 매일 같이 생명을 태운다는 각오로 로마의 현재와 미래를 위해 국정에 임하고 있습니다. 존경하는 카토 님께서는 전통을 지켜야 한다는 주장 외에 어떤 식으로 로마를 위해 공헌하고 계십니까."

  "공헌······?"

  헛웃음이 절로 나왔다.

  이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애송이들이 무슨 소리를 지껄이고 있단 말인가.

  공화정을 지키기 위해 지금까지 얼마나 갖은 노력을 해왔는데.

  자신들이 독재자의 밑에서 딸랑이 노릇을 하지 않게 된 건 전부 나 같은 열렬한 공화주의자들이 있었기 때문이라 자신할 수 있다.

  그런 은혜도 모르고 입을 나불거리는 게 그저 어이가 없을 따름이었다.

  그래.

  입술이 얼어붙은 듯 움직이지 않는 건 전부 어처구니가 없기 때문이다.

  어느새 금속이 그릇에 부딪히는 소리나 음식을 씹는 소리도 멎었다.

  젊은 의원들은 그저 묘한 눈빛으로 자신의 앞에 놓인 그릇을 쳐다보고 있었다.

  "오늘은 특히 포도주 맛이 좋은 것 같군."

  옥타비아누스의 태연자약한 목소리만이 회장에 울려 퍼질 뿐이었다.

  ※※※

  "그런 일이 있으셨습니까?"

  설명을 쭉 들은 마르쿠스는 난감하다는 듯 쓴웃음을 지었다.

  "저는 한 마디도 대꾸하지 못했습니다. 너무 화가 났기 때문일까요?"

  예전에는 편하게 말을 했던 사이지만 마르쿠스는 지금 로마의 아우구스투스이자 임페라토르다.

  서로가 이전처럼 편하게 말을 놓을 수는 없는 위치였다.

  로마 공화정의 이념에 명백히 위배되는 위치를 차지한 그의 존재에 찝찝함을 느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독재자의 싹이라고 확신했던 카이사르마저 스스로의 권력을 포기하고 물러났다.

  같은 이념을 지니고 있다고 확신하고 있는 브루투스 역시 전적으로 마르쿠스를 따르고 믿고 있었다.

  그러니 자신이 더 왈가왈부할 거리는 없다는 판단이 자연스레 들었다.

  머리가 굳어버린 나로서는 상상도 하지 못할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겠지.

  실제로 마르쿠스는 임페라토르 아우구스투스라는 거창한 명칭으로 불리고 있는 지금도 언제나 소탈하게 자신을 대했다.

  "라이나스 그 친구가 능력은 좋은데 조금 다혈질이긴 합니다. 어떤 마음으로 그런 말을 했는지는 알지만 원로원의 대선배에게 그런 말을 해서는 안 되죠. 제가 단단히 주의를 시키고 사과하라 지시하겠습니다."

  "그렇게까지 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만약 제가 키케로처럼 은퇴한다면···저도 책이나 쓰면서 여유롭게 즐기는 삶을 살 수 있을까요?"

  찻잔을 기울이던 마르쿠스의 몸이 딱 굳어지는 게 느껴졌다.

  이런 말을 꺼낼 줄은 몰랐다는 기색이 표정에서도 역력하게 느껴졌다.

  "은퇴까지 염두에 두고 계시는 겁니까?"

  "최근 들어서 이런 마음으로 원로원에 버티고 있어 봐야 아무런 가치가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강해지고 있습니다. 뭐랄까···이제 같은 시대를 추억할 수 있는 사람들도 전부 은퇴해 버렸으니 저만 덩그러니 남겨진 느낌이랄까요."

  "은퇴하는 일에 관해서는 제가 섣불리 의견을 낼 수 없겠죠. 다만 정말로 한다고 하시면 불편한 일은 절대로 겪지 않도록 해드리겠습니다. 모쪼록 후회가 남지 않는 선택을 하시길."

  그러니까 결정을 남에게 떠넘기지 말고 자신이 직접 선택하라는 뜻이다.

  내심 마르쿠스가 답을 주길 원했는데 이런 약한 심리를 제대로 간파당한 셈이다.

  "그래. 그럼 뒷방 늙은이는 이대로 물러날지 아닐지 돌아가서 조금 더 고민해 보겠네."

  "카토 님은 아직 충분히 현역으로 있을 수 있습니다. 너무 괘념치 마십시오."

  다정한 위로의 말에 왠지 가슴이 더 쿡쿡 쑤셨다.

  꼴사납다. 꼴사나워서 미쳐버릴 것만 같다.

  집에 돌아와서 멍하니 앉아있으려니 꼭 영역 싸움에서 밀려난 늙은 사자꼴이 되어버린 것만 같았다.

  내친김에 술이나 마셔 볼까 했으나 그런 기분조차 들지 않았다.

  그저 멍하니 앉아서 낮에 있었던 일을 몇 번이나 떠올려 봤다.

  자기 자신이 너무나 한심해서 잠조차 오지 않는다.

  문득 마르쿠스가 선물해준 커피나 마셔 볼까 싶어 하인에게 타오라 일렀다.

  평소에는 다른 사람들과 달리 전통을 고수한다는 이유로 포도주만 마셨다.

  그래도 어차피 잠이 오지 않으니 한 번 이거나 마셔 보자 싶은 마음이 들었다.

  하인에게 커피잔을 받아 설탕을 듬뿍 넣어 마셔 보니 의외로 달콤하면서도 씁쓸하게 입에 딱 맞는 느낌이다.

  지금까지 즐기지 않았던 게 후회될 정도로 훌륭한 맛이었다.

  문득 일렁이는 촛불을 받아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자신도 믿기지 않을 만큼 눈빛이 죽어있고 생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언제 내가 이런 몰골이 되어 있었던 거지?"

  거울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으려니 지금의 자신에게 딱 맞는 단어가 떠올랐다.

  퇴물.

  젊은 시절 죽어도 되고 싶지 않았던 무기력하게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무능력한 인간의 표본과 놀랍도록 흡사하단 생각이 들었다.

  대체 언제, 어디에서 이렇게 되어버린 것일까?

  젊었을 때는 이렇지 않았다.

  카이사르를 공격하기 위해 끊임없이 자료를 수집하고 논거를 쌓아올렸다.

  토론에서 밀리고 저택으로 돌아오면 분한 마음에 며칠 간 잠을 이루지 못했었다.

  로마의 각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더욱 날카롭게 논리를 가다듬으려 애썼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분한 마음에 숨을 쉴 수도 없었다.

  그런 자신이 언제부터인가 원로원 의사당에서 한 번 발언을 하면 그대로 집에 돌아와 눈을 붙였다.

  사방에서 공격을 들으면 피로가 쏟아져서 휴식을 취하고 싶단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반론이 들어오면 재반박을 하는 대신 똥씹은 얼굴로 입을 꾹 다물고 자리에 앉아버렸다.

  지금은 일단 손에서 일을 놓자.

  원래 한 손이 여러 손을 당해내기는 힘든 법이다.

  시간이 지나면 저치들도 자신의 말이 옳았다는 걸 인정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몇 년이 지나도 똑같은 과정을 반복할 뿐이었지."

  쉬지 않고 끊임없이 솟구치던 정열이 어느 때부터인가 죽어버렸다.

  예전에는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키기 위해서라면 장광설로 회의장을 마비시켜버리기라도 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럴 마음조차 들지 않았다.

  단순히 선진화법이 통과돼서 그런 짓을 하지 못하게 됐기 때문이 아니다.

  이 나이를 먹고도 그런 짓을 하면 체통이 떨어진다.

  중진으로서의 체면이 있다고, 나이를 먹으면 점잖아지는 게 당연하다는 마음으로 게을러진 자신을 정당화 해버렸다,

  "라이나스라고 했나···틀린 말은 하나도 하지 않았어······."

  지금 자신은 다른 젊은 의원들처럼 복잡한 현안에 대해 토론할 수 있는 능력이 없었다.

  매일 같이 공부하고 최신 현안에 대해 토론하는 그들을 어떻게 따라갈 수 있겠는가.

  당장 간단한 경제 상식만 물어봐도 머리가 새하얘져 어버버하게 되는 것을.

  "물러날 때가 된 건가······."

  이대로 자리만 지키고 있어봐야 자기 자신을 욕보일 뿐이다.

  키케로처럼 박수받으며 떠날 기회조차 놓칠지 모른다.

  하지만.

  "정말로 그러면 되는 건가?"

  자신은 이제 쓸모를 다했다고, 그렇게 인정하고 물러나는 것으로 만족할 수 있을까.

  "···웃기는 소리."

  자신도 모르게 어둠을 뚫고 불쑥 한 마디 중얼거리는 소리가 튀어나왔다.

  아직이다.

  아직 자신은 모든 걸 다 불태우지 못했다.

  키케로나 카이사르처럼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 했다고 만족스럽게 물러날 수 있는 입장이 아니었다.

  인정한다.

  현재 자신의 상태는 부정할 수 없는 퇴물이었다.

  하나, 비록 시대에 뒤쳐졌다고는 해도, 완전히 다 타버리고 재만 남아버린 몸뚱아리와 정신이라고 해도.

  가슴 속 깊은 곳에는 아직까지 꺼지지 않은 한 줄기 열정이 남아 있었다.

  오늘 들었던 매도에 가까운 말도 마음속에 있던 정열을 아예 꺼버리진 못했다.

  오히려 지금까지 잊고 있었던 자신을 냉정하게 돌아볼 기회를 가져다주었다.

  자신이 얼마나 타성에 젖어있었는지 몸서리 쳐질 정도로 깨닫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한참이나 의자에 앉아 일렁이는 촛불을 보고 있으려니 커피를 타준 하인이 걱정스레 물어왔다.

  "주인 어르신, 아직도 깨어 있으신 겁니까? 이제 들어가 보시는 게 좋지 않을까요?"

  "아니."

  깜짝 놀랄 정도로 확 달라진 목소리가 어두운 실내를 뚫고 퍼져나갔다.

  입술을 뚫고 흘러나오는 한 마디는 무기력했던 자신에게 고하는 작별과도 같았다.

  "이제야 겨우 눈을 뜬 듯하구나."

  < [외전] 카토라는 남자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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