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0화
그간 이안이 가르쳐준 마나 수련 법 덕에 내게도 최소한의 안목이 생겼다.
그래서 심상치 않다는 걸 알았다.
방금, 아가레스를 때린 백색의 천둥이 어디서 떨어졌나 보니 하늘에 구름이 내려와 있었다.
평소보다 구름이 지면에 가까이 있었다.
손으로 만질 수 있을 것처럼 진한 먹구름.
필시 이안이 만들어낸 작품이었다. 구름은 서서히 퍼져나가며 제 덩치를 키워갔다. 그럼에도 색은 점점 더 짙어졌다.
이번에는 더 큰 게 떨어질 것이다. 그걸 직격으로 맞는다?
아가레스라도 괜찮을까?
그렇다.
아가레스는 불사의 괴물이었다.
마계에 위치한 그의 계약자를 죽이지 않는 이상 아가레스는 무슨 일이 있어도 상처를 회복했고, 육체가 소멸해도 부활했다.
“그래도…. 저건.”
홀린 듯이 구름에 시선이 갔다.
자세히 보니 구름 안에 마나의 핵이 보였다. 구름을 끌어당기는 본체. 푸른빛을 뿜어내는 구체에는 가공할 힘이 깃들었다.
식견이 낮은 나로서도 그를 보고 있으면 구체가 품은 파괴력에 척추에 전류가 흘렀다.
파아아앙!
구체가 폭발했다.
그와 동시에 주변에 먹구름을 집어삼켰다. 구체는 주변에 공간 자체를 집어삼키겠다는 듯 먹구름을 흡입했다.
구체는 빛을 잃었고 시커멓게 변한 채 이안의 손바닥에 떨어졌다.
이안은 아가레스를 바라보며 눈썹을 까딱였다.
그런 다음 구체를 쏘았다. 아카데미 중심을 향해 던진다면 건물 몇 개가 흔적도 없이 사라질 에너지가 쇄도했다.
쩌어억!
구체가 아가리를 벌렸다. 새하얀 섬광을 뿜었다.
“미친놈.”
이안이 불러온 재앙이 아가레스를 향했다.
그 속도는 눈으로 쫓기 힘들었고, 그게 불러올 여파에 몸을 뒤로 뺄 때였다.
아가레스가 구체를 향해 돌진했다.
그는 땅을 박차고 하늘로 솟구치며 날아올랐다.
그는 날개를 펼쳤다. 까마귀처럼 깃털이 긴데 은은하게 번쩍이는 날개였다.
아가레스는 오른손을 뻗었다. 시꺼먼 마기가 펄럭이며 강기처럼 그의 손을 감쌌다.
그는 이안이 쏘아낸 구체와 충돌했고, 폭발에 휘말렸다. 그는 돌멩이에 맞은 참새처럼, 혹은 유성처럼 추락했다.
후아아아앙!
그는 바닥에 쳐박혔다.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는 걸 보니 살아는 있는 듯했다.
* * *
이안 로드브레이커는 시야가 새빨갛게 변한 걸 느꼈으나 그런 건 아무래도 좋다고 간주했다.
붉게 변한 세상을 통해서도 명확히 봤고, 정확히 들었고, 선명하게 느꼈다.
아가레스라고 했던가?
북부의 대공이라던 그놈.
그가 디마겐을 시답잖은 이유로 옹호할 때까지만 해도 어디가 모자른 놈이라 여겼다.
미숙아가 영지를 계승하는 일이 적지 않으니 놈도 그중 하나라 생각했다.
그게 아니었다.
놈이 디마겐을 잡는 일에 협조하지 않은 건 그놈이 똑같은 흑마법사였던 탓이었다.
같은 흑마법사였기 때문에 디마겐을 옹호했다. 더러운 놈.
아가레스는 흑마력을 사용해가며 라파엘과 싸웠다.
목숨을 걸고 서로를 죽이려 달려들었다. 라파엘은 숨을 헐떡이며 아가레스를 향해 온 힘을 다해 대항했다. 그 짧은 순간에 이안은 모든 상황을 이해했다.
사실 아가레스는 흑마법사였고, 동료인 디마겐을 보호하려 했다.
그리고 자신과 마찬가지로 부모를 흑마법사의 손에 잃은 라파엘은 이에 분노했고, 무리를 해서라도 아가레스를 죽이려 했다.
‘저건 안 돼.’
라파엘의 검이 아가레스의 가슴팍을 쑤시려 했으나 이안은 머리를 흔들었다. 아가레스는 제 힘의 절반도 내지 않고 있었다.
흑마법사들의 질척이는 생명력은 익히 들어 온 바였다.
설령 라파엘의 검이 심장을 가르더라도 재생할지 모를 일이었다. 아니, 분위기를 보아하니 그럴 게 확실했다.
라파엘은 자신의 친구였다. 그리고 그가 위기에 처했다. 흑마법사의 손에.
화가 났다.
투두두둑.
목에 힘줄이 곤두섰고 흉통이 부풀어 올랐다.
‘저놈을 죽인다.’
북부의 대공을 죽인 여파가 제게 어찌 미칠지 따위야, 지금 당장 느끼는 분노를 해소하는 것보다 우선 순위가 낮았다.
이안은 마나를 끌어모았다. 평소보다 마력이 몇 배로 끈끈했고, 또한 단단했다
마나의 질적 상승.
이안을 중심으로 마력의 폭풍이 몰아쳤다. 그는 하늘을 향해 손을 뻗었다. 회색 구름이 몰려들었다. 구름은 넓게 퍼진 솜사탕이 하나의 덩어리가 되듯 뭉치며 하나의 구체를 만들었다.
구름은 몹시 까맸다.
쿠르릉!
손끝을 아가레스를 향해 뻗었고, 마법을 시전했다.
먹구름에서 백색의 벼락이 떨어졌다. 새하얀 섬전이 번쩍인 직후, 뇌성이 아카데미를 꽝꽝 울렸다. 벼락은 아가레스를 직격했다.
아가레스는 전기 파리채에 맞은 벌레처럼 쓰러졌다.
그 꼴을 보고 이안은 푸하하 웃다가 꽈드득 주먹을 쥐었다.
놈은 생존했다. 벌레처럼 강인한 생존력을 자랑했다.
‘이번에는 확실하게.’
이안은 스스로가 새로운 경지에 들어섰다는 걸 깨달았다.
이전까지는 이론상으로만 가능하다고 여겼던 수많은 일이 이제는 현실로 다가왔다.
그는 제가 가진 마나를 한계까지 끌어모았다. 그것들을 압축했고, 부풀렸다.
꽁꽁 뭉친 푸른 마나의 구체는 스스로 몸집을 줄이며 질을 높였다가도 그 질을 그대로 한 체 몸을 부풀렸다.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는 마나의 운용이었으나 이안은 이를 담담하게 받아들이며 아가레스를 죽일 준비를 끝마쳤다.
후아아아앙!
마탄을 쏘았다.
아가레스는 흑마력을 사방에 흩뿌리며 탄환에 대항했다. 흑마력으로 강기를 만들어 손을 보호했고, 마탄을 부수려 했다.실패였다.
파아아아아아앙!
아가레스의 날개는 꺾였고, 추락했다.
* * *
아가레스와 이안의 전투에 압도되어 멍하니 서 있었다.
“괜찮아?”
이안이 내 옆에서 불쑥 머리를 내밀었다. 그러더니 내게 괜찮냐고 물었다.
괜찮냐니? 뭘?
일단 아가레스에게 한 대도 안 맞은 내 걱정을 하는 건 아닐 테니, 지금 상황이 괜찮을지 물었다고 보는 게 올바른 판단이었다.
북부의 대공을 죽이고자 시도했다.
몸이 튼튼하기로는 제국의 제일인 그도 고꾸라져 몸을 일으키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애는 이게 괜찮을 수가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애라면 그럴 수도 있겠다 싶어 대답했다.
“안 괜찮을 거 같은데.”
“다친 데가 어디야? 출혈은 없는 거 같은데….”
“나? 나 말이야? 나야 멀쩡하지.”
“그럼 됐어.”
된 게 아니었다.
아가레스를 저 꼴로 만들었으니 후환을 걱정해야만 했다.
이안이 왜 아가레스를 공격했는지 도통 이해가 가지 않았다.
혹시 이건가?
제발 아니었으면 했지만 암만 생각해도 경우의 수는 이거뿐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뭘 한 거야? 아가레스를 왜 죽이려는 건데? 이게 혹시 싶어서 묻는 건데, 나랑 쟤가 싸워서 그래? 쟤가 나 죽이려 해서?”
“그래. 그게 맞아. 더러운 흑마법사 놈이 널 죽이려 했잖아. 설명해주지 않아도 괜찮아. 내게도 눈이 있으니까.”
없는 거 같은데.
푹푹 튀어나오려는 한숨을 목 깊숙이 집어넣었다.
이대로라면 아가레스와 둘이 대판 싸울 터였다.
단순 화력이라면 이안이 우위일 테지만, 아가레스는 아무리 다쳐도 회복한다. 결국에는 이 주변은 쑥대밭이 될 터였다.
그러면 아카데미의 학장은 원인을 물어올 테고, 내 이름 또한 거론되겠지. 그건 사양이었다. 일단 내 주변에 고래들끼리 싸운다는 거부터가 불안 요소. 내 등이 터지게 생겼다.
“야, 좀 튀어봐. 네가 생각하는 그런 거 아니니까, 괜찮으니까 일단 다른 데로 좀 가봐. 몸을 피해.”
“그게 무슨 소리야?”
“너 있으면 무조건 싸움 날 거 뻔하잖아. 나랑 쟤, 싸우던 거 아니야. 그니까 걱정 말고 좀 가봐.”
“내가 이겨. 흑마법사 따위한테, 절대 안 져.”
“부탁이니까 좀! 너 그때 말했던 거 기억나? 내 부탁 하나 들어주기로 한 거 있잖아. 그거 쓸게.”
이안은 눈을 치켜떴다.
뻘건 눈에서 안광을 뿜어대며 나를 노려보며 아랫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죽지 마.”
“다치지도 않을 거야.”
이안은 마법으로 이곳에서 벗어났다.
어디로 갔는지까지는 내 알 바가 아니었다. 아카데미에 남아 있다면 언젠가는 보겠지.
불청객을 쫓아낸 다음에 아가레스를 살폈다.
이제야 막 재생을 끝마쳤는지 온몸에서 마기를 아지랑이처럼 풀어내며 몸을 일으켰다.
“놈은 어디로 갔지?”
“예?”
“하늘에 떠 있던 마법사. 그놈은 어디로 갔나?”
“어. 그게 말입니다…. 눈을 감았다가 뜨니 사라졌습니다. 도망친 듯하네요.”
“흥.”
아가레스는 두 날개를 펄럭이더니 다시금 접었다. 날개는 등 속으로 쏙 들어가 자취를 감추었다. 그는 내게 말했다.
“너는 그놈이 누구인지 아는 눈치이던데, 설명해라. 누구지?”
“마법학부 소속에 이안이라고 하는 녀석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이게 좀 오해가 있었던 거 같은데요.”
뭐라고 설명해도 믿지 않을 거 같아 눈앞이 막막했다.
그러나 그와 이안이 다시금 충돌하는 일은 끔찍했다. 주변에 미칠 여파가 기필코 내게도 닿을 터였다. 그를 막고자 최선을 다해 그를 설득하려 했다.
그런데, 아가레스는 피식 웃더니 말했다.
“알고 있다. 네 친구이지 않은가? 널 지키려 그런 거겠지.”
“예?”
“내가 그도 못 알아볼 머저리인 줄 아느냐?”
나는 두 눈 초롱초롱하게 뜨고 물었다.
“그렇다면, 그를 용서해주실 수도 있으십니까? 그가 아가레스 님을 공격한 건 제 탓이었습니다.”
“하하하.”
아가레스는 어깨를 들썩였다.
그는 옆구리를 움켜쥐더니 손바닥으로 제 무릎을 팍팍 쳐댔다. 그는 평소보다 격양된 목소리로 말했다.
“흥미진진하구나. 수업을 들을 때 네 옆자리에 평민. 그놈이 말했던 걸 기억하나? 나는 물 대신에 사람의 피를 마시고, 짐승의 고기 대신에 사람 고기를 먹는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저는 안 믿습니다.”
“알아. 대가리가 장식인 몇몇 멍청이들을 제외하면 그걸 믿을 놈이 어디 있다고. 중요한 건 그런 소문이 돈다는 거야. 그건 내 성질머리가 지독하다는 뜻이거든.”
“에이. 아닙니다. 아가레스님 성격 좋으십니다.”
“네 눈에는 그래 보이나?”
“예. 그렇습니다.”
“거, 참 고맙군. 그런데, 안타깝게도 자네 눈은 중요한 게 아니야. 내가 신경 써야 할 건 세간의 평이거든. 나는 여태 누구를 용서해본 적이 없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내가 용서해야 할 일을 만들지 않도록 알아서들 조심하지.”
“...”
“그런데, 내가 그 마법사를 용서하면 그 평판에 흠집이 생기는 게 아닌가?”
“아무도 모를 겁니다.”
아가레스는 웃으며 말했다.
“자네가 알지 않은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겠습니다.”
“믿겠네.”
아가레스는 내가 입고 있는 외투를 뺏어가 제 몸에 둘렀다. 이안의 마법에 옷이 너덜너덜해진 탓인 듯했다.
“자네 정도면 믿을 수 있는 인간이지.”
“그렇다면….”
“내가 평범한 인간이었다면 자네가 원하는 대로 그냥 넘어갔을 거네. 농담이 아니라, 빈말이 아니라, 진심으로 나는 자네를 믿거든.”
아가레스는 작은 음성으로 덧붙였다.
“내 생각은 그래.”
그는 깔깔거리며 웃었다.
“하지만 내가 누구인가, 이 제국에서 황손을 제외하면 가장 큰 영지를, 가장 많은 영지민을 거느리고 있는 북부의 공작이 아닌가. 의사결정을 내 감정대로 할 수는 없는 일이지.”
“그 마법사를 어찌하실 생각입니까?”
“죽여야지. 혹 죽이지 않더라도 사람들이 그에 버금가는 벌을 받았다고 여기게 해야지.”
“그 뜻을 굽히실 생각은 없으시고요.”
“물론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