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9화
“자랑한다고 했지, 신문에 기사를 낸다고는 말씀 안 하셨지 않습니까? 이제 아카데미에서 지나가면 다들 힐끗 쳐다보는데 이걸 어떡하실 겁니까?”
“야, 그게 보기 흉해서 보는 거냐? 아니면 뭐 기분 나쁜 시선이냐? 아니잖아. 다들 와아 대단하다, 와아 소드 익스퍼트래, 그런 느낌으로 보는 건데 뭐가 어때서 그래?”
“창피하지 않습니까?”
카타리나가 신문에 내가 검기를 쓴다는 사실을 올리고 생활이 좀 변했다.
우선 새벽에 훈련하는 것부터가 그랬다. 나 말고도 이따금 다른 학부생들이 수련할 때가 있었는데, 그들의 눈빛이 바뀌었다.
전에는 아 열심히 하네, 정도였다면 지금은 저 정도는 해야 저 나이에 익스퍼트에 오르네, 하고 감탄하는 쪽이었다.
긍정적인 의미라는 걸 이해하지만, 불편한 건 어쩔 수가 없었다. 다들 오죽 봐야 말이지. 시선이 너무 진득했다.
카타리나는 손가락으로 내 이마를 툭툭 치더니 말했다.
“그건 네가 배가 불러서 그래. 뭐? 남들 시선이 불편해? 야. 나는 그거 좋기만 하더라. 오늘도 출근하는데, 쩝. 그렇게 내가 대단하다고. 검술만 천재인 게 아니라, 남을 가르치는 거도 천재라고.”
카타리나는 웃음을 참으려다 입꼬리를 씰룩였다.
그러다 결국에는 못 참겠다는 듯 깔깔거리며 배를 잡고 웃었다.
“야, 너 그거 알아? 교육학에서는 교육자가 가진 지식보다, 교육에 얼마나 능숙한지가 중요하대.”
“그렇군요.”
“그 말대로면 진짜로 내가 가르치는 데 소질이 있다는 거지. 흠흠.”
“칭찬 들으셔서 기분 좋으신 거 알겠는데, 제가 창피하다 이겁니다.”
말을 내뱉은 직후, 다시금 내가 이방인이라는 걸 실감했다.
이곳에서 명성이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귀중한 것이었다.
기사들은 일평생 명성을 떨치기를 꿈꾸고, 귀족들도 이와 비슷했다.
죽기 전에 이름을 남긴다를 목표로 하며 위험에 몸을 던지는 이들이 수두룩했다.
아마 카타리나는 내가 기사가 될 것이고, 이미 귀족이니 나도 그와 같으리라 생각한 듯했다.
“그, 미안하게 됐다. 네가 그렇게 생각할 줄은 몰랐네. 네가 내숭을 떠는 줄만 알았지.”
“아닙니다. 예, 생각해보니 꼭 제게 손해인 건 아닐 거 같네요.”
카타리나를 달래주려 말하자, 그녀는 눈치도 없이 이에 반색하며 히죽 웃었다.
“그치?”
“예, 그러니 너무 미안해 안 하셔도 됩니다.”
“그래, 너도 이참에 좀 즐겨봐. 사람들이 너 보는 거 원숭이 보듯 구경하는 게 아니라니까? 다 그게 호감이야. 앙?”
“알겠습니다.”
남들의 눈총을 좀 맞는다고 아픈 것도 아니고 무시하면 그만이었다. 시선뿐이라면 그러했다.
수업을 듣기 위해서는 건물 내에 들어가야 했고, 사람들을 만나야 했다. 이번에 들을 수업은 거대 괴수 수렵의 이해. 강의실의 문을 열고 입장하자 학생들의 시선이 일제히 이쪽을 향했다.
-야, 왔다 왔어.
교양과목이니 여러 학부에서 수강했지만, 그중에 상당수가 전투와 관련된 학부생들이었다.
자기 또래에 학생이 검기를 쓴다니 놀라워할 법했다. 다들 속으로 감탄했는데, 그런 와중에 입 밖으로 말하는 놈이 있었다.
“오셨습니까!”
레오가 자리에서 황급히 일어서며 내 쪽으로 다가왔다. 그는 빠른 어조로 말했다.
“벌써 소드 익스퍼트에 오르시다니 대단하십니다! 제프린을 이겼을 때만 해도 천재이신 줄은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습니다. 벌써 검기를 쓰시다니!”
“어, 그래. 고맙다.”
“사실 저는 알고 있었습니다. 새벽마다 연무장에서 훈련하시는 걸 보고 빨리 두각을 나타내실 거라 예상했습니다. 예상보다도 날짜가 빨랐지만요.”
“그래.”
“쓰시는 연습용 칼에 날이 나가는 걸 보며 감탄했었는데, 저도 더 노력하겠습니다.”
“어.”
“그런데, 아카데미는 계속 다니실 겁니까?”
자퇴할 거냐는 질문에 고개를 저었다.
꼭 검술이 아니라 해도 아카데미 재학 중에 두각을 나타내거나 뚜렷한 실적을 쌓으면 자퇴를 하곤 했다.
소드 익스퍼트쯤 되면 어느 기사단이라도 들어갈 수 있었다.
특히 나처럼 나이가 적으면 제국 최대의 기사단인 백사자 기사단에도 들어갈 법했다. 굳이 아카데미에서 시간을 몇 년씩 쓸 필요가 없었다.
아카데미를 다니는 이유라 해봤자 제 실력을 키우고, 인맥을 쌓고, 졸업장을 따는 것이었다.
애초에 그런 노력을 기울이는 게 다 명문 기사단에 입단하기 위함이었다.
이미 그 조건을 충족했고, 또 들어가는 쪽이 여러모로 효율적이었다. 기사단이 더 실력을 키우기 적합했고, 더 그럴듯한 사람들이 있었다.
그래도 아카데미는 못 떠나지.
내가 아카데미에 입학한 건 검술을 익히고, 사람을 만난다는 건설적인 이유가 아니었다.
비숏 퓨어문. 이 세상의 주인공인 그녀의 행보를 유도하기 위함.
끝까지 아카데미에 남아야만 했다.
그러나 남들에게 말할 수 있는 이유는 아니었다. 레오에게는 둘러대기로 했다.
“카타리나님이 계시니까.”
“아! 그분의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오래전부터 후진 육성에 힘을 쓰셨다니 대단하십니다. 젊은 나이에 성공하시고, 어디에 소속된 것도 아니시면서 벌써 후배들을 키운다니, 신기해요.”
“응. 그래. 신기하구나.”
흥분한 레오에게 적당히 대꾸를 해줬다. 신문을 읽었을 때부터 각오했던 일인지라 심력 소모가 크진 않았다.
그렇게 수업 전까지 시간을 견뎠고, 강의실 내로 교수가 입장했다. 이제 끝났나. 안도의 한숨을 내뱉으며 자리에 앉았다.
교수는 늘 그랬던 것처럼 학생들의 출석을 불렀는데, 잠시간 멈칫거렸다.
“라파엘 아이작?”
나를 호명하더니 숨을 킁킁거리며 들이마셨다. 그는 내 대답을 들은 후 내 얼굴을 멀뚱멀뚱 보더니 말했다.
“자네가 이번에 소드 익스퍼트에 올랐다던 그 라파엘 군이 맞는가?”
“예, 그렇습니다.”
“오오. 잠시 일어서보게.”
여기서 부끄럽다고 망설여봤자 그냥 넘어갈 분위기가 아니었다. 나는 순순히 의자에서 엉덩이를 들었다.
교수는 내가 자리에 앉지 못하게 막으며, 다른 수강생들에게 박수를 강요했다.
나는 다 그만두고, 그냥 쥐구멍에 숨고 싶었다.
그런 내 바람도 모른 채 교수는 나를 세워두고, 몇 번이고 대단하다고 추켜세웠다.
오늘 하루는 퍽 피곤했다.
* * *
“이게 누구신가! 소드 익스퍼트에 오르신 천재 기사분 아닌가요?”
나비에는 그렇게 호들갑을 떨며 나를 놀려댔다.
아주 작정하고 왔는지 손에는 내가 나온 신문 페이지가 들려 있었다. 그녀는 신문을 팔랑팔랑 흔들어대며 짓궂게 웃었다.
“그만해. 그게 재밌냐?”
“그만하라니, 뭘 그만하라는 말씀일까요?”
“신문 그만 흔들어.”
“네, 그러죠.”
그래도 나비에는 금일 만난 사람 중 가장 눈치가 빨랐다. 자기가 언제 나를 놀렸냐는 양 표정을 추스르고는 담백한 어조로 말했다.
“소드 익스퍼트에 오르신 거 축하해요.”
“고마워.”
인사는 여기까지.
체력이나 근력, 펜싱 기술까지 전부 단기간에 크게 발전시키기 어려운 감이 있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끽해야 2달. 요 며칠간 나비에를 훈련 시키며 깨달았는데, 답이 없었다.
적어도 준결승까지는 갔으면 하고 바랐는데, 불가능하다는 걸 실감했다.
재수가 없다면 초전박살이 날 수도 있다는 걸 인정했다.
그렇다며 남은 방법은 무엇인가?
대체 무슨 수를 써서 황태자에게 어필할 것인가?
나는 준비해온 4인치 붕대를 나비에한테 내밀었다.
“그게 뭔가요?”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꾸준히 펜싱을 즐겨왔는데 지금의 네 실력이라는 건 말이 안 돼. 그러니까 하나 더 컨셉을 잡자.”
“무슨 컨셉이요?”
“원래 실력은 이런 아카데미 내 대회 우승 정도야 가볍게 할 수 있지만, 부상 때문에 제 실력을 못 내는 거”
나비에는 배를 잡고 웃었다. 잇몸이 보일 정도로 입을 크게 벌리며 뒤로 넘어갈 기세로 웃어댔다.
그녀는 숨이 넘어갈 것처럼 웃다가 헉헉거리며 숨을 골랐다.
“진짜, 보통이 아니시네요. 대체 어떻게 그런 발상을 하는 건가요?”
“시끄러. 할 거야? 말 거야?”
“해야죠. 저도 좋아요. 그거 괜찮은 거 같아요.”
펜싱을 할 때 나비에의 단점은 전진과 후진의 속도, 체력과 포인트를 따낼 기술이 부족하다는 점이었다.
이를 붕대를 감아 부상이 있는 척하는 것으로 감추고자 했다.
발목이 불편하니 스탭의 속도가 느려지고, 안정감이 떨어지니 찌르기도 더딘 것이다.
체력이 부족한 건 무리한 몸 상태로 경기를 뛰기 때문이었다. 부상 하나로 온갖 단점을 다 보완할 수 있었다.
“이거 묘책인데요?”
“그래, 이제 넌 죽기 살기로 훈련하고, 경기만 뛰면 돼.”
“붕대 감으면 못 해도 되는 거 아니었나요?”
“못해도 되는데, 최선을 다하긴 해야지. 적어도 몇 경기는 이겼으면 하고. 그러니 훈련하자.”
“네, 알겠습니다.”
나비에는 보기와는 다르게 싹싹한 구석이 있었다.
내가 자기를 돕는 입장임을 이해했고, 무언가를 시키면 크게 군말 없이 따랐다. 혹 내 제안이 마음에 안 들거나 해도 그거를 티 내지 않았고, 싫어도 좋은 척을 했다.
요컨대, 굴리기 좋다는 뜻이었다.
“좀 더 뛰어.”
대회 전까지 극적인 변화를 보이긴 힘들었다.
대신에 힘들었을 때 한 발자국 더 나아가는 걸 반복시켜줄 수는 있었다. 지금도 나비에는 죽을 것처럼 괴로워하고 있었는데, 다리를 멈추지 않았다.
첫날보다 근지구력이나 폐활량이 훨씬 좋아진 것도 아닐 텐데, 더 많은 거리를 뛰고도 나아갔다. 고통에 익숙해진 것이다.
“좋았어. 잠깐 쉬자.”
나비에는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한 몸으로도 바닥에 앉거나 드러눕지 않았다.
보는 눈이 나밖에 없는데도 끝까지 체통을 지키는 걸 보면 난 놈은 난 놈이네.
달리기를 멈춘 다음에는 전진과 후진을 해가 뜰 때까지 반복했다.
이쯤 되면 힘들다, 괴롭다, 혹은 잠시 쉬었다고 하자고 요청할 법도 했는데 나비에는 끝까지 참았다.
“독하네.”
“네?”
“그냥, 대단하다고.”
“그렇게 말해주시는 건 감사해요. 그런데, 저는 이거 별거 아니라 생각해요. 어릴 때는 더 힘들었거든요.”
“왜? 하루에 연병장을 20바퀴는 뛰었나?”
나비에는 헛웃음 소리를 내며 억지로 웃는 척하더니 말했다.
“몸은 편했어요. 제 손으로는 옷도 못 갈아입게 했으니 힘쓸 일 자체가 없었죠. 대신에 매일 머리가 깨질 것 같았어요. 제 어머니는 엄하셔서요. 제가 사소한 실수, 예를 들면 식기를 조금만 못 다루어도 혼이 났었죠.”
“혼을 내셔? 어떻게?”
“때리셨죠.”
그런 설정이 있었던 거 같지는 않은데, 진짜 맞았냐고 물어볼 수는 없었다. 나비에가 먼저 화두를 꺼낸 건 맞지만, 남의 가정사에 끼어드는 것 같지 않은가?
내가 입을 꾹 다문 채 가만히 있자, 나비에는 씁쓸하게 웃었다.
“제가 맞은 건 아니에요. 저 대신에 시중을 들어주던 하녀를 때리셨죠. 붙임성 있고, 밝은 아이였는데 저 대신에 매를 맞은 날에는 말 한마디를 안 했었죠.”
“아.”
“그래도 라파엘님은 제가 기대에 못 미친다고 나무라시지는 않으니까. 몰아세우지도 않으니까. 그래서 그냥 어린 시절보다는 편해요. 이 정도야 누구나 하는 거죠.”
“버틸만하다는 거네.”
우리는 한참을 더 뛰고 헤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