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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판 속 악당이 되었다-40화 (40/125)

제40화

아카데미의 학장, 프란츠는 제 집무실에서 다리를 꼬고 앉아 신문을 읽었다. 눈동자가 글을 따라가며 시야에 활자를 담았다.

그는 자그마한 어조로 기사의 제목을 음독했다.

“초신성 탄생.”

공교롭게도 제 학생 중에 소드 익스퍼트가 나타났다고 한다. 그것도 1학년이 해냈다고 한다.

“하아….”

평소라면 박수하며 좋아할 일이었다. 경사가 났으니 플랜 카드도 걸어주고, 여러 기사단과 접촉하며 이야기를 나눠볼 터였다.

이번 일을 계기로 황실에서 더 많은 지원금을 탈 수 있는 일. 두 팔 벌려 환영했어야 한다.

그러나 프란츠는 한숨을 내뱉었다.

“또 나타났군.”

프란츠는 학장으로서 아카데미의 학생들이 발전시킬 의무와 동시에 아카데미를 안전하게 관리해야 했다.

무엇보다 아카데미 내에서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학생들을 간수하는 게 우선이었다.

그런데, 근래에 들어 눈여겨볼 학생의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왜 하필 내 때에….”

전임자로부터 이따금 황손의 귀하신 핏줄이 입학하는 일이 있다고 들었다.

그럴 때면 혹시라도 여타 학생들과 마찰이 생기지 않게 조심해야 하다고 들었다. 황태자, 카르테아가 이에 해당했다.

이따금 거대한 영지를 소유한 대귀족이 입학하는 일이 있다고 들었다.

북부의 대공, 아가레스가 이에 해당했다.

그의 피비린내 나는 소문들이 거짓인 걸 알면서도 꺼림칙한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이 둘만 해도 골치가 아플 지경인데, 입학식에서 마주쳤던 마법사 놈은 또 어떻단 말인가?

나이가 어려 마나의 총량은 자신보다 적었어도 그 실력만 따진다면 교수직을 맡아도 될 놈이었다. 눈매를 보아하니 성질머리 참 더러워 보였다.

이제는 수업까지 무단으로 불참했다. 그가 어디 가서 사고를 치면 아카데미 소속이라는 꼬리표 뒤따를 일. 어디서 무슨 짓을 할지 걱정이었다.

거기에 최근 연금술 학부에서 보고서가 매일 같이 올라왔다. 귀찮아서 몇 주를 미뤘더니 이제는 수십 장이 쌓여 손대기도 꺼려졌다.

연금술학부의 교수 길버트를 만나 대화해보니 이번 신입생 중에 천재가 있다고 한다.

그놈이 입학과 동시에 온갖 기술과 상품을 만들어 수입을 얻고 있으니 이를 확인하라 했다.

언젠가는 훑어보기는 할 테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스트레스에 머리가 지끈거리는데 업무까지 보고 싶지는 않았다.

사실 이들을 제외하고도 많았다.

아이작 가문의 영주, 러브원 가문의 영애, 몰락했다고 해도 공작 가문의 이름을 이은 퓨어문 가문의 영애까지 원래대로라면 각별하게 주의할 학생의 수가 지나치게 많았다.

“왜 하필 내 때에….”

일단은 라파엘 아이작과 만나겠다고 결정했다.

어딘가 익숙한 이름이라며 혓바닥으로 발음을 굴리며 그를 호출했다.

* * *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에 들어가라는 말이 있다.

원하는 성과를 얻기 위해서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직접 위험 속에 뛰어들어야 한다는 뜻이다. 나는 호랑이를 잡기 위해 아카데미에 입학했다.

호랑이가 득실득실한 아카데미에 들어서며 어느 정도의 위험까지는 감수하기로 각오했다.

어느 정도는.

요즘 위험이 너무 많은 듯했다.

매일 같이 위험한 놈들과 엮였다. 나비에만 해도 처음 만났을 때는 애랑 어울리다가는 황태자에게 얻어터지는 미래 때문에 피해 다녔는데, 이제는 새벽마다 훈련했다.

아가레스와는 같은 수업을 듣고, 이따금 따로 만나 술을 마시기도 했다.

친구라기에는 뭣해도 이제는 지인쯤은 되는 사이였다.

그 외에도 내 목숨과 관련된 놈들을 매일같이 접하다 보니 어쩌다 이렇게 된 걸까 싶었다.

그런 점에서 이번에 찾아가는 학장, 프란츠는 조금 나았다.

원작에서 애한테 맞았다거나, 애가 특별히 라파엘을 싫어했다거나 하는 묘사는 없었으니 조금쯤은 마음을 놓아도 되겠지.

“라파엘 아이작입니다.”

“그래, 어서 오게나. 자리에 앉지.”

프란츠는 내 이름, 라파엘 아이작을 작게 말하더니 뭔가를 깨달았다는 듯 탄식했다. 그는 혀를 차더니 말했다.

“자네가 자네였군.”

“예?”

그는 못 알아들을 소리를 하더니 의자에서 일어나 책상에 쌓인 서류 중 하나를 챙겨왔다.

그는 눈동자를 종이에 둔 채 숨을 깊게 내뱉었다. 그가 입으로 뿜어낸 바람에 서류가 팔랑거렸다.

“라파엘 군, 얼마 전에 소드 익스퍼트에 올랐다지? 기사를 통해 알게 돼서 미안하네. 그전부터 자네를 예의 주시 했어야하거늘, 내가 무심했어.”

“아닙니다.”

“오늘 자네를 부른 건, 우리 아카데미의 명성을 높여준 데에 감사를 표하고, 자네가 더 열심일 수 있도록 격려하기 위함이었네.”

프란츠는 내게 아카데미 재학 동안의 학비나 기숙사비 면제 따위의 혜택을 언급하더니 들고 있던 서류를 내 쪽으로 내밀었다.

“그런데 말이야. 이건 뭔가?”

길버트가 프란츠에게 올린 보고서였다. 주로 내가 연금술과 관련해 활동한 내역이었다.

내가 발표한 특허와 그를 통해 어떻게 수입을 얻을지 따위가 상세하게 쓰여 있었다.

“길버트 교수가 쓴 보고서입니다.”

“자네를 나무라려 하는 건 아니니 걱정하지 말고 듣게. 난 꽤 오래 학장 노릇을 하며 많은 학생을 보아왔는데,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서 그래. 어떻게 두 가지 분야에 동시에 두각을 냈지?”

말을 하던 프란츠가 눈에서 푸른 안광을 뿜었다. 그의 눈썹이 코를 향해 쏠리더니 눈 밑이 부르르 떨렸다.

“허, 믿을 수 없군. 다시 보니 마법까지 익혔어. 수준도 제법이네. 마나의 질과 양만 따지면 마법학부에서도 상위권이야.”

“제가 좀 다재다능합니다.”

“내가 그런 사람을 몇 보기는 했지만, 자네는 아니야.”

프란츠의 단정적인 어조에 내가 뭔가 실수한 게 있나 기억을 더듬는 중이었다.

뭔가 잘못했던 게 있나? 없는 거 같은데.

“자네는 어리지 않은가? 여러 재능을 타고났어도, 그 재능을 익히고 연마할 시간이 부족한 법이네. 그러니 자네를 의심해볼 수밖에 없어. 솔직하게 말해주게.”

프란츠는 심각한 표정을 짓더니 뜸을 들였다.

뭔데? 유희하는 드래곤이냐고 물어보려나?

내가 대단하기는 하지.

그러면 대답은 뭐라고 하지?

그가 질문하기도 전에 변명거리를 궁리하고 있는데, 프란츠가 입을 벌렸다.

“혹시 악마와 계약했나? 단순히 흑마법사가 된 거로는 그런 힘을 얻을 순 없어. 필시 제물을 바치고 악마의 진명을 얻었겠지. 내 말이 틀렸나?”

“어…. 틀립니다.”

내 어이없다는 반응에 프란츠는 그거 다행이라며 머리를 긁적거렸다.

그가 부연 설명을 원하는 눈빛으로 보길래 하나씩 말해주었다. 검술은 원래 잘했고, 연금술은 원래 관심 있었고, 마법은 이안에게 배웠다고 했다.

프란츠는 내 입에서 이안이라는 이름이 나온 순간부터 이야기를 신뢰해주는 듯했다.

“크흠, 그렇다면 말이 되는 거도 같군.”

“그죠?”

* * *

요 며칠간 집중적으로 쏟아지는 주변 사람들의 관심에 피로했다.

원인은 누가 뭐라 해도 카타리나.

그녀는 종종 헛소리를 내뱉었다.

이따금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지껄이면서 자기가 퍽 대단한 발상을 해낸 듯 으스댔는데, 이번에도 딱 그 짝이었다.

“네가 검기를 쓸 수 있다는 걸 공식적인 자리에서 입증해야 해.”

“제가 왜요?”

“들어봐봐. 사람들은 네가 소드 익스퍼트에 올랐다는 걸 믿고 있어. 왜 그럴까? 자기가 익스퍼트라고 주장하는 건 누구라도 할 수 있는데. 왜 네 말은 믿는 걸까?”

이제는 기억까지 왜곡하네. 나는 그녀의 말을 정정했다.

“제 말을 믿는 게 아니라, 카타리나님이 기사에 낸 걸 믿는 거죠.”

“아무튼! 사람들이 다 우리를 믿는 게 아닐 수도 있어. 분명 의심하는 사람들도 있을 거라고. 그러니까! 어쨌든 자리를 마련해서 사람들에게 네 실력을 보여주자고.”

“왜요?”

카타리나는 답답하다는 듯 무릎을 탁탁 치더니 대답했다.

“그래야, 이게 기록으로 남고 그럴 거 아니야? 어?”

“겨우 그거 때문에 남들 앞에서 검기를 시연하기라도 하란 말입니까?”

“겨우라니? 넌 이게 얼마나 중요한지 몰라서 그래. 어? 이게 얼마나 중요한데.”

“명성을 위해서요?”

“그렇지.”

나와 카타리나 사이에는 벽이 있었다. 서로 생각하는 방식이 다를 수밖에 없었다. 거기다 카타리나의 어린 시절.

검술을 배우고 싶어도 제대로 된 목검 하나 구하기 힘들어 나뭇가지를 휘둘렀을 때를 감안하면 그녀가 이런 데 집착하는 걸 공감할 수 있었다.

내심 그녀의 어린 시절이 안타까워 말했다.

“알겠습니다. 그러면 그렇게 하죠.”

카타리나 하게 웃었다. 엉뚱한 짓을 하기 직전의 악동 같은 웃음이었다.

“이거 무르기 없기다.”

그 말을 한 직후, 카타리나가 움직였다.

그녀에게는 막 터진 시한폭탄 같은 추진력이 있었다.

내 대답을 듣자마자 득달같이 판을 만들었다. 바로 검기를 시연할 날짜를 잡았고, 학부의 건물을 빌리더니 말했다.

“이게 그냥 검기를 보여주기만 하는 건 재미가 없을 거란 말이야? 우리 재미있게 해보자.”

“어떻게 말입니까?”

“너랑 나랑 한판 하는 거지.”

“대련 말입니까?”

“어. 가끔 했잖아. 이제 그걸 검기 쓰고 하는 거지. 사람들 앞에서.”

“위험하지 않을까요?”

“괜찮아. 야, 내가 하는 거잖아. 내가 이런 거로 실수할 거 같아? 내가?”

카타리나는 어깨를 쭉 피더니 턱을 치켜들었다. 한껏 우쭐한 표정을 지었다.

“야? 내 별호가 뭐냐? 검성이야. 내 검술 실력이 하늘에 닿아서 붙은 거라고. 내가 네 수준 하나에 못 맞춰주겠냐?”

“그래도….”

“걱정마.”

검기를 쓰며 칼을 부딪치는 진짜 대련.

카타리나는 자기가 알아서 힘 조절을 한다며 내게 다 맞춰주겠다고 했다.

그러니 걱정하지 말라며 판을 더, 더 키워갔다.

* * *

그렇게 나와 카타리나의 공개 대련이 마련되었다. 대련장에는 예상보다 몇 배는 많은 인파가 모였는데, 그를 보니 불안했다.

“진짜 검기가 아닌 거 들키면 어떡합니까?”

“그거 내가 봐도 그럴듯하던데, 간파할 놈이 여기에 어디 있어? 학장이 와도 구분 못 하니까 넘어가.”

“만약이라는 게 있지 않습니까?”

“야, 됐어. 그게 검기가 아닌 것도 아닌데. 우리가 거짓말했어? 아니잖아.”

앞서 말한 대로 연무장에는 많은 사람이 모였다.

검술학부에 학부생들은 물론이고, 이를 재미있는 이벤트쯤으로 생각한 많은 학생아 여럿 있었다.

그중에는 최근 친분을 쌓았다고 할 수 있는 아가레스가 묵묵히 자리했고, 나비에가 나와 눈이 마주치니 손을 흔들었다.

학장인 프란츠도 자리를 지켰다. 이들이라면 대충 왜 온 걸까 짐작할 수 있었다.

의외였던 건 황태자였다.

남의 일이라면 무서울 정도로 무관심하던 카르테아가 하품을 쩍쩍 해대며 이쪽을 보고 있었다. 무슨 바람이 들어서 이런 데까지 찾아온 건데.

“어후….”

나는 두 눈을 반짝거리는 카타리나라와 함께 연무장을 향해 걸었다. 카타리나가 옆에서 작게 속삭였다.

“있는 힘껏 덤벼봐. 다 받아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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