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2화
어제 있었던 카타리나와의 대련을 회상했다. 카타리나는 내 마탄을 가볍게 쳐냈었다.
만약 그녀가 소드마스터에 오르며 터득한 오러 블레이드를 활용했다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오러 블레이드.
검사가 내놓을 수 있는 최고의 절기.
오러라면 마탄을 모기를 때려잡듯 툭툭 쳐버릴 수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내 수준에 맞춰 힘을 선보였다.
그녀의 검기는 나와 같은 익스퍼트 수준에 불과했다. 마탄을 쳐내기는 힘들 텐데, 그녀는 아주 간단히 해냈다.
그걸 떠올렸다. 따라 할 수 있을까?
“저···. 그러면 던집니다!”
카타리나가 보였던 기술을 재현하려 연습하기 위해 레오에게 돌멩이를 좀 던져달라 부탁했다. 가능하면 빠르게 연속해서.
그는 주먹 크기의 돌을 몇 개 잡더니 머리 위로 흔들어 보이며 던진다는 신호를 보냈다.
잘못했다가 내가 준비 안 된 채 멍하니 있다 돌에 맞을까 걱정한 듯했다.
“갑니다!”
후욱!
레오는 힘껏 돌을 던졌다. 돌은 포물선이 아닌 직선으로 내게 날아왔다. 그 궤적을 눈으로 확인했다.
이를 목검으로 쳐낸다.
타이밍에 맞게 돌에다 검을 가져다 대는 것까지는 수월했다. 공을 던진 자세만 봤다면 눈을 감고서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돌과 검이 부딪히는 순간 실패했다는 걸 직감했다.
이게 아니었다.
나는 완력으로 검을 밀어냈으나, 카타리나는 아주 가볍게 마탄을 튕겨냈다.
그녀의 기술은 빛이 거울에 부딪혀 반사되는 느낌에 가까웠다.
힘으로 갈기는 나랑은 달랐다. 목검에 부딪힌 돌은 퉁 튀어 오르더니 바닥을 굴렀다.
레오는 바닥에 떨어진 돌을 힐끔 보더니 말했다.
“된 건가요?”
겉보기로는 비슷하기는 했다. 뭐가 됐건 간에 공격을 받아넘기기는 했으니까. 다만, 과정에서 크게 차이가 났다. 이런 식이라면 돌이 아니라 마탄이 날아올 때 막기란 난감했다.
“아니, 실패했어.”
“타아앙 날아갔는데요?”
“좀 더 가벼워야 해.”
카타리나를 흉내 내려 몇 번이고 연습했다. 레오는 내게 맞춰주며 꽤 오랜 시간 동안 돌을 던져 주었다.
여러 방법으로 돌을 쳐내다 보니 돌이 몸에 들이박기도 했고, 무리하게 동작을 펼치다 넘어지기도 했는데, 별거 아닌 일이었다. 돌을 쳐내고, 또 쳐냈다. 그러다 조금은 더 알 듯했다. 기억 속에 카타리나가 움직였다.
“이렇게···.”
이전까지의 나는 돌을 쳐내는 데만 급급했다. 그 동작에만 집중했다.
그게 아니었다. 다가오는 공에 검을 가져다 대며 충격을 저장했다. 그 힘이 몸에 실리기 전에 몸에 마나를 깨웠다. 발경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작은 힘이었다.
등과 가슴에서 팔로 힘을 흘려보냈다. 검을 움직인다.
투웅!
흐름에 따라 돌을 밀어냈다. 돌은 검의 각도에 따라 부드럽게 회전하더니 날아오던 그 힘 그대로, 반대 방향으로 튕겨 나갔다.
돌은 조금의 속도도 죽이지 않은 채 그대로 날아가 바닥에 처박혔다.
“아아···.”
이제야 좀 알 거 같네.
레오도 그걸 알아차렸는지 히죽거리더니 말했다.
“이번에는 성공한 거 같은데요?”
“어. 감 유지하게 몇 번만 더 해보자.”
돌을 200번가량 더 쳐내고 관두었다. 이제는 몇 번을 해도 성공할 자신이 있었다.
* * *
오늘은 아카데미의 주말이었다. 창밖을 바라보니 쨍쨍한 볕이 바닥을 내리쬐었다.
화창한 날씨의 오정. 몸이 나른해져 천장을 향해 팔을 쭉 뻗으며 기지개를 키며 생각했다.
아, 배고프다.
지난번 나비에가 내 입맛을 꼬집은 뒤로 이따금 맛난 음식이 먹고 싶고는 했다. 그럴 때면 달달한 디저트나 질 좋은 고기를 찾아 먹었는데, 약간 부족하다는 게 느껴졌다. 그게 뭘까 곰곰이 고민한 후에 결론을 내렸다.
한식···.
나까지도 이럴 줄은 몰랐다.
한국에 살 때만 해도 한식이 매력적인 음식이라고는 단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었다. 탄수화물만 넘쳐나고, 단백질은 부족한데 나트륨은 과하다고 한식 신봉자인 어머니와 입씨름을 했을 정도였다.
그랬던 내 한식에 대한 생각이 깨진 건 며칠 전이었다.
지금처럼 흐르는 대로 살다가는 다시는 한국에서 먹던 음식을 맛볼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눈이 탁 뜨이고, 빛이 번쩍였다. 놀랍도록 먹고 싶은 음식들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불고기···. 삼겹살···. 갈비···.
그렇게 한식이 먹고 싶다고 벼르고 벼르던 중이었다. 아카데미에 주말이 찾아왔다. 텅텅 빈 수업에 어찌 된 일인지 약속까지 비어 시간이 펑펑 남았다.
해서 나는 떡볶이를 하기로 결정했다. 구할 수 없는 재료와 구하기 쉬운 재료를 구분하니 답은 크림 떡볶이였다.
쌀떡을 선호했지만, 아쉽게도 구하기 번거로워 밀떡으로 대체했다. 대신에 버섯이 하나 기가 막힌 게 있었다.
수프에 향과 식감이 훌륭한 버섯이 있어 이게 뭐냐고 물으니, 미향버섯이라고 식용과 약용으로 모두 쓰이는 기특한 놈이라는 답변을 들었다. 오늘은 이 미향버섯을 이용해 떡볶이를 할 예정이었다.
꼭 우산을 닮은 모습의 버섯을 잘게 썰은 후, 다른 채소와 함께 볶았다. 버섯의 향이 코끝을 간질이며 배에 신호를 보냈다.
배는 꼬르륵거리며 향에 답했다.
그런 다음 우유를 붓고, 떡을 넣고 조렸다. 떡이 바닥에 달라붙지 않게 조심하며 잠시간 뒤적거리는 거로 조리를 끝마쳤다.
플레이팅 따위는 넘기고, 포크로 떡을 찍어 음식의 맛부터 보았다. 어금니로 떡을 오물오물 씹고 삼켰다.
“아···.”
맛은 훌륭했다. 이걸 한 끼 식사로 배가 부를 때까지 먹는다면 느끼할 달달함도 처음 한 입에서는 오히려 장점이었다. 미향버섯을 현대로 가져가 떡볶이를 만들어 판다면 대박을 칠 것만 같았다.
“이게 아니야···.”
그러나 아쉬웠다. 크림 떡볶이를 먹은 후에야 내가 먹고 싶었던 떡볶이는 이게 아니었다는 걸 알아차렸다.
나는 시뻘건 고춧가루가 잔뜩 들어간 떡볶이를 원했다.
먹으면 얼굴에 열이 오르고, 입에서 후우후우 바람 소리가 나는 떡볶이를 원했다.
이런 게 아니었다.
“이건 어떡하지.”
한식을 해 먹는다는 생각에 손이 과했다. 다시금 보니 혼자 먹기에는 과한 양이었다. 남은 음식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고민하던 중 머리에 한 얼굴이 떠올랐다.
아가레스 잉그레드.
그에게 가져다주자.
음식을 적당히 접시에 담았고, 그의 방을 향해 이동했다. 같은 장학생인지라 그와 내 방은 가까워 금세 도착했다. 문을 두드리고 잠시 기다리자 독서 중이었는지 한 손에 책을 든 채로 아가레스가 문을 열었다.
“무슨 일인가?”
“어. 요리를 했는데, 음식이 좀 남아서요.”
아가레스는 떡볶이를 보더니 말했다.
“이게 뭐지?”
아가레스의 질문에 잠시간 망설였다. 쌀이 안 들어간 떡볶이를 과연 떡볶이라 할 수 있겠는가. 밀가루로 만든 떡을 떡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내가 조리한 방식은 볶았다기보다는 졸였다에 가깝지가 않은가.
“떡볶이라 합니다.”
그런 모든 의문을 건너뛰고 나는 떡볶이라 말했다. 시간이 지나면 그게 뭐든지 간에 더 나은 방식이 나오고, 발전하는 법이었다. 고리타분하게 틀에 박힌다면 나아갈 수 없었다.
“처음 보는 음식인데, 이런 음식의 조리법은 어디서 배웠나?”
“어···. 영지의 주방장에게 배웠습니다.”
“요리? 영주치고는 특이한 취미군.”
아가레스는 그리 평 하더니 나를 안으로 들였다. 그는 떡볶이를 시식했다. 떡을 몇 번 씹고 삼키더니 말했다.
“그 주방장의 얼굴을 한번 보고 싶군. 맛이 괜찮아.”
“그렇습니까?”
“단 음식은 기호가 아니었는데, 나중에 다시금 떠오를 맛이야.”
“그죠? 저도 단 거를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는데 요즘 자꾸 먹게 되더라고요.”
“제국에서 볼 수 있는 음식은 아닌 듯한데, 자네 영지의 주방장은 어디 사람인가?”
“그거까지야 저도 모르죠. 주방장을 제가 고르는 게 아니니까요.”
“그런가···. 그러면 자네가 말한 떡볶이가 어디 음식인지는 내가 직접 찾아보는 거로 하겠네.”
“예? 맛이 그리 괜찮습니까?”
아가레스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게 어디 음식인지 꼭 알아야 할 만큼이나 말이야.”
음식을 좋아하니 흡족하기는 했는데, 이게 그 정도인가 싶어 떨떠름했다. 아가레스가 빈말을 잘하는 성격이 아니라 더 그러했다.
“궁금하시다면 조리법을 알려 드릴 수도 있는데.”
“나중에 내 영지에 왔을 때 다시금 말해주게.”
“예. 그러죠.”
* * *
아가레스 잉그레드는 잔에 술을 채우다 말고 멈칫거렸다.
타악.
책상 위에 술병을 그대로 두며 머리를 붙잡았다. 라파엘이 가져온 음식 때문이었다. 북부에는 각지의 사람들이 모였고, 각지의 문화가 섞였다. 그 덕에 굳이 찾아 먹지는 않더라도 다양한 음식을 알 수밖에 없었다.
“뭐냔 말이다.”
라파엘이 생소한 음식을 가져왔다.
그는 요리를 많이 해 음식이 남았다고 말했지만, 그게 사실일 리는 없었다.
영주인 라파엘이 요리에 익숙할 리가 없었고, 설령 그렇다고 한들 대공인 자신에게 남은 음식을 가져다줄 리도 없었다.
금일 라파엘이 보인 모습은 전부 연출된 것이라 보는 게 합당했다. 그는 의도적으로 생소한 문화의 음식을 전달했다. 왜? 무엇을 위해서?
아가레스는 거칠게 병 채로 술을 들이켰다.
“마족과 연관이 있는 건가···.”
아마 그럴 것이다.
떡볶이란 음식이 어디 오지의 음식이라면 구태여 라파엘이 제게 보일 필요가 없었다. 그간 라파엘이 걸어온 길을 감안하면 마족과 연관된 쪽이 확실했다.
“더욱 의문이군.”
아가레스가 마족에게 악감정이 있다는 건 라파엘도 잘 알고 있을 터였다. 그런데도 자신이 마족과 연관이 있음을 알려온다니 그 의도를 파악하기 요원했다.
“무능한 놈은 아니란 말이야.”
제가 보기에는 별거 아니었으나 객관적으로 그 나이에 소드 익스퍼트에 올랐다면 천재라고 봄이 마땅했다. 게다가 그의 교양 과목 성적도 우수했고, 마법 소질도 출중하다고 한다. 뭣 하나 빠지지 않는 놈이었다.
놈이 멍청한 짓을 했을 것 같지는 않았다.
“마족과 끈이 있는 건 분명해.”
그것도 그냥 인연이 닿았을 뿐이 아니라 꽤 질긴 듯했다. 무리수를 둬 가면서라도 지키고 싶은 듯했다. 뭐가 됐건 간에 확실한 건 비밀이 많은 놈이란 점이었다.
아가레스는 여름이 기다려졌다. 여름이 오면 모든 게 다 밝혀질 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