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0화
푸른 마나의 탄환이 이안을 향해 돌진했다.
나는 마탄에서 시선을 거두고 바로 다음 공격을 시작했다. 단발로 초탄을 쏜 후, 후발 탄의 성질을 바꾸었다.
시퍼렇던 마탄의 색이 불그스름하게 변하며 주변에 불씨를 튀겼다. 화염탄을 쏘고, 이안의 대처를 지켜보았다.
파앙! 파앙!
이안은 내가 쏜 것과 똑같은 경로에 마탄을 쏴 격추했다.
서로의 마탄이 부딪쳐 폭발하고, 그 여파로 모래바람이 불었다. 눈이 따가워 소매를 들어 눈가를 보호했다.
이안도 눈을 감지 않았을까? 적어도 시야가 불편하기는 할 거다.
그에게 접근하며 여러 방향에서 마탄을 쏘았다.
이안은 고집을 부리듯 쉴드를 쓰지 않고, 대신 마탄으로 마탄을 맞추었다.
쉴드로 전방위를 막아낸다면 쉬울 텐데, 그 나름의 고집인 듯했다. 이런 쓸데없는 고집을 부리면 꼭 깨부숴주고만 싶다.
내가 제일 잘 하는 거를 준비했다.
무작정 마나를 쏟아붓는 거.
마탄을 생성하고 또 생성했다. 이거를 다 격추할 수는 없을 텐데, 어떡할래?
모래바람이 그치고, 만들어뒀던 마탄이 드러났다.
역시나 이안은 놀란 체도 하지 않았다. 아마 시야가 불편해도 마나를 감지해 상황을 파악한 듯했다.
그래도 과연 이걸 어떻게 대처할지는 여전히 궁금했다.
장전해둔 마탄에 시동을 걸었다. 수십 발의 마탄이 우웅 진동했다. 이것들을 동시에 이안을 향해 쏘았다.
투두두두두!
족히 수십 발의 마탄이 서로 앞다투며 뛰쳐나갔다.
그들의 돌격에도 이안은 고집을 부렸다. 쉴드를 쓰지 않았다. 그 대신 폭발을 일으켰다. 탄 수가 많은 탓에 마탄 간의 거리는 좁았다. 그 안에서 마나 폭발을 일으켰다.
마나 봄!
단순히 마나를 터트리는 비효율적인 마법. 그러나 이안은 그 비효율적인 마법을 가장 효율적으로 사용했다.
폭발에 휩쓸린 마탄은 그 힘을 잃거나 방향이 뒤틀렸다. 그렇게 상당수의 마탄을 제거한 다음, 전에 했던 것처럼 다시금 마탄을 쏘아 격추했다.
많은 양의 마나를 소모해가며 준비한 공습이었지만, 허무할 정도로 간단하게 흩어졌다. 그래도 아직 하나 남았다.
화염탄을 난사하는 것.
시전하는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는 문제가 있는 기술이었으나 지금만큼은 괜찮았다.
이안은 반격하지 않는다. 그렇게 약속했다. 시간이라면 충분했다.
내가 제자리에서 마나를 응축하자 이안이 웃으며 말했다.
“그건 반칙이잖아.”
뭘 하려는지 안 모양이네.
그를 무시하고 모아뒀나 마나를 해방했다. 마탄을 생성, 가공, 변화, 발포. 연습 때나 성공했던 과정을 빠르게 반복했다.
9발의 화염탄을 동시에 시전했다. 동시에 화염탄을 날렸다. 붉은 구체들이 이안을 노리고 일제히 날아갔다.
나는 이안이 뭔가 새로운 수를 써 이걸 파훼할 것만 같았다.
신기한 마법으로 내 견문을 넓혀줄 거로 생각했는데, 이안은 내 기대를 깨부수었다. 그는 간단히 쉴드를 영창했다.
마나 방벽이 화염탄을 감쌌다. 화염탄은 방벽 안에서 폭발했다.
짜악!
이안이 손뼉을 치더니 말했다.
“여기까지 하자. 많이 늘었네. 마력도 운용도 제법 괜찮아.”
“칭찬이 짜네.”
“괜찮은 걸 괜찮다고 말하지, 우수하다고 할 수는 없잖아.”
이안은 손으로 툭툭 쳐 제 옷에 묻은 먼지를 털어냈다.
“마탑으로 가자. 거기서 공부하면 우수해질 수 있어.”
그의 제안은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다.
내 마법 실력이 얼마나 늘었는지 시험한 것도 다 이번 제안을 위해서인 듯했다. 갑작스러운 제안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내가 마법을 가르쳐 줄게. 지금보다 더 성장할 수 있게. 너한테 나쁠 건 없잖아.”
이안에게 마법을 배운 후, 아주 빠른 속도로 성취를 얻었다.
마탑은 아카데미와는 다르게 마법을 배우고, 보조하는 데 필요한 대부분 것들이 갖추어져 있었다.
그의 권유대로 마탑에 간다면 또 금세 경지를 올릴 수 있을 것이다. 내심 혹했다.
“지금은 안 돼.”
하지만 그 전에 할 일이 있었다.
아가레스와의 약속.
그가 기한을 넉넉하게 주었다고 해도 그 기한에서 하루라도 늦었다가는 화를 낼 것이다. 그의 화를 사고 싶지는 않았다. 괜스레 새로운 여정을 만드는 건 피해야 했다. 당장 마탑으로 가는 건 무리였다.
“지금은?”
“할 일이 있어.”
아가레스를 도와주러 간다고 솔직하게 말하면 둘의 사이가 나쁜 만큼, 반응도 나쁠 듯했다.
그냥 할 일이 있다고 뭉뚱그려 말했는데, 이안은 가볍게 넘어갔다.
“그러면 할 일부터 끝내. 방학 때는 계속 마탑에 있을 거야. 주인이라는 이름만 달고 있는 게 아니라, 이제 밑에 애들도 좀 봐주려고 하거든. 시간 나면 아무 때나 와. 기다릴게.”
“나중에. 나중에 들릴게.”
* * *
이안은 며칠인가 더 영지에서 머물렀다.
코로망은 이안이 진짜 마탑의 주인인지 궁금해하는 눈치였는데, 따로 불러 알려주니 오두방정을 떨며 좋아했다.
그녀는 이안의 무뚝뚝한 태도에도 잘 대접해주며 살갑게 굴었다.
이안은 여기서 며칠인가 호사를 누리다가 마탑에서 보자며 인사하고는 떠났다.
그가 떠나고, 나는 저택에 남아 편히 쉬었다. 몹시 편히 쉬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새벽마다 기상해 훈련하는 것도, 마나가 꽉 차기 전에 마법을 연마해 비워주는 작업도 다 내버려 둔 채 쉬는 데만 집중했다. 일찍 자고 늦게 일어났다. 24시간이라는 하루 중 절반을 잠자는 데에 쓰다가 영지를 돌며 디저트를 먹었고, 매운 음식을 잘 먹도록 혀와 위장을 단련했다.
이제는 떡볶이를 암만 맵게 해도 눈물도 안 쏟으며 잘 먹었다. 그렇게 날이 갔고, 날이 갔다.
시간이 지난다면 현재와 같은 삶을 평생 만끽할 수 있겠지. 그날이 멀지 않았다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달력을 확인했다.
약속했던 때가 다가왔다.
아가레스의 영지로 갈 시기였다. 조금씩 먼 여행을 떠나기 위한 채비를 갖추었다. 명목상 마물 토벌을 돕기 위함이니 갑옷과 무장을 챙겼고, 옷가지를 더했다.
여기에 그에게 전에 먹었던 크림 떡볶이가 아니라 혀에서 불을 뿜는 매콤 떡볶이를 해주려 고춧가루를 좀 챙겼다.
뭘 해도 여유로웠던 그였지만, 이걸 맛본다면 콧물을 찍찍 흘릴 거다. 그걸 상상하니 우습기까지 했다.
“그러면 갔다 올게.”
마차에 가벼운 짐을 옮겨주는 코로망의 표정은 퍽 밝았다. 마탑주에 이어 이번에는 북부의 대공이었다.
내가 대단한 인맥이라도 맺었다고 착각했는지 근래 코로망은 얼굴에서 웃음이 떠날 줄을 몰랐다.
코로망은 마지막으로 고춧가루를 마차 안으로 밀어 넣더니 억지로 입가를 내리고 엄한 표정을 지었다.
“예, 잘 하시리라 믿지만, 그래도 무례를 끼치시면 안 돼요. 아무리 대공께서 친우처럼 대한다고 한들 선을 잘 지키셔야 하고요. 그··· 소문을 믿는 건 아니지만, 조심해서 나쁠 건 없어요.”
코로망의 배웅을 받으며 마차를 타고 북쪽으로 이동했다.
아가레스의 영지까지는 약 사흘이 걸렸다. 아가레스의 영지, 잉그레드. 다른 말로는 제국의 끝이라 불렀다.
제국은 다른 나라와 국경을 맞닿은 게 아니라 거기에 버티고 선 아인종 때문에 영토를 넓히지 못하고 있었다.
또 영토를 넓힐 가치가 없기도 했고.
북부는 여름에도 눈이 녹지 않는다. 만년설이 깔렸었다.
하지만 지대나 기후를 고려하면 북쪽이라 해도 이렇게까지 사계절 내내 추위가 거센 건 말이 되지 않았다. 여기에는 몇 가지 설정이 들어가 있었다.
땅에 저주가 내렸다. 작물이 자라지 못하게 대지에 온기를 약탈했다. 땅의 힘을 자연히 발생하는 마물들이 흡수했다. 잉그레드는 사람이 살 수 없는 땅. 그럼에도 사람이 필요한 땅이었다.
마물 중에서도 특별한 놈들이 있었다.
마물은 대게 짐승에 가까운 모습이었는데, 이놈들만은 달랐다.
짐승보다 괴물에 가까운 것들. 몸에 흑마석을 품고, 그걸 심장처럼 쓰는 놈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성장했고, 땅의 힘을 훔치며 무한히 강해졌다.
놈들을 피해 땅을 물린다면 그것들은 점점 강해져 종국에는 막을 수 없게 되었다.
북부의 영주는 놈들 토벌하는 역할을 부여받았다.
황실에서는 면세와 여러 혜택을 제공했고, 아무렇게나 써먹을 수 있는 노예 같은 노역자들과 금품을 지원했다. 그러나 부족했다. 나날이 성장하는 마물은 눈덩이처럼 강해졌다.
쓰고 버릴 병사가 아니라 진짜 강자가 필요했다. 아가레스가 악마와 계약한 건 그 탓이었다.
목숨을 걸고 제 심장에 단검을 박아넣어 악마를 소환했고, 자질을 인정받아 악마의 계약자가 되었다. 그는 불사의 힘을 얻었다.
여기까지가 내가 아는 아가레스의 설정.
악마와 계약한 후에 아가레스는 굉장히 강해졌는데, 죽지도 않고 다쳐도 금방 회복했다.
병사들을 소모하는 게 아까웠던 아가레스는 매서운 마물들을 상대할 때면 병사들을 물리고 직접 그것들을 처리하고는 했다.
그러니 이번 토벌에서 그를 돕는다고 위험할 일은 적겠지 싶었다. 매서운 마물이 등장한다면 아가레스가 어련히 처리해줄 것이다.
그렇게 안심하고 있었는데, 북부에 다가갈수록 분위기가 괴상했다.
북부에는 상비군이 있었는데, 그들은 무장한 채 경계를 서고 있었다.
그들의 근무 태도가 예사롭지 않았다. 마물이 출몰하지 않을 후방인데도 군기가 바싹 들어서는 잡담조차 하지 않았다. 어느 군대를 찾아봐도 한낮의 경계에 저리 신중하지는 않을 텐데 싶어 기분이 아리송했다.
아가레스 때문인가?
흉흉한 소문에 병사들이 지레 겁먹고는 해이한 모습을 보이면 아가레스가 목을 칠 거라 겁을 먹은 건가? 아직은 잘 모르겠다.
나는 마차를 타고 더 나아가 아가레스의 영주성 인근에 도달했다.
말은 성이었지만, 사람이 살기 호화로운 집이라는 느낌은 아니었다. 높은 석벽이 울타리처럼 성을 감쌌고, 정원을 가꾸지 않은 내부는 건조했다.
북부의 저주에도 기어코 뿌리를 내리고 살아남은 고목들은 잎사귀 하나 내지 못하고 말라 비틀어져 있었다.
아가레스의 영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