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6화
원소 마법은 이름 대로 자연에 여러 원소를 다루는 마법이었다.
흔히 떠올릴 수 있는 불이나 물을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마법이 바로 원소 마법이었다. 이안은 원소 마법의 특징을 설명했다.
“원소 마법을 배우는 이들은 대개 한쪽 길만을 파고 그래. 마법을 다루는 실력보다는 가진 마나와 마력의 힘이 중요하거든. 그래서 하루 대부분을 연단과 명상을 하면서 보내지.”
“그러면 원소는 하나만 택하나?”
“그러는 마법사들도 있는데, 내가 볼 때 비효율적이야. 하나에 집중해도 조금 더 운용이 나아질 뿐인데, 그럴 바에 두루두루 쓰는 쪽이 좋지.”
이안은 내가 기초적인 원소 마법을 다루는 데 일주일이 걸릴 거라 말했다.
하지만 상황이 급해서일까, 온종일 마나 포션을 마시며 마법에만 매진하니 정확히 4일 만에 4원소를 모두 불러낼 수 있었다.
불과 물, 바람과 땅이 내 손끝에 따라 움직이며 춤을 췄다.
이안의 설명에 따르면, 원소 마법의 위력은 마나와 마력에 좌우된다.
그러나 그 활용 능력, 얼마나 빠르게 원소 마법을 움직이고, 얼마나 멀리 마법에 힘을 미치냐는 마법의 숙련도에 따라 좌우되었다.
제프린과의 대련이 가까웠다.
나는 마나 연단과 명상보다는 원소 마법의 숙련도를 높이려 애썼다.
“시작한다. 똑같이 따라 해.”
이안은 3m가량 떨어진 거리에 나를 마주 보고 섰다.
그의 손에서 수도꼭지를 비튼 듯 물이 힘차게 뿜어졌다. 이안은 한 방울도 남김없이 그 물을 움직이며 크게 흔들었다.
나는 이안을 흉내 냈다.
물을 뿜었고, 이안과 같은 동작으로 마법을 움직였다.
우리 사이에 투명한 벽이 있고, 그 벽을 기준으로 대칭되게, 데칼코마니처럼 물의 모양을 나타내려 노력했다.
눈가가 파르르 떨렸고, 숨이 차올랐다. 물 원소는 계속해서 흐르려는 성질이 있어 계속해서 움직여야만 다루기가 수월했다.
문제는 이안이 다음에 무엇을 할지 모른다는 것이었다. 이안은 내게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제멋대로 마법과 마법을 이었다.
물을 사방으로 펼쳤다가 뭉치기도 하고 하늘 높이 쏘아 보내고 되돌리기도 했다.
이안은 내 반응이 늦어도 기다려주지 않고 진도를 나갔다. 극도의 집중이 필요한 작업에 이마에 식은땀이 흘렀다.
불 원소를 제외한 원소 마법은 이런 식으로 학습하며 숙련도를 키웠다. 직접 마법을 다루며 이안과 동일하게 활용하려 시도했다.
그러다 마나가 떨어지면 마나 포션을 통해 다시 마나를 채웠다.
불을 제외한 원소는 그런 식이었다. 불은 달랐다. 불은 그 위력 덕분에 원소 마법 중에서도 특별한 위치를 차지했다.
한 원소를 택해 전문으로 익히는 마법사들은 백이면 백 불을 고르고는 했다. 그만큼이나 단일 원소로서의 위력이 뛰어났기 때문이다.
강풍이 불어봤자 머리카락이 휘날리고, 물을 끼얹어봤자 옷이 젖고, 돌팔매를 잘못 맞으면 죽을 수도 있으나 여럿이서 짱돌을 들어 던지는 것만 못했다. 불은 다르다. 잘만 활용하면 자그마한 불씨만 틔어도 불이 번지며 무언가를 죽이기 충분했다.
불은 방사하는 것만으로도 어마어마한 무기였다.
“뿜어! 강하게! 더 세게!”
정면으로 불을 내뻗쳤다.
주변에 튀지 않게 이안이 막아주는 터라 뒷감당은 생각하지 않고 불을 뿜는 데만 몰두했다.
놀랍도록 강력한 불길이 퍼졌다. 화염탄에 비하면 속도와 적중 시에 파기력은 부족했지만, 비교가 안 되게 범위가 넓었다.
불의 열기에 땀을 쏟으며 마나가 바닥이 날 때까지 마법을 시전했다.
“하아···. 하아···.”
벅찬 숨을 고르며 몸을 진정시켰다. 자기 수준 이상의 마법을 건드리려 하면 심장이 멎는 기분이었다.
몸의 말단에 체온이 떨어지고, 시야가 어지럽게 변했다. 그 상태로 한참을 버텼으니 몸 상태가 말이 아니었다.
“괜찮네. 실전에서 쓸 만해.”
“이거, 괜찮은 거 맞아?”
“그거면 됐어. 위력만 따지면 일반적인 원소 마법사들보다 훨씬 나아. 그 운용은 많이 부족하지만.”
“위력만 따졌을 때잖아. 네가 없을 때는? 주변에 불길이 튀면 어떡하는데?”
이안은 눈을 깜빡이더니 짝, 하고 박수했다.
“아.”
나는 불길을 제어하는 법을 추가로 배웠다.
불을 방사하는 것보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불은 특히나 제어하기 까다로웠다.
* * *
매일 아침, 몸을 일으키며 달력을 확인했다. 내일이면 제프린과 약속했던 그날이었다. 나는 아직 마탑에 남아있었다.
제프린과 싸워 절대 지지 않을 방법을 골몰하던 중에 기발한 수가 떠올랐다.
이를 연습하다가 날을 보냈다. 내일까지는 영지로 복귀해야 하니 오늘에는 마탑을 떠야 했다.
“그럼 마지막으로 한번 하고 갈까?”
“할 수 있으면, 자, 해봐.”
이안은 나를 비웃더니 하늘을 향해 불을 뿜었다.
이제까지 이걸 연습할 때는 상대적으로 쓰기 쉬운 원소를 썼는데, 느닷없이 단계를 몇 단계나 건너띄웠다. 나는 군말 없이 이안을 따라 불을 뿜었다.
이안이 뿜어낸 불길은 사방으로 퍼지며 분수처럼 불씨를 퍼트렸다. 꽃이 개화하는 듯한 웅장함이 있었다. 이안은 불씨가 땅에 닿기 직전 다시금 손안으로 불러들이며 불길을 제어했다.
놀라운 묘기에 감탄하고 이를 흉내 내려 시도했다. 실패해도 뒤처리는 이안이 해주겠지 싶어 부담 없이 불을 뿜었다.
하늘을 향해 불을 발포한다. 그 속도는 이안에 비하면 현저히 느렸다. 이게 내가 제어력을 잃지 않고 해낼 수 있는 최선이었다. 불길은 굼떴음에도 그 이글거림은 무언가를 태우고 위협하기엔 족했다. 그대로 불길을 쪼겠고 펼쳤다.
불길이 갈라졌다.
손이 덜덜 떨렸고, 이가 딱딱 부딪쳤다. 의도하지 않은 방향으로 튀어 나가려는 불을 막으려 부단히 애썼다.
불을 퍼트렸다. 이안이 했던 것보다 덩어리가 컸고, 불씨의 수가 작았다. 애초에 이안은 한 마탑의 주인에 오른 대마법사였다. 내가 똑같이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럼에도 동작의 수행 자체는 성공했다. 퍼트렸던 불씨를 그대로 모아 흡수했다. 나는 회수한 불을 탈탈 털어 꺼트렸다.
“잘했어.”
칭찬이 박한 이안도 흡족한 듯 웃으며 머리를 끄덕였다. 내가 봐도 잘 하긴 했다. 그래, 이거면 된 거지. 더 바랄 게 없는 수준에 올랐다. 이제는 아이작으로 돌아가려 한다. 제프린과의 대결을 마친 후 저택에서 며칠 휴식한 후에 아카데미로 돌아갈 것이다.
내가 떠나면 이안은 어떻게 할까?
그가 아카데미에 입학하고 출석했던 건, 죽은 카테인의 유언 때문이었다. 정확히는 이안이 카테인이 그러길 바랐을 거라 판단한 탓이었다. 지금도 그럴까?
“곧 있으면 학기가 시작되는데, 너는 어떻게 할 거야?”
“가야지.”
이안은 당연한 걸 왜 묻냐는 듯한 태도로 답했다. 굳이 이유를 댈 필요가 없다는 듯한 대답에 그런가 보다 싶었다.
“그럼 그때 보자.”
이안은 내 머리를 향해 손을 뻗어 고깔모자를 챙겨갔다. 그는 주먹으로 내 가슴을 툭 치더니 말했다.
“건강하게 보자. 꼭 이기고.”
* * *
마탑에서 나와 아이작으로 발길을 향했다. 시간을 고려하면 자정까지는 힘들 듯하고, 내일 새벽에나 도착할 듯했다. 약속은 내일이었으니 돌아가 잠시 쉰 후에 제프린을 만나면 될 듯했다.
곧 있으면 아카데미의 개학이었는데, 이를 떠올리니 한숨이 절로 나왔다.
방학 때는 펑펑 놀기만 하려고 했다. 꾸준히 즐길만한 취미도 찾고, 온종일 늘어지게 잠만 퍼 자면서 몸에 피로도 풀어주고, 현대에서 못 먹어 본 맛난 음식이 뭐가 있나 둘러보며 시식하려 했다.
“하아···.”
의도치 않게 방학을 알차게 보냈다. 가문으로 돌아와서 가주 자리를 튼튼하게 다지고, 잉그레드를 방문해 아가레스와의 약속을 지켰다. 그 후 마탑에 가서는 코피 쏟게 공부하며 마법을 익혔다.
이제는 다시 영지로 돌아가 제프린과 싸워야 하는데, 그와의 대련을 마치고 며칠이 지나면 다시금 아카데미의 개학이었다. 억울했다. 아카데미에서 그렇게 열심히 했으면 됐지, 방학 중인데 이게 뭐란 말인가.
그래도 이번 대련까지만 끝내면 정말로 끝이었다. 며칠 푹 쉬면서 몸과 마음을 달랜 후에 아카데미로 가자. 이후의 아카데미 생활은 예전처럼 빡빡하지 않을 거다. 이제까지 뭣 하나 크게 실패하지 않은 덕에 미래는 탄탄했다.
밤이 깊어 오자 눈꺼풀이 감겨왔다. 나는 마차에서 눈을 붙이며 아이작에게 도착하기를 기다렸다. 마차가 이따금 덜컹거릴 때면 잠이 깨 피곤한 잠자리였다.
“저기요, 도로가 공사 중이라 하는데··· 돌아가야 할 듯합니다.”
반쯤 잠든 내게 마부가 말했다. 나는 그러라 대답하고 다시금 눈을 감았다. 이후 마차는 부드러운 길을 갔는지 아니면 내가 깊게 잠이 들었는지 나는 아침이 돼서야 눈을 떴다.
“여기가 어디지?”
마부는 날 보더니 당황한 듯 눈을 크게 뜨며 머리를 긁적거렸다.
“지난밤에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도로가 망가져 펠릭스 쪽으로 돌아간다고요. 그래도 오늘 자정쯤에는 도착할 겁니다.”
속으로 혀를 차면서도 마부가 무슨 잘못이 있겠거니 싶어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영지의 저택에 도착한 건, 마부의 말대로 그날의 자정쯤이었다. 일단 날이 바뀌기 전에 도착했으니 약속 자체를 어긴 건 아니었다.
그러나 뭐든지 ‘적당히;라는 게 있는 법이었다. 아침밥 먹자마자 싸울 건 아니고, 해 떨어진 이후에 싸울 것도 아니니 이미 우리는 점심쯤에 만나자고 말을 맞춘 셈이었다.
차라리 저택 안에서 쉬고 있었다면 좀 나았으련만, 마차에서 내리니 정문에 한 인영이 보였다.
허리춤에 칼을 차고 벽에 기대섰는데, 얼굴에는 짜증이 가득했다. 그간 고생을 좀 했는지 얼굴은 야위었는데, 머리카락이 좀 자랐다.
저택 쪽으로 걸어가니 제프린이 벽에서 몸을 떼며 고개를 들었다. 그와 눈이 마주쳤다. 어지간히 오래 기다린 듯했다. 눈동자가 이글거리는 꼴을 보아하니 화가 단단히 난 듯했다.
“오래간만이야. 잘 지냈지? 백사자 기사단에 들어갔다는 건 들었어. 잘됐네. 제국 제일의 기사단이잖아.”
“네. 오래간만입니다. 안색이 밝으신 걸 보아하니 그간 잘 지내신 듯합니다.”
딱딱.
제프린은 발바닥으로 땅을 두어 번 두드린 후에 말했다.
“이야기는 나중으로 미루고, 우선 할 일부터 마치는 게 어떻습니까?”
“괜찮겠어? 오래 서 있었던 거 같은데. 배고프지 않아? 시간도 늦었는데 내일 하는 게 어때?”
“아뇨, 금일로 날을 잡았으니 금일 끝내길 원합니다.”
나는 하늘을 올려다봤다. 조그맣게 뜬 초승달이 짙은 구름 사이로 간신히 땅을 밝힐 뿐 몹시 어두웠다.
“그럴까?”
제프린의 말에 반색하며 냉큼 받았다. 제프린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내게 터무니없이 유리한 조건이었다. 제프린은 한참 서 있는답시고 피곤할 거고, 배도 고플 테다.
제프린이 말을 물리기 전에 그를 연병장으로 이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