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6화
내게 검술을 가르치는 카타리나는 아카데미의 교수였다. 봉급이 그리 많지는 않아도 일단은 교습의 대가로 돈을 받고 있다는 점이 중요했다. 그녀는 아카데미에서 봉급을 받고 내게 검술을 교육했다.
그러면 이안은?
그는 무상으로 내게 마법을 가르쳤다. 그 과정에서 그의 귀한 지식이 퍼짐은 기본이고, 그의 시간을 꽤 빼앗았다. 그는 왜 내게 마법을 가르칠까? 왜?
그 나름대로 뭔가 이유가 있겠지만, 나로서는 모를 노릇이었다.
이안로부터 마법을 배우길 몇 달째.
내심 부담스러웠다.
카풀을 한다 치면 적어도 기름값은 내야 하는 법인데, 나는 이안한테서 받기만 했다.
나도 뭔가를 하나 해줘야 하는데, 뭘 해줄까?
돈으로 보상하기에는 액수가 너무 커졌다. 이안이 직접 해주는 교습에 값어치가 얼마나 될까? 이걸 경매로 낸다면 어마어마한 액수가 나올 거다.
그렇다고 이걸 후려칠 수도 없는 노릇이니 제값을 쳐줘야 할 텐데 간단히 오고 가기에 지나치게 큰돈이었다.
그러면? 돈 대신에 물건으로 해줄까?
이안은 크게 기호라는 게 없는 놈이라서 무언가를 선물하기도 어려웠다. 해서 그에게 밥이나 한 끼 해주기로 정했다.
여기 음식이야 내가 해줄 바에 비싼 식당을 한 바퀴 도는 게 나았다. 내가 제대로 된 요리사였던 것도 아니고, 흔한 자격증 하나 없었다.
해서 이안이 못 먹어본, 못 먹어볼 음식을 먹이고 싶었는데 그 메뉴가 고민이었다.
솔직하게 말해 나는 한식이 매력적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내가 한국인이라 좋아했을 뿐이지 다른 국적으로 태어났다면··· 글쎄, 구태여 먹지는 않을 듯했다.
늘 그렇듯 이런 문제는 당사자의 의견이 가장 중요한 법이니 이안을 찾아가 말했다.
“너한테 너무 받기만 한 거 같아서 내가 부담스럽단 말이야?”
“네가 뭘 받았는데 부담스러워?”
“마법 배웠잖아. 너한테.”
“그래? 부담스러우면 하지 말까?”
“아니, 그럴 거까지는 없고. 그냥 뭐라도 하나 해줘야겠다 싶어서 밥 한 끼 하려는데, 어떻게 생각해?”
“해줘. 그럼.”
“뭐 먹고 싶은데? 아, 내가 음식을 설명해줄게. 듣고 괜찮은지 의견을 말해줘.”
이안이 먹을 일 없는 음식이자 내가 해본 적 있거나 시도해볼 만한 음식을 고르자니 한식뿐이었다.
문제는 대체로 손이 너무너무 많이 가고, 도저히 내가 할 수 없는 영역이 많았다.
예를 들면 간장이 그랬다.
여기저기 빠지지 않고 다 들어가는 양념이었는데, 이걸 내가 어떻게 만들겠는가?
이놈 하나 때문에 벽에 쾅 부딪힌 듯 막막했다.
삼겹살과 백숙처럼 상대적으로 재료를 구하기 간편하면서도 누구나 좋아할 음식이 있기는 했다. 다만, 그 둘을 선택지에 넣지 않은 건 이게 맞나 싶어서였다.
삼겹살은 그 부위에 고기를 불에 구웠을 뿐이고, 백숙은 닭을 물에 삶았을 뿐이지 않나?
이안에게 이번 기회가 아니면 못 먹어볼 음식을 해준다는 의미가 퇴색되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삼겹살과 백숙을 빼고 나니 남는 게 없었다.
비슷하게 치킨은 닭을 기름에 튀겼을 뿐이고, 계란말이 따위에 달걀 요리는 흔하고, 갖가지 음식들이 스쳐 지나갈 때마다 그게 안 되는 이유가 뒤따랐다.
그렇게 힘겹게 힘겹게 고민하다 결론을 내렸다.
이대로 가다가는 끝도 없겠구나.
치킨으로 하자.
음식이란 게 성의가 중요한 법이지만, 꼭 드는 데 노력과 시간이 크다고 더 성의 있었다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음식에서 가장 중요한 게 뭔가? 바로, 맛이었다.
내가 해낼 수 있는 것 중에 치킨만 한 게 없었고, 치킨의 설명을 들은 이안도 고개를 끄덕였다.
손질된 닭을 사와 토막 내고 밀가루 옷을 입히며 불을 어떻게 할까 고민했다. 튀김 요리가 다 그러하듯 바삭해야 제맛이 나는데, 불이 약하면 닭이 눅눅해졌고, 불이 세면 타버렸다.
방법은 일단 닭을 한 번 태워보는 것이었다. 화끈하게 닭을 시꺼멓게 태운 후 차근차근 불을 낮췄다. 이 방법으로 닭이 타지 않는 지점이 가장 바삭하게 닭을 튀길 수 있는 온도였다.
치킨을 깔끔하게 태우기를 3마리째.
이거를 뭐랑 먹어야 할까, 생각이 들었다. 흔히들 치킨은 맥주라고 했다. 맥주는 보리로 만든 술. 여기에도 흔한 주류였으니 쉽게 구할 수 있었다.
으음.
괜히 색다른 음료를 고집하는 건 멍청한 듯했다. 대중적으로 어울리는 조합이었고, 간단히 습득할 수도 있는데 괜히 다른 짓을 하지는 말자.
닭을 튀길 때 불의 조절은 장작의 수로 했는데, 가만히 보고 있자니 장작마다 불의 위력이 달랐다. 대충 아무 장작이나 얻어와서 그런지 장작마다 나무 종류가 다른 게 원인이었다.
차라리 마법을 쓰는 게 낫겠다 싶었는데, 실제로 그게 맞았다.
아니, 오히려 훨씬 편하기까지 했다.
마나를 투입하는 양을 조절하는 것만으로 불길을 일정하게 유지할 수 있었다. 처음부터 이럴 걸 그랬다고 자책하며 다시금 닭을 태웠다.
어느 시점부터는 닭을 한 마리 다 넣기보다는 어차피 태울 게 뻔하다 싶어 반 마리에서 반의반 마리로 줄였다.
다시금 닭을 태우고 있을 때였다.
밖이 소란스러웠다.
정확히는 누군가 비명을 질렀고, 뭔가 폭발하는 듯 콰왕! 콰앙! 울렸다.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손을 깨끗하게 씻고, 허리에 칼을 차고는 밖으로 나왔다.
저 멀리에서 학생들이 힘껏 달리고 있었다. 복장도 제각각이었고, 열을 맞추는 것도 아니었다. 꼭 뒤에서 뭔가 쫓아오는 모양새에 관자놀이 쪽에 두통이 찌릿했다.
으음.
이게 무슨 일일까, 아무리 낙천적으로 생각해봐도 결론은 하나였다.
아가레스가 등신이었다.
* * *
내 몸은 내가 잘 알아.
아가레스는 몇 번이나 그렇게 말했다. 괜찮다고 큰소리 뻥뻥 치며 자신했다.
내 몸은 내가 잘 아아, 그건 아주 멍청한 놈이나 할 소리였다.
자기 몸을 자기가 잘 알면 이 세상에 의사는 왜 있겠는가? 그럼에도 아가레스를 믿은 건, 표정이 워낙 그럴듯했으니까. 흑마력과 관련된 거라면 전문가일 테니까.
아가레스라면 그래도 믿어도 되겠지, 안일하게 넘어갔다.
내가 멍청했다.
개구리는 냄비에 물이 뜨거워져도 그것을 느끼지 못한다. 아가레스도 마찬가지였다.
아가레스는 점점 더 아마데우스의 영향력이 강해져 가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래서 이와 같은 사태가 벌어졌다.
지나가는 학생 하나를 붙잡고 상황을 물어보니, 아가레스가 폭주했고, 제프린이 이를 막고자 시도했단다.
상황 설명을 들어보니 기분이 묘했다.
일단 한심한 아가레스를 뒤로 넘기니 제프린이 남았다.
제프린이 살았을까? 그게 아니면 죽었을까?
확실한 건 당장에 살아 있더라도 얼마 가지 않아 죽을 거란 점이었다.
지금의 제프린은 약했다.
아가레스를 상대로, 그것도 아마데우스가 반쯤 강림한 상태에 아가레스를 상대로 버티는 건 불가했다. 당장이야 살아 있더라도 얼마 가지 않아 곧 목이 땅에 떨어질 것이다.
이 상황에서 나는 어떻게 움직여야 할까?
제프린을 도우러 가야 하나? 그를 돕는 것 자체는 가능했다.
아마데우스의 진명을 외치는 것만으로 강림 중인 놈의 힘은 확연히 떨어진다. 제프린과 둘이서라면 다른 누가 올 때까지 버티는 것 정도는 피해 없이 할 수 있었다.
그래. 제프린을 도울 순 있었다. 그 위험도는 적었다.
그러면 내가 제프린을 도와야 할까?
이건 잘 모르겠다. 제프린이 죽는다면 아무래도 내게 이로웠다.
그는 비숏의 가장 강한 패였다. 현재로서는 비숏의 유일한 무력이었다.
가만히 있기만 하면 그게 소멸하는데, 내가 왜 나서서 제프린을 돕겠는가?
나와 비숏의 사이만을 고려하면 그러했다.
그러면 제프린은 나와 무슨 관계인가?
친구는 아니었다. 서로 종종 얼굴을 맞대기는 했어도 그것뿐이었다. 한 번도 친교를 나눈답시고, 뭔가를 한 적은 없었다. 가끔 만나 하는 대화라 해봤자 네가 강하니, 내가 강하니, 다음에 싸우니 어쩌니 하는 살벌한 것뿐이었다.
어떻게 한다냐.
“으음···.”
고민의 시간은 짧았지만, 머리가 빙글빙글 돌았다.
답을 지었다.
아무래도 나는 호구인 듯했다. 나는 발걸음을 옮겼다.
학생들이 빠져나온 길목을 그대로 올라가니 아카데미의 식당 쪽이었다.
식당 건물에는 불이 붙어 검은 연기가 풀풀 휘날렸다. 연기 너머에서 째앵, 째앵 두 금속이 부딪히는 충돌음이 퍼졌다.
눈에 힘을 주니 연기 너머로 아가레스와 싸우는 제프린이 보였다.
제프린은 다행히 자기 주제를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 듯했다. 상대를 쓰러트리겠다는 심산은 전혀 없이 공격을 막아내기에만 급급했다. 아가레스가 다른 곳으로 돌격하지 않게 시선만을 끌며 최소한으로 칼을 부딪혔다.
물론 그렇다고 제프린이 안전하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파아앙! 파아앙!
아가레스에 빙의한 아마데우스는 괴물 같은 완력과 속도로 제프린을 몰아쳤다. 그나마 막 강림한 아마데우스가 제 몸을 제대로 다루지 못하고, 검술에는 미숙하다는 게 제프린의 버팀목이었다.
그것도 아니었다면 불사의 몸으로 제프린을 압박하는 아마데우스가 이미 피 맛을 보았을 것이다. 제프린은 아슬아슬한 틈으로 겨우겨우 목숨을 부지했다. 그가 죽기 전에 도와주자.
“아마데우스!”
나는 악마의 진명을 외쳤다.
한 번도 말에는 힘이 있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 이번만은 특별했다.
아마데우스의 이름, 음절 하나하나가 또렷하게 퍼졌다. 이게 뭘까. 평소 말하던 대로 소리를 냈는데, 공기 중에 우웅 진동했다.
내 호명에 아마데우스는 몸을 정지했다. 온몸에서 뿜어내던 사악한 흑마력의 연기가 흩어졌다.
기계처럼 어색한 동작으로 아마데우스가 몸을 돌려 나를 봤다.
안구가 새까맣다.
눈에서 검은 연기를 풀풀 풍기는 게 여간 매서운 게 아니었다. 그의 얼굴이 내게 고정됐다.
역시나, 진명을 불리는 건 악마의 역린이 맞았다.
놈이 나를 향해 달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