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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판 속 악당이 되었다-77화 (77/125)

제77화

“내 이름을 어떻게 알았지? 어떻게? 어떻게?”

목소리를 억지로 갈아내서 내는 듯 아마데우스의 목소리는 음이 몹시 낮았다. 그는 내 쪽을 향해 다리를 움직였다.

쿠웅. 쿠웅. 쿠웅.

아마데우스의 발걸음은 무거웠다. 막 걷는 방법을 배운 코끼리처럼 땅을 찍으며 한 걸음씩 걸어왔다. 다리를 놀리는 건 느렸지만, 보폭이 워낙 커 나와 아마데우스 사이의 거리가 성큼성큼 줄었다.

“어떻게? 누구를 통해? 아니, 이 땅에 마족 따위가 내 이름을 알 리가 없을 텐데. 너는 뭐지? 내 이름을 어떻게 알아낸 거지? 대답해라.”

제프린에게 눈길을 보냈다. 좀 도와달라고. 당장 뒤에서 아마데우스를 찌르라고.

나는 제프린과 마음을 맞춰 합공했다. 마탄을 콩콩 쏘며 허리춤에 준비해온 칼을 뽑았다.

퍼엉! 퍼엉!

아마데우스는 방어조차 하지 않고 무방비한 상태로 마탄을 감당했다. 그의 몸에 구멍이 뚫렸다. 구멍 사이로 시커먼 연기가 세어나았고, 불로 살을 지지듯 이글거리며 살점을 채웠다.

이거 이길 수 있을라나?

아직은 잘 모르겠다. 마탄이 뚫은 상처를 보니 재생 속도가 확연히 느렸다. 아마데우스가 아닌 아가레스라면 즉시 회복했을 상처를 느릿느릿 살점을 채웠다.

아마데우스가 아가레스보다 회복력이 약할 리는 없겠고, 순전히 진명이 까발라졌기 때문이다.

으음. 결론 나왔네.

할 만했다.

뒤에서부터 제프린이 아마데우스의 몸에 칼을 박아 넣었다. 아마데우스는 그걸 무시하고 내게 다가왔다. 놈과 내 칼이 충돌했다. 진명이 알려져 놈의 흑마력이 약해진 덕에 내 칼의 검기가 놈의 칼을 밀어냈다.

조금만 더 하면 분지를 수도 있을 거 같은데.

난 연속해서 놈의 이름을 몇 번인가 더 외쳤는데, 효과는 없었다. 진명을 쓰는 건 일회용인 듯했다.

제프린은 뒤에서 열심히 아마데우스에게 칼질했다. 제프린이 칼이 한 번 휘둘러질 때마다 검은 연기가 풀풀 풍겼다.

이거 위험하다.

정확히는 내가 위험했다. 아마데우스의 역린을 건드린 탓인지 그가 집중적으로 나를 노려왔다. 나는 땅을 박차고 뛰었다. 있는 힘껏 도주하자, 아마데우스가 나를 추격했다. 뒤를 보지 않은 채 뛰며 마탄을 날렸다.

조준을 하지 않은 채라 그런지 마탄은 전탄 빗나갔다.

제프린에게 좀 막아보라 소리치자, 그도 열심히 하고 있다며 대답했다.

우리는 꽤 오래 빙글빙글 돌며 술래잡기를 했다. 따라잡히나 싶었는데, 제프린이 멍청했던 판단을 수정했다. 등을 노리는 대신에 하체 쪽을 찌르고 벤 덕에 아마데우스의 기동력이 떨어져 살았다.

뒤를 돌아보니 아마데우스는 느릿하게 몸을 회복하고 있었다. 아직 강림 중인지라 오히려 아가레스보다도 약한 듯했다. 원래에 그라면 나와 제프린이 함께 덤비더라도 맨몸으로 때려잡았을 것이다.

게다가 칼질을 하는 폼이 영 엉성했다.

푸우욱!

뒤에서부터 아마데우스의 목을 뚫고 칼이 튀어나왔다. 제프린의 칼이었다. 그가 뒤에서부터 아마데우스의 목에 칼을 박아넣었다. 거기서 멈추지 않고, 아마데우스의 목을 반쯤 썰었다. 놈의 목이 달랑거렸다.

그럼에도 상처를 무시하고, 나를 쫓아오는 꼴을 보아하니 영 내가 미운 게 아니었다. 아무래도 내가 자기의 진명을 알고 있는 게 걸리는 듯했다. 그렇다면 확실하게 해야지.

“제프린! 저놈의 정체는 악마다! 마계에서 넘어온 악마야! 이름을 불리면 힘이 약해지니까 외어둬라! 저놈의 이름은 아마데우스!”

이렇게 되면 제프린도 나도 똑같은 처지였다. 제프린도 이제 아마데우스에게 요주의 인물로 꼽혔다. 그 덕일까? 아마데우스는 몸을 그대로 돌려 제프린을 덮쳤다. 땅을 박차고 튀어 나가며 미숙한 솜씨로 칼을 휘둘렀다.

파앙! 파앙!

뒤에서 마탄을 쏘아 견제했는데, 아마데우스는 아무렇지도 않게 견뎠다.

휘이익! 휘이익!

보폭이나 칼을 휘두르는 건 아마데우스 쪽이 더 빨랐는데, 그간 똥으로 훈련한 건 아닌지 제프린이 요리조리 잘 피하고 막았다. 두 칼이 충동했을 때 힘으로 뒤로 물러서며 스텝을 밟았다. 사자로부터 도망치는 가젤처럼 불규칙하게 움직이며 효율적으로 시간을 끌었다.

파아아앙!

그때 내가 화염탄을 쏘았다. 화염탄은 아마데우스의 등과 충돌하며 폭발했다. 아마데우스는 그대로 날아가 바닥을 몇 바퀴 굴렀다.

고개를 들자 제프린과 눈이 마주쳤다. 아마 똑같은 생각을 했을 거다. 이거 보기보다 약한데?

힘도 세고, 몸놀림도 재빨랐다. 거기에 암만 상처를 입어도 재생하니 스펙만 따지면 우리 둘이 쳐다보기도 힘들었으나 애가 좀 바보 같았다.

막 새로운 육체를 얻은 탓에 거기에 적응을 못 했고, 칼을 쓰며 싸우는 건 처음인 듯했다.

우리는 아마데우스를 중심으로 빙글 돌며 각자 한 대씩 치고 빠지기를 반복했다. 몇 차례 목을 잘라냈고, 배에 구멍도 빵빵 뚫었다. 그때마다 아마데우스의 회복 속도는 늦어져 조금만 더 하면 되겠다 싶었다.

우리는 몇 차례 더 반복하며 아마데우스를 찌르고 구멍을 뚫었다. 그러던 와중이었다.

쿠우우우우웅! 쿠우우우우우웅!

하늘에서 벼락이 떨어져 아마데우스를 격추했다.

이안이었다.

#

식당에서부터 도망치던 학생들은 시간이 지남에도 아가레스의 추격이 없자 뒤돌아 상황을 파악했다. 하늘에서는 벼락이 쿠우웅 떨어졌다. 대체 무슨 일인 걸까. 그들은 돌아가서 상황을 보고 싶다는 궁금증을 억지로 죽였다.

아마데우스에게 몸을 뺏긴 아가레스는 그 안에서 바깥의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어이가 없게도 재밌었다. 제 육체에 구멍이 뻥뻥 뚫리고, 살점이 갈라지며 피를 뚝뚝 흘렸지만, 보고 있으면 웃음이 실실 나왔다.

제 몸을 빼앗은 아마데우스가 골탕 먹는 꼴이 퍽이나 우스웠다. 제프린과 라파엘은 호흡을 맞춰가며 아마데우스를 둘러쌓고 협공했다. 그게 잘 먹혀들었다.

그리고 마법사가 나타났다. 사람 얼굴을 잘 외우지 못하는 아가레스도 익숙한 놈이었다. 제게 벼락을 때렸던 그놈, 이안이었다.

놈은 벼락을 떨구는 게 장기인가보다. 그의 손짓에 따라 하늘에서 벼락이 쿠우웅, 쿠우웅 떨어졌다.

“으아아아아악!”

아마데우스는 벼락을 맞을 때마다 비명을 질렀다. 그는 입가가 찢어질 기세로 입을 벌렸는데, 목구멍에서부터 검은 연기가 솟았다.

이안은 기계처럼 벼락을 떨궜다. 쿠우웅. 으아아악. 쿠우웅. 으아아악.

그렇게 아마데우스가 고통에 신음하는 걸 보고 있자니 그 통각이 아가레스 본인에게도 미쳤다.

아아.

아마데우스가 도망치는구나.

아가레스는 벼락을 몇 번이나 더 맞고서야 정신을 차렸다.

“정신이 드십니까? 몸은 좀 괜찮습니까?”

“조금 따끔한걸.”

“하아…. 몸을 다시 찾으셔서 다행입니다.”

라파엘은 아가레스에게 지금 당장 계약을 파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가레스는 이를 수락했고, 그 자리에서 바로 벼락을 맞기로 정했다.

이안의 눈이 빨갛게 물들더니 빛을 뿜었다. 규모가 큰 마법의 준비였다. 이안을 중심으로 마나가 빨려 들어갔다.

이를 본 아가레스는 심호흡하고 말했다.

“잘 때려주게. 나 안 죽게. 그리고 큰 후유증 없게.”

“죽지는 않도록 노력할게. 죽을 거 같으면 손들어.”

아가레스는 마음에 준비를 끝낸 듯 두 눈을 감았다. 그리고 백색의 벼락이 회색 구름에서 쳐 내렸다. 하얀 섬전이 번쩍이며 천둥을 울렸다. 꾸릉! 꾸릉! 꾸릉! 쉬지 않고 벼락이 떨어지며 아가레스를 노렸다.

아가레스의 전신에서 검은 연기가 뿜어졌다. 피부가 죽고, 살아나기를 반복했다. 아가레스는 비명을 지르는 게 꼭 지는 거라 여기는 듯 입술을 깨물며 버텼다. 그는 작살에 꿰인 생선처럼 팔딱거렸다.

그렇게 이안이 아가레스를 한참을 지져 아마데우스의 영향력을 부수었다.

마지막으로 번개가 내리쳤을 땐 더는 아가레스 몸에 난 화상 자국이 아물지 않았다. 겨울철에 나뭇가지를 닮은 붉은 자국이 그대로 피부에 남았다.

아가레스는 그대로 바닥에 쓰러져 숨을 헐떡거렸다. 그는 하늘을 보며 말했다.

“하아···. 드디어 끝난 건가?”

라파엘은 속으로 손뼉을 쳤다.

와. 저걸 버티네.

라파엘은 벼락을 맞아본 적이 없어 자세히는 몰라도 그게 무척 아프다는 것쯤은 알았다. 그런데 아가레스는 쉬지 않고, 벼락을 맞으며 끝끝내 견뎌냈다. 그의 부족한 판단력 때문에 이번 같은 일이 터졌지만, 인내심만큼은 존경스러웠다.

아가레스는 몸에 남은 전류가 짜릿한지 몸을 부르르 떨었다.

“고생하셨습니다. 바로 신관을 찾아 가보시는 게 좋을 듯하네요.”

아가레스는 다리를 덜덜 떨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래, 그러지. 자네도 날 막아준다고 고생했어. 고맙네.”

“아뇨, 뭘.”

아가레스는 이안을 향해 말했다.

“마법사, 자네에게도 일단 고맙다고 해두지.”

하고 그는 자리를 떴다. 발걸음은 느릿했다. 이제 그는 모든 힘을 잃었다.

원작과는 끝에서 끝으로 멀어졌다. 라파엘은 멀어지는 아가레스를 보며 이걸 기뻐해야 하나 싶었다. 일단은 최초에 목표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그의 생존에 유리한 사건이었다.

아가레스가 힘을 잃었으니 그럴 일이 없겠다 싶지만, 혹여나 비숏과 이어지더라도 라파엘을 죽이기에는 힘이 부족했다. 카르테아에 더해 이름 하나를 더 지웠다.

대신에 라파엘로서는 아쉽기도 한 게 아가레스는 퍽 사이가 가까웠다. 친구라 칭할 법했다. 라파엘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발 벗고 나서줄 수도 있었다. 그러니 그가 힘을 잃었다니 입맛이 썼다.

그렇게 아가레스의 뒤통수를 구경하는데, 옆에 있던 제프린이 말했다.

“절 왜 도와주신 겁니까?”

라파엘은 제프린이 이걸 꼭 물어볼 줄 알았다. 뭐라 대답해야 할지 고민하면서 여기까지 왔는데, 마땅한 해답을 찾지 못했다. 그래서 솔직하게 말했다.

“그러게. 내가 멍청해서 그런 가봐.”

나중에 이 결정을 후회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좀 더 침착하게 판단했어야 했는데. 상황이 급하다 보니 마음 가는 대로 몸이 먼저 움직였다.

제프린은 머리를 끄덕였다.

“예, 그렇습니다. 그대로 뒀다면, 그 악마의 진명을 외치지 않으셨다면 전 죽었을지도 모릅니다. 목숨 걸고 덤빌 수도 있다고 말했던 게 며칠 전에 일인데···.”

“그러니까.”

“일단은 감사합니다. 도와주셔서 살았습니다.”

“고마우면 보답해. 나중에.”

“예, 할 수 있다면 꼭.”

제프린까지 보냈고, 남은 건 이안이었다. 그가 멀뚱히 서서 나를 보고 있었다. 이번에도 그의 도움을 받았다. 그는 별 의미 없다고 여기는 듯했는데, 이것도 빚이라면 빚이었다.

“전에 말했던 음식 기억나?”

“튀김?”

“어. 지금 먹으러 가자.”

이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 * *

라파엘은 이안은 데리고 돌아와 닭을 튀겼다. 아가레스를 막으러 가기 전에 몇 번이고 불 온도를 확인해둔 덕에 타지 않고, 바삭하게 잘 됐다. 마실 거리로는 맥주를 채택했다. 라파엘은 닭과 맥주를 이안에게 내밀었다.

“나 술 처음이야.”

원작을 읽어 아는 정보였다. 이안과 맥주를 마시며 치킨을 먹었다. 맛은 퍽 좋았다.

간이 덜 된 탓에 프렌차이즈의 그 맛에 비할 바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치킨이라 박박 우길 수준은 됐다.

“이거로 끝이야?”

“음··· 좀 그렇긴 하네.”

고작 닭 한 마리로 퉁 치는 건 사기꾼 같다 싶었다.

닭을 튀기는 데, 든 시간도 비용도 너무 적었다.

“그럼 가끔 생각나면 말해. 그때마다 해줄게.”

“어.”

우리 둘은 대화를 끊고 닭만 뜯었다. 그러던 중이었다. 누군가 기숙사 방에 문을 두어 번 두드렸다.

“안에 있습니까?”

비숏의 목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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