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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판 속 악당이 되었다-80화 (80/125)

제80화

아가레스를 둘러싼 대부분의 소문은 우습지도 않은 가십거리였다.

그가 괴물도 아닌데, 사람 고기를 대체 왜 먹고, 심심풀이로 사람 목을 왜 썰겠는가?

조금만 머리가 돌아가도 코웃음을 칠 이야기였다.

그러나 아주 근거 없는 소문은 아니었다.

아가레스는 손속이 매웠다. 생명의 소중함을 경시했고, 적이라고 생각되는 즉시 공격했다. 이 과정에서 적 다수를 만들었다.

“아가레스가 힘을 잃은 게 분명합니다.”

“확실한 정보야? 이게 거짓이면 우리 몽땅 망하는 거야.”

“이래 보여도 제가 마탑 출신이지 않습니까? 흑마법에도 나름대로 조예가 있습니다. 알려지다시피 아가레스는 불사의 힘을 지녔습니다. 그런 권능을 가진 악마는 몇이 없고, 인간과 계약할 놈이라면 딱 하나 아마데우스뿐입니다.”

“그거랑 놈이 힘을 잃었다는 게 무슨 상관인데?”

“식당에서 벌어진 사건을 보면 결국에는 일이 터진 겁니다. 아마데우스가 강림했습니다.”

“근데 왜 아무도 안 죽어? 이 멍청아.”

문책을 들은 남자는 이마에 맺힌 땀을 훔쳐내고는 말했다.

“저도 끝까지 지켜보지 못해 그것까지는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분명한 건 아가레스가 아마데우스와 계약을 끊었기 때문에 멀쩡하다는 거죠. 이제 놈에게는 힘이 없습니다.”

“흐음···. 좋아. 그럼 가볍게 확인해본 다음에 움직이자.”

“확인하다니요? 어떻게요?”

“찔렀는데 죽나 안 죽나 보자고.”

* * *

아카데미는 학생 외에 외부인이 활동이 제한되었다.

학생의 가족, 혹은 아카데미와 관련된 직무를 맡은 게 아니라면 출입조차 까다로웠다. 해서 각지 가문에서 부담 없이 자녀들을 입학시켰다.

그럼에도 이따금 사건 사고가 발생했다.

아카데미 밖에서 만들어진 은원 때문이었다. 나는 수업을 듣기 위해 강의실로 이동하는 중에 흉흉한 분위기를 느끼고는 무슨 일이 터지기는 했구나, 직감했다.

가능하면 나비에를 찾아가 사건의 경위를 듣고 싶었는데 수업이 가까웠다.

이번 학기에도 마수 사냥과 관련된 강의를 신청해 강의실로 입장했다. 평소라면 어울리지 않게 성실한 아가레스가 맨 앞자리를 지키고 있을 텐데, 어쩐지 자리가 비웠다.

옆에 앉은 레오에게 묻자 그가 말했다.

“등교 중에 칼에 찔렸다고 합니다.”

“아?”

“흉수는 건물 공사를 하던 노동자였다고 합니다. 그가 칼을 들고 뛰쳐 가 찔렀다죠.”

“많이 다쳤어?”

“저도 들은 이야기라 잘은 모릅니다.”

“대공님은 어디 계시지?”

“신관에게 갔습니다.”

그대로 다시 강의실에서 빠져나와 아가레스를 찾았다.

아카데미 내에는 귀하신 몸들이 많은 탓에 신관이 상주했는데, 그 실력은 통상적인 신관에 비해 떨어졌다.

지금의 아가레스는 재생능력도 없으니 잘못 찔렸다면 치명상이었다.

나는 잰걸음으로 이동했다.

아가레스는 능형근에서부터 목까지 사이에 핏자국이 선명한 채로 침대 위에 누워 있었다. 벌어진 환부에서 꿀꺽꿀꺽 피를 토했다. 신관은 그 위에 손을 얹어 아가레스를 치료하고 있었다.

“아아! 미치겠네!”

신관의 손이 새하얀 빛을 뿜으며 아가레스의 상처를 치료하고자 했으나 튕겨 나갔다. 아가레스의 몸에 흑마법이 남았기 때문일까? 자세히 보니 그건 아니었다. 아가레스의 몸은 신성을 제대로 흡수했다.

독이었다.

신관에게 묻고 싶은 게 많았지만 입을 닫았다. 그가 전문가였고, 괜히 신경을 분산시키고 싶지 않았다.

“하하, 왔는가?”

아가레스는 날 보더니 웃으며 말했다. 괜찮냐고 물으려 했는데, 딱 보기에도 괜찮지 않아 말을 바꿨다.

“죽을 상처입니까?”

“나야 모르지. 이 신관 양반 손에 달린 일 아닌가?”

우리의 대화를 듣던 신관은 머리를 흔들었다.

“안 죽습니다. 마비 독 쪽은 해독했는데, 출혈이 잘 안 잡히네요.”

“근데 왜 그렇게 죽을상인가?”

“대공님 몸에 흉터라도 남으면 저를··· 아, 그게 아니라···.”

“그까짓 거 신경 안 쓰니 맘 편히 하게. 흉 좀 남으면 어때서.”

“감사합니다.”

아가레스는 숨을 크게 들이쉬고는 공기를 그대로 토해냈다. 그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여기에 누워서 생각을 해봤어. 누가 날 찔렀을까? 으음···.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모르겠더군. 그리고 직감했네. 내가 죽겠구나.”

“배후를 찾을 수 있을 겁니다.”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 내 생각에는 힘들다는 쪽이지만, 뭐 누가 부추긴 건지 알아냈다고 치세. 그러면 어떻게 되겠는가?”

“배후를 잡아들이고 처벌하겠죠.”

“그리고 또 새로운 놈이 나와서 나를 찌르겠지. 이렇게 될 날을 미리 대비했어야 했는데.”

아가레스는 적이 많다.

이미 알고 있던 정보였다. 그러나 그 적이 누구인지, 왜 적이 많은지는 무지했다. 어차피 그는 불사의 몸이었고, 누가 어떻게 해보려 해도 가능할 리가 없었다.

“일단은 영지로 돌아가서 수단을 찾아야겠어. 내 몸을 지킬 뭔가가 필요해.”

“경호라도 두시는 게 어떻습니까?”

“그것도 생각 중이야. 이렇게 업보를 맞이하는군. 하하하···.”

“웃음이 나옵니까 이게.”

“그러게나 말이네. 조금 더 착하게 살 거 그랬어.”

* * *

나는 아가레스와 함께 아카데미에서 빠져나왔다. 그가 자신의 영지로 돌아갈 때까지 호위 역할이었다.

말을 모는 아가레스를 흘겨봤다.

목에서부터 흉터가 남아 있었다. 상처를 보아하니 목을 노리고 찌른 거를 몸을 틀어 비껴 맞은 듯했다.

지금에 아가레스는 약했다.

애초에 그는 몸을 단련해 무력을 손에 넣은 게 아니라 아마데우스와의 계약을 통해 홀라당 힘을 얻었다. 아마데우스의 힘이 사라진 이상 전투 경험이 있는 민간인에 불과했다.

“아무래도 아카데미를 계속 다니는 건 힘들 듯하군.”

“예, 또 저번 같은 일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아가레스는 사람을 많이 죽였다. 남들의 원한을 많이 샀다. 그들 중에는 강한 무력을 가졌거나, 권세 있는 귀족들도 있었다. 그들로부터 몸을 지키기 위해 호위를 구한다면 아주 수준 높은 기사가 필요했다.

북부에는 상비군은 있어도 기사단은 없었다.

외딴 영지인 탓에 기사단을 운영하는 데 더 높은 비용이 들 거고, 더 많은 봉급을 주더라도 실력 있는 기사라면 입단을 기피할 것이기 때문이다.

“아티팩트를 구매하는 건 어떻습니까?”

“그래, 그것도 필요하겠지.”

* * *

우리는 북부로 이동했고, 2번의 습격을 맞았다. 둘 다 거리가 가까워지기 전에 마법으로 해결해 교전은 없었으나 아가레스는 몹시 스트레스를 받는 듯했다. 그리고 영지의 인근에 도착했을 때 3번째 습격을 맞이했다.

지금까지의 습격자들은 적어도 얼굴을 가리기라도 했다. 가면 혹은 복면을 썼는데, 이번엔 대놓고 얼굴을 드러냈다.

“아는 얼굴이야.”

“누굽니까?”

“이름이··· 음··· 기억이 안 나는군. 그래도 저놈의 아비는 똑똑히 기억이 나. 범죄를 저지르고, 내 영지로 도망쳐온 놈이었거든. 내 영지에서도 똑같이 강도질해서 내가 죽였지.”

“복수인가 봅니다.”

“고작 그런 거로 복수라니, 이상하지 않나? 범죄자를 처벌한 건데.”

아가레스의 말이 어디까지가 사실인지는 상관없이 일이 커지기 전에 공격했다.

팡! 팡!

마탄을 쏴 허벅지 따위를 관통했다.

“마법사가 있다!”

제국에는 수많은 마법사가 있지만, 실제 전장에서 마법을 쓰는 이들은 소수였다. 전장에서 마법을 쓰는 건 그만큼 어렵기 때문이다.

화염탄을 쏴 근처 땅을 터트렸고, 마탄이 팔다리를 관통했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빠른 속도로 마법을 영창했다. 실력을 과시하기 위함이었다. 이렇게 힘을 보여주면 대부분에 습격자들은 도주했다.

“머리를 맞추게. 다들 뛰어오지 않나?”

다짐하고 다짐했던 거를 떠올렸다.

상황이 생긴다면 망설이지 않고 움직인다.

푸욱! 푸욱!

아가레스를 보호하면서 싸우는 건 위험한 모험이었다.

나는 적이 접근하기 전에 마탄으로 급소를 쏘았다. 일부는 칼로 마탄을 쳐냈으나 대다수는 쓰러졌다. 지척까지 접근한 건 다섯이었다.

나는 아가레스를 내버려 둔 채 빠르게 뛰어가 넷을 베었고, 하나를 남겼다. 아가레스가 아는 얼굴이라 했던 남자였다. 그의 팔을 베어 무력화하려 했다.

“아?”

의외에 힘이 있었다.

제대로 된 스승에게 배운 검술은 아니었어도 정말 열심히 훈련했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부자연스러울 만큼 특정 검초만 매끄러웠고, 검술 실력에 어울리지 않게 완력이 뛰어났다.

교본만을 보며 혼자 죽기 살기로 수련해야 이런 검술이 나왔다.

물론, 내 상대는 아니었다. 검기를 꺼낼 것도 없이 검초 사이의 틈을 찔러 팔을 찔렀다. 배후가 있을 수도 있으니 죽지 않게 급소를 피했다.

이를 본 아가레스가 말에서 내려 걸어왔다.

“그··· 자네 이름이 뭐였지?”

“내 이름을 몰라?”

“이름을 알려준 적이 없으니 모를 수밖에.”

습격자는 피가 솟구치는 팔로 억지로 칼을 붙잡았다. 다친 팔을 움직인다는 게 고통스러운지 얼굴을 일그러트리면서도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 아가레스가 자기 이름을 모른다는 게 분한듯했다.

“죽일 거야!”

그는 소리를 지르며 아가레스에게 뛰어갔다. 나는 뒤에서 그의 옷깃을 잡아당기고, 칼을 쥔 팔을 걷어찼다. 그는 칼을 놓치곤 고통에 신음했다.

“음··· 궁금한 게 있었는데, 없어졌네.”

아가레스는 습격자가 떨어트린 칼을 쥐고 다가와 능숙하게 목을 쳤다. 힘을 잃었어도 기술은 있었는지 뭔가에 걸리지 않고 한 번에 목과 머리를 분리했다.

그는 나를 보며 말했다.

“이번에도 수고했네. 자네 심정도 이해하고. 이런 일을 당할 때마다 나도 마음이 아파.”

“퍽이나요.”

“진심이야. 나는 죽일 놈만 죽였어도 그들의 가족은 생각이 다를 수도 있다는 걸 알아. 그렇다고 일가족을 몰살할 수도 없지 않나? 이런 내 처지가 슬퍼서 눈물이 다 나오려 해.”

이런 이야기를 할 때마다 아가레스가 불편했다. 그런 내 기색을 읽었는지 아가레스가 말했다.

“자네는 아카데미에 와서부터 매일같이 칼질을 훈련했지?”

“예, 그렇습니다.”

“왜?”

“제 몸을 지키기 위해서입니다.”

“맞아. 다른 사람을 죽여서 자네의 몸을 지키는 거지.”

아가레스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으면서 반박할 방법을 찾기 어려워 입을 다물었다.

나는 그를 영지까지 데려다 주었고, 아카데미로 복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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