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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판 속 악당이 되었다-83화 (83/125)

제83화

아가레스는 제 손등을 베었던 놈을 고문해 몇 가지 정보를 얻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정보는 놈이 아는 게 몇 가지 없다는 사실이었다. 놈은 가면 쓴 사내가 찾아와 거금을 줄 테니 아가레스에게 어떤 식으로든 상처를 내라고 했을 뿐 그 이상의 무언가는 말해주지 않았다.

그 가면 쓴 놈을 어떻게 만났는지, 외양은 어땠는지 따위를 들었지만, 크게 쓸모 있는 정보는 아니었다.

사람은 고문을 당하면 아는 것 모르는 것 다 토해낸다.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말할 수 있는 모든 걸 쏟아내는 법인데, 끝까지 모른다고 주장한 걸 보면 아마 진실인 듯했다.

아가레스는 혀를 찼다.

몸에 주렁주렁 달고 있는 아티팩트 덕에 어지간한 놈들을 상대로는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언제나 몸을 조심해야 한다는 부담감을 지니고 있는 건 별개의 일이었다.

영지에 간 김에 여러 가지 정보를 합산했다.

자신에게 지인이 죽었거나 큰 손해를 본 이들 중에서 무리를 이끌 힘 있는 사람들만을 추렸다.

“대충 셋이었지···.”

아가레스는 그들의 이름을 떠올리며 긴 숨을 내뱉었다.

그들을 다 찾아냈다고 치자. 그래서 그들을 다 죽인다고 치자. 그래 봤자 또 적이 늘어나는 꼴이었다. 아마데우스의 힘을 지녔을 때라면 괜찮았다. 적이 생길 때마다 응징하고 멸하면 될 일이었다.

지금은 아니었다. 그 과정에서 상처 입을 확률이 너무 높았다.

“그래서였나.”

왜 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을 오랜 시간을 들여 말로 풀려는지 의아했었는데, 이제야 그 이유를 알았다. 무서웠기 때문이다.

‘이걸 어떻게 한다···.’

아가레스는 라파엘을 호출했고, 의견을 물었다.

“자네가 내 상황이라면 어떻게 하겠나?”

“일단 사람을 쓰는 게 누구인지 밝히는 건 꼭 필요한 작업인 듯합니다. 보복하지 않더라도요. 방법이 있을까요?”

“짐작 가는 구석이 3곳 정도 있어. 둘은 내가 거기 사람을 죽였고, 남은 하나는 빚을 안 갚기에 영지를 빼앗았지.”

“그들 중 누구인지 찾아낼 방법은 없습니까?”

“찾아가서 깽판을 치면 어디 하나는 자수를 하겠지. 그게 아니면 고발을 하거나.”

“없군요. 그러면 방법을 달리하는 수밖에 없겠습니다.”

라파엘은 다시금 아가레스가 손등이 베였을 때 일을 물어 확인했다. 그는 아가레스의 이야기를 자세히 듣고는 말했다.

“요컨대, 아직 대공님이 회복 능력을 잃었는지 상대는 모른다는 뜻이군요. 정보를 전하기 전에 처리했으니까.”

“정확하네.”

“그러면 다른 방법이 있습니다. 회복 능력이 있는 것처럼 연기를 합시다. 다치신 척하고 몰래 포션을 부어서 바로 나은 척하는 거 어떻습니까?”

“너무 근시안적인 해결책 아닌가? 그렇게 한들 결국 알아차리는 놈이 나올 거고, 그게 아니라 해도 언젠가는 탄로가 날 일이야.”

“아카데미에 계실 동안에는 먹힐 겁니다.”

“그럴 수도 있지. 그런데 난 좀 더 근본적인 해결책이 필요하네.”

라파엘은 속으로 까다롭긴, 하고 중얼거렸다.

“그럼 방법은 하나뿐입니다. 이윤으로 문제가 생긴 문제에 피해를 본 이들에게는 보상을 해주고, 은원이 쌓인 이들에게는 찾아가 사과하는 겁니다. 용서를 구하는 거죠.”

아가레스의 표정이 썩어들어가자 라파엘은 이럴 줄 알았다는 양 혀를 찼다.

“싫으시죠?”

“그래. 그건 좀···. 그러지 말고 자네가 한동안은 나와 같이 다니는 게 어떤가? 어차피 듣는 수업이라면 비슷한데.”

“너무 번거롭습니다.”

“자네도 내 도움이 필요할 날이 올 거야. 그때 성심성의껏 도와주지.”

라파엘은 얼굴을 찡그리고 한참을 머리를 긁적인 후에야 수락했다.

“예, 알겠습니다. 잠시만 그리하죠.”

* * *

아가레스의 아카데미 졸업까지는 이번 학기가 마지막이었다.

반년이 채 안 남았으니 굳이 남아서 졸업하려는 게 이해가 아예 안 되는 건 아니었지만, 불만이 남았다.

그가 차고 있는 아티펙트의 위력이 얼마나 대단한지는 몰라도 무적은 아니었다.

여기에 있으면 위험이 있을 게 분명한데, 뭐가 있다고 구태여 남아 있나?

난 아가레스의 기숙사로 마중 나갔다. 그는 느긋하게 웃으며 내게 손은 흔들었다.

“기다리고 있었네.”

“예···.”

오늘로 일주일 째.

언제까지고 이렇게 다닐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제대로 된 길을 찾지 못한다면 이번 학기 내내 이래야 할 수도 있는데,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

이를 이안에게 상담하니 그가 말했다.

“그냥 싫다고 해. 네가 그렇게 해줄 의리가 왜 있는데?”

“그러게. 나도 그렇게 말할 깡이 있으면 좋겠다.”

“내가 방법을 찾아볼게, 좀 기다려.”

“가능하면 빨리해줘.”

“안 보채도 그렇게 할 거야.”

* * *

“이번 학기가 끝나면 아마 한동안 일을 쉴 거 같다. 그래서 너 혼자서도 훈련할 수 있는 몇 가지를 알려줄게.”

과거 검술에는 칼을 움직이는 것만큼이나 발을 움직이는 데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무게 축, 몸의 중심 따위를 어디에 두는지에 따라 동작이 달라졌고, 공격할 때 위력이 달라졌다.

그러나 이는 마나 연단법의 발달에 따라 흐름이 바뀌었다.

흔히들 보법이라 말하는 기술을 연마할 바에 마나 연단을 더 해 몸의 스펙 자체를 올리는 쪽이 유리했다.

“내가 여태까지 발기술을 안 알려준 건 최근 트렌드가 아니라서야. 그런데, 언제까지고 미룰 수는 없으니까.”

“알겠습니다.”

“그래도 너라면 다른 애들보다 더 쓸모가 있을 거야. 비슷한 수준에 애들이랑 싸울 때는 이만한 게 없으니까. 제프린 그놈은 이미 제대로 쓰는 거 같고.”

카타리나는 내게 간단히 보법을 설명하고, 혼자서도 연습할 방법 따위를 일러주었다. 나는 그대로 훈련했다.

중요한 건 리듬이었다.

무게 중심의 이동을 자연스러우면서도 상대가 예측할 수 없게 해내는 게 중점이었다. 그렇게 연습하고 있을 때였다. 제프린이 멀찍이서 걸어왔다.

“잠시 아카데미를 떠나려 합니다.”

“또? 왜?”

“성장이 정체된 거 같아서요.”

“네 나이에 그거면 됐지, 목표가 왜 그렇게 높아?”

제프린은 그러는 넌 뭐냐는 양 째려보다 다급하게 말했다,

“이게 다 너 때문이잖아. 네가 설렁설렁했으면 나도 그랬지,”

“아아, 예. 알겠습니다. 예, 어찌 됐건 저는 잠시 아카데미를 떠나야 하니, 예전에 부탁했던 일, 다시금 잘 부탁하겠습니다.”

그의 부탁을 들었을 때부터 이런 일이 있을 거 같기는 했다. 무리한 부탁은 아니었다.

내가 여유가 있을 때, 비숏이 위험하면 도와준다.

조건이 둘이나 달렸으니 사실 아무것도 안 해도 될 듯했다.

“알아. 기억하고 있어.”

“감사합니다.”

* * *

제프린은 다시금 아카데미를 떠났고, 나는 발기술 연습에 열중이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다. 이안이 방법을 찾았다고 나를 호출했다.

“놈이 예전만큼의 힘은 몰라도 어느 수준까지는 올릴 방법을 찾았어.”

이안은 아가레스의 몸을 설명했다. 그의 육체는 오랜 시간 동안 아마데우스의 힘을 받아들였고, 흑마력이 가득 차 있었다.

여전히 몸에는 흑마력의 잔재가 남아 있을 거고, 흑마력을 사용하는 쪽이라면 뭘 해도 잘할 거라는 게 그의 주장이었다.

“흑마법사가 되고 싶지는 않을 거 같은데.”

“그래, 그렇겠지. 그런데 이거도 싫다, 저거도 싫다, 하면 뭐 어쩌라는 거야?”

맞는 말이었다. 나도 용기만 있었으면 저 말을 그대로 아가레스에게 뱉었을 거다.

“이미 악마와 계약했다가 쓴맛을 봤잖아. 그쪽은 싫을 거야. 몸이 아니라 영혼을 거는 계약이라 해도.”

“정 안 되면 계약을 하지 않고, 흑마법을 쓰는 수도 있어. 아니, 정확히는 그놈은 흑마법을 배운 게 아니니까 흑마력을 쓰는 거겠지만.”

“그게 돼?”

“원래라면 안 될 일이지. 계약을 하지 않으면 동력이 없는 거라 쓸 에너지를 생성 못 하거든. 그런데 마법사들끼리 흑마력을 거래하니까 그걸 사서 충원하면 돼.”

“좀 더 설명해줘.”

이안에게서 흑마력에 대해 들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아가레스는 아마데우스와 계약해 흑마력을 에너지로 힘을 다뤘었다.

그 탓에 몸에는 흑마력의 영향이 남아 있고, 더군다나 흑마력을 썼던 경험도 풍부해 그 에너지만 채워 넣는다면 전과 비슷한 식으로 힘을 쓸 수 있었다.

아가레스가 흑마력을 얼마나 사들이더라도 전과 같은 힘을 내지는 못하겠지만 이만하면 적어도 어디 이름도 모를 놈들을 조심할 필요는 없어졌다.

나는 아가레스를 찾아가 이안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전했다.

“흐음. 그거라면 괜찮을 거 같아. 이보다 더 나은 방법이 있을 거 같지도 않은데, 그리하지.”

“그러면 제가 같이 다니는 건 오늘까지만 하겠습니다.”

“아니, 며칠만 더. 그 경매장이란 곳은 대충 설명만 들어도 위험한데, 거기까지는 같이 가줘야지.”

“알겠습니다.”

아가레스와 바로 지저분한 물건을 파는 경매장을 방문했는데, 우리가 원하는 대량의 흑마력을 얻지는 못했다.

장기적으로 아가레스가 힘을 충원하기 위해서는 어느 업체 하나와 계약을 하는 게 좋았는데, 그 업체마다 또 흑마력의 질이 다르곤 했다.

“자네가 고생이 많아. 정말 고맙네. 그러니 며칠만 더 힘 써주게나.”

정기적으로 흑마력을 공급할 업체를 찾는답시고, 종종 경매창을 찾았다. 우리가 무리에 둘러 쌓여 위협을 받은 건 그러던 와중이었다. 우리가 찾아올 걸 예상하고 사전에 짠 듯 제대로 된 무장을 갖추었고, 그 수가 많았다.

나는 아가레스 쪽으로 보란 듯이 한숨을 쉬었다.

“이럴 줄 알았습니다.”

“알았으면 자네가 호위라도 데리고 오지 그랬나? 왜 홀몸이야.”

“이런 상황에도 농담이 나옵니까?”

아가레스의 저 여유가 어디서 나오는지가 의문이었다. 적의 수는 많았고, 도검 대신에 창이나 할버드 따위를 들고 나왔다. 아가레스를 민간인으로 간주했다고 쳐도 소드 익스퍼트로 이름이 난 내가 붙어있다는 걸 알면서도 덤벼온 놈들이었다.

“우리 함께 힘써 이 위기를 극복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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