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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판 속 악당이 되었다-95화 (95/125)

제95화

카티리나의 요리를 배불리 먹었다. 길버트와도 중간에 카타리나가 있으니 어색하지 않게 잘 대화했다. 그런 후 그녀의 부름에 따라 밖으로 나왔다.

카타리나는 기분 좋게 웃고 있었는데, 어느샌가 허리춤에는 칼을 차고 있었다.

“야, 미안한 말인데 나 한동안은 아카데미 쉴 거 같다.”

“이유가 뭡니까?”

“아이가 갖고 싶어서. 너한테는 미리 말해둬야 할 거 같아서.”

점점 더 아카데미를 자퇴하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다. 아카데미를 재학했던 목적인 비숏과의 문제는 해결했다. 아카데미에서 유일하게 내가 배울 수 있는 건 카타리나의 검술뿐이었다. 이제는 그마저도 사라지는 셈이니 진지하게 더더욱 재학할 이유가 없었다.

“마지막이야.”

카타리나는 칼을 뽑았다.

“여기까지 왔는데, 큼지막한 선물도 줬는데, 나도 뭐 하나는 해줘야지. 마지막으로 해보자. 가르칠 수 있는 건 다 알려줄 테니까.”

“알겠습니다. 제대로 합니까?”

“제대로 안 하면 어쩌게? 네가 나를 봐주게?”

“그럼 얼마나 제대로 하면 되겠습니까?”

“죽일 각오로.”

“마법도 씁니까?”

“할 수 있는 건 다 해. 흙을 뿌리고 침을 뱉어도 좋아.”

상대가 카타리나였다면 진짜로 침을 뱉어도 좋은지 확인해봤겠지만, 상대가 상대이다 보니 참았다. 그녀가 무서웠다.

“그럼 시작합니다.”

여기에 떨어져서부터 지금까지 성실하게 노력하며 검술을 수련했다. 다 비숏으로 인해 문제가 생길까 걱정한 탓이었다. 이제는 문제가 생길 원인을 풀어냈으니 어쩌면 더는 검술을 써먹을 일이 없을지도 몰랐다.

어쩌면 이게 내가 칼을 들고 휘두르는 마지막이 될 수도 있었다. 그랬으면 좋겠다.

칼을 빼 들었다. 칼날에 검기를 입혔다. 땅을 박차고 튀어나가며 발목을 꺾었다. 카타리나가 가르쳐준 보법이었다.

가속과 감속.

상대의 템포를 빼앗는 기술과 함께 마탄을 쏘고 칼을 휘둘렀다. 칼이 충돌했다. 불똥이 튀었다. 카타리나가 완력으로 밀어내는 걸 그대로 받아 뒤로 물러났다.

죽일 각오, 카타리나는 그렇게 말했다. 자기 자신을 죽일 각오로 덤비라고. 설령 내가 그런다고 한들 자기에게 어떤 피해도 주지 못할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나도 동의한다. 카타리나는 이 세상에 둘밖에 없는 소드마스터였다.

무력만을 따진다면 하늘에 닿았다고 해도 좋았다. 고작해야 1년, 검술과 마법을 깔짝거린 내가 대항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그래, 하자.

오랜만에 장갑에 시동을 걸었다. 비싼 돈 주고 산 물건인데, 몇 번 써먹지도 못한 걸 이렇게 또 연습용 대련에서 꺼낸다는 게 입맛이 썼다.

이거 가격이 얼만데.

아니. 생각해보니 또 괜찮았다. 고장 난 것도 아닌데 다시 경매장에다 내다 팔면 되지 않을까?

우웅

장갑이 울었다. 그와 함께 칼이 진동했다. 칼날을 둘러싼 검기가 더 짙게 변했다.

이에 맞춰 카타리나도 제 칼에 두른 검기를 강화했다. 오러 블레이드를 쓰지 않는 건, 오러 블레이드를 썼다가는 내가 3초도 버티지 못하기 때문이겠지. 이런 거로 자존심이 상한다는 건 멍청한 짓이다. 자기 주제를 알아야지.

1년 차 주제에.

카타리나에게 뛰어들다가 멈칫거렸다. 이에 그녀가 대항해서 뭐라도 하리라 기대했는데, 콧방귀를 끼며 나를 내려다봤다.

그래, 재롱처럼 보이겠지.

나는 오히려 뒤로 물러났다. 뒷걸음질 치며 손끝으로 마탄을 쏘았다. 초마다 마나의 탄환이 카타리나를 노리고 돌진했다. 카타리나는 가당찮다는 듯 칼을 대충 휘둘러 쳐냈다.

이 짓을 암만 반복한다고 해도 카타리나에게 타격을 줄 수는 없을 터. 하지만 장거리에서 공격이 가능하다는 건 카타리나를 상대로 내 유일한 강점이었다.

내가 다가갈 생각이 없다는 걸 알아차렸는지 역으로 카타리나가 이쪽으로 뛰쳐 왔다. 몇 걸음 걷지도 않았는데 노루처럼 쿠웅, 쿠웅 거리를 좁혔다.

카타리나가 여기까지 당도하는 데 필요한 걸음은 딱 다섯. 나는 정확히 반걸음만큼 전진했다. 카타리나가 칼을 끝까지 뻗지 못할 거리였다.

내 접근에 카타리나는 피식 웃었다.

그건 칭찬이었다. 내가 취한 방법이 정답이라는 뜻이었다. 그러나 수준 차이가 크면 정답도 오답이 된다. 그녀는 완력만으로 검을 맞대고 나를 날려버렸다.

“잘했어. 다음에도 그렇게 해.”

“그러지 마요.”

“뭐가?”

“칭찬하지 말라고요. 죽일 생각으로 싸우는데, 집중이 깨지잖아요.”

“아하하, 미안. 그럼 다시 할까?”

“예. 한 번 더 갑니다.”

곧이어 나는 다시금 무너졌다.

한 번 더는 계속 늘어나서 밤이 될 때까지 이어졌다.

평소 카타리나의 교습은 이렇지 않았다. 막무가내로 싸우는 건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게 연습이라면 더 그렇다고 했다. 죽을 위험이 없는 대련은 실전 경험이라고 부를 수도 없다고 말했다.

여기는 콜린. 카타리나의 고향 땅.

이곳에서 뒹굴고 있으니 카타리나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알 듯했다. 콜린의 경작지는 풍족했다. 이곳 사람들 모두가 농사와 관련된 일을 하며 생계를 이었다. 누구 하나 카티라나에게 검술을 가르쳐주거나 하지 않았을 거다. 검술을 아는 이도 없었을 거고.

그러니 카타리나는 자기가 말한 그 비효율적인 수련으로 소드마스터에 오른 것이었다. 제대로 된 스승도 없이.

“대단하시네요.”

“잡담하지 말자며? 집중 깨진다고. 다시 덤벼봐. 오늘이 마지막이라니까?”

“예. 다시 합니다.”

내 기술은 어느 정도 궤도에 올라와 있었다. 이제 반복 훈련만으로는 성장을 기대하기 어려웠다. 그러면 필요한 게 뭘까? 더 많은 마나. 깨달음. 경험이었다.

제국 제일의 검술가.

카타리나를 제외하고도 한 명의 소드마스터, 하오크가 있지만, 카타리나가 제일이었다. 근거는 없지만, 확실했다. 그렇게 기억에 남겼다.

카타리나는 앞으로 약해질 거다. 직접 물어보지는 않았으나 더는 강해지기 위해 수련을 하지 않는 듯했다. 몸 쓰는 활동이 다 그러하듯 성장하지 않으면 퇴보한다. 카타리나는 퇴보하는 쪽이었다.

오늘의 카타리나는 카리타나의 평생 중 가장 강한 날.

나는 전력을 다해 그녀에게 덤벼들었고, 무참하게 깨졌다. 오러 블레이드를 사용하지 않는 카타리나도 내가 감당할 수 없이 강했다.

옷깃 한 번 스치지 못할 만큼.

검을 놓쳤다. 악력이 떨어져 손잡이를 붙잡고 있을 수도 없었다.

“포기야?”

“네.”

다리가 떨려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아 카타리나도 킥킥 웃으며 내 옆에 앉았다. 나는 그녀에게 물었다.

“스승님은 왜 검술을 익혔습니까? 주변에 아무도 없었을 텐데.”

“남들한테 인정받고 싶어서. 내가 암만 고민해도 내 머리통으로 남들에게 인정받을 뭔가를 해내는 건 어려울 거 같아서 몸 쓰는 걸 해야겠다 싶더라고. 그래서 검.”

“다른 것도 있지 않습니까?”

“내 눈에는 안 들어왔어. 농사로 성공할 수는 없는 일이잖아? 그런데 나뭇가지 하나가 딱 보이는 거야. 그래서 그걸 냅다 휘둘렀지.”

내가 고개를 끄덕이고 있자 카타리나가 말했다.

“그럼, 이제는 말해줘도 괜찮지 않아? 그러는 너는 왜 칼을 들었는데?”

“그야, 뭐··· 아이작은 무가고, 다들 하니까 그런 거죠.”

카티라는 한숨을 쉬고는 주먹으로 내 팔을 툭툭 때렸다.

“오늘 같은 날까지도 그렇게 거짓말을 할 거야? 아닌 거 알아. 검술이 필요해서잖아. 처음부터 제프린과 경쟁하기 위해서는 아니었을 테고. 왜 그렇게 집착한 건데?”

카타리나의 어조는 완강했다. 오늘이 아니라면 절대 대답을 듣지 못할 거라 믿는 듯했다. 그건 반쯤 맞았다. 오늘이라도 대답하지 않을 테니.

하지만 또 카타리나에게 그녀를 속인다는 인상을 주고 싶지도 않았다.

“가문에 문제가 있었습니다. 지금은 괜찮아도 예전에는 저를 보는 눈빛이 좋지 않았거든요. 동생들이 영주 자리를 빼앗으려고도 했죠. 그때 생각했습니다. 아, 힘이 있어야겠구나, 하고요. 집착하게 된 건 그때부터였죠.”

“그것만은 아닌 거 같은데···.”

“저도 다 말씀드리고는 싶어요. 그런데 사정이 있어서요.”

“그래, 알았어. 다 비밀이 있는 거니까. 그게 사이가 가깝다고 다 말해줘야 하는 것도 아니니까. 여기서 만족할게. 말해줘서 고맙다.”

* * *

카타리나도 길버트도 그렇게 친구가 많은 성격은 아니었다. 식을 시작하기에 앞서 착석하라는 목사의 말에 주변을 둘러보니 교회에 사람이 반도 차지 않았다.

현대의 그 큰 교회가 아니었다. 각지마다 교회가 하나씩은 있어야 하니 명목상 세워놓은 크기. 하객 중에서도 대부분은 길버트의 가족이었고, 길버트의 가족의 지인이었다.

카타리나는 가족이 없었다. 그녀가 고아인지 그게 아니면 무슨 사고가 있었던 건지 그냥 연락을 안 하는지는 알지 못했다. 원작에 나오지 않기도 했고, 가볍게 묻기는 어려웠다.

교회의 조촐한 성가대를 보고서야 다른 데에 신경 쓸 걸 그랬나 싶었다. 돈을 조금만 더 썼으면··· 아니 아니지.

이것도 괜한 참견이었다. 카타리나가 돈을 벌고자 아등바등하지 않은 거지 진짜 가난한 게 아니었다. 규모가 작은 건 그녀의 뜻일 거다.

이곳의 결혼식은 현대와는 다르니까.

결혼식을 보며 결정했다. 아카데미는 자퇴한다.

이거 빨리 이안에게 말해줘야겠네. 마탑을 한 번 찾아가야 하나? 아니, 그럴 거까지는 없다. 알아서 자퇴를 하거나 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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