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2화
거치는 것 없이 카르테아를 상대하기 전까지 이기고 이겼다. 관중석에 구경꾼들은 내게 환호했다.
하기야, 내가 보기에도 놀라웠다. 내 몸은 방학 전과 비교해서 크게 변한 게 없었다. 신체 능력도 전과 비슷했고, 마나가 늘어난 건 더더욱 아니었다. 검술이 정교해졌는가? 이 또한 아니었다.
내가 하는 게 모든 게 다 전과 유사했는데, 전투 능력은 압도적이었다. 그 이유는 하나였다. 그냥 알겠다. 상대가 뭘 하려는지, 왜 저러는지, 그런 게 모두 눈에 들어왔다.
-곧 소드마스터에 오를 거야! 검성의 제자잖아.
-황태자님을 상대로도 승산이 있겠어.
-내가 보기에도 그래.
카르테아도 나와 비슷하게 이기고 올라왔다. 경기당 채 5초도 걸리지 않아 상대를 다 쓰러트렸다.
아, 물론 방식은 나와 정반대였다. 체력을 아낄 겸 굳이 마나로 신체를 강화하지 않고 시의적절한 검초로 이겨온 나와 달리 카르테아는 육체의 성능을 한껏 뽐냈다.
무시무시한 완력으로 칼을 부수고 주먹으로 얼굴 혹은 배를 갈겼다. 모두 그걸 버티지 못하고 뻗었다.
나는 내가 이길 거라 말한 관중을 가리키고 말했다.
“저 소리 들립니까?”
“멍청한 것들이 떠드는 거 말이냐?”
“예. 제가 승산이 있다고 말하네요. 이거 어떻게 생각합니까?”
“멍청한 놈이 멍청한 소리를 한 거지. 그래, 그때 일을 기억하나? 우리 펜싱을 했었는데. 그때도 네가 내게 일방적으로 당했었지. 명색이 검사라는 놈이 말이야.”
나는 도발을 할 겸 입꼬리를 비틀며 웃었다.
“그야 져준 거죠. 황태자님을 어떻게 때려잡겠습니까? 거기다 잘 보이고 싶은 여자 앞이라 그렇게 의욕을 내놓고는 아닌 척하시긴.”
“우습군.”
“그럼 이번에는 봐 드리지 않아도 괜찮겠습니까? 다쳐도 저 책임 못 지는데.”
“그래, 발버둥쳐 봐라. 얼마나 버티는지 보마.”
“다치셔도 괜찮으시다면 다들 들을 수 있게 한 번 크게 말해주실 수 있습니까? 저한테 얻어터져도 뒤끝 없다고.”
카르테아는 발을 들어 올리더니 그대로 바닥을 내리찍었다. 콰아아앙! 어찌나 힘이 센지 잠시간 몸이 떠올라 발이 바닥에서 떨어진 듯했다.
“내 친우가 혹 내게 상처입힐까 걱정하는구나! 내 친우와 공정하게 겨루길 바라 이리 일러둔다. 무투의 승패와 상관없이 내게 어떤 상처를 입히더라도 이를 문제 삼지 않겠다.”
“감사합니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나는 카르테아에게 시작을 알렸다. 기습은 하지 않는다.
카르테아가 혹여 자기가 진 건 내가 기습했기 때문이라 생각할까 걱정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에게 천천히 칼에 검기를 입히는 걸 보여주었다. 이걸 조심하라고 강조하듯 검지로 칼날을 가리켰다. 칼날에 푸른 마나를 덧씌웠다.
후우욱!
카르테아는 내게 돌격해왔다. 이전에 레오가 쓰러지는 걸 본 건지 보폭을 줄여 뛰어왔다.
쿠우웅! 쿠우웅!
그의 발이 바닥을 때릴 때마다 바닥이 꽝꽝 울렸다. 그의 돌진 속도는 레오와 비슷했다. 대신에 속도가 일정한 탓에 시선이 따라갈 만했다.
그가 주먹을 뻗었다. 그의 시선과 허리를 튼 각도 어깨의 위치 따위를 보니 어디를 노리는지 바로 눈에 들어왔다.
내 목이었다.
이를 보고 확신했다. 카르테아가 나를 죽이려고 하는구나. 나와 대회에 참가한 목적부터가 달랐다. 나는 끽해야 그에게 불쾌감을 주려고 한 게 전부였는데, 그는 사람 죽일 각오를 하고 참가했다.
투우우욱!
나는 카르테아의 주먹을 베겠다는 느낌으로 칼을 휘둘렀다. 카르테아의 주먹과 내 칼이 충돌했다. 찌이이이익! 나는 그대로 뒤로 밀려나며 순간 중심을 잃을 뻔해 휘청거린 후에 자세를 잡았다.
“고작 그거인가? 큰소리치더니 형편없군.”
카르테아의 속도는 레오와 비슷하거나 조금 느렸는데, 힘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뛰어났다. 수치로 따진다면 적어도 3배가 넘었다. 나를 밀어낸 카르테아는 이거로 우리 둘의 수준 차이를 관객들에게 보여줬다고 여기는 듯했다.
그는 자신감 가득한 표정으로 여유를 찾아 천천히 걸어왔다.
역시 겁쟁이.
내 퍼포먼스가 대단하긴 했나 봐. 수월하게 대전자들을 이기고 여기까지 올린 걸 보며 그가 나를 경계했다. 특히 나는 기술의 차이로 이겨 신체 능력을 보여주지 않았다.
카르테아는 자신과 내 차이를 제대로 알지 못하니 아무런 변수 없이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을 하지 못한 거다.
멍청하게 방금 완력에서 이겼다고 제 우위를 확신한 거고.
그는 나를 죽이려 하고 있다. 프리실라를 위한다면 그게 가장 안전한 길이라 그런 걸 거다. 그게 아니면 그저 내가 싫은 걸 수도 있었다.
어찌 됐건 간에 상대는 내 급소를 우선 타격. 여기에 별을 2개 표시해서 머리에 주입했다. 급소를 먼저 노린다는 건 당연한 거지만, 카르테아는 그 비중이 기이하게 더 컸다.
급소를 노리지 않은 그 외에 타격은 무시해도 될 수준.
온다.
카르테아가 뛰어왔다. 나는 그와의 거리를 확인했고, 눈동자로 카르테아의 발을 쫓았다.
왼발. 오른발. 왼발. 오른발. 이대로라면 1보 앞에서 멈춘 후 타격이다. 무게 중심과 앞으로 튀어나온 상체를 보아하니 킥은 아니고 펀치.
그의 눈동자가 멈춘 위치를 보아하니 똑같이 내 목을 노리고 있었다.
내가 지닌 선택지를 확인했다. 힘겨루기는 무리. 가드도 손해가 컸다. 그러면 회피와 반격이 남았다.
사아아아악!
카르테아는 내 칼을 크게 개의치 않고 접근해왔다. 그 덕에 내 칼이 먼저 카르테아의 몸을 갈랐다. 정확히는 그의 옷을 찢었다. 오른쪽 어깨에서부터 왼쪽 허벅다리까지 칼을 직선으로 그었다.
칼이 카르테아의 옷을 찢고, 피부를 그었다. 그의 피부에 한줄기 실선이 그어졌다. 그와 함께 찢어진 하의 밑으로 그의 속옷이 드러났다.
나는 고의가 아니라는 듯 급하게 몸을 움직인다. 주먹의 궤적을 알고 있었던 덕에 딱 필요한 만큼만 몸을 움직였다. 왼발을 틀고 허리를 뒤로 굽히며 목을 젖혔다. 카르테아의 주먹은 아슬아슬하게 내 목에 닿지 않았다.
카르테아는 주먹을 폈다. 손가락으로 내 목을 쥐려고 했는데, 틀었던 왼발을 되돌리며 몸통을 움직여 회피했다. 그와 동시에 다시금 카르테아를 베었다. 검기를 입힌 칼날도 카르테아의 몸에 붉은 실선 하나를 남길 뿐이었다.
역시 몸 하나는 튼튼하네.
“네놈의 나약한 칼질은 내게 안 통해!”
“보면 알겠죠.”
여태 많이도 걱정했다. 오늘 카르테아와 싸워 혹여 지는 건 아닌지 밤잠을 설쳤다. 지금 보니 어처구니가 없는 생각이었다. 시간 낭비를 많이도 했다.
내가 져? 애한테?
쉬이이이이익!
카르테아의 몸에 붉을 실선 하나가 더 그려졌다. 그가 주먹을 한 번 뻗을 때마다 그의 몸에 상처가 하나 더 생겼다. 멍청한 건가, 그게 아니면 정말로 이 정도 상처는 아무렇지 않은 건가.
그는 피해를 감수하면서까지도 나를 공격해왔다. 아둔한 동작으로 온몸으로 내게 신호를 주며 주먹을 휘둘렀다. 시선과 관절, 몸의 중심, 발의 위치 하나하나가 정보였다. 그걸 합산하면 맞으려고 해도 맞을 수가 없었다.
쉬이이이익!
옷은 모두 찢어져 넝마가 됐다. 보통 같으면 이쯤에서 자기가 항복을 하거나 심판이 전투 불능 판정을 내릴 텐데 카르테아의 몸이 지나치게 튼튼한 게 문제였다.
쉬이이이익! 쉬이이이이이익!
카르테아의 공격과 동작은 모두 뻔했다. 그는 레오에게 버금갈 만큼 빨랐고, 한방 한방의 위력은 오러 블레이드를 쓰지 않았다는 가정하에 카타리나보다도 강했다. 그런데 하는 거라고는 하나같이 획일적인 주먹질뿐이었다. 아니, 이제는 그 주먹질마저도 무너졌다.
뭐가 됐건 한 방만 때려 맞추면 이긴다는 생각인지 되는대로 팔을 휘둘렀다.
왼팔. 다음은 오른팔. 이제 다시 왼팔.
카르테아의 박자를 그대로 맞춰 공격을 피하고 칼을 휘둘러 피부를 그었다. 그의 몸은 단단했다. 검기를 두른 칼로도 피부 표면을 베어내는 게 고작이었다. 그렇게 상처를 내도 그 즉시 피가 멎으니 출혈도 적었다.
참상이 하나라면 그랬다.
카르테아의 몸에는 무수히 많은 붉은 선이 그어져 있었다. 하나의 상처마다 찔끔찔끔 피를 흘려 결국에는 피칠갑을 했다.
슬쩍 심판의 눈치를 살펴보니 이걸 어떡해야 하는가 고민하는 기색이 진했다. 보통 같으면 카르테아에게 패배를 선언할 텐데 상대의 신분이 신분이었고, 분위기가 분위기였다. 그는 몹시 흥분했다.
이렇게 많은 관중 앞에서 내게 일방적으로 당하기만 했다는 게 몹시 분한 듯했다, 그는 겁쟁이인 것과는 별개로 자존심이 강했으니까 그 심정은 이해가 갔다.
“황태자님, 그만 항복하시는 게 어떻습니까? 지금 빨가벗으셨는데.”
그를 조롱했다. 나는 카르테아가 미웠다. 평생을 살면서 이렇게 누군가를 혐오한 적이 없을 만큼 카르테아를 증오했다. 그라는 인간을 혐오했다.
무투회에 나온 건 그래서였다. 카르테아에게 굴욕을 주기 위해서. 그에게 다시는 잊을 수 없는 기억을 남겨주기 위해서.
그는 내 지적에 입술을 씹었다. 주변을 둘러봤다. 소란스러울 만도 한데 다들 입을 닫고 있었다. 혹시라도 카르테아에게 찍힐까 봐 겁먹은 듯했다.
카르테아는 충분히 항복할 만한 상황에서도 버티고 늘어졌다. 나를 죽여서 분풀이하려는 듯했다. 그의 공격은 더욱더 노골적으로 변해갔다. 이전에는 타격 위주였다. 힘을 빼고 때렸는데, 내가 한 대 맞고 죽었다는 걸 변명거리로 삼으려는 듯했다.
이젠 그마저도 없었다. 주먹을 편 채 옷깃이라도 붙잡고자 덤벼들었다. 나를 붙잡고 악력으로 뼈와 근육을 찢으려는 속셈이었다. 카르테아의 힘이라면 그게 가능했다.
“그렇게 느려서 잡을 수 있겠습니까?”
카르테아는 이를 갈더니 입을 벌렸다. 그의 날카로운 치아가 드러났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악!”
카르테아는 온 힘을 다해 고함을 질렀다. 여태 본 어느 성악가보다도 성량이 컸다. 그 직후 그는 이전보다 힘껏 빠른 속도로 내게 돌진해왔다.
나는 소를 가지고 장난치는 투우사처럼 그의 손길을 피하고는 칼날로 그의 엉덩이를 베었다. 칼날에 맞은 상처였으나 빨간 줄 하나만 남아 가정교사에게 회초리질을 당한 꼴이었다.
“항복하시죠. 아무리 덤비셔도 안 될 거 같은데.”
“죽여주마.”
어우. 무서워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