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화 : 여심 헌터 (1)
짧은 흑발인 그녀는 자신의 머리카락과 같은 새까만 눈동자를 갖고 있었다.
너무나 까맣고 깨끗해서 가만히 보고 있으면 빨려 들어갈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멍하니 그녀를 보고 있다가, 너무 가깝다는 걸 깨닫고 황급히 뒤로 물러났다.
“아저씨가 말한 것처럼 묘한 분위기의 사람이네.”
“…대체 무슨 말을 하신 거죠?”
“글쎄. 아 너한테는 미안하지만 우린 길드 마스터에게 보고하는 게 기본이라서, 너에 관한 이야기는 조금 했어. 이해해 줘.”
“아…. 뭐, 괜찮아요.”
다른 팀원들에게도 숨겨 주었던 이야기를 유지한 아저씨가 했다면 그건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내가 굳이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지.
이런 생각을 하다가 문득 피식, 웃음을 흘렸다.
다른 팀원들이 어째서 아저씨를 절대적으로 믿고 따르는지 완벽하게는 이해하지 못했는데, 이젠 나도 똑같아져 있었다.
“만나서 반가워요. 저는 신월의 길드 마스터 ‘하루’라고 해요.”
“저는 아시다시피 최현입니다. 반가워요.”
그녀가 내민 손을 잡고 악수를 한 뒤, 그녀가 빙긋 웃으며 말했다.
“초월 헌터라고 하셨죠? 혹시 능력 보여 주실 수 있나요?”
“뭔가… 화려하거나 눈에 보이는 능력이 아니라서…….”
“괜찮아요.”
당장 내 능력을 보여줄 수 있는 거라곤 인벤토리에서 아이템을 꺼내고 집어넣는 것뿐이었다.
“오오…. 이것만으로도 굉장한데요? 저희 길드에 오셔서 보급팀에서 일해 주시는 건 어때요? 매일 보급팀이 직접 가지고 이동하느라 고생하거든요.”
“그건…….”
“야, 하루 너, 손님한테 예의 좀 지켜.”
“아저씨가 이분 데리고 오고 싶다며! 우리 길드로 꼬셔 보라고 해서 노력하고 있잖아.”
“누가 보급팀으로 꼬시래?! 초월 헌터를 보급팀에 넣는 바보가 어디 있냐?!”
“바보?! 지금 나 바보라고 했어?! 이번 시험 꼴등 했다고 놀리는 거지?!”
“뭐?! 너 이번 시험 꼴등이었어? 또 나한테 숨겼었구나!”
가만히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으니 꽁트를 보는 듯한 기분이었다.
“아…. 알겠다. 두 사람 마치 부녀지간 같네요.”
“아니거든!”
“아니야!”
내 말에 소리를 지르며 부정한 두 사람은 조금 더 떠들다가 조용해졌다.
“어쨌든 저는 진심으로 하는 얘기예요. 요즘에는 어째서인지 초월 헌터의 수도 줄어들어서 새로운 길드원을 영입하기도 쉽지 않거든요. 최현 씨도 우리 길드팀에서 활동하면서 만족했던 것 같고, 길드에 들어오시면 저희가 좀 더 신경 써 드릴 수도 있어요.”
“그건 그렇지만…….”
“다른 길드 들어가거나 협회에서 일하는 것보단 조건이 좋을 테니까 긍정적으로 생각해 주세요.”
솔직히 말하면 내가 이런 제안을 받는 것부터 어색하게 느껴졌다.
초월 능력을 가졌지만, 이번에 13층에서 공략을 하면서 느낀 건 내가 너무나 약하다는 것뿐이었다.
몬스터 어그로를 끌거나 시간을 버는 것 외에 대부분의 일은 다른 팀원들이 했으니까.
물론 아직 제대로 초월 헌터로서 경험을 쌓은 부분이 없지만, 잠시나마 스스로 강해졌다고 생각했던 내가 비참해질 정도였다.
심지어 초월 능력도 없는 민혁이는 내가 봐도 혀를 내두를 정도로 뛰어난 실력자였다.
그런 부족한 나를 이렇게 좋은 길드에서 적극적으로 스카우트해 준다는 건 현실감이 떨어졌다.
“전에도 말했지만, 부담 갖지 않아도 돼. 하루가 말한 것처럼 우리 길드에서 널 원하는 것도 맞지만, 개인적으로도 네가 우리 길드에 와 줬으면 좋겠거든.”
“맞아요. 저희 길드는 사실 실력보단 사람을 보거든요. 좋은 사람이 있는 길드가 좋은 길드 아니겠어요? 신기하게도 최현 씨는 그 팀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굉장히 긍정적으로 평가해 주더군요. 그래서 저도 어떤 사람인지 궁금했어요.”
예상치 못한 얘기에 나는 고개를 살짝 숙였다.
“저는 그렇게 좋은 사람도, 그렇게 뛰어난 헌터도 아닌데 이런 대접을 받는 게 맞는지 잘 모르겠어요.”
“과도한 겸손은 기만이 될 수 있어요. 며칠 같이 지내보셔서 알겠지만, 신예 언니랑 윤지 언니는 남에 대해서 빈말로 좋게좋게 이야기할 사람들이 아니거든요. 그런 두 사람이 그렇게 말한다는 건 정말 좋은 사람이란 뜻이죠.”
하루와 잠깐 대화를 나눴을 뿐인데, 고2밖에 되지 않은 그녀가 어째서 길드 마스터 자리에 앉아 있는지 금방 이해가 됐다.
말하는 것만 들어 보면 나보다 연상이라고 해도 전혀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주변에 풍기는 묘한 카리스마, 그리고 부드러움, 그 속에 있는 적당한 거리감.
“아저씨 말처럼 부담을 주고 싶진 않아요. 그래도 만약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저희 길드를 선택해 주시길 바라요. 그게 아니더라도 지금처럼 놀러 오시는 건 환영이에요.”
“알겠어요. 꼭 그렇게 할게요.”
하루와 대화를 마치고 나서 아저씨는 나를 데리고 다시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저게 우리 길드 마스터야. 어때?”
“멋진 길드 마스터네요. 신월이 좋은 길드로 성장한 이유를 조금 알 거 같았어요.”
“그치? 자, 그럼 이제 마지막으로 업무에 관해 이야기를 해 보자고.”
6층으로 올라오자, 준비실과 티 테이블이 놓여 있었다.
셀프 카페처럼 마련된 공간엔 커다란 화분들이 많아서 자연 친화적인 분위기를 풍겼다.
커피를 직접 내려 온 아저씨가 내 앞에 잔을 놓아주었다.
“감사합니다. 제가 해도 되는데.”
“아니야. 지금 넌 손님이니까 그냥 얌전히 받아먹어.”
그렇게 말한 아저씨는 품에서 태블릿을 꺼내 무언가를 만지기 시작했다.
“자, 이게 네가 들어오고 나서 우리가 얻은 전리품 목록이야.”
표와 함께 전리품의 개수, 시간이 정확하게 기록되어 있었고, 그걸 어디에 얼마에 팔았는지 자세하게 적혀 있었다.
“게이트에서는 공략 보상은 네가 가져갔고, 우리가 나머지 보상을 챙겼으니 게이트는 제외하고, 13층 던전에서 얻은 것들만 계산한 거야.”
“와…. 엄청 보기 쉽게 정리되어 있네요.”
“그치? 우리는 헌터들 외에도 이런 사무적인 업무만 하는 인재들이 있거든. 덕분에 다른 헌터들이 편하게 일할 수 있지.”
위에서부터 천천히 아이템 목록을 확인하며 화면을 내렸다.
대부분 몬스터를 쓰러뜨려서 얻은 ‘스톤’이 큰 가격으로 측정되어 있었다.
“그런데 저는 한 것도 없는데 정산금을 받아도 될까요.”
“저번에도 말하려고 했는데, 너 말이야 조금 자부심을 가져. 어떤 직업을 갖고 있던 자존심을 버리고 자부심을 가지는 건 중요한 거야. 목숨을 걸고 최선을 다해서 싸웠으면 누가 더 고생했는지를 따지는 건 무의미해.”
아저씨의 말대로였다.
매일 나를 깎아내리고 스스로를 줄인다고 해서 좋아지는 건 없다.
그렇다고 해서 자존심을 세우고 본인을 치켜세우는 것 역시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행동이 된다.
‘자존심을 버리고 자부심을 가져라.’라는 건 정말 좋은 말이었다.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화면을 아래로 쭉 내리다가 정산금 합계 계산이 되어 있는 걸 보고 커피를 앞에 품었다.
“푸웁!”
“윽! 더러워!”
“죄… 죄송해요.”
황급히 티슈로 커피를 닦으면서도 내 시선은 액수에 꽂혀 있었다.
“어때? 굉장하지?”
“저… 정말 이 금액이 맞나요? 여기서 이제 인원수대로 나눠야 하는 거 아니에요?”
“말했잖아. 우리 직원들은 일 잘한다니까. 거기 적혀 있는 게 네가 가져갈 금액이야.”
일, 십, 백, 천, 만, 십만, 백만, 천만…….
무려 2500만 원!
내가 이 팀과 함께 행동한 시간은 겨우 일주일이었다.
그 시간 동안 얻은 아이템을 팔아서 정산한 게 2500만 원이나 된다는 뜻이었다.
그럼 한 달로 계산을 하면 1억 원, 연봉 12억……!
정말 억 소리 나는 금액에 정신을 차리기 힘들었다.
지금까지 이렇게 큰돈을 만져 본 적이 없으니 더욱 아찔해질 수밖에.
“우린 쉽게 말하면 프리랜서라서 이 외에도 따로 지원을 가거나 용병으로 활동하면 추가 수익도 얻을 수 있어. 길드에 꼬시는 건 아까 많이 얘기했으니까 이만하고, 이번에 정말 고생했다.”
자리에서 일어난 유지한 아저씨가 내게 손을 내밀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아저씨의 손을 잡았고, 씨익 미소를 지은 아저씨가 손을 위아래로 흔들었다.
“네가 고생한 만큼 번 돈이니까 그 돈에 대해 자신을 낮추지 마. 계좌 번호 적어 두고 가면 오늘 내로 입금될 거야.”
“마지막까지 저는 도움만 받네요. 정말 감사해요.”
“도움은 무슨, 오히려 게이트에서 도움을 받았던 건 우리였는걸.”
짧은 인사를 하고 이곳을 나서기 위해 걸음을 돌렸다.
“현아.”
그때 아저씨가 부르는 목소리에 고개를 휙 돌렸다.
“다음에 보자. 꼭.”
빙긋 웃는 아저씨는 정말 단순하게 나와 다시 보고 싶다는 감정만이 느껴졌다.
아저씨는 아니라고 하지만, 나는 마지막에도 아저씨에게 많은 걸 받아 갔다.
***
“여기로 계약하겠습니다.”
“잘 생각하셨어요. 잠시 기다리시면 임대인분 오실 거예요.”
신월 길드에게 정산받은 돈으로 가장 먼저 집을 구했다.
오래된 낡은 원룸이었지만, 전세 2천이라는 저렴한 가격이었고, 가격에 비해 깔끔해서 마음에 들었다.
율이는 어차피 대부분 시간을 병원에서 보내니까 일단은 나 혼자 지낼 만한 곳이면 충분했다.
계약을 마치고 나서 율이 병실에 있던 옷가지를 집으로 옮겼다.
“하아…….”
방 가운데에 몸을 눕히자 그제야 뭔가 편안하게 쉴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던전에서 나오고 나서도 제대로 쉬지 못했으니까 오늘만큼은 푹 쉬는…….
지잉- 지이잉-
이내 핸드폰이 울려서 인상을 찌푸렸다.
누군가 일부러 나를 쉬지 못하도록 방해하고 있는 게 틀림없다.
“여보세요.”
“최현?”
“…? 네, 제가 최현인데요.”
“데이트 약속 잊어버린 거 아니지?”
그제야 상대가 누구인지 알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아…. 넵. 잊지 않았습니다. 절대 잊지 않죠.”
“그럼 내일 보자. 합정역 5번 출구 앞에서 만나.”
뚝-
뭐지…. 방금 내가 무슨 전화를 받은 거야!
아니, 그보다 어째서 차윤지가 먼저 데이트 연락을 해 온 거지?!
그녀라면 오히려 내가 잊어버리길 바라고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잠깐, 지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오… 옷…. 옷 뭐 입지? 내일 만나서 뭐 해야 하는 거지?
저쪽에서 벌써 코스까지 짜둔 건가?
아냐, 그런 찌질한 놈이 될 순 없지, 코스 정도는 내가 짜야 돼.
옷장을 열어서 옷을 이리저리 훑어보던 나는 절로 한숨이 나왔다.
암울한 수준이다.
2년 전의 내가 이렇게 심각한 수준의 패션 감각을 갖고 있었다니…….
이번에 나와서 산 옷들도 그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방법은 하나뿐이다.
꿀꺽.
어쩌다 보니 내 폰에 저장된 번호를 눌렀고, 익숙한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왔다.
“웬일이야! 건방지게 먼저 전화도 할 줄 아네?”
“저…. 그…. 저 좀 도와주실 수 있을까요?”
여전히 까칠한 느낌을 가득 풍기고 있는 이신예의 목소리였다.
“내일 윤지 씨랑 데이트하기로 했는데…. 그 옷이…….”
“그걸 왜 나한테 물어보는데? 꺼져.”
뚝-
여기 길드 사람들은 전화를 갑자기 끊는 게 유행인가 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