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라이프x9999-75화 (75/176)

75화 : 화이트 소드 (2)

“저 혼자 가도 되는데.”

“그래도 어떻게 혼자 보내요.”

길드 마스터인 신아람은 지도를 통해 최대한 빠르게 우리에게 지시를 내릴 수 있도록 아지트에 남았다.

장수주와 유미래는 그렇게 말렸는데도 결국, 나를 따라나섰다.

“현재 A-15 구역 편의점 건물 안에 숨어 있다고 해요. 주변에 있는 몬스터는 데스나이트.”

“…진짜 끔찍한 인연이네.”

“네?”

“아무것도 아니에요. 서두르죠.”

해가 이미 져 버렸기에 주변이 깜깜해서 쉽게 움직이는 것도 불가능했다.

함부로 랜턴을 켜면 몬스터들의 이목을 끌어 위험해질 수도 있다.

믿을 수 있는 건 오직 발렌의 후각뿐.

“정면에서 북서쪽에 여러 놈이 있어. 거리는 제법 멀지만, 조심해.”

“오케이.”

“누구한테 한 말이에요?”

“어… 제 또 다른 자아요.”

유미래는 노골적으로 내게 혐오하는 표정을 지으며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한 블럭을 건너가면 건물 뒤에 몸을 숨겨 주변을 살피고, 다시 이동하기를 반복했다.

두 사람은 원래 근처에 있는 윈터 버드 한 마리를 사냥하려고 나섰는데, 처리 후에 주변에 데스나이트가 깔렸었다고 했다.

윈터 버드처럼 공중 몬스터는 미리 처리하지 않으면 큰 위험 요소가 될 수 있었다.

“전투 상황이 되면 두 분은 저랑 떨어져서 안전한 곳으로 피하세요. 그리고 만약의 상황에선 장수주 씨가 유미래 씨를 지켜 줘야 해요.”

치유계 헌터도 기본적인 방어 능력을 사용할 수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임시방편일 뿐이었다.

마력계 능력은 넓은 범위에 강력한 파괴력을 지닌 마법을 쓸 수 있다.

일반적으로 누군가를 지킬 때가 아닌, 다수의 적을 쓸어버릴 때 쓰지만, 지금 상황에선 눈에 띄는 건 피하는 게 좋으니까.

“여기서 직진하면 돼요. 대략 500m 앞에 두 사람이 있어요.”

유미래의 말에 다시 주변을 살펴 몬스터가 있는지 확인했다.

“형씨. 위험해. 주변에 그놈들이 있어.”

“몇 마리나?”

“근처에만 5마리.”

한 마리씩 상대하는 게 가능하다면 충분히 혼자서도 처리할 수 있지만, 발각되는 순간 다른 놈들도 같이 덤비겠지.

지금은 최대한 전투를 피하는 게 상책이다.

타다닷!

“…! 뭐야?!”

“화이트 소드?!”

우리가 숨어 있는 골목길을 지나 도로 한가운데로 이동하는 건 화이트 소드 길드원들이었다.

10명 정도 되는 인원이 대놓고 몬스터들에게 보여 주기라도 하듯 도로 중앙으로 달리고 있었다.

하얀 제복을 입고 있어서 밤인데도 눈에 띄었다.

“저게 뭐 하는 짓이야?!”

“잠시만요. 마스터한테 물어볼게요.”

유미래가 신아람과 통신하는 사이, 황급히 밖으로 나가 그들에게 다가갔다.

“지금 무슨 짓이에요?! 이 근처엔 데스나이트가 깔려 있다고요! 죽는 게 목적이라면 말리지 않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당장 숨어요.”

몬스터 토벌은 절대 밤에 하지 않는 게 원칙이다.

주변을 확인하기도 어려워서 몬스터의 기습을 받을 수도 있고, 다른 감각이 발달한 몬스터를 상대로 싸울 때 불리하기 때문이다.

화이트 소드가 그런 기본적인 것도 모를 거라고 생각이 들진 않는다.

그렇다면 목적은 하나겠지.

“걱정하지 마세요. 저희가 안전하게 지켜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몬스터들에게 포위된 두 사람은 어디죠?!”

남자의 말에 절로 인상이 구겨졌다.

이재문, 그 자식이 벌인 일이다.

바로 이런 식으로 대놓고 힘을 과시하겠다는 건가.

도발이든 뭐든 정말 두 사람을 안전하게 구할 수 있다면 말리지 않겠지만, 지금 이 자식들이 하는 짓은 오히려 여기 있는 사람들을 모두 위험하게 만드는 행동이었다.

“데스나이트라고요! 블루 라벨에서도 상위 몬스터예요.”

“하하하! 저희는 꾸준히 수련해 온 B급 헌터입니다. 심지어 10명이나 되는데 블루 라벨쯤은 충분히 제압할 수 있죠.”

젠장.

대체 이재문은 무슨 생각으로 B급 헌터를 보낸 거야.

B급 헌터들도 실력이 좋으면 여럿이서 블루 라벨을 사냥하는 게 가능하다.

하지만 데스나이트는 블루 라벨 중에서도 상위 레벨이었고, 근처에 최소 5마리나 있다.

보나 마나 이 인원으론 전멸이 뻔하다.

“농담이 아니에요. 진짜 죽는다고. 당장 돌아가!”

“왜 이래. 이거 놔요!”

한 사람의 멱살을 잡고 소리치는 사이, 발렌이 말했다.

“온다! 형씨, 준비해!”

“으으… 미치겠네.”

스르릉.

“세 마리가 접근 중이야.”

화이트 소드 길드원들에게 뭐라고 말하기도 전에 데스나이트가 모습을 드러냈다.

“다들 훈련했던 대로…….”

쩌엉-!

데스나이트가 화이트 소드에게 달려드는 걸 앞에서 막아 냈다.

이렇게 검을 마주하는 건 오랜만이네.

여전히 무지막지한 데스나이트의 힘에 손이 찌릿거렸다.

놀라서 바닥에 주저앉은 헌터는 앉은 채로 천천히 뒤로 물러나고 있었다.

“으아악!”

촤악!

“……!”

그가 벌떡 일어나 도망치려는 순간, 다른 데스나이트가 그를 반 토막 내버렸다.

“지… 진형을 갖춰! 방어 태세!”

그들의 반응으로 보아, 아직 데스나이트와 전투 경험이 없는 게 틀림없다.

그렇지 않고서야 저런 허접한 진형으로 데스나이트를 막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진 않겠지.

지금은 망설일 때가 아니다.

라이프 파워, 더블 라이프 파워.

두 개의 스킬을 동시에 쓰고 앞에 있는 데스나이트를 밀쳐 냈다.

카앙-!

바로 뒤에서 날뛰고 있는 놈에게 달려가 놈의 공격을 튕겨 내며 다른 헌터들에게서 거리를 벌렸다.

과거라면 이 두 가지의 스킬을 쓴다고 해도 데스나이트 둘을 상대하는 건 무리였겠지만, 지금은 다르다.

46까지 오른 레벨과 월하백화식이 있다.

그리고 6개월간 꾸준히 몬스터와 전투를 반복하며 경험을 쌓아 왔다.

지금이라면 할 수 있어.

양쪽에서 달려드는 데스나이트를 둘 다 상대하면서도 밀리지 않았다.

예전과 달리 지금은 두 마리의 공격을 막아 내면서 역습까지 가능했다.

데스나이트의 약점은 이성이 없는 것.

같은 패턴으로 역습을 당해도 똑같이 그 행동을 반복한다는 것이었다.

“형씨! 뒤에 하나 더!”

“두 마리로도 벅차다고!”

“으아악!”

어느새 들이닥친 데스나이트가 나와 멀리 떨어져 있는 헌터 두 사람을 동시에 베어 버렸다.

당연한 얘기지만 그들의 공격에 데스나이트가 당해 줄 리 없었고, 사방에서 날아오는 공격을 맞으면서도 헌터들을 하나씩 죽이는 데스나이트는 공포 그 자체였다.

“젠장, 여기서 쓰게 하고 싶진 않았는데! 장수주 씨!”

“네?!”

“부탁드려요! 할 수 있죠?!”

아직 능력을 능숙하게 다루지 못한다고 했지만, 이런 상황에선 그런 걸 따지고 있을 수 없었다.

벌써 셋이나 죽었어.

내버려 둘 수 없다.

“스으읍.”

기도하듯 손을 모은 그녀가 숨을 들이마시자 주변의 공기가 차갑게 식는 게 느껴졌다.

급격히 떨어지는 기온에 화이트 소드 길드원들도 당황한 듯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카드득!

장수주를 중심으로 바닥이 얼어붙더니, 단숨에 내 앞에 있는 두 마리의 데스나이트를 집어삼켰다.

아직 그녀 실력으론 데스나이트를 완전히 얼리는 건 불가능하다.

그 전에 다른 놈을 최대한 빨리 처리하는 수밖에.

쌔엥-!

내가 앞에서 달려들자, 데스나이트는 예전과 조금도 달라지지 않은 뻔한 패턴으로 공격해 왔다.

데스나이트의 첫 번째 공격은 이제 눈감고도 피할 수 있을 정도라고.

“화왕!”

카가각!

발도기인 화왕은 월하화백식의 가장 빠른 기술이었다.

그렇기에 데스나이트가 다시 자세를 잡기 전에 두 번 연속으로 공격할 수 있었다.

[1751!]

[1413!]

처음 공격은 제대로 들어갔지만, 두 번째 공격은 자세가 흐트러졌다.

그래도 두 번의 공격으로 무려 3000이 넘는 대미지를 입혔다.

데스나이트의 체력은 7189.

거의 반에 가까운 대미지다.

46레벨이 되어서 전보다 힘 수치가 높아졌고, 그걸 라이프 포인트와 더블 라이프 포인트로 증폭시키니 대미지가 커지는 건 당연했다.

심지어 월하백화식의 파괴력까지 더해졌으니까.

물론 겉으로 보기엔 데스나이트는 멀쩡했다.

자신이 얼마나 타격을 입었는지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놈은 그대로 다시 내게 달려들었다.

“최현 씨! 피해요!”

뒤에서 들려온 장수주의 목소리에 돌아보지도 않고 몸을 옆으로 굴렸다.

카앙-!

바닥에서 솟아오른 얼음 원통이 그대로 데스나이트를 공중으로 띄웠다.

좋은 판단이다.

놈이 바닥에 떨어지기 전에 앵화를 써서 다시 한번 공중으로 올려 쳤다.

그리고 타이밍에 맞춰 매화로 대미지를 입혔다.

[1141!]

[1672!]

장수주가 얼음을 직접 데스나이트를 공격하는 것보다, 빈틈을 만들어서 내가 자유롭게 공격을 하도록 만들어 줬다.

마력계 헌터는 다른 특수계 헌터들보다 정신력 소모가 압도적으로 크다.

특히 처음에 두 마리의 데스나이트를 전투 불가 상태로 만들 정도로 큰 마법을 썼으니, 이 녀석에게 그런 마법은 불가능했겠지.

현재 그녀가 할 수 있는 것 중 가장 좋은 판단이었다.

체력이 얼마 남지 않은 데스나이트를 쓰러뜨리는 건 내게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후우.”

[System : 블루스톤x2, 차가운 심장x1, 오래된 녹슨 검x1을 획득했습니다!]

짝짝짝.

시스템 창을 보고 있는 사이에 뒤에서 박수 소리가 들려왔다.

“훌륭한 실력이군요.”

“…….”

“김비서. 놀랐을 우리 길드원분들을 모시고 돌아가. 사상자 처리하고.”

“네. 알겠습니다.”

그의 뒤쪽에서 검은 양복을 입은 사람 넷이 튀어나와 서둘러 주변을 정리했다.

“당신 미쳤어? 이게 무슨 짓이야.”

“마치 서진욱 씨가 살아 있을 때를 보는 것 같더군요. 훌륭합니다. 당신의 그 초월 능력은 정말 탐나는 것이군요.”

“묻는 말에 대답해! 저 전력으론 데스나이트를 사냥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걸 알면서 왜 이 인원을 보낸 거냐고!”

그에게 성큼성큼 다가가 노골적으로 살기를 흘렸지만, 그는 연신 히죽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당신의 진짜 실력을 보고 싶었으니까요. 제가 탐낼 만한 인재인지 궁금했거든요. 하지만 그런 고민을 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당신은 뛰어난 헌터입니다. 아직 완성되지 않았는데도 이 정도라니… 제게 온다면 지금보다 몇 배는 성장 시켜 드리죠.”

제정신이 아니다.

이 인간 머리엔 다른 사람의 목숨 따윈 안중에도 없어.

“겨우 그게 이유야?!”

“겨우? 겨우라고 하셨습니까?! 당신이라는 보석을 감정하는데 저딴 쓰레기 목숨 몇 개는 전혀 아까운 게 아닙니다.”

“…….”

어이가 없어서 할 말을 잃었다.

한때 전장을 휩쓸고 다녔던 전설의 헌터라고 해도, 지금은 그저 사이코패스로 보였다.

“미리 말씀드리죠. 저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최현 씨를 저희 길드로 데려올 겁니다. 그러니 후회하시기 전에 스스로 오시는 건 어떻습니까.”

“나는 오크랑 친구는 해도, 인간 말종이랑은 같이 일 못 해. 꺼져.”

그렇게 말한 뒤 나는 얼어 있는 데스나이트를 지나쳐 장수주와 유미래 쪽으로 걸어갔다.

카앙!

뒤에서 들린 소리에 깜짝 놀라 고개를 휙 돌리자, 순식간에 산산조각이 난 데스나이트와 손을 털고 있는 이재문이 보였다.

그 찰나의 순간에 두 마리의 데스나이트를 죽였다고?!

“…다음에 다시 만날 날을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그의 목소리는 한참이나 내 귓가에 맴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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