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맨스판타지로 떨어진 S급 헌터-1화 (1/150)

< 1화 프롤로그, 떨어지는 낙엽은 가을바람을 원망하지 않는다 >

별 볼 일 없는 인생이었던 것 같다. 죽을 때가 되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S급 헌터, 한국 9위, 세계 50위의 헌터. 각종 의전, 연예인을 뛰어넘는 인기, 싸인회, 방송활동.

겉으로 보기엔 화려하지만 속은 곯아있었다고 할까. 난 그 이유가 무엇인지 알고 있다.

내 인생에는 내 반을 믿고 맡길 여자가 없었다. 장장 28년 동안. 홀로 마시는 맥주에 안주는 고독을 곁들인 멸치였다. 맛도 없었다.

- 아저씨, 진짜 작작 궁상떨어요. 차라리 결혼정보회사에 등록하든가.

이건 여중생 S급 헌터 정채린이 내게 한 말. 하지만 나는 당당하게 이렇게 대답했다.

- 난 자만추야.

- 지랄한다.

- 어른한테 지랄이 뭐냐?

- 나보다 이성 경험도 없는 주제에 뭔 어른.

아마 그게 내가 일대일로 싸워서 진 최초의 싸움이 아니었을까 싶은데. 난 그때 할 말이 없었다. 채린이는 진짜 아무 남자나 만나고 다녔으니까. 걔는 그런 능력이 됐다.

그렇다면 나는? 솔직히 S급 헌터로도 들어오는 제안은 많았다. 하지만 나는 '자만추'였다. 그 자연스러운 만남 추구가 28년 동안 안 될지 몰랐을 뿐이다.

심지어는 이런 루머도 돌았다.

- S급 헌터, '환영살인마' 주환영, 게이설?

- S급 헌터 '철의 요새' 구공환과 커플티 목격 돼···

진짜 개소리도 정도껏 해야지. 구공환 아저씨는 마흔이 넘고 심지어 유부남이다. 그냥 같이 동묘에서 쇼핑하다가 비슷한 옷 산 거 가지고 그딴 기사를 쓰다니. 기레기들 죽어.

- 너 진짜 게이냐?

구공환 아저씨가 진짜 그렇게 물어본 적이 있었다. 같이 을지로에서 맥주 한 잔 걸칠 때였다. 나는 맥주잔을 쾅, 하고 내려놨다.

- 그만 말하쇼. 나 그 기사 때문에 스트레스야.

- 아니면 고자야?

- 좀 닥쳐.

- 아니, 이해가 안 되잖아. S급 헌터가 뭐가 딸린다고 28년 동안 연애를 못 한다냐. 근데 성소수자 취향이면 이해 가능이지.

- 그냥 자만추라고.

- 자만추가 뭔데?

역시 아저씨라 이런 줄임말에는 약했지.

- 아, 아저씨. 그냥 술이나 드시지?

- 넌 여자 만나려면 그놈의 로맨스판타지 소설부터 끊어라. 그걸로 대리만족하니까 네 연애세포가 계속 죽는 거야.

- 나는 욕해도, 「장미꽃이 흩뿌려진 침대」는 욕하지 말자?

- 넌 뒤질 때까지 모솔이겠다.

아저씨, 보고 있어? 지금 아저씨의 예언이 이뤄지는 순간이야. 리바이어던의 공격을 막을 마나는 모두 사라졌고, 리바이어던은 내 바로 앞에서 입냄새나는 입을 쩍 벌리고 있다.

난 그냥 눈을 감고 말았다.

마지막으로 생각난 건, 한심하게도 내 인생의 주마등이 아니라 마저 읽지 못한 로맨스판타지 소설, 「장미꽃이 흩뿌려진 침대」의 결말이었다.

마리나와 가테스는 어떻게 됐을까? 잘 살았겠지. 이 나와는 다르게 말이야. 누굴 원망하리오. 자만추라는 단어에 겁 많은 나를 감추고 다녔으니 자업자득이라 할 수 있겠다.

와그작!

그 소리와 함께 내 반신이 리바이어던의 위장 속으로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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