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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스판타지로 떨어진 S급 헌터-14화 (14/150)

< 14화 짐꾼 쟁탈전 - 황도 (2) >

칸나는 내가 서있는 곳에 칼로 원을 그렸다. 고작해야 두 걸음 정도나 옮길 수 있는 작은 원이었다.

"무슨 시험입니까?"

"너의 말처럼, 지금 근위대가 작전을 나가고는 있지만 근위대의 본분은 공격이 아니다."

칸나가 칼을 긋고 검집에 넣고 말했다.

"호위지. 특히 근위대는 한 몸처럼 움직여야 한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방위를 지키면서 방어하는 실력이 있어야 한다."

그러니까, 이거는 방어 시험이라는 거네. 하긴 그냥 단순한 대련이면 좀 고민이 될 거였는데. 내가 시지포 같은 놈이면 그냥 밟아가면서 이길 수 있는데, 칸나는 내 여자친구 후보란 말이야. 무참하게 이길 수는 없지.

칸나는 내가 무례한 생각을 한다는 것을 눈치 채지 못하고 말을 이었다.

"지금부터, 내가 전방위로 공격할 거다. 넌 막기만 하면 된다. 괜히 반격할 생각하지마라. 그러다 다친다."

"네. 알겠습니다."

시종일관 침착한 게 귀엽네. 저 칸나가 내 앞에서만 귀여운 모습을 보여준다면···! 아, 벌써부터 너무 설레잖아.

"간다."

칸나가 내게 느린 속도로 달려온다. 난 알 수 있다. 그녀가 진심으로 다가오지 않는다는 걸.

내 체격은 왜소한 편이다. 한국에서도 왜소하다는 평가를 들었는데, 서양인 피지컬이 가득한 이곳에서는 더욱 작게 보이겠지.

칸나의 배려가 느껴지는 부분이다. 말은 차갑게 해도, 행동은 다른 너란 여자.

그녀의 검로가 정직하게 1자로 날아온다. 이건 완전 기초 시험이네. 난 칼을 맞대지도 않고 흘렸다.

"오호?"

칸나의 눈이 호기심으로 물들었다.

이건 정답이지. 나도 헌터 훈련소에 가서 강연을 할 때, 이벤트 성으로 대련을 몇 번 해주는데 항상 이렇게 시작한다. 그때 맞대면 하수고, 피하면 괜찮다.

검으로 막는 건 어쩔 수 없을 때만 막는 거고, 피하는 게 베스트다. 왜냐하면 칼로 막는 순간 자신의 공격 기회 또한 막히게 되니까.

"기본은 되어있구나."

"응용 시험도 좋습니다."

"안 그래도 그럴 참이다."

칸나의 검로가 슬슬 복잡해진다. 시험의 단계는 즉석으로 올라간다. 그녀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처음부터 겁을 주지 않고 상대방을 배려해 한계치를 끌어내는 방식. 나야 신입 헌터를 대하는 것도 있었고, 카메라도 지켜보고 있기에 그런 방식을 쓸 수밖에 없지만 칸나는 다르다. 칸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니까.

"더 시험해 봐도 될 것 같구나. 너한테는."

칸나가 이제 슬슬 발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녀의 속도가 빠른 속도로 올라간다. 검술의 변칙도 많다. 내지르는 척하고 빼고 베거나, 사각으로 들어오는 박투.

나는 원 안에서 그것을 최대한 피하고, 검은 검으로 방어했다. 박투는 다리를 들어 허벅지 쪽에 마나를 둘러 방어했다.

어느새 우리 사이에 연무장의 먼지가 인다. 마나로 인해 모래들이 부유하고 있는 것이다.

팡, 팡 터지는 소리와 함께 훈련을 하고 있는 사람들의 시선이 몰렸다. 병사들을 강하게 지도를 하고 있던 어떤 지휘관도 우리의 시험을 지켜보고 있었다.

"황자님이 데려온 사람 중에 오랜만에 제대로 된 사람이구나."

"상관모욕 아닙니까?"

"황자님은 보는 눈이 없다기보다, 불쌍해 보이는 사람들을 거두지. 그래서 마인드는 좋아도 능력이 안 되는 사람들이 많다. 나로서는 아쉬운 일이지만 어쩔 수 없지."

또 흔들어댄 콜라마냥 터지는 탄산. 분명 이 말 가토스 앞에서도 한 번 했을 걸.

"마지막 단계로 가자꾸나. 이 단계로 가는 병사는 네가 처음 같구나."

말이 그렇지. 그녀는 아예 이제 내가 궁금해진 모양이다. 그녀의 목검에 마나가 감돈다. 목검이 쩍하고 갈라지는 소리가 났지만 마나로 응집되어 오히려 날 부분은 더 단단해 보인다.

"간다."

친절하게도 간다고 설명해주고 오는 칸나. 그녀는 강맹한 기운으로 칼을 일자로 찔러왔다. 검로는 정직하다. 하지만 처음과는 비교도 할 수 없다. 마치 파도가 덮치는 느낌이다.

나는 무게중심을 낮추고 내 목검으로 그녀의 검끝을 맞췄다. 극과 극의 만남은, 폭발이다.

쾅!

"뭐, 뭐야···?"

멀리서 구경하고 있던 병사의 얼떨떨한 목소리가 들린다. 나는 그녀가 일점으로 모은 마나를 정확하게 타격했다.

우리가 서있는 반경에 있는 연무장의 모래가 전부 뒤집어졌다. 그녀는 칼끝을 칼끝으로 막은 걸 보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내가 처음 보는, 칸나의 당황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녀는 침착한 표정으로 돌아갔다.

"대단하구나."

"감사할 따름입니다."

"합격이다."

칸나는 이제는 못 쓰게 되어버린 검을 연소시켰다. 나는 연소 시키는 스킬을 몰라서 그냥 땅 바닥에 꽂았다.

칸나는 자연스레 땅바닥을 바라보았다. 그 때, 그녀의 침착함이 완전히 깨졌다.

"···보통 사람이 아니었구나."

그녀가 본 건 자신이 내 주위에 그은 원이었다. 그 줄은 어떤 흐트러짐 없이 원의 모양을 유지하고 있었다. 당연하지. 내가 그건 보호하고 있었으니까.

그녀는 당연히 그 원이 흐트러진 줄 알았나보다. 목소리마저 떨리고 있으니까.

"규칙은 지켜져야 규칙이 아니겠습니까."

"그래, 내가 오히려 말렸구나."

칸나는 다시 침착함을 되찾으려 했지만 쉽게 되지는 않는 모양이다. 그녀는 바로 등을 돌렸다.

"오늘은 쉬고, 내일부터 근위부로 출근하도록 하라. 점호시간은 아침 7시다."

칸나는 여전히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고 연무장을 떠났다. 나만 남은 연무장에, 모든 사람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도 빨리 도망가야겠다.

난 자유 시간이었다. 하루 동안의 자유시간. 근위병실에 지금 들어가도 되겠지만, 일단 황도를 좀 익혀놔야겠지.

마리나랑 언젠가는 같이 걸어야 할 때가 있을 텐데, 그때 내가 잘 보좌해놔야지. 내가 A급 헌터와 첫 소개팅을 할 때, 내가 찍어놓은 식당을 지나치는 바람에 길을 몇 번 돈 적이 있었다. 그래서 난 까였지. 그런 일은 더 이상 안 된다.

내가 먼저 찾는 곳은 도서관이었다. 일단 스킬을 최대한 해금해놔야지.

내 가방에는 지금 두꺼운 고대 옌시어-트라프비체어 사전과 성문기본영단어가 있고, 스킬북에는 아이리가 준 「기초탄탄 트라프비체어」가 있다. 이 정도면 어떻게든 맞춰보면서 해야지.

물어물어 황궁도서관을 찾아가니, 핑크색 머리를 구불구불 늘어뜨린 뱅뱅이 안경의 사서가 있었다. 그녀는 내가 오자마자 도서관에 어울리는 조용한 목소리로 물었다.

"어디 소속이신가요?"

"제2황자부 소속입니다."

"제2황자부 어디요?"

"내일부터 근위대에 소속되기로 했습니다."

"아하, 그렇군요. 원래는 증명패를 보여주셔야 하는데, 오늘은 없으시니 마음껏 이용해주세요."

이 사람은 융통성이 있네. 중세시대에 있어서 규칙덕후들 밖에 없을 줄 알았는데. 이게 사람 사는 맛이지.

"감사합니다."

나는 그리고 도서관을 전격적으로 둘러보았다. 역시 황궁 도서관. 인테리어부터 크기까지 남다르다.

도서관의 계단은 중앙에 나선식으로 펼쳐져 있고, 원형으로 서가들이 배치되어 있었다.

층은 최소 6층은 되며, 천장은 통유리로 되어 있어 채광이 밝았다. 만약 도서부가 되면 여기서 일하는 거였겠지. 완전 노예가 될 것 같은데.

역시 도서관이라 그런지, 공부를 할 수 있는 책상도 있었다. 황궁이라 목재도 빛깔이 남다르다. 회장님이 쓰시는 마호가니 책상 이런 것 같은데.

다만 일과시간이라 사람이 없었다. 그게 내게는 더 편했다.

"이 나이 먹고 언어 공부라니."

그나저나 내가 여기 세계관 설정까지는 모르겠지만, 옌시 사람은 너무 불공평한 거 아니냐. 스킬창이 있는데 그게 트라프비체어로 되어 있다니.

여기는 명실 공히 신이 있는 세계. 신은 대체 뭘 하는 거야. 오히려 이런 불공평함이 신의 존재를 증명하다니, 모순적인 일이다.

나는 열심히 공부를 했다. 성문기본영단어, 고대 옌시어-트라프비체어 사전을 비교해가며 공부했다. 난 두 개의 언어를 공부하고 있는 거였다.

영어, 그리고 지렁이 같은 트라프비체어. 당연히, 진도가 안 나가지. 내가 아무리 어린 뇌라고 해도 이건 좀 심하잖아.

나는 사전을 펴서 꼼수를 찾기로 했다.

"그게 뭐였더라. 생각. 티로 시작되는데."

【생각 : Thought [θ? ŋk]】

편하디 편한 스킬창. 보다 보니 너무 쉬운 단어라서 창피하다. 누구한테 이게 보이면 난 죽고 말거야.

난 그걸 토대로 트라프비체어에서 생각을 찾았다. 있네. 내 스킬창에 맞는 게 있으려나. 이렇게 된 거 귀납법 스킬 해금으로 간다.

있다. 근데 뒤에 무슨 단어가 달려있네. 이건 트라프비체어에서 찾아야 돼서 내가 직접 사전을 둘러봐서 찾아야 된다. 더러운 트라프비체 중심 시스템 같으니라고.

찾아보니까, 그것은 가속이라는 단어였다.

【가속 : Acceleration [? k? sel?? re?? n]】

【스킬 : 사고 가속 Lv 8 개방】

【스킬 : 사고 가속 Lv 8 사용 중】

이런 스킬이 나한테 있었군. 하긴 싸울 때는 여러 가지를 고려하면서 싸워야 되니까. 싸울 때는 아드레날린이 돌고 아드레날린이 돌면 생각이 빨라지잖아. 그걸 반영한 스킬인 듯했다.

"너 뭐해?"

내가 고개를 들자 어떤 아이가 얼굴만 둥둥 떠있었다. 솔직히, 이건 반칙이지. 난 깜짝 놀라서 의자 뒤로 넘어지고 말았다.

"하하하."

얼굴만 둥둥 떠 있는 꼬마가 깔깔 웃었다. 도서관 귀신인가? 냉정이라는 스킬이 있었으면 내가 이러진 않았을 텐데. 망할 세상아.

"누구세요?"

"그건 알 거 없고. 신기한 걸 공부하기에. 처음 보는 사람이기도 하고."

이것 봐라. 바로 반말이 날아온다라. 그럼 직위가 좀 되는 꼬마라는 건데. 아이는 무언가를 펄럭였다. 그러자 아이의 몸이 전부 드러났다.

구불거리는 금발에 녹안을 가진 귀여운 아이였다. 딱 봐도 알겠네. 마리나의 귀여움을 독차지한 막내 황자 가티스잖아.

"황자님을 뵙습니다."

내가 예를 차리자, 가티스는 살짝 눈이 커졌다.

"어떻게 알았대."

"신기한 아이템에, 구불거리는 금발, 녹안으로 알아차리지 못하면 황궁의 사람이 아니지요."

물론 1일차지만. 가티스는 천진하게 투명한 무언가를 흔들었다. 투명망토를 들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손이 가려져서 마치 손목이 전장에서 날아간 사람과 같다.

"이건 마탑주가 준 거야. 완성품은 아니라니까 쓰지 말라고는 하는데, 그냥 쓰고 다니는 거지."

"그렇습니까?"

왜 갑자기 황자가 여기서 나오는데. 내가 알기로 얘는 골칫거리인데. 도서관에서 공부라도 하고 있었을까.

"너, 나 만난 김에 하나만 도와줘."

가티스의 머리 위로 금색 물음표가 뜨는 듯하다. 갑자기 뜨는 퀘스트도 아니고. 하지만 일반 게임과 달리 이 퀘스트는 거절할 수 없다. 황자니까.

"무엇이옵니까?"

"그냥 쉬운 질문이야. 근데 그 답이 도서관에 있다고 하는데 도저히 못 찾겠어."

쉬운 질문이면 알아서 찾으면 안 될까? 목 끝까지 나오는 외침을 난 간신히 진정시켰다. 난 공부하느라 바쁜데.

"뿌리가 깊을수록 가지가 얇고 꽃이 없으며, 가지가 풍성하고 꽃이 화려할수록 뿌리가 얇은 나무의 이름은 무엇일까?"

뭐야, 수수께끼네. 누가 이런 질문을 한 거야. 이런 건 대답하기 나름인 수수께끼 아니야. 내 생각을 말하기도 전에, 갑자기 황궁 전체에 비상벨이 부르르 울리고 소리가 났다.

"제2황자부 근위기사, 칸나 카라모프 대위입니다. 제1황자부 소속, 제2황자부 소속 근위병들은 모두 동문으로 집합하시길 바랍니다."

뭐야, 나도 이러면 가야될 것 같은데. 또 검은 나무, 즉 타락한 나무가 생긴 모양이군. 근위대도 바쁘다.

"야, 너 근위대야? 왜 짐싸?"

"네, 근위대입니다."

"대답은 해주고 가야지! 안 그러면 못가!"

아, 이 꼬맹이가. 진짜. 난 대충 뇌를 거치지 않고 대답해줬다.

"답은 사람입니다."

난 그리고 짐을 챙겨 동문으로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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