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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스판타지로 떨어진 S급 헌터-15화 (15/150)

< 15화 짐꾼 쟁탈전 - 황도 (3) >

난 가방을 옆으로 메고 달렸다. 동문에는 이미 많은 기사들이 집합해 있었다. 중갑 복장까지 다 있고. 투구에는 빨간 깃이 꼿꼿하게 서있다.

지금 내 차림새는, 그냥 평범한 가죽 옷이다. 그러니까 시선 집중. 아니, 근데 근위병 전입 전이라 난 갑옷 못 받았다고.

"쟨 누구야?"

"시종 아니야?"

"옷차림이 시종도 아닌데."

시종처럼 보일만도 하겠다. 너무 허름해서. 난 칸나가 서있는 제2황자부의 부대 끝에 그냥 섰다. 어우, 쪽팔려.

"넌 뭐냐?"

맨 뒤에 있었던 기사가 뒤를 돌아보며 묻는다. 내가 대답하려 했지만 앞의 기사가 대신 대답해주었다.

"칸나 대위님이 말씀하셨잖아. 내일 전입신병 온다고. 걔 같은데."

"맞습니다."

알아주니 고맙네.

"근데 옌시 사람인 줄은 몰랐다."

"싸울 수는 있냐?"

응. 너네보다 훨씬 더. 그래도 그렇게는 말할 수 없지.

"칸나 대위님이 직접 들여오셨으니 잘은 싸우겠지."

기사 중 한 명이 말했다. 든든하다. 칸나 카라모프!

여기서 왕따 당할까봐 걱정했는데, 그렇게까지는 안 될 것 같다. 이게 다 부대에 신뢰감을 주는 칸나의 덕이지. 이들이 칸나의 리더십을 설명해주고 있다.

"그런데 적어도 갑옷은 군수계에서 가져와야 되는 거 아니야?"

"긴급 집합이잖아. 그럴 시간이 어디 있어?"

나를 두고 주절거리는 기사들. 그와 동시에 칸나가 저 멀리서 왔다. 그녀의 손에는 큰 가죽주머니가 들려 있었다. 뭐지. 식량인가.

"넌 아직 전입하지도 않았는데 왜 온 거냐?"

칸나가 근위대에 도착해서 물었다. 뭐야, 그렇게 말하니까 서운하잖아. 그녀는 내게 그러고는 가죽주머니를 던졌다. 정확한 송구능력. 받자마자 묵직한 쇳덩어리가 느껴진다.

안을 보니 장갑, 갑옷, 투구, 각반 등이었다. 전입신병 풀세트네.

"올 줄 알고는 있었다만."

칸나는 무심하게 말했다. 그 멋짐에 제2황자의 근위대 어떤 사람이 휘파람을 불었다.

"시끄럽다. 비상 상황이라니까."

"아, 칸나 대위님이 계신다면 저희 부대에 사상자는 없습니다."

"안일한 소리하지 마라."

부대의 분위기가 괜찮네. 헌터 때 겪은 건데, 분위기가 좋은 파티는 결과도 좋고, 분위기가 나쁜 파티는 결과도 나쁘다. 굳이 헌터 일이 아니더라도 모든 게 다 그렇겠지.

"황도 근처에 타락한 나무가 나타났다. 색깔은 진홍색. 3단계다."

"진홍색이면 괜찮은데?"

누군가가 조용히 말했다. 칸나가 들었는지 그를 째려보았다. 바로 그의 입에 자물쇠가 걸렸다.

타락한 나무는 몬스터들이 열리는 나무다. 색깔마다 단계를 나누는데, 1단계는 파랑색, 2단계는 노랑색, 3단계는 진홍색, 4단계는 보라색, 5단계는 빨간색이다.

5단계 빨간 나무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그건 검은 나무가 있을 때나 나오는 것이라는 설정. 근데 내가 아이리와 볼 때, 새순을 봤으니 이제 곧 나라가 엉망진창이 되겠지.

전에도 말했듯 검은 나무는 이 세계의 가장 위험한 징조다. 제국의 업이라고도 불리지. 각 나라는 그 나라의 업을 가지고 있는데, 트라프비체는 검은 나무의 마지막 결실인 악마, 제논 왕국은 꺼지지 않는 불길인 업화 등 이런 식이다.

"진홍색이면 우리 근위대로도 충분하지만, 그래도 지금은 검은 나무가 새순이 돋는 상황이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그래서 제1황자 근위대에게 협력을 요청했다."

"저희끼리도 할 수 있습니다!"

어떤 기사가 뱃심을 담아 외치자 모두가 그를 환호했다. 하지만 너무 크게 외쳐서 옆의 1황자 근위대에게까지 들린 모양이다.

"전력 딸려서 지원요청한 것들이 소리 하나는 우렁차네."

"우리가 처치할 테니 너희는 먼저 숙소로 들어가라!"

1황자 근위대와 2황자 근위대가 사이가 좋지 않구나. 하긴 상관들이 제위를 놓고 다투는 데 당연히 사이가 안 좋겠지.

"조용해라. 도발은 하지 말고."

"칸나 대위님! 그냥 1황자 근위대로 오시죠! 부중대장 정도는 드릴 수 있습니다!"

얼씨구. 아주 하극상까지 하네. 칸나는 1황자 근위대의 도발을 무시했다. 2황자 근위대만 뿔이 날 뿐이었다.

"자, 무시하고. 우리는 우리 할 거 한다. 1근위대는 1근위대장이 알아서 지휘할 거니까."

그녀는 계속 들려오는 1황자 근위대의 헛소리들을 무시하고 작전설명을 했다. 그 상황 속에 1황자 근위대는 먼저 우리를 조롱하며 떠나갔다.

작전 설명? 당연히 나는 하나도 못 알아들었다. 방진, 3번 진, 1번 상황. 이런 걸 내가 어떻게 아냐고.

"신병, 에퍼리는 그냥 내 옆에 붙어있어라. 아직 진을 모를 테니까."

"오, 신병. 좋겠는데?"

"칸나 대위님! 제가 지켜드리겠습니다."

"좀 조용히 해."

칸나가 여기 아이돌이구만. 난 기사들의 질시를 받으며 칸나의 곁으로 갔다. 칸나는 맨 후방에 섰다. 근위대장은 맨 후방이 곧 전방이지.

칸나의 말마따나, 이들은 공격을 하는 게 주가 아닌 수비가 주니까. 사실 그리고 그게 맞다. 삼국지에나 나올법한 선봉장이 어디 있어. 후방에서 지휘하는 게 지휘관이지.

"출진!"

기사들이 칸나의 소리와 함께 함성을 지르며 동문으로 빠져나갔다. 저 멀리 먼저 빠져나간 1황자 근위대의 무리가 보였다.

"진홍색 나무는 하나입니까?"

"아직 발견된 건 하나다."

칸나는 고삐를 잡으면서 메모장을 보았다. 아마 관측병들에게 받은 정보인 듯했다.

곧 우리는 진홍색 나무에 도착했다. 먼저 온 1황자 근위대는 먼저 진을 짜고 있었다. 쐐기형 진이었다.

타락한 나무 근처는 땅이 반투명했고, 분지가 형성되어 있었다. 딱 봐도 자연스럽게 형성된 곳은 아니었다. 타락한 나무가 땅의 정기를 빨아먹는 듯했다. 반투명한 땅에는 진홍색 나무의 뻗어들어간 뿌리가 희미하게 보였다.

"아직 다행히 많이 뻗지는 않았군."

칸나가 나지막이 말했다.

"독수리 진."

칸나가 조용히 말했다. 그 말과 함께 기사들이 바로 옆으로 쭉 펴졌다. 완벽히 훈련된 움직임이었다. 칸나를 중심으로 독수리가 날개를 편 것 같은 진이 펼쳐졌다.

"1황자 근위대가 돌진하면, 마수들이 뛰쳐나온다. 우리는 그것들을 싸먹는다."

"우리가 돌진하면 안 됩니까?"

"현실적으로, 1황자 근위대가 더 강하지 않느냐."

칸나가 말했다. 그렇구나. 하긴 그 가테스 황자의 밑에 있는 사람들이니까 강하지 않을 리가 없겠지. 2황자는 근위대도 밀리는 구나.

모두가 그 말에 불편한 표정이었지만 누구 하나 반발하지는 않았다.

"돌진!"

저 멀리서 외침이 들린다. 말이 달리는 것만 봐도, 말의 갈기만 봐도 알겠다. 1황자 근위대는 2황자 근위대보다 강했다. 말도 더 좋은 품종인 것 같다.

그들은 쐐기형 진을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유지하고 타락한 나무 근처에 있는 몬스터들을 학살해나갔다.

"쾌애엑!"

몬스터들이 갑작스런 기습에 비명을 지른다.

그들은 반항을 하거나, 도망쳤다. 우리는 진을 옮겨 도망치는 몬스터들을 하나씩 싸먹었다. 마치 계곡에 놓는 덫에 물고기들이 한 마리씩 걸리는 느낌이었다.

내가 할 건 없었다. 칸나에게 오기 전까지 기사들이 몬스터들을 학살하니까. 몬스터들은 진짜 2황자 근위대가 다 잡을 수 있을 정도로 약했다.

나는 그저 타락한 나무의 땅 속을 구경했다. 뿌리가 점점 뻗어가는 게 느껴진다. 난 더 깊숙이 구경했다. 내가 도서관에서 막내 황자를 마주치기 오기 전에 개방한 스킬을 이용해서.

【스킬 : 정찰 Lv MAX 사용 중】

땅 속이 더욱 깊게 보인다. 뿌리 안까지 보인다. 뿌리는 가면 갈수록 얇아졌다.

근데, 한 뿌리의 갈래가 얇아지기는 하는데 길다. 내 정찰 스킬로도 끝까지 보이지가 않았다. 내 머릿속에 위험 신호가 울렸다.

"칸나 대위님."

"왜?"

"타락한 나무는 뿌리의 깊이로 위험도를 판단하지 않습니까?"

내가 본 설정으로는 그게 끝이었는데.

"굵기와 줄기, 어디까지 뻗어있는지를 종합해서 판단한다."

"그렇다면 얇은 뿌리가 땅 끝까지 뻗어있으면 무슨 경우입니까?"

"···위험한 상황이지."

칸나는 내 말에 직감적으로 느낀 모양으로, 조심스럽게 내게 물었다.

"땅을 꿰뚫어볼 수 있는 스킬이 있나?"

"제 스킬로도 감히 다 볼 수 없습니다."

그와 동시에 진홍색 나무에서 이상한 기운이 피어올랐다. 검은 기운이었다.

"뭐, 뭐야?"

1황자 근위대에서 당황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난 오히려 이때 땅 속을 집중해서 봤다. 굽어진 뿌리들이 곧게 뻗어진다. 그리고 뻗어진 뿌리에는 종기 같은 게 하나씩 나기 시작했다.

그것이다. 내가 아이리와 던전에 있을 때, 벽을 덮었던 그 종기의 느낌과 아주 유사하다. 저게 터진다면···터지고 있네.

파파팡!

지진이라도 난 듯 땅이 강하게 흔들린다. 당황한 말이 소리를 내며 앞발을 들고 낙마하는 기사들이 몇 생겼다.

"1근위대! 물러서라! 마더 트리다!"

"마더 트리?"

누군가가 당황한 목소리를 냈다. 난 모르는 설정이라고. 마리나는 이런 위험한 거 몰라. 아니면 마리나의 힘이 너무 강해서 알 필요가 없었던가.

"마더 트리는 땅 속에서 자라는 나무다. 뿌리를 여러 갈래로 뻗어 자식인 나무들을 낳지."

그렇다면 위험하다는 거네.

"이건 마더 트리의 함정이다."

칸나의 결론. 그와 동시에 1황자 근위대와 2황자 근위대가 있는 곳에 나무가 땅을 뚫고 펑펑 솟아올랐다. 진홍색보다 강한, 심홍색을 띠고 있었다.

"1근위대! 2근위대로 뭉쳐라!"

"합진!"

1황자 근위대도 어떤 상황인지 모르지는 않을 터. 1근위대장이 바로 2근위대가 있는 곳으로 왔다. 그들이 투닥거리기는 해도 합동훈련도 많이 해봤는지 새로운 진이 생겼다.

마치 수레바퀴 같이 생긴 진. 진의 중앙에는 1근위대장, 칸나, 내가 있다.

"통신 쳐서 황도에 잔여 기사들을 불러야겠다."

"잔여 기사들도 북문에 있는 나무 치러 갔을 텐데요."

"설마 그것도 마더 트리는 아니겠지?"

칸나와 1근위대장의 대화. 1근위대장이 더 계급이 높은지 칸나가 존댓말을 썼다. 견장을 보니 그렇네. 칸나의 견장에는 풀잎 세 개, 1근위대장의 견장에는 꽃잎 하나가 있다. 소령이라는 거겠네.

순식간에 숲이 되어버린 평원에서, 나무들이 몸을 흔들기 시작한다. 검은 기운이 흩뿌려지고, 타락한 나무의 가지에서는 힘줄이 솟은 열매 같은 것들이 떨어지고 있었다.

퐁!

무게가 찬 열매는 땅으로 떨어지고, 끈적끈적한 진액과 함께 몬스터를 쏟아냈다. 어림잡아 봐도 스무 개는 넘는 나무들. 그곳 나무들에서 몬스터들이 떨어지니 순식간에 우리는 포위된 상황이 되었다.

"여기서 계속 방진을 짜도 답은 없다. 수레바퀴를 굴려야 한다."

"구멍 하나 뚫리면 전멸입니다."

"가만히 막기만 하면 이길 수 없다."

1근위대장과 칸나의 충돌. 칸나는 고개를 저었다.

"가만히 있으면 당연히 전멸입니다. 지금은 마더 트리, 비상상황 2번입니다. 4번 해결책으로 가겠습니다."

"뭐? 4번?"

4번 해결책이 뭔데 그래. 칸나는 비장한 표정을 지었다.

"2근위대에서 특공대를 꾸려 마더 트리를 없애고 오겠습니다."

"잘못하면 죽는다."

"전멸하는 것보다는 낫습니다."

"···가능하겠나? 이건 특공대뿐만 아니라 모든 부대의 명운이 걸린 결정이다."

"가능합니다."

칸나가 단언했다.

"15분 내에 특공대가 돌아오지 않으면 수레바퀴를 굴리시지요. 15분 내에 처리하고 오겠습니다."

"···10분이다. 그렇게 상황이 만만치는 않아."

"알겠습니다."

수레바퀴의 살들을 구성한 2근위대의 기사들은 몬스터들을 막으면서 모두 칸나와 눈빛을 마주쳤다. 난 그것을 볼 수 있었다.

모두, 데려가 달라는 눈빛이다. 이게 중세의 기사도인가. 이기주의 헌터들하고는 다르네. 내가 개인적으로 의뢰사무소를 차린 적이 있는데, 사무소 소속된 헌터들은 의뢰 받기 싫어서 사무실에서 밍기적이나 거렸지.

물론 나도. 그때 내가 자주 했던 말이 있었지. '나다 싶으면 나와라.'

"에퍼리."

"네."

칸나가 날 불렀다.

"너와 내가 특공대다."

"대위님!"

그 말을 들은 모든 2중대 기사들이 반발했다. 1황자 근위대와 근위대장도 놀란 눈치다.

"신입한테 그런 중책을 맡기시다니요!"

"칸나 대위, 그건 좀 아닌 것 같다."

"아닙니다. 에퍼리는 강합니다. 제가 보증합니다."

칸나가 말했다.

"그리고 에퍼리는 방진 훈련도 안 되어있습니다. 여기서는 도움이 안 됩니다. 심지어, 저보다 강합니다."

"뭐?"

칸나의 말에 모두가 내게로 시선이 집중됐다.

"제가 시험을 할 때, 마지막에 제 전력을 보였습니다. 에퍼리는 힘을 들이지도 않고 막았습니다."

"뭐? 그게 가능한가?"

"서로가 서로를 믿지 않는다면, 군대는 부서지기 마련입니다."

칸나의 눈빛이 1근위대장을 향했다. 1근위대장은 칸나와 나를 번갈아 보았다. 여전히 미심쩍은 눈빛이다.

"허가한다. 너의 판단을 존중하지."

"감사합니다."

"대위님! 믿을 수가 없습니다!"

2근위대 기사들은 여전히 믿을 수 없다는 듯한 목소리로 외치고 있었지만 칸나는 그들을 무시하고 수레바퀴 진에서 빠져나갔다.

곧, 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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