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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스판타지로 떨어진 S급 헌터-24화 (24/150)

< 24화 가테스 트라프비체 (2) >

가테스 트라프비체. 「장미꽃이 흩뿌려진 침대」의 남자주인공. 로맨스판타지의 남자주인공의 특징은 다 조합되어 있는 먼치킨.

잘생겼고, 능력 출중하고, 냉정하고, 정치질을 잘하고, 사람을 다루는 능력이 뛰어나다.

외형은 흑발에 흑안. 지금까지 내가 본 황족들이 모두 금발의 녹안이란 걸 생각하면 이질적인 일이다. 이것도 다 설정이 있다.

가테스는 첫 번째 황후에게서 나온 아이이다. 그 황후는 가테스를 낳다가 죽었다. 흑발과 흑안은 그 황후에서 왔다는 설정···이라지만 개뿔.

모든 로맨스판타지의 남자주인공은 비극적인 배경을 가지고 있어야 하고, 흑발에 흑안이 냉미남과 잘 어울리니까 끼워 맞춘 거지.

"사테 장군. 이런 일이 대제전 앞에서 벌어지고 있는데, 어찌 저지하지 않는가?"

"죄송합니다. 제 불충입니다."

"죄송하다고 하면 다인가?"

가테스의 냉정한 눈이 장군을 꿰뚫는다. 그렇기도 하네. 장군이 이런 저잣거리 같은 싸움질에 팔려있으니 한심도 하겠다.

"정말 죄송합니다. 제 불찰입니다."

"죄송하다고 하는 앵무새 같군."

가테스는 싸늘하게 웃었다. 그 웃음에 모든 분위기가 냉각되는 느낌이다.

아, 이런 느낌이구나. 로맨스판타지의 남자주인공은 여주인공을 제외하면 냉기를 흩뿌리고 다니는 얼음의 정령 같은 존재니까. 그걸 직접 쐬는 것도 좋은 느낌은 아니다.

"그래, 무슨 일로 싸우는 거지? 상황에 따라서는 둘 다 엄벌에 처할 수도 있다. 먼저, 오츠카 남작이 말하라."

헐. 저런 찌끄레기 엑스트라 같이 생긴 애도 기억하네. 하긴 로맨스판타지 남자주인공이니까. 이게 개연성이지.

"저 옌시 사람이 대제님을 모욕했습니다."

"호오. 그건 흘려들을 수 없는 발언이군. 근데 자네는···"

가테스가 날 보면서 얼굴을 살짝 찡그렸다. 기억을 되살리는 것 같은데, 아무리 유능한 로판남주라도 없는 기억을 되찾을 수는 없겠지.

내가 트라프비체의 예를 갖추면서 무릎을 꿇었다.

"제2황자 근위대 근위병, 에퍼리 션이라고 하옵니다. 전하."

"음, 처음 보는 얼굴이로군."

가테스는 그렇게 말했다. 내 말에 대답이 아닌, 자신의 생각 결과를 혼잣말로 하는 거다. 그렇지. 로판남주라면 이런 마이페이스도 있어야지. 물론 당하는 입장은 띠껍다.

"5일 전에 전입을 왔습니다."

"그렇군. 자네가 대제님을 모욕했다는 게 사실인가?"

사실이라면 사실인가. 대제 석상을 부숴놨으니까. 근데 대제님은 즐거워했다고. 그러면 된 거지.

"전혀 그런 사실 없습니다."

"그렇다는군."

가테스는 다시 오츠카 남작을 째려보았다. 아니, 그냥 보는 건데 째려보는 것처럼 보이는 걸 수도.

"대제님의 제단에 제물을 바치지 않았습니다."

"페어와 같이 했을 뿐입니다."

내가 오츠카 남작의 말에 끼어들었다. 내가 끼어들자 가테스가 날 죽일 듯이 노려본다. 아, 이게 째려보는 거지.

"페어?"

"네, 그렇습니다."

"누구?"

"죄송하지만, 비밀입니다."

미안한데 이렇게 계속 째려보면 나도 띠껍게 대할 수밖에 없어.

근데 주변의 반응이 더 가관이었다. 1군단의 병사 중에서는 터지는 소리를 입으로 막는 사람도 있었고, 대다수는 나를 미친놈을 보듯이 봤다.

"근위병은 고개를 들라. 내 눈을 마주치는 걸 허락하지."

가테스가 차가운 음성으로 말했다. 난 곧장 고개를 들어 그를 올려다보았다. 지금 난 여전히 무릎을 꿇고 있는 상태.

"답하라. 페어는 누구냐. 내가 개인적으로 궁금해졌다."

가테스의 검정색 눈이 황금색으로 물든다. 이거 뭐 황족들 나쁜 버릇이네. 뭐든 이상한 눈으로 꿰뚫어보려 하는 거. 대제도 그랬고.

하지만 네가 대제쯤이 아니면 어림도 없다, 이 녀석아.

【고유스킬 : 붕괴 저항 Lv MAX 사용 중】

가테스는 나와 눈을 몇 초간 마주쳤고, 의외로 입가에 슬쩍 호선을 그렸다.

"웃긴 놈이로군."

"즐거우셨다니 다행입니다."

내가 말하자, 다른 사람들은 이제는 참다 못해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이 상황이 어디로 흘러갈지 모른다는 눈빛들이었다.

그때, 경례를 했던 장군이 내게 큰 고함을 외쳤다.

"네 이놈! 황자님께 무슨 결례되는 말투인 것이냐?"

뭐야. 넌 갑자기. 점수 깎아먹더니 다시 이제라도 회복해보고 싶은 게 너무 티나잖아.

"사테 장군. 지금은 나설 때가 아닌 것 같다."

가테스가 침착하게 한 마디 했다. 바로 사테는 장군의 위엄도 없이 무릎을 꿇고 찌그럭댔다. 그 와중에 날 노려보는 건 뭔데. 네가 잘못했지, 내가 잘못했냐.

"그래. 페어는 곧 밝혀지겠지. 그저 내 개인적인 궁금증이었을 뿐이다. 이 근위병이 밝힐 의무는 없지."

"죄송합니다. 전하."

"죄송할 일이 아니다. 넌 합리적인 행동을 했고, 난 그걸 막을 이유가 없다."

사실 안 죄송해. 그냥 너무 네 뒤의 병사들의 표정이 무서워서 말한 거야. 내가 죄송하다고 하니까 1군단 병사들이 나를 죽일 듯한 표정이 그제야 풀리잖아.

"그래. 난 들어가도록 하지. 나도 대제께 바칠 영광을 놓칠 수는 없으니까."

그와 동시에 북소리가 울렸다. 이제 슬슬 병사들 들어오라는 의미였다. 한 20분 남았을 때 북을 친다고 했지. 아, 이러면 시간이 좀 애매한데?

"자네들도 같이 들어가게. 언제까지 무릎만 꿇고 있을 건가."

가테스가 말했다. 그 말에 모든 병사와 장교들이 일어나서 기계처럼 대제전 안으로 향했다.

나는 반대로. 근위병실로 향했다. 아직 화장실 못 들어갔거든. 그때, 가테스의 말이 내 발목을 붙잡았다.

"근위병 에퍼리. 자네는 안 들어가나?"

"화장실 좀 가려고 합니다."

나는 그렇게 말하고 간략한 예를 취한 뒤에, 뒤에 빽빽이 선 근위병들 사이로 쏙쏙 피하며 지나갔다. 저 뒤에서는 시선이 아직도 느껴진다. 빨리 가야지, 오줌 마렵다.

"미친놈인 것 같습니다. 신경 쓰시지 마시지요."

사테 장군이 옆에 붙어서 말했다. 가테스는 씩 웃었다.

"장군. 뒤에서 한낱 근위병의 얘기를 하기에는 견장이 무겁지 않은가."

바로 사테 장군은 입을 다물고 고개를 살짝 저었다. 그걸 보고 가테스는 속으로 웃었다. 어떻게든 점수를 따려고 하는 게 갸륵하기는 하나, 자신이 원하는 방향이 아니었다.

오히려 자신의 스타일은 직전에 마주친 이상한 근위병, 에퍼리 션이라는 자였다. 떳떳한 자세로 할 말은 하는. 물론 병사라는 위치에서 그런 사람은 처음이었지만.

"2황자 근위대라고 했었지."

"맞습니다."

"혼잣말이다. 굳이 대답할 필요 없다."

사테는 다시 찌그러졌다. 가테스는 생각을 정리했다. 아까 화장실을 간다며 1군단의 병사들을 빠져나갈 때의 몸놀림, 자신도 눈이 헷갈릴 정도였다.

그런 몸놀림을 하는 사람이 이 세상에 있었던가, 싶은데. 어쨌든 범상치 않은 사람인 건 잘 알았다.

"1군단 군단장, 가테스 트라프비체님 입장하십니다!"

대제전의 문지기가 큰 소리로 소리를 질렀다. 대제전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가테스에게 시선이 쏠렸다. 가테스는 살짝 얼굴을 찌푸렸다. 이런 시선들은 받기도 부담스러웠다.

가테스가 흰 말을 이끌고 걷자, 그 앞에 있는 무리들이 종이가 찢어지듯 좌우로 갈라졌다.

그는 걸음을 멈추지 않은 채로, 황제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1군단장, 가테스 트라프비체가 국경 수호 임무를 마치고 귀환하였습니다."

"···몇 주 뒤에 오는 거 아니었느냐?"

황제가 황당하다는 듯이 물었다. 가테스는 씩 웃었다.

"대제님께 제물을 바칠 영광을, 황자가 지나쳐서는 아니 되지 않겠습니까."

"그렇긴 그렇다만. 네가 올 줄은 몰랐구나. 그래서 제물은 준비했느냐?"

"오는 김에 고심해서 골랐습니다. 대제님께서 기뻐하실 줄은 모르겠습니다."

"네가 가져왔다면 보라색 불꽃을 내려주시겠지. 그래. 일단 단상으로 올라오거라."

가테스는 1군단 근위병들을 해체시키고, 황자들이 있는 단상으로 올라갔다. 그곳에는 가토스, 가티스, 리얀 황녀가 있었다.

"오라버니, 일찍 귀환하셨네요."

언제 봐도 아름다운 여동생, 금발의 리얀이 치마 끝을 잡아당기면서 예를 취했다. 가테스는 손을 들어 동생들이 예를 취하는 걸 막았다.

"아, 가토스. 너에게 이 축제가 끝나면 할 말이 있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형님?"

"가벼운 인사이동 제안이라고 할까. 별 것 아니다."

가토스는 의뭉스러운 갸웃거림을 했지만, 가테스는 속으로 웃었다. 근위병 하나 정도야 쉽게 주겠지. 그래도 자기가 형인데.

"에퍼리, 아주 간신히 도착했구나."

칸나가 날 질책성의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정시 도착했는데. 하긴 하급자들은 10분 전에 도착하는 게 맞는 거긴 한데. 그래도 잘못한 건 아니니까 난 떳떳했다.

"화장실 갔다 왔습니다."

"자랑이구나."

칸나가 한숨을 쉬었다.

"얘기 들었다. 오츠카 남작하고 충돌이 있었다면서."

"네. 별 거 아닙니다. 신경 안 쓰셔도 됩니다."

"내가 미안하다. 트라프비체의 예법을 조금 더 자세히 알려줬어야 하는 건데."

칸나가 뜻밖에도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왜 그래, 갑자기. 내 마음 찢어지게. 칸나는 진심으로 자기가 잘못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제 잘못, 아니, 제 잘못도 아니긴 한데. 어쨌든 영광을 반으로 나눠도, 그 영광의 크기가 크다면 결국 제 명예도 회복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 그래? 그 정도로 자신이 있느냐?"

"사실 잘 모르겠습니다."

"이 놈, 나를 가지고 노는 구나."

칸나가 내 머리를 약하게 꿀밤을 때렸다. 아, 달아. 내가 이러고 있으니까 2근위대 사람들이 날 노려보고 있다. 크흠, 크흠. 이제 그만해야지. 축제가 시작되고 있으니.

"영관급 제물 의식을 하겠다! 정해진 순번대로 하도록!"

사회자의 말과 함께 영관급 제물 의식이 시작되었다. 화장실 안 갔다 왔으면 큰일 날 뻔 했다. 영관급 장교들도 머릿수가 꽤 많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여기서부터는 군인 짬밥을 몇 년은 먹은 사람들. 제단에서 타오르는 불꽃의 색깔이 확연히 다르다.

노란색은 기본이고, 주황색도 간간이 나온다.

그때, 어느 누군가가 바친 제물이 첫 번째로 붉은색 화염을 터뜨렸다. 그 장면에는 나도 모르게 탄성이 나왔다. 꽤 멋있는 이펙트네.

"헬보이의 머리라, 꽤 대단한 걸 가져왔군."

사회자도 감탄하고, 황제도 꽤 놀란 눈치다. 붉은색 불꽃, 근본이지, 근본. 마치 캠프파이어처럼 타오르고 연기가 하늘 위로 흘러간다.

"칼 카라모프 대령에게 영광의 박수를 주도록!"

어? 카라모프? 옆을 보니 칸나가 자랑스러운 얼굴로 열렬하게 박수를 치고 있다. 칸나의 아버지였구나. 장인이었네. 나도 장인께 박수를 드렸다. 남자답고 멋있게 생기셨네.

칼 카라모프 대령이 태운 붉은색 화염을 마지막으로, 붉은색 화염은 나오지 않았다. 이제, 장성급이었다. 별 달린 사람들이 웅장하게 나오기 시작했다.

처음은 나한테 시비를 걸었던 '그 장군' 사테였다. 그 역시 붉은색 불꽃을 태웠다. 장군이면 이 정도는 당연한 건지.

장성급에서는 노랑색 불꽃도 없었다. 거의 붉은색 불꽃 아니면, 주황색 불꽃. 불꽃이 터져나갈 때마다 병사들은 환호성을 보냈다.

오히려 붉은색 불꽃을 처음 봤을 때는 감흥이 있었는데, 너무 터지니까 슬슬 식상해지네. 장군들도 붉은색 불꽃을 보면서 아쉬워하니까 더욱 그렇겠지. 보라색 불꽃을 노리고들 있었나보다.

"자, 마지막으로, 황족이 이 축제를 마무리하겠다!"

먼저 황제가 나섰다. 그가 가져온 건 몬스터가 아닌 주방장이 만든 음식들이었다. 그렇지. 사실 내가 생각해도 대제가 저런 걸 좋아할 것 같기는 해. 고기반찬으로 이뤄진 대첩반상이 시종들에 의해 제단에 바쳐진다.

연푸른색 불꽃, 그 무엇보다 약한 제물이었지만, 그 잔열은 오래도 남았다. 아주 음미를 하고 계시는구만. 대제가 있다는 전제하에 말이야.

당연히 병사와 장교들은 우레와 같은 박수를 보냈다.

"다음은 가토스 황자의 차례다."

가토스를 시작으로 처음 보는 황녀의 차례, 아마 이름이 리얀이었던 것 같은데. 마리나와 꽤 친했었지. 역시 예쁘다. 황족 특징. 예쁘고 잘생김.

가토스는 붉은색 불꽃을 만들어냈고, 리얀은 푸른색 불꽃을 만들어내고 부끄럽다는 듯 총총걸음으로 내려왔다. 그 모습에 모두 흐뭇해했다. 귀엽다, 귀여워.

"원래는 참석하지 않기로 되어있었으나, 소식을 듣고 급히 달려온 가테스 황자의 차례를 맞이하라."

이제는 사회자가 아닌 황제가 말하기 시작했다. 이 무대의 하이라이트라는 걸 아는 모양이지. 가테스는 딱 봐도 희귀해 보이는 걸 꺼냈다.

"뭐야, 사파이어 혼 래빗?"

"아직도 있는 거였어?"

"미쳤다."

병사들의 웅성거림. 난 저 몬스터를 모르지만 대단하다는 느낌은 난다.

그리고 올리자마자 제단이 걸신들린 듯이 보라색 불꽃이 솟구쳐서 사파이어 혼 래빗을 집어삼켰다. 그 광경은, 솔직히 가테스가 띠껍기는 해도 장관은 장관이었다.

"와···"

어지간하면 침착함을 잃지 않는 칸나도 입을 헤 벌리면서 바라볼 정도였으니까. 가테스는 짤막하게 우리에게 인사를 하고 내려왔다. 이게 로판 남주인가. 재수없으면서 간지나.

"자, 그럼 이 축제는 마무리···"

"잠깐!"

황제가 말하는 데 누가 끼어드냐고? 당연히 황족의 피지. 손을 번쩍 들어 축제의 마무리를 방해한 건, 나의 페어, 가티스 황자였다.

"아버지, 저도 준비한 게 있습니다!"

"응?"

그 말에 모두가 흐뭇한 눈빛으로 가티스를 바라보았다. 어린 나이에 기특하다는 거겠지. 하지만 조금 다를 걸.

"내 페어, 근위병 에퍼리 션은 앞으로 나오라!"

가티스가 장난기 어린 눈으로 나를 크게 외쳤다.

그 말과 함께, 주변인들의 시선이 나를 모두 향했다. 특히 놀란 사람. 내 페어를 짓밟고 싶다는 사람, 너 말이야 너. 다시 입 벙긋해봐, 라고 말하고 싶지만 지금은 그럴 때는 아니지.

칸나의 시선, 오츠카 남작의 시선, 사테 장군의 시선, 칼 카라모프의 시선, 황제의 시선, 가토스 황자의 시선, 가테스 황자의 시선, 리얀 황녀의 시선, 모든 병사들과 장교들의 시선.

그 모든 시선들은 모두 어찌할 바를 모르는 눈빛이었다. 마치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를 때 뿜어져 나오는 눈빛들을 하고 있었다.

난 당당하게 가티스 앞에 나간 다음, 가티스에게 무릎을 꿇고 예를 갖췄다.

"근위병 에퍼리 션. 감히 황자님과 함께 대제님의 제단에 영광을 바칠 준비가 됐습니다!"

내 외침에, 웅성거리던 모두가 침묵했다. 가티스와 내가 눈을 마주치면서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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