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맨스판타지로 떨어진 S급 헌터-30화 (30/150)

< 30화 성녀 (2) >

"나도 대충은 알겠어요. 뭐 스킬창에 못 읽는 거라도 있었나보죠?"

"아닌데요?"

하지만 이건 내가 말해놓고도 너무 뻔뻔한 거짓말이었다. 마리나는 나를 비웃었다.

"방금까지 언어 공부 한다고 해놓고 뭘. 도저히 사전에서도 못 찾으니까 그런 거 아니에요. 그리고 그거 진짜 언어 스킬 없으면 못 찾았어요. 원죄라는 뜻이라는 단어를 가진 게 얼마나 많은데. 그건 엄청 고어(古語)였어요."

마리나는 어깨를 으쓱댔다. 어쩐지 단어를 아무리 찾아도 안 나오더라니. 확실히 마리나가 없으면 못 찾았을 거긴 하다.

"그래요. 고마워요."

"엘파힘의 심안이 뭔지는 안 알려줄 거죠?"

"네."

내 단호한 대답에 마리나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웃었다. 너무 예뻐서 얼굴을 돌렸다. 역시 여자주인공의 포스는 남다르다.

"대신, 나는 두 개를 받았고, 당신은 하나를 줬으니까 그 개수를 맞춰드리죠."

내가 대인배처럼 말했다. 그녀의 고개가 살짝 갸웃거린다. 이상하겠지. 고작 단어 두 개를 알려줬는데 굳이 그걸 채워주겠다고 한다니.

그래도 여자주인공이니까 점수는 따놔야 될 거 아니야. 내가 칸나와 예프린한테 밑 작업 친 것도 다 마리나와 가까워지려고 한 건데. 그리고 마리나와 가테스를 이어줘야 한다. 그건 전개의 핵심이니까.

그러기 위해선 물어볼 것이 먼저 있었다.

"혹시 가테스 황자 어떻게 생각해요?"

내 직구에 그녀는 잠시 당황했다. 고민하다가 그녀가 꺼낸 말은 이것이었다.

"별로. 내가 성녀라고 계속 구속하려고 들어요. 나는 내가 특별하기는 바랐지만, 이 정도 외모로면 족했다고요. 성녀는 너무 좀 무거운 의무라고 해야 하나."

음. 원작이랑 같군. 회귀자라는 설정은 없었지만. 느끼는 감정은 비슷한 듯하다.

원래 처음부터 로판 여주와 남주가 처음부터 눈이 맞는 경우는 없지. 이 상황이 정상이다. 어쨌든 이어지게 되어 있지만.

"하지만 무도회에서 당신은 가테스와 있어야 돼요."

"···왜요?"

"그래야 돼요. 더 묻지는 말고. 안 그러면 미래가 꼬여요."

"아 그놈의 미래. 진짜 사기꾼 아니에요?"

난 바로 마리나의 초반 행적을 줄줄이 읊었다. 마리나의 가뜩이나 큰 눈이 점점 커진다. 그녀는 내가 1권 중반을 얘기할 때쯤에 손을 휘저었다.

"아, 오케이. 알았어요. 그러면 내가 어떻게 하면 돼요?"

드디어 내 진심을 알아줬다. 나는 그녀에게 통신장치 하나를 줬다. 흔히 경호대면 가지고 있는 그 무선통신장치 맞다. 여기서는 마나로 움직이지. 나도 경호대 비슷한 근위기사니까 가지고 있는 것이다.

나는 그녀에게 통신장치의 사용 방법을 알려주고, 그녀가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를 알려줬다.

그녀는 납득하지 못하는 듯했지만, 고개를 끄덕거리고 혼이 빠진 듯 도서관을 빠져나갔다.

나는 나가는 마리나의 뒷모습을 보면서 한숨을 쉬었다. 이제 소설이 시작됐군. 그나저나.

"진짜 더럽게 예쁘네."

데뷔탕트. 이 단어, 로맨스판타지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잘 모를 수도 있다. 사교계 데뷔를 거친 성년 귀족 여식이 곧 데뷔탕트다.

제국 주관 무도회는 여러 예비 데뷔탕트들이 데뷔하기를 희망하는 곳이다.

지금같이 검은 나무가 치솟아 오르고 있는 때 할만한 건 아니지만, 귀족들의 전통은 나라가 망할 때까지 하는 법.

그래도 최소한의 양심은 있는지 무도회를 좀 몰아서 한다고 한다. 원래는 딱 20살 때 하는 건데, 18세까지의 영애까지 다 참가한다고 한다. 이제 곧 나라가 시끄러워질 테니 몰아서 한다는 거겠지.

역설적이지만, 그래서 이 무도회는 국가적인 위기에도 불구하고 역대급 규모를 자랑할 것이라고 예상되었다.

"가티스 황자님, 무도회를 나가긴 나가셔야지 않습니까."

"아줌마들 있는데 내가 왜 나가?"

20대도 안 된 여자애들한테 뭐라는 거야. 하긴 8살이니까 20살이 아줌마로 보이나. 참, 세상 무섭다.

"이번 무도회는 성녀님의 출현까지 알리는 제국의 축제입니다. 황자님이 빠지시면 안 됩니다."

"에휴."

가티스는 나이 치고는 깊은 한숨을 쉬고 침대에서 일어났다. 근위기사라서 그냥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닌 모양이었다. 이렇게 보모 역할까지 하다니.

오늘은 무도회의 구성을 짜는 회의였다. 원래라면 황제까지 참여하지는 않으나, 성녀의 임명까지 겹친 일이라 황제마저 참여하는 대회의.

가티스도 그 회의에 황자인 만큼 껴야 되는 것이다. 나 역시 그의 하나밖에 없는 근위기사로서 껴야 됐고.

"아, 엄마 보고 싶다."

가티스는 칭얼거렸다. 지금 황후가 좀 아프다는 설정일 거다. 그래서 별궁에만 있어서 뵙기 어려운 상황인 걸로 안다.

「이름 : 가티스 트라프비체

나이 : 8

호감도 : 52

가장 사랑하는 사람 : ???」

아마 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은, 내 심안의 레벨이 높지 않아 나오지 않는 거 같다. 근데 아마도 이 나이면 제인 트라프비체겠지.

제인 트라프비체는 가티스와 가토스의 어머니, 즉 현 황후다.

그나저나 나에 대한 호감도가 왜 이리 높아, 이 녀석. 하긴 원래 아이와는 친밀도를 처음 쌓기가 어렵지, 한 번 쌓으면 순식간에 쌓이니까.

"황자님. 입궁하시죠."

"음, 음. 그래, 그래. 내 근위기사."

내가 나비넥타이를 마저 매줬다. 나도 근위기사 제복을 입고 입궁했다. 입궁을 하니까, 사람들이 가티스 황자에게 인사는 하지만 모두 내게 눈길을 주고 있었다.

"너 되게 인기 많다."

가티스가 그저 이 상황을 즐긴다는 듯 말했지만, 난 마냥 즐길 수는 없었다.

이 사람들은 아직 모를 것이니까. 내가 남작이 된 거를. 하긴 오늘 아침에 남작패를 받은 날림 남작인데 뭘.

사실 남작이나 자작 정도는 작전 중에도 임명되는 경우가 흔하기 때문에, 언제 어디서 나타나도 이상하지는 않다. 다만, 내가 주목받는 건 가티스와 페어를 한 근위병이라는 걸 모두가 알고 있고, 옌시 사람이라는 게 전부였다.

황제전으로 입궁하는 사람의 신원을 알리는 시종장도 역시 입으로는 가티스 황자의 이름을 부르고 있었지만, 나를 쳐다봤다.

"제3황자, 가티스 황자님 입궁하십니다!"

북소리가 웅장하게 흐른다. 황족은 황족이야. 왠지 내가 대접받는 기분이 든다.

황제가 앉아있는, 웅장한 기운. 이미 많은 중신들이 있다. 라피테스 공작도 보이고 가토스 황자도 보인다. 칼 카라모프 백작은 안 보이니까, 여기는 후작 이상만 있는 그야말로 대신들의 자리다.

"흠."

황제가 가티스를 살짝 보고, 나를 보더니, 다시 가티스를 바라보았다.

"보고는 받았다. 근위기사를 임명했다고."

알고 있었네. 그 말에 내 존재에 의문을 표했던 대신들의 시선이 적대적으로 변한다.

가티스는 내가 입궁하기 직전 해준 과외에 따른 답변을 충실히 이행해나갔다.

"근위기사의 임명은 저의 권리입니다."

"그렇긴 한데 넌 너무 어리다."

황제가 한숨을 쉬었다. 이에 눈치를 보던 귀족들이 몇몇 들고 일어섰다.

"가티스 황자님은 아직 근위기사가 필요한 나이가 아닙니다."

"귀족은 나라의 근간입니다. 저 옌시 놈이 어떤 간악한 말로 가티스 황자님을 꼬신 게 분명합니다. 이건 인정할 수 없습니다."

무슨 말만 들으면 내가 미성년자 약취 유인이라도 한 것 같다. 원래 정치인들의 발언은 강하면 강할수록 주목받기 마련이지.

난 그때 가테스와 우연히 눈을 마주쳤다. 그는 살짝 웃고 있었다. 그는 바로 입을 열었다. 내가 아닌, 황제에게.

"황제 폐하, 황자에게 남작 하나 임명할 권한 하나 없다는 말입니까? 이건 황족의 명예에 따른 일입니다."

"저도 동의합니다. 귀족이 제국의 근간은 맞으나, 뿌리는 황족입니다. 황족의 권리에 어찌 귀족이 간섭한다는 말입니까."

뜻밖에도 라피테스 공작이 말을 덧붙였다. 분명 가테스의 뒷공작이겠지. 난 일단 가만히 있었다. 날 일단 실드를 쳐주니까, 아직 내가 나설 때는 아니었다. 무슨 이유인지는 몰라도.

"아니, 그건 그거랑은 다른 얘기···"

"그만."

어떤 귀족이 손에 들고 말하려고 했지만 황제가 손을 들었다.

"지금은 에퍼리에 관한 얘기를 하려고 모인 자리가 아니다. 귀족의 처우에 대한 것도 중요하지만, 지금은 그보다 더 중요한 얘기를 하려고 모인 거 아닌가."

"맞습니다."

라피테스 공작이 웃으며 황제의 말을 이었다. 공작의 정치력을 알 수 있는 기가 막힌 타이밍이었다. 말을 끊지 않으면서도 황제의 목소리를 키워주는 역할. 그러면서 확실히 단락을 맺는다.

"그 중요한 건, 대신들도 알고 있듯이 당연히 성녀의 얘기라네. 이번 귀족 영애들의 데뷔 무도회에 같이 발표할 거라네."

일단 내가 생각했던 대로 전개가 흘러간다. 이건 큰 줄기니까. 큰 줄기는 아직 바뀌지 않았다.

"문제는 말이야. 무도회에 같이 의전 할 파트너를 정해야 한다는 거네."

황제가 말했다. 지금 아마 마리나는 시종에게 이끌려 황궁 정원을 둘러보고 있을 거다. 마리나의 시점으로 이 세상으로 본 나는 모를 수밖에 없는 상황인 거지. 그저 추측했을 뿐. 역시 절차주의 로맨스판타지 시대.

황제의 말에 누군가가 바로 손을 들었다.

"칼루앙 후작입니다. 폐하, 한 말씀 올려도 되겠습니까?"

칼루앙 후작. 대략 9권 분량에서 한 페이지를 담당하고 있는 단역이다. 1황자의 라인으로만 간단히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허락하지."

"성녀님을 찾아오신 분도 가테스 황자님이고, 현재 가테스 황자님과 친밀하다고 알고 있습니다. 당연히, 의전은 가테스 황자님이 담당하셔야 맞을 듯합니다."

맞지. 여주 첫 데뷔 무도회에 남주와 여주가 춤을 추는 건 로판의 국룰 중 국룰. 지금 그건 이 상황을 만드는 빌드업인 거다.

"전 생각이 다릅니다."

그 다음에는 제2황자 라인의 후작이 나타나서 가토스 황자가 의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니까, 지금은 1황자와 2황자 라인의 기싸움이라는 거다. 성녀를 의전하는 건 커다란 명예. 단순한 빌드업 단계에서도 이런 복잡한 정치가 낀다니 신기할 따름이다.

아마 이 게임의 승자가 될 가테스 황자는 뭔가 애매한 표정을 짓고 있다.

왜인지는 내가 알고 있다.

지금 가테스는 혼란스럽거든. 마리나가 너무 예뻐서.

소설은 원래 마리나 1인칭이지만, 가끔 가테스의 시점으로도 소설이 진행되고 하는데, 마리나를 첫 만날 때의 서술은 이렇다.

- 가테스는 속으로 혼란스러웠다. 그렇게 예쁘다던 귀족 영애들을 봐도 혼란스럽지 않던 마음이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두근거리는 걸까.

- 그녀는 무서운 존재였다. 자신의 고요한 호수에 돌을 무심히도 던지는 존재. 가테스는 그녀만 엮이면 당황스러워지는 자신이 낯설었다.

첫 사랑에 빠진 남자라는 거지. 나도 너희 커플 응원해. 어차피 마리나는 내가 생각한 사람도 아니라 살짝 깼고, 마리나가 나한테만 이상한 모습을 보여도 가테스 앞에서만 사랑스러우면 됐다는 생각이다.

그때였다. 1황자 라인과 2황자 라인의 정쟁이 극으로 치달을 때 황제가 지겹다는 듯 소리를 쳤다.

"그만해라! 지금은 국란(國亂)의 직전. 이런 것으로 내 앞에서 싸우는 것이냐?"

황제의 맞는 말에 모든 귀족들의 입이 다물어졌다. 그때, 황제가 날 바라보았다.

"에퍼리 남작,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갑작스러운 물음. 바로 제1황자, 제2황자 라인의 귀족들이 합심해서 반발했다.

"저 자는 아직 귀족으로 검증되지도 않은 자입니다."

"옌시 사람이 어찌 트라프비체의 축제에 관여한다 말입니까."

그들이 나를 아주 적대적으로 바라본다. 난 그들의 말을 끊고 나섰다.

"현재 이 싸움은 제게는 단순한 정쟁으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그 둘의 진영 중 어느 곳에도 소속되어 있지 않는 제 시선이 오히려 공정할 수 있겠습니다."

내 노골적인 단어 선택에 대신들의 말문이 막혔다. 정쟁과 소속. 1황자, 2황자의 라인이 있다는 건 명명백백하지만, 그걸 노골적으로 입 밖으로, 그것도 황제 앞에서 꺼내는 건 완전히 다른 얘기였다.

"저, 저···"

"저 천둥벌거숭이 같은 놈이 황제 폐하의 귀를 어지럽히고 있습니다. 작위의 박탈은 물론, 책임을 물어야 합니다!"

간신히 정신을 차린 귀족 몇몇이 나를 적대시하며 나섰다. 그때 다시 기가 막힌 타이밍에 라피테스 공작이 끼어들었다.

"황제 폐하, 에퍼리 남작의 말이 틀린 게 없습니다. 지금은 객관적인 제3자의 시선을 참고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 객관적인 사람이 에퍼리 남작이다?"

"그렇습니다. 바로 오늘 아침에 귀족이 되었으니 누구를 따를 겨를도 없겠죠. 가테스 황자님을 따르는 저처럼 말입니다."

라피테스 공작. 역시 대단한 정치력이긴 하다. 이 와중에 황제가 불편할 수 있는 라인을 직접 농담거리로 삼으며 라인이라는 단어의 무게를 가볍게 만들고 있다.

가장 중요한 건, 황제의 속을 긁어주는 발언을 했다는 것.

"역시, 라피테스 공작은 내 복심(腹心)이군."

황제가 흐뭇하게 말하고 나를 보았다.

"에퍼리 남작. 자네의 의견은 어떤가."

"당연히 가테스 황자님입니다."

나는 바로 대답했다. 황제 역시 바로 물었다.

"무슨 이유지?"

"가테스 황자님이 성녀님을 찾았으니, 그 영광도 가테스 황자님께 돌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가테스 황자님은 아직 혼기에 비해 약혼자가 없으십니다. 예로 따르면, 성녀님과 황자님을 이어주는 건 전통이었습니다."

내 뜬금없는 말에 가테스 황자와 다른 대신들의 얼굴이 이상하게 변한다. 갑자기 황태자의 혼기를 들먹이는 건 예상도 못했다는 느낌이다. 그런데 진짜 있는 전통인 것을 난 언급했을 뿐이다.

"개인적으로 성녀님을 뵐 기회가 있었는데, 아주 아름다운 분이시더군요. 훤칠하신 황자님과 잘 어울리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 정도면 거의 연애조작단이다. 나는 내 멘트를 완벽하게 마무리했다. 이 정도면 나로 인해 흔들리는 전개에 쐐기를 박아 고정시켜놓은 정도는 된다.

바로 가테스가 손을 들었다.

"탐탁지 않은 의견이군요."

황제는 껄껄 웃었다. 난 지금 상황을 알고 있다. 원래라면 가테스 황자는 약혼자가 있어야 될 나이지만, 그가 걷어차고 있는 것이다.

당연히 황제의 입장에서는 가테스가 약혼자를 들이기를 바라고, 그게 성녀라면 더할나위 없을 것이었다. 난 황제의 속을 긁어준 거고, 가테스 황자의 아픈 곳을 건드린 것이다.

"뭐가 탐탁지 않느냐?"

"첫째, 제가 성녀님을 데려오기는 했지만 의전과는 무관합니다. 둘째, 제 혼기는 제가 정합니다. 또한 성녀님의 의견 역시 중요합니다. 지금 에퍼리 남작의 말에는 그게 배제되어 있습니다."

"그저 의견일 뿐이지 않느냐. 난 재밌게 들었다만."

제국에서 황제 마음에 들면 땡이지. 나는 가테스를 보며 살짝 웃었다. 가테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어쨌든 네 의견도 일리가 있구나. 그럼 너의 뜻은 어떠냐?"

가테스는 황제의 물음에 준비가 되어 있다는 듯 답했다.

"가티스와 에퍼리 남작이 동시에 맡으면 좋겠습니다. 황족의 명예도 내세우고, 정쟁에서도 벗어날 유일한 수입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이런 솔직하지 못한 남녀 같으니라고. 바로 전에 나를 실드를 쳤던 이유도 이거였다. 나한테 성녀라는 귀찮은 의전을 맡기고 싶어서.

고작 그 이유였다니. 원래 로맨스판타지 남자주인공은 여자주인공이 껴있는 사건에는 한없이 유치해지기 마련이라지만.

하지만 어림도 없지. 나는 손을 아무도 모르게 움직여 마리나에게 준 무선장치를 호출했다.

가테스의 폭탄 발언에 1황자, 2황자 라인의 정쟁이 또 시작됐다. 그래, 그렇게 시간 끌어라.

이 싸움을 끝내러 올 사람이 있으니.

그때, 입장하는 사람을 말하는 시종장의 언급도 없이 황제전의 문이 열렸다. 모든 이의 시선이 문 바깥으로 쏠렸다.

시종장의 놀란 얼굴과 함께, 누군가의 발자국이 찍히는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눈에 보이지는 않았다. 난 가테스를 보았고, 그의 얼굴은 아주 일그러지고 있었다.

그리고 내 옆에서 누군가가 무언가를 스르륵 벗었다. 그와 동시에 자체적으로 빛을 뿜어내는 것과 같은 여자가 등장했다.

왔구나, 싸움을 끝내러 온 인물.

"성녀 마리나 스미노프, 황제 폐하께 인사드립니다."

그녀의 아름다운 목소리가 황제전을 울렸다. 그리고 날 살짝 노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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