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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스판타지로 떨어진 S급 헌터-43화 (43/150)

< 43화 괴리감 (2) >

"···인정할 수 없습니다. 소드마스터는 검성회의 비준을 받아야 합니다."

"저도 그 생각은 했습니다. 그렇지만 저도 검성회 부회장이니 이 정도 권한은 있다고 생각합니다."

몸집이 큰 누군가가 우렁차게 발언했고, 단상에서 내려오던 가테스가 말했다. 검성회는 처음 들어보는 말이었다.

나에게 호감을 표하던 귀족들마저 내가 소드마스터가 된다고 하니까 묘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가테스와 검성회의 누군가로 보이는 자가 싸우는 틈을 타 난 옆의 아이리에게 물었다.

"검성회가 뭡니까?"

"···음, 아. 너 옌시 사람이었지. 그래도 검성회는 유명하지 않아?"

"몰라요."

내가 모른다고 하자 아이리는 내게 귓속말로 전달해줬다. 마치 내가 모른다는 게 들통이 나면 안 되는 것 마냥.

"검성회는 트라프비체 제국의 소드마스터들이 전부 모인 곳이야. 1부터 5까지."

"그렇구나."

그냥 내 식대로 해석해보면 S급 헌터 단체 메시지방 같은 존재였다. 그곳에는 나를 포함해서 9명의 S급 헌터들이 있었다. 별 다른 건 없고, 맛있는 거 먹거나 멋있는 마수 사냥할 때 자랑하는 곳이었다. 원래 던전 내 촬영은 금지지만, S급 헌터를 누가 막을 수는 없으니.

"검성회는 소드마스터 1부터 5까지, 위계서열이 꽉 잡혀있어. 근데 네가 3이 되는 순간 질서가 어지러워지는 거야."

아이리는 꽤 심각한 듯이 말했다. 검성회라면 분명 정치적인 힘도 작용하는 곳일 터. 그런 폐쇄적인 집단에서 나 같은 굴러들어온 돌을 반길 리는 없었다.

"그나저나, 검성회가 트라프비체 문자로 뭐예요?"

"뭐? 그게 왜 궁금해. 펜도 없··· 잠깐만."

"자, 손바닥."

아이리가 기시감을 느끼는 동안 나는 손바닥을 내밀었다. 그녀는 얼굴을 살짝 붉히며 별 말을 안 하고 검성회를 적어줬다. 아, 이거구나.

"이봐, 에퍼리 자작. 나는 자네를 소드마스터 3이라고 충분히 생각하지만, 검성회의 일원 분들이 만만치가 않군."

내가 아이리와 속닥거릴 때, 가테스가 나한테 다가왔다. 그 바람에 가테스와 검성회의 싸움에 눈이 가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다시 내게로 옮겨졌다.

"자네가 진정 소드마스터 3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다는 말인가?"

가테스와 말싸움을 하던 검성회의 일원은 견장에 별을 하나 달고 있었다. 준장이라는 얘기였다.

"잘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하는 군요."

남의 장단에 맞춰주기는 그렇지만, 소드마스터라는 직위는 가지고 있으면 손해는 안 될 것 같았다. 어느 정도 자유도도 늘 것 같고.

자유도가 늘어야 하는 이유는 있다.

첫째, 나는 이 세계를 정확히 모른다. 조금 더 확실히 말하면 여기 있는 사람들을 모른다.

둘째, 나는 이 세계에 어쩔 수 없는 책임이 있다. 이방인이 생기면 그에 맞서 검은 나무가 강성해진다고 했으니, 그것을 무시할 수 없다. 실제로 아이리는 내가 안 오면 죽을 뻔하지 않았는가.

셋째, 나는 신이 아닌 사람이다. 자유가 필요한 평범한 사람.

"제가 어떻게 증명하면 되겠습니까?"

"소드마스터는 단순히 강하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병법에 능통해야 하고, 아랫사람의 존경을 받아야 하지. 물론 강함이 최우선이기는 하지만."

그는 계속 말을 이었다.

"그래서 자작은 소드마스터가 된 전례가 없다. 자작은 잘 해봐야 소령에서 중령 전역이니까. 아랫사람에게 존경을 받을 틈도 없는 거지."

"그렇다면 검성회가 아니네요?"

"뭐?"

"검성회는 검을 잘 다루는 사람의 협회인 줄 알았는데, 순 정치적 권익만 따지는 사람들만 있는 곳 아닙니까."

내가 말하자 나를 향한 시선들이 일변한다. 누구는 놀라고, 누구는 경멸하고, 누구는 대단하다는 듯. 유일한 공통점은 극단적이라는 것뿐이었다.

"자네, 그 말은 검성회를 모욕한 거네."

"가테스 황자 전하. 어떻습니까? 제 말이 틀렸습니까?"

나는 팔짱을 끼고 흥미롭게 웃고 있는 가테스를 엮었다. 이 진흙탕 싸움에 던져놨으면 같이 갈 각오를 해야지. 난 지금 가테스의 생각을 알 필요가 있었다.

"···음."

가테스의 입에 모두의 귀추가 주목된다. 검성회의 일원으로서 지금의 검성회를 부정할 것이냐, 말 것이냐의 갈래에 서있다.

"나도 검성회의 기준에는 의문이 많지."

그 짧은 말에 연회에 적막이 감돈다. 이미 연회의 분위기는 깨졌다. 내 앞의 장군의 얼굴이 모욕당한 듯 붉어진다. 가테스의 생각은 내게 이제 읽혔다. 읽혀도 상관없는 생각이겠지만, 그는 검성회를 원래 아니꼽게 생각했던 거다.

그는 그저 나라는 칼로 검무를 추고 싶었던 것이다. 근데, 나라는 칼은 아무에게나 쥐어지지 않는다. 그만한 대가를 지불한 자에게만 쥐어진다.

"이렇게 하면 되겠군. 자네와 에퍼리 자작이 싸워서, 에퍼리 자작이 이기면 소드마스터 3의 등위를 인정하는 것으로. 자네는 소드마스터 2가 아닌가."

가테스가 나라는 검을 들고 계속 휘두르고 있다. 그 제안을 받은 장군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이다. 대신 내가 손을 들었다.

"제가 이기면 검성회의 일원이 되는 겁니까?"

"그렇지."

가테스가 웃었다. 마치 엄청난 영예를 앞에 쥐고 흔드는 듯.

하지만 나는 도서관에서 책을 다 읽고 스킬북에 다 저장을 시켜 놨다. 괜히 근위병 때 도서관에서 살았던 게 아니다.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고, 리얀에게 부탁해 스킬창에 넣을 전자책도 다 받아 놨다.

검성회는 비밀집단도 아니라서 트라프비체의 간략 역사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심지어 내가 가진 책에서 검성회를 분석한 글도 있었다. 이미 나는 아이리가 손바닥에 검성회의 문자를 써준 뒤, 가테스와 검성회의 일원이 싸우는 동안 검성회에 관한 걸 속독했다.

"검성회의 그림자 자리를 주시면 기꺼이 칼춤을 춰드리죠."

내 말에 가테스와 장군의 얼굴이 완전하게 굳었다.

검성회는 유명한 집단이었다. 검성회는 몇 기, 몇 기식으로 이름까지 모두 기록되게 되어있다.

하지만 검성회에서 은퇴한 사람,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싶은 고수들은 검성회의 그림자에 든다. 물론 그 명예는 누구에게나 허락 되는 것이 아니며, 거의 전대고수나 황족의 방계에게나 해당된다.

난 지금 그 자리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검성회의 그림자는 내가 검성회를 분석한 책에서 끄집어낸 이야기니 일반 사람들은 잘 모를 것이었다. 당장 옆의 아이리도 동그란 한 쪽 눈만 굴리며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는 눈치이지 않은가.

"···자네는 이상한 걸 모르고, 이상한 걸 아는군."

"어떻습니까?"

"잠깐, 차폐막을 치겠네."

정확하게 나, 장군, 가테스 삼각형을 가로막는 마나 차폐막이 생겼다. 이제 우리가 하는 말은 바깥으로 들리지 않을 거다.

"검성회의 그림자는 대개 은퇴한 분들이 있는 곳. 그걸 너 같이 새파랗게 어린 사람이 간다고?"

"어린 사람이 가면 안 되는 곳입니까?"

"그건 아니지만. 검성회의 그림자를 자처하는 사람은 처음이라."

가테스의 말이 끝나자마자 장군이 내게 발을 구르며 고함을 쳤다.

"그림자의 자리는 검성회를 감찰하는 기관이기도 하다. 그걸 고작 자작 주제에 맞겠다고?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이기시면 되잖습니까?"

내 말에 장군의 말이 턱 막혔다. 얼굴은 이제 붉다 못해 검어진다. 거의 컥, 하는 소리마저 들렸다. 목에서 울화가 터지는 소리였다.

"···오만함의 절정을 보여주는 구나."

"에퍼리 자작. 심한 도발은 자제하라."

가테스는 난감하다는 듯이 말했다. 그러니까 나라는 칼을 쥘 때는 그만한 각오를 했어야지. 괜히 판타지 소설에서 마검에 몸을 뺏긴 사람들이 많이 나오는 게 아니다.

"황자 전하. 저에게 맡겨주십시오. 저 입만 산 놈의 콧대를 제가 완벽하게 누르겠습니다."

"이프림 장군, 자네도 진정하고···"

"빨리 결단을 내려주시죠. 황자 전하."

나와 이프림이라고 불린 장군이 가테스를 압박하기 시작한다. 전형적인 칼이 칼을 부른 상황.

"···허가하지. 사실 내가 붙인 싸움이니."

이제야 인정을 하는 가테스. 분위기에 휘말려서 살짝 냉정을 잃었다는 건 자각하고 있는지 가테스가 날 노려보았다. 그리고 차폐막이 사라졌다.

이미 연회장은 웅성이고 있었다. 난 당연히 차폐막 속의 우리 때문일 줄 알았지만, 다른 이유가 있었다.

"얘기는 잘 끝났나요? 가테스?"

많은 이들의 시선을 받으며 나오는 사람은, 그저 얼굴만으로도 모든 사람의 시선을 잡아끄는 미녀이자 성녀, 마리나 스미노프였다.

그녀는 매혹적인 웃음을 얼굴에 띠고 있었다. 가테스는 다시 냉정한 표정을 되찾았다.

"성녀가 여기는 무슨 일이지?"

"가테스, 저는 모든 황궁의 연회에 참가할 수 있는 위치 아니었나요?"

"그건 맞지만."

가테스가 오늘따라 쩔쩔매는 모습을 많이 보여준다. 가테스도 캐릭터가 아닌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충분히 이해할만한 상황이다. 가테스는 마리나를 좋아하니까.

"가테스. 내가 얘기를 좀 들었는데, 공정하지 못한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전 공정한 걸 좋아한답니다."

"갑자기 무슨 소리지?"

"아이리 공녀나, 칸나 영애의 등위 역시 공정하지 않아요. 그걸 왜 당신이 독단적으로 결정하죠?"

마리나가 허리에 한 손을 짚고 검지를 흔들었다. 일견 맞는 말이지만, 뭔가 자연스럽지가 않은데. 삐걱거리는 느낌이다.

"···이 주제에 갑자기 끼어들겠다는 얘기인가? 성녀가 뭣하러?"

"전 성녀잖아요."

그 한 마디가 좌중을 침묵시켰다. 성녀는 이 시국에서 존재로 치면 황제와 비슷한 존재. 가테스는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마리나, 언제까지 이딴 재미없는 농담질을 할 거지?"

"무슨 소리신가요?"

"그렇게 내가 할 일을 사사건건 방해해야겠나?"

가테스의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당연하지만, 냉미남인 그의 얼굴이 분노로 붉어질 일은 소설 내에서 전혀 없다. 그렇다면 캐릭터가 깨지게 되니까.

그가 얼굴을 붉힐 때는, 그저 마리나와 사랑을 나눌 때밖에 없다. 그마저도 아주 조금만 보여주는 희귀한 풍경인 것이다.

"맞아요. 성녀님의 말씀이 맞아요."

"저도 그 던전에 같이 있었는데 등위를 못 받았다고요."

"···저도요."

갑자기 마리나의 뒤를 지켜선 건, 나와 같은 조였던 아일린, 시에나, 히아나 영애들이었다. 그녀들의 표정은 뭔가 결사적이었다.

이들은 마리나의 친구. 마리나라는 스피커에 확성기를 달아주는 역할, 그러니까 소설 속에서의 역할을 충실하게 하고 있었다. 그게 조금 미묘한 상황이라 그렇지.

아이리는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마치 그녀도 진심으로 동의하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부끄러워지네요. 그저 황자 전하의 포상이라고 기뻐하며 받았던 제 처신이 잘못 됐습니다."

아이리는 의젓하게 말했다.

"같이 시험을 친 사람들을 생각을 못했네요. 칸나 소령과 저만 싸운 것도 아닙니다. 확실히 황자 전하의 포상은 영광스러운 일이지만 부담스럽기도 합니다. 저 역시 에퍼리 자작과 상응하는 다른 검증의 기회를 주시면 그 역시 영광으로 받아들이겠습니다."

나는 아이리를 새삼스럽게 바라봤다. 이렇게 말을 잘하는 아이였다는 건 몰랐다. 왜냐하면 소설 속에서 아이리는 그저 시끄럽기만 한 악녀였으니까.

"그렇다면, 일주일 후에 아일린 영애와 한 번 붙어보시겠어요? 에퍼리 자작은 아마도 저 장군님과 겨루게 될 것 같군요. 아일린 영애도 이번 등위시험을 꽤 열심히 준비했다고요."

"그걸로 증명이 된다면. 전 황자 전하의 의견에 따르겠습니다."

아이리와 마리나, 아니, 연회장의 모든 사람의 시선이 가테스에게 쏠린다. 가테스는 마리나를 지긋이 바라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허가한다. 일주일 후다. 칸나 소령에게 맞는 상대는 내가 준비하도록 하지."

나는 마리나를 바라보았다. 마리나는 썩 아름다운 웃음을 짓고 있었다. 하지만 아름다운만큼, 강한 괴리감을 지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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