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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스판타지로 떨어진 S급 헌터-60화 (60/150)

60화 리바이어던 (3)

이해할 수 없다. 신수라면 우리나라에서는 현무, 백호, 청룡, 주작 같은 존재다. 그런 존재는 도움이 됐으면 됐지 해가 될 리가 없었다. 아니면 여기서 말하는 신격(神格)이란 좀 다른 걸지도.

신수가 단순히 악마가 완성되어 나타난 거라면 괜찮은 것이 아닐까 생각했었다.

하지만 가테스는 그런 뜻으로 말한 게 아니었다. 분명히, 신수 자체를 위협으로 보고 있었다.

"말도 안 돼요. 악마가 있다면 내가 느낄 수 있어야 돼요."

거기서 부정한 건 마리나였다. 그녀도 대화의 흐름 정도는 따라오고 있었다. 가테스는 눈살을 찌푸렸다.

"아니라면 신수가 나올 이유가 없다."

"이유가 뭐가 필요해요, 일단 나온 게 중요하지. 일단 내가 느끼기에는 악마는 아직 없어요."

마리나는 답답하다는 듯이 말했다. 지금은 두 개의 절대성이 충돌하고 있었다. 가테스에게는 자신이 아는 한 신수는 무조건 악마가 있어야만 나오는 존재라는 절대적인 개념이었고, 마리나에게는 자신의 존재 자체가 절대성이었다.

당연히, 존재 자체로 자신의 절대성을 증명하는 마리나의 설득력이 더 강했다.

"오라버니, 일단 성녀님의 말씀을 들어야 해요. 성녀님의 감각은 절대적이니까요. 신수가 왜 나온 건지는 몰라도……."

리얀의 말에 나는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말을 했다. 일단 스탠스를 정해야 했으니.

"…일단, 신수가 사람에게 해가 됩니까?"

"반대다."

가테스가 말했다.

"사람이 신수에게 해가 된다. 그리고 신수는 사람보다 상격(上格)이다."

"상격이란 말은 무슨 뜻입니까?"

"신수에겐 인간이든 벌레든 다 똑같은 하격이라는 말이다."

그럼 결국 사람에게 해가 된다는 말이었다. 근데 대체 왜 그걸 상격으로 표현하면서까지 자신을 깔보는지는 이해할 수 없다. 애초에 계급 자체가 못 박힌 세계관이니까 자신 위의 존재도 쉽게 받아들이는 것인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면 죽여도 무방합니까?"

"…신수를 죽인다고? 신수는 여신의 애완동물이다."

"그건 상관없지 않습니까. 당장 우리에게 해가 되는데."

"애초에 죽일 수도 없다. 신수는 그야말로 우리의 상격. 보면 바로 감이 올 거다."

그와 동시에, 대제전이 있는 방향에서 무언가가 무너지는 소리가 났다. 모두가 황궁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크르르르르르릉.

헨리 트라프비체는 대제전의 대제의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는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받치고 있었다. 언제고 한 번은 앉아 보고 싶었던 자리였다.

인간이라면 늘 그런 욕망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태어나자마자 인간들 위에 군림하는 위치에서 태어났지만, 그는 그렇기에 더 위를 볼 수 있었다.

대제의 자리는 대제에 대한 예의 때문에 앉지 못하는 게 규칙이었다. 만약 이것을 다른 시종장이나 귀족에게 보인다면 그는 흉을 들을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앉아 있었다. 그냥, 앉아 있고 싶어서. 그 외에 이유는 없었다.

크르르르르릉.

그는 지금 세계에서 가장 오만한 사람이었다. 그 앞에는 커다란 대제전을 모두 채우다 못해 허리를 몇 번이나 굽힌 괴물이 있었다.

"리바이어던. 실제로 보면 더 멋있구나."

헨리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한탄했다. 아무리 올려다봐도 리바이어던의 길쭉하게 튀어나온 아래턱만을 볼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높은 자리에서도 신격에 닿을 수 없단 말인가."

헨리의 말은 황족으로서, 황제로서, 이 트라프비체의 사람으로서 모두 실격이었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아무도 없는 곳이었으니까.

그때 대제전의 문이 벌컥 열렸다. 자신이 사랑하는 막내아들, 가티스였다.

"아빠!"

그렇게 부르지 말라고 했는데도. 가티스의 눈에서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헨리는 갸웃했다. 아직 무슨 상황이 발생하지도 않았는데 왜 울고 있는 것인지.

"아들아, 나가거라. 현재 나는 아무한테도 보이면 안 되니까."

"안 돼! 아빠는 지금……!"

가티스는 외쳤다.

"죽는단 말이야!"

아, 그래서 울었던 것인가. 아들에게는 신기한 능력이 있었구나. 헨리는 사랑하는 막내아들에게 있는지도 몰랐던 그 신기한 능력이 아주 하찮게 느껴졌다. 신격을 마주하다 보니 인간의 능력이란 게 별것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마치 신격에 가까워진 듯한 느낌. 하지만 리바이어던은 그제야 헨리를 내려다보았다. 눈 안에 좁은 마름모가 있는 형태의, 파충류의 눈. 리바이어던은 거대한 몸에 있는 비늘을 한 번에 거꾸로 세웠다. 그리고 헨리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헨리는 그제야 느낄 수 있었다. 신격은 다가갈 수도 없고 넘봐서도 안 되었던 것이구나.

"아들."

가티스는 리바이어던이 자신의 아버지를 빤히 바라보는 그 압도적인 광경에 아무 말도 못 하고 얼어 있었다. 헨리는 가티스를 내려다보았다.

가뜩이나 작은 몸이 더욱 작게 보였다. 떨고 있어서 흐릿하게도 보였다.

"떨지 마라. 나는 그저 책임을 지려 하는 것이니. 황제는 국란에 대제전으로 거처를 옮겨야 하지 않느냐."

"아빠……."

"허무하구나. 파리처럼 짓밟히는 인간의 왕이라니."

그때 리바이어던이 코를 들이밀어 헨리의 냄새를 킁킁 맡더니 얼굴을 돌렸다. 그 바람에 뱀 같지만 비늘이 잔뜩 솟아 있는 유선형의 몸통에 헨리가 부딪혀 날아갔다.

헨리는 전신이 비늘에 뚫린 채 대제전의 벽에 박혔다. 리바이어던은 아직 가티스를 보지 못하고 있었다. 가티스는 도망쳤다.

대제전은 무너지고 있었다. 그들이 본 건 어떤 행동 양식 없이 움직이는 뱀 모양의 몸통과 악어의 주둥이, 여러 겹으로 되어 있는 상어 같은 이빨이었다. 리바이어던은 그저 움직일 뿐이었다. 리바이어던은 자비도 없었고 거침도 없었다.

아니, 자비, 거침 이런 단어와도 좀 동떨어져 있는 움직임이었다. 놈은 그저 인간의 귀한 조형물들을 걸으면서 짓밟고 있었다. 짓밟기 위해 짓밟는 게 아닌 걷다 보니 짓밟히는 느낌이었다. 딱 봐도 탄탄해 보이는 비늘이 발바닥까지 덮고 있었는데, 리바이어던이 성벽을 밟는 바람에 황궁의 벽이 와르르 무너졌다.

굽힌 몸을 전부 뻗으면 자그마치 1km는 될 듯한 거대한 크기였다. 가테스는 침을 꿀꺽 삼켰다. 그가 압도된 게 대체 언제였던가. 이것이 바로 하격이 상격을 바라볼 때의 느낌일까.

어떻게 해도 압도되는 느낌밖에는 들지 않는다.

"…리바이어던."

신수나 마수에 해박한 리얀이 말했다.

"신수 중 가장 여신의 총애를 많이 받는 신수이죠. 어쩌면 인간의 말이 통할지도 몰라요."

"대화는 동격(同格) 사이에서나 통하는 수단이다. 넌 모기와 대화도 하나?"

가테스가 일갈했다. 리얀은 억울함을 표했다.

"마수에게도 언어 훈련을 하면 말을 알아들을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있어요."

"마수와 신수는 다르다. 마수는 우리보다 하격이지만 신수는 우리보다 상격이다."

왜 이 괴수는 이 황도에 갑자기 왔는가. 여신은 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가. 자신들을 보호해 준다고 하지 않았는가.

리바이어던은 그저 하늘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당연했다. 그 머리의 위치는 땅보다 하늘에 가까웠으니까.

그때 에퍼리가 있는 쪽에서, 이가 갈리는 소리가 났다. 그리고 희한한 웃음소리가 났다. 늘 헤실거리던 그의 표정이 아니었다. 확실하고 뚜렷한 무언가를 가지고 있는 눈빛. 그 무언가는, 투기였다.

급작스럽게 그가 뿜어내는 투기에 일반인에 가까운 리얀과 마리나는 몸을 오들오들 떨었다.

"뭐 하는 거냐, 에퍼리!"

가테스가 소리를 질렀지만 에퍼리는 그 말도 듣지 않고 하얀 검에 마나를 불어넣고 있었다. 그때, 리바이어던이 몸을 살짝 틀었다.

쿠구궁.

그의 몸에 부딪힌 민가와 황족 근위대실이 모래성처럼 무너진다. 그리고 하늘에서 무언가가 떨어졌다. 그 철퍽 하는 소리는 가죽 주머니가 떨어지는 소리와 같았다.

"…폐하?"

리얀의 입에서 얼빠진 목소리가 나왔다. 늘 당당하던 그녀의 목소리와는 전혀 달랐다. 떨렸고, 자신에 대한 확신이 없었고, 약했다.

가테스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흉터투성이였지만, 그 가죽 주머니가 헨리 트라프비체라는 건 명명백백했다. 가테스는 입을 꽉 깨물고 주먹을 부들거렸다. 자연스럽게 그의 마나가 발산됐다.

그의 몸에서는 실체화된 마나가 억눌리고 발산되고를 반복했다. 마치 위급 환자의 바이탈 사인처럼 그 진폭은 너무나 위태로웠고, 컸다.

그때, 리바이어던이 그들을 바라보았다.

크르르르릉.

리바이어던은 목을 바닥에 쭉 깔고 입을 열었다. 그 입에서 나온 것은 동물의 으르렁하는 소리가 아니었다.

"너구나, 이번 시대의 영웅."

목소리에 잡음이 섞여 있기는 했지만 분명히 그건 트라프비체어였다. 가테스를 포함한 모든 사람이 놀랐다. 신수가 사람 말을 할 줄 아는지 몰랐기 때문이다.

"어때, 놀랐느냐? 하찮은 인간의 말을 하는 것도, 네 격이 맞아서 해 주는 거니 영광스럽게 여겨라."

자신의 아비를 죽인 자 앞에서 영광스럽다는 말을 듣다니. 이보다 더한 치욕은 없었다. 가테스는 엄청난 시험에 들었다.

트라프비체의 예는 신수에게 복종하라고 하고 있었다. 그러나 어떻게 아버지를 죽인 자에게 시원하게 욕 한 번 뱉지 못한다는 말인가.

"…어째서, 어째서."

리얀이 말을 더듬으며 말했다.

"갑자기 이런 재앙을 불러오십니까, 신수시여."

"재앙이라니, 무슨 소리냐? 나는 그저 산책을 하고 싶었을 뿐이다."

리바이어던은 오만하게 말했다.

"사람의 발에 차인 개미집이 무너질 때 너희는 그걸 재앙이라고 생각하느냐? 그저 발에 박히는 모래가 짜증 나지 않더냐. 그런 것이다."

"말이 안 됩니다. 어떤 계시조차 없이……."

"계시는 여신의 변덕일 뿐이다. 지금 자네는 여신을 책하는가?"

"아니……."

리바이어던은 말을 더듬는 리얀을 두고 말을 계속 이었다.

"이 덩어리가 인간 제국에서 군림하던 사람인 건 알고 있다. 다만 운이 나빴을 뿐이지. 너희한테는 미안하게 생각한다. 이렇게 미안하다고 하는 것도, 너희가 인간치고는 격이 있는 사람들이라 그렇다."

리바이어던이 콧등을 들이밀 때였다. 그때 가테스는 문득 에퍼리가 생각났다. 그렇게 투기를 뿜어 대던 에퍼리의 존재감이 사라진 것이다. 투기조차 사라져 있었다.

대체 어디로 간 것일까?

그때, 쾅! 하는 소리가 들렸다.

리바이어던의 콧등 앞에서 하얀 검을 날리고 있는 소년. 에퍼리의 칼은 리바이어던의 콧등에 깊은 칼집을 냈다.

"콰아아아아아아악!"

엄청난 비명 소리와 함께 몸을 비틀었다. 그 때문에 근처에 있는 황궁의 건물들이 모두 박살 났다.

"오랜만이다?"

"뭐냐, 이 격 떨어지는 놈은… 평범한 인간이로군."

리바이어던은 코에서 피를 흘리며 에퍼리를 노려보았다.

"너는 영웅에게서 느껴질 법한 격이 느껴지지 않는다. 대체 무슨 각오로 날 친 것이냐?"

"별건 아니고, 너한테 갚을 게 있어서."

리바이어던은 에퍼리를 자세히 바라보았다. 에퍼리는 순식간에 없어진 다음에 리바이어던의 얼굴에까지 뛰어올라 가 있었다. 그리고 리바이어던의 툭 나온 주둥이를 아래로 강하게 내리쳤다. 리바이어던의 머리가 땅바닥에 쾅 부딪히고, 모래 먼지가 퍼졌다.

"큭큭큭. 기억났다."

리바이어던은 모래 먼지 속에서 웃었다. 에퍼리는 모래 먼지를 걷고 천천히 가만히 엎어져 있는 리바이어던을 보았다.

"한 번 진 상대에게 다시 덤비는 건 무슨 이유냐, 격이 떨어지는 인간아."

리바이어던의 물음에 에퍼리가 조용히 발걸음을 옮겼다.

"첫째, 그때는 내가 최상의 컨디션이 아니었거든. 실전 감각도 많이 떨어져 있었고. 브레이킹된 던전을 전부 나 혼자 레이드 하느라 체력도 많이 떨어져 있었거든."

점점 가까워진다.

"둘째, 그때는 무기도 별로였어. 아니, A급 랭크 던전에서 SS급 마수가 나오는 건 반칙이지."

이제 에퍼리는 리바이어던의 커다란 눈을 몸 앞에 두고 있었다. 광오하게 그는 리바이어던의 눈을 내려다보았다.

"이봐, 내가 격이 떨어진다고 했나?"

"그렇다면?"

"네가 그럼 내 전성기를 모르는 거야."

에퍼리가 말했다.

"전성기 때에는 세계 1위까지 갔었던 헌터인데 말이야. 특히 일대일은 자신 있거든."

가테스는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몰랐다. 다만 감춰진 투기의 편린은 느꼈다. 에퍼리가 잠깐 조절을 못한 모양이었다. 그 투기의 날카로움은 감히 다른 소드 마스터들한테 비할 바가 아니었다.

"그리고 지금 단언컨대 몸 상태는 전성기 때보다 좋아. 여기선 다친 적이 없으니까. 옛날엔 후유증이 좀 있었지."

"어쩌라는 거지?"

"뒈질 준비 하라고."

에퍼리가 갈무리하며 닦아 놨던 투기가 주변에 확 하고 퍼졌다. 걷혔던 모래 먼지가 다시 황궁을 짙게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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