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맨스판타지로 떨어진 S급 헌터-63화 (63/150)

63화 별장을 태우다 (2)

"야, 너 뭐 해?"

내가 위에서 소리 지르자 마리나는 그저 오만하게 가테스와 리바이어던을 바라보고 있다. 나 정도는 가볍게 무시한다는 느낌이다.

지금 리바이어던이 뿜어내는 열기는 마기가 아니다. 헌터 때에는 그저 SS급 마수가 뿜는 사이한 기운이라고 생각했지만, 그건 바로 신성력이었다. 그야말로 마리나에게는 완전한 카운터였다. 그런데도 마리나는 왜 안 가고 저럴까?

분명 저 성격이면 가토스가 끌고 가려 할 때 신경질을 엄청 부렸겠지. 그래서 마리나가 남아 있는 것일 테다. 이해할 수 없었다. 왜 남아 있는 것일까.

"야, 안 꺼져?"

내 거친 말에도 마리나는 그저 리바이어던과 가테스만 바라보고 있다. 마치 영화 관람을 하는 듯, 그런 흥미로운 눈이다.

나는 마리나를 바로 낚아챘다. 어차피 가테스는 지금 잘 피하고 있다. 답답한 건 어쩔 수 없지만. 하지만 선택해야 될 때는 언젠가 온다. 도망치는 건 선택지를 미루는 일이니.

마리나는 바로 낮은 목소리를 냈다.

"야, 뭐 하냐?"

"좀 꺼지라고."

"네가 뭔데?"

난 무시하고 마리나를 가토스와 칸나가 있는 곳에 떨어뜨리고 바로 칼같이 복귀했다. 저 뒤에서 커다란 욕이 들려왔지만, 자기 이미지나 깎아 먹는 짓이라고 생각하고 시했다.

내가 마리나를 놔두고 온 것은 기껏해야 20초가 안 될 것이다. 지금의 내 신체 능력은 폭발적으로 올라가 있으니까. 내가 볼 때는 지금 상태로 30분만 유지해도 사흘은 앓으며 지내야 할 것 같다.

바로 달려왔는데 가테스는 어깨에서 피를 흘리고 있었다. 답답해 죽겠다. 그는 여전히 냉정한 눈을 하고 있지만, 내가 볼 때는 그건 냉정한 게 아니다. 멍청한 거지.

난 가테스 대신 리바이어던의 공격을 비껴 주었다.

"가테스 황자."

"반말이냐?"

"전장에서는 존댓말을 하면 효율이 떨어지니까."

"아주 미쳤구나 그래."

"미친 건 당신이지."

내가 볼 때는 그렇지. 그러니까, 서로가 서로를 미쳤다고 생각하는 거다. 이런 긴급 레이드 상황에서도 예의를 갖추는 사람이 있나.

"그래, 네 맘대로 해라."

"당신은 당신 맘대로 하면 안 됩니다."

"뭐?"

내 말에 가테스가 얼굴을 얼음장처럼 굳혔다.

지금 중요한 건, 우리는 지금 리바이어던의 공격에서 계속 도망치면서 빠지고 있는 상태라는 것이다. 바람이 우리의 머리를 뒤로 넘긴다.

"이대로 죽을 겁니까?"

"여신의 뜻이라면?"

"한번 봅시다."

"뭘?"

나는 순식간에 땅으로 내려간 다음 가테스를 앞질러 갔다. 가테스는 나보다 빨리 도망칠 수 없었다. 다시 리바이어던의 공격을 감당해야 했으니까.

나는 가테스의 뒤를 잡았다.

"뭔 생각이냐."

"죽을 거면 그런 소리 할 것 없지 않아?"

"아주 반말이 입에 붙었구나. 그렇게 반말하고 싶었나 보지?"

"그건 아닌데. 난 효율적으로 움직이는 사람이라."

내 검에 강한 마나가 모인다. 가테스는 이제 뒤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 난 적당히 모인 마나를 가테스를 향해 방출했다.

정확한 타이밍이다. 내 마나와 리바이어던의 공격이 같은 속도로 가테스에게 날아간다.

가테스는 멍청하지 않다. 그도 예감하고 있었을 거다. 여신이 내려 주는 죽음을 달게 받을 것인가, 아니면 거역하고 살 것인가. 난 그 선택지를 순간에 좁혀 준 거였다.

그는 당연히.

챙챙!

내 마력과 리바이어던의 발바닥을 동시에 쳐 내고 고개를 숙였다. 마치 후회를 하는 것 같다. 튕긴 마력이 내 귀를 스쳐 갔다. 리바이어던은 강한 반탄력에 잠시 발을 멈췄다.

나는 웃으며 박수를 쳤다.

"좋은 선택이야."

"…너."

가테스는 숙인 고개로 눈을 치켜뜨며 날 노려보았다. 그는 마치 날 원망하는 듯하다. 하지만 그도 알겠지, 내가 원망할 상대가 아니라는 걸.

"이제 속이 좀 시원하지?"

"기분 더럽다."

"원래 본능을 마주하는 일은 더러운 일이니까."

내 신랄한 말에 가테스가 화를 내지 않고 후후 웃었다. 그 역시 사람이다. 생명 앞에서는 모두가 간절해지기 마련이었다. 가테스 역시 머리로는 죽음을 받아들였지만 본능으로는 받아들일 수 없는 거였다. 만약 본능이 없었다면 침대에서 숨을 참다가 죽는 사람이 많았겠지.

우리는 리바이어던을 향해 검을 겨눴다. 가테스는 급변한 자신을 받아들일 수 있을 정도로 냉정한 사람이었다. 그의 칼질에는 절대 주저함이 없었다.

"여신은 이제 무시하고?"

"아니, 여신님도 실수를 할 수 있지. 아무리 생각해도 제국은 여신께 섭섭하게 한 게 없다."

"그 변명은 좀 추한데."

내가 볼 때는 가테스는 지금 인지 부조화 상태다. 그것도 가장 질이 안 좋은 양극을 달리는 본능과 이성의 인지 부조화. 이성이 강한 가테스인 만큼 그걸 많이 느끼고 있을 거였다.

변명을 추하게 한 것과는 달리 가테스의 검 끝에는 이상이 없었다. 우리 둘이 합공해서 베어 나가자 리바이어던은 뿔이 잘리고 몸부림을 치기 시작했다.

"내가 본 사람 중에 가장 강하군, 너는."

가테스가 그렇게 말했다. 리바이어던은 울부짖고 있었다. 그와 함께 주변의 집들이 부서지다 못해 가루가 되었다. 다행히 가토스가 다 대피시킨 탓인지 사람의 시체는 보이지 않았다.

리바이어던은 우리가 합공한 지 1분도 지나지 않아 피를 과도하게 흘리고 있었다. 그의 눈에서 빨간빛이 서서히 약해지더니, 다시 파충류의 눈으로 돌아왔다.

"크으으… 미친 인간이 둘이나 있군. 여신의 힘이 두렵지 않은가?"

"두렵다."

"난 별로."

가테스와 내가 따라서 대답했다. 리바이어던은 물었다. 나라는 존재는 관심도 없는 듯했다.

하늘이 붉어지고 있었다. 나는 그 뜻이 무엇인지도 몰랐다. 가테스는 하늘을 바라보고 침음을 흘렸다.

"여신이 화나셨군."

"뭐, 경치는 좋습니다."

"갑자기 왜 존댓말이냐?"

"싸움이 끝난 것 같아서 말입니다."

나는 웃었다. 난 그 핑크빛이 섞인 붉은 하늘이 아름다워 보였다. 그게 여신의 분노를 상징하는 것이라고 해도, 인간의 눈에만 아름다우면 됐다고 생각했다.

"여신한테 경배하는 게 사람의 의무긴 하나, 난 귀족으로서 태어난 사람이다."

가테스는 리바이어던에게 말했다.

"난 정확히 말하면 사람으로서의 권리와 의무를 잘 모른다. 솔직히 이해도 되지 않는다."

난 그때 가테스가 자신의 아버지인 헨리를 바라보던 눈길을 생각해 냈다. 완전한 얼음장이었지. 그건 공포감과 분노 때문에 얼어 버린 게 아니었다. 그냥, 평소 표정이었다.

"그러니 내게 주어진 권리와 의무만을 행사하겠다."

"비겁한 소리로군."

"포식자의 입장에서는 비겁하겠지. 음식이 반항을 하는 꼴이니까."

내가 끼어들자 리바이어던이 드디어 날 노려보았다.

"지금 이 상황이 누구 때문에 촉발됐는지 아는가? 난 이제야 알 것 같다."

"모르고 있었냐? 너 때문이잖아."

"아니, 너 때문이다."

갑자기 내 탓을 하는 리바이어던에 난 헛웃음을 지었다. 이건 뭐 초딩도 아니고. 하지만 리바이어던의 피흘리는 몸통은 땅을 느리게 기며 나한테 혀를 낼름거렸다.

"네가 세상의 균형을 무너뜨리고 있다."

"한 사람으로 무너질 균형이면 쓰레기 같은 세상 아니냐?"

"세상은 여신의 것. 모욕하지 마라."

"지랄 염병, 더러운 세상아."

원래 사람은 하지 말라고 하는 걸 더 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난 진실을 말한다. 내가 마주친 수많은 사람 중에, 세상이 더럽다는 사람은 많았는데 세상이 깨끗하다고 하는 사람은 단 하나도 없었다.

"어쨌든 아, 드디어 복수하네. 내가 너 때문에 고생한 걸 생각하면 진짜."

나는 고개를 들고 몇 달 전을 회상했다. 갑자기 소설 속으로 떨어져 옌시 놈이라고 뜬금없이 욕을 듣질 않나, 많은 시험도 받았지.

그래도 뭐, 나쁜 인생은 아니었다지만. 그건 내가 잘한 거고. 일진 때문에 내 인내심을 키웠다고 내가 일진에게 감사해야 할 의무는 없지 않는가.

"뭔가 은원이 있나 보군."

"내가 죽입니다."

"흐흐."

리바이어던은 웃었다. 이제 이 괴수의 힘은 다 빠져 있었다. 온몸의 상처에서 녹색 피가 철철 흐르고 있고, 리바이어던이 똬리를 튼 곳엔 녹색 웅덩이가 고여 있을 것이 분명했다.

"자. 얌전히 죽어라, 짐승아."

그때 핑크빛 하늘에서 무언가가 쾅 하고 떨어졌다.

마리나는 보았다, 하늘이 열리고 괴수가 빼꼼하는 걸. 어떤 사람이 지켜보는 것 같았지만, 마리나는 현대 교육을 받은 사람이었다.

원근법상 저 머리는 리바이어던의 머리와 비견될 정도로 대두다. 아무리 가테스와 에퍼리가 고수라고 해도 하늘 끝까지 닿을 정도의 감각은 없을 터였다.

"성녀님, 에퍼리가 구해 준 목숨입니다. 그걸 또 헛되게 버리시렵니까."

가토스의 말에 마리나는 어느새 자신이 움직이고 있다는 걸 알았다. 그만큼 무의식적인 움직임이었다.

"내가 움직였었네."

"그래요. 다시 돌아가세요."

가토스와 칸나는 사람들을 모으며 황도 바깥으로 탈출하고 있었다. 리얀은 슬슬 고약한 냄새를 풍기는 헨리를 여전히 끌어안고 힘들게 걷고 있었다.

"싫어요. 내 인생은 내가 살거든요. 아니, 이건 인생도 아닌가?"

마리나는 가토스가 이해 못 할 말을 했다. 마리나는 대열에서 바로 이탈했다. 가토스와 칸나가 그녀를 막았다.

"성녀님, 이제는 더 이상 진열을 흩트리지 마십시오. 사람들에게 폐가 됩니다."

"조용히 빠져 줄 건데요."

"당신은 당신만의 삶을 사는 게 아닙니다. 이 모든 사람을 지켜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가토스가 말했다. 하지만 마리나는 코웃음을 쳤다.

"백성들 앞에서 내가 분신(焚身)하는 모습을 보고 싶으면 그렇게 계속 막아요."

"못 갑니다."

"못 할 것 같아요?"

그녀는 바로 손에 성화를 피워 자신의 오른팔에 붙였다.

분명 성녀의 불은 일반인에게는 통하지 않는다고 했다. 하나 왜 성녀에게는 통하는 것일까? 자해는 또 다른 영역인지.

"읏!"

마치 따끔해하는 듯한 마리나의 신음과는 달리 팔의 피부는 바로 거무죽죽하게 죽어 버렸다. 그녀의 피부는 복구할 수 없어 보였다. 마리나는 그 와중에 화상이 난 곳이 가렵다며 긁어 댔다. 오른팔의 진갈색의 피부는 마리나의 왼쪽 하얀 손이 닿을 때마다 푹푹 파이고 피를 흘려 댔다.

백성들은 마리나의 그 모습에 놀라며 바라보고 있었다. 마리나는 그에 대응해 화사하게 웃으며 피를 묻은 손으로 흔들어 주었다. 광기처럼만 보이는 그 모습에 가토스와 칸나는 아무 말도 못 했다.

"이제 저를 보내 주실 건가요?"

마리나의 화사한 말에 칸나가 떨며 말했다.

"뭘 하시려는 겁니까."

"내가 하고 싶은 일이요."

"…가시죠. 이번 대 성녀님은, 이기적이시군요."

"다른 사람에게 이기적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보통 바보더군요. 당신은 바보인가요?"

마리나는 비웃으며 가토스와 칸나의 사이를 빠져나갔다. 마리나는 오래 걸은 다음 뒤를 돌아보았다. 역풍이 불어 머리칼이 자신이 바라보는 쪽으로 촉수처럼 뻗쳤다. 가토스와 칸나가 자신을 여전히 바라보고 있었다.

왠지 피식피식 웃음이 나왔다. 마리나는 등을 돌려 다시 걸었다. 하늘이 열린 곳으로. 괘씸한 에퍼리와 왠지 모르게 보고 싶은 가테스의 곁으로.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