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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스판타지로 떨어진 S급 헌터-64화 (64/150)

64화 별장을 태우다 (3)

무언가가 떨어졌을 때, 내 초감각이 없었더라면 난 바로 구워졌을 거다. 그건 엄청난 화기를 담고 있었으니까. 난 가테스를 낚아채고 뒤로 크게 멀어졌다.

하지만 가테스는 내가 낚아챌 걸 알았다는 듯 그 무언가를 쳐 내 리바이어던 쪽으로 튕겼다. 너무 급변한 것 같기는 하지만, 나는 솔직한 게 좋다. 또 여신의 신수니 뭐니, 주저하는 모습을 보여 줬다면 나는 당장 가테스를 쳐 버렸을 거다.

"크아아아악!"

리바이어던은 불의 파편을 맞고 소리를 질렀다. 가뜩이나 상처가 많은데 불로 지지니 효과가 배였다.

"미안, 미안. 그러니까 누가 그렇게 엎어져 있으래?"

저 위에서 웃음기 띤 목소리가 들렸다. 우리는 위를 쳐다보았다. 하마의 머리에 두 개의 튀어나온 송곳니를 한 기괴한 형태의 얼굴, 매머드 같은 육중한 몸이 쾅 하고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는 위로 향해 벌린 큰 콧구멍을 뻐끔거리며 자기소개를 했다.

"내 이름은 베히모스야."

"별로 알고 싶지 않은데."

"이봐, 제국의 아이야. 넌 지금 신수한테 반기를 들고 있단다. 저 녀석은… 제국의 사람이 아니니."

내 말을 무시하고 베히모스는 가테스를 압박했다. 가테스는 이제 새로운 시험에 들게 된 것이다. 같은 선택이라도 압박감이 더해진다면 다른 선택을 할 수도 있었다. 난 가테스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의 강건하게 다물린 턱을 보고 난 안심했다.

"여신님과 대화하고 싶다."

"엥? 인간 따위가, 미쳤어?"

"날 죽이시려는 그 이유가 납득이 된다면 죽겠다."

"하하."

베히모스가 웃었다. 그리고 그의 녹색 눈동자가 곧 파랗게 빛났다. 마치 리바이어던이 폭주할 때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베히모스는 이성을 잃지 않았다.

"오만한 인간아, 죄를 어찌 감당하려 하는가?"

베히모스는 커다란 몸을 일으켰다. 코끼리 같은 몸이라고 해서 두 발로 못 서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그의 속도는 곰이 사냥할 때와 같았다. 두꺼운 앞발을 가테스를 향해 내리쳤다. 가테스는 뒤로 쓱 빠졌다.

"흐흐흐."

베히모스는 짓쳐 들어올 거라는 예상과는 다르게 뒤로 빠져서 리바이어던의 머리에 발을 대었다. 베히모스의 발에서 나오는 푸른 기운이 리바이어던의 붉은 기운을 끌어 올리고, 둘은 곧 섞였다. 기운은 섞여 마치 태극의 모양을 만들었다.

"이번 시대의 영웅은 필요 없겠군. 반란자라면 굳이 거둘 필요가 없지. 새로운 땅과 사람이 필요하구나."

"나도 동의해, 새로운 사람이 필요하다는 건."

내가 말했다. 이제 이런 촌극을 구경하는 것도 지쳤다.

"하지만 사람의 일은 사람이 결정해야지."

"네가 사는 세계와 여기의 규칙이 다르다는 걸 모르는가?"

"모르진 않아. 마음에 안 들 뿐이지."

"마음에 안 든다고 세상의 규칙이 바뀌는가?"

"바꿀 수 있어."

나는 손목을 털었다. 슬슬 무리가 가는 신경과 근육에 손끝이 저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바꿀 수 없다."

"너희의 세계는 기반이 약한 모래성이야."

리바이어던과 베히모스가 동시에 내 말에 반박했다. 리바이어던은 붉은 기운이 살짝 섞인 푸른 기운을 뿜어내며 몸을 일으켰다. 녹색 피를 여전히 뚝뚝 흘리고 있었지만, 서서히 지혈이 되고 있었다.

"그럼 붙어 보는 수밖에 없지."

"우린 승부를 하러 온 게 아니야."

"세계를 바꾸러 왔다."

"누구 마음대로?"

리바이어던과 베히모스는 동시에 대답했다.

"모든 건 여신의 뜻대로."

그리고 리바이어던과 베히모스는 순식간에 달려들었다. 뱀 모양의 괴수와 하마 모양의 괴수가 동시에 달려오는 건 위압감이 있었다. 베히모스도 모르긴 몰라도 SS급 마수 정도는 되는 놈이겠지.

이미 피하기에는 늦었다. 난 앞으로 뛰어들어 그들의 몸을 타며 칼집을 계속 주었다.

하지만 내 생각은 잘못된 것이었다.

이들의 목표는 나와 싸우는 것이 아니었다. 나는 리바이어던에게 복수심을 가지고 있었지만 리바이어던은 내게 복수심 따위는 없었다.

그들은 철저히 목표에 의해 움직이는 동물들이었다.

그들의 목표는, 가테스였다. 내가 그들의 몸에 얕지 않은 상처를 만들었음에도 그놈들은 날 무시하고 가테스에게 달려들었다.

가테스는 알고 있었다는 듯 이미 기수식을 취하고 있었고, 칼을 강하게 뿌리며 마나의 파도를 만들었다. 금색 물결의 파도가 크게 위로 치솟으며 그들을 덮쳤다.

난 바로 발을 이용해 내 관성을 줄이고 역동작으로 리바이어던과 베히모스의 등 뒤를 잡으려 했다.

푸쉬식!

내가 뒤를 잡으며 그들에게 계속 상처를 내고 찌르고 베어도, 리바이어던과 베히모스는 맹목적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가테스만을 오로지 공격하는 것이다.

아무리 나와 비슷한 실력을 가진 가테스라도 SS급 마수 둘의 공격을 전부 막아 내기에는 무리였다. 가테스가 나보다 날랜 것도 아니었고.

"음."

가테스가 눈을 살짝 찌푸리며 침중한 소리를 냈다. 베히모스의 발가락이 그의 어깨에 스쳐 움푹 파인 것이다. 마치 젤리를 덜어 낸 것처럼, 가테스의 어깨의 살점이 크게 떨어졌다.

이렇게 막무가내로 밀어붙이는 여신의 뜻은 뭘까. 궁금하면 물어봐야지.

"여신, 이 미친년아! 나와 봐!"

내가 크게 외쳤다. 하지만 하늘에서는 아무 응답도 없었다. 리바이어던과 베히모스도 그 도발에 걸려들지 않았다.

가테스의 안색은 점점 파리해졌다.

- 나의 어린아이야, 내가 말하노니 마수를 두려워하지 말라. 어떤 마수도 널 해하지 못할 것이니.

- 내가 왜 당신 아이인데요?

- 나의 아이는, 나의 아이다.

- 아, 내가 찾던 아버지가 당신이에요? 그것 때문에 놀림도 많이 받았잖아요. 왜 넌 엄마 성을 쓰냐면서요.

마리나는 웃었다. 그때 뭔 생각으로 그런 말을 했지.

- 근데 그런 것치고는 목소리가 여자인데?

- 나의 아이야, 혼란스러운 걸 알지만, 내가 가르치는 방향을 따라 걸어라. 네게 행복을 주마.

'지랄한다.'

그녀는 그때도 그렇게 생각했다. 행복이 어떻게 남이 주는 거야, 자신이 가지는 거지. 그 오만함에 여신이라는 년은 처음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어쩌면 자신이 성녀의 의무를 처음에 다하지 않았던 것도 여신이 좀 띠꺼워서가 아니었을까? 아니면 말고. 솔직히 사람은 의무를 피하고 피하다가 절벽에서야 비로소 하는 경향이 있지 않은가?

시험을 준비하는 대학생처럼, 취업을 준비하는 졸업 예정자처럼, 토익을 보는 승진 예정자처럼.

"내가 뭐 하는 걸까."

마리나는 사람들을 스쳐 지나갔다. 모든 사람이 자신의 반대 방향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그녀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그저 걸었다, 사람들이 피하는 그곳으로.

왜 걷는지는 모르겠다. 그녀는 몰랐다. 아무것도 몰랐다. 그저 이번 세계에서만큼은 자신의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가기로 했다. 언젠가는 머리로도 이해하겠지.

마음은 머리가 가는 곳의 내비게이터니까. 머리가 마음을 따라올 수 없다고 생각했다. 당장은 이해가 안 되는 길이라도 언젠가는 마음이 맞다고 느끼겠지. 그녀는 그런 자신을 믿었다.

"성녀님, 성녀님이 아니십니까? 어찌 괴수가 있는 쪽으로 가십니까?"

어떤 오지랖 있는 사람이 자신에게 물었다. 마리나는 말할 힘도 없었다. 솔직히, 팔이 타오르는 고통에도 최대한 쿨한 척해 보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도망가세요. 제가 신수와 얘기해 보려고요. 저라면 좀 설득할 수 있을 거예요."

마리나는 자신도 놀랄 정도로 상냥하게 말했다. 아니다. 바로 이해했다. 여기는 게임이니까. 자신은 어떤 캐릭터로든 변할 수 있는 거다.

"성녀님, 제가 보좌하겠습니다. 기사는 아니지만 농사는 오래 해서 팔근육은 좀 있습니다."

"괜찮아요. 가세요."

"아니, 저도 힘을 좀 잘 씁니다."

"가시라니까요?"

마리나는 차가운 웃음을 지었다. 그는 마리나의 눈에서 진심을 보았다.

"아, 아, 알겠습니다. 성녀님, 저희 황도를 구해 주십시오!"

그 오지라퍼는 다시 쏜살같이 달아났다. 그는 계속 도망가면서도 뒤를 힐끗힐끗 돌아보았다. 마리나는 물론 몰랐다. 앞만을 향해 가고 있었기에.

그녀는 자신에게 주는 이런 과도한 기대감이 실감 나지 않았다. 당연하다. 지구에서는 이렇지 않았기에. 지구에서 들은 말은 모든 사람이 그렇듯 긍정적인 말보다 부정적인 것이 많았다.

물론 자신의 천성이라고도 생각했지만, 천성이라고 생각하기엔 너무 억울했다.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됐다. 이미 못생기게 박제돼 버린 나비를 탓한들 날개 한쪽 움찔하랴.

점점 땅이 크게 진동한다. 저 멀리서 점처럼 에퍼리와 가테스가 날아다니는 게 보인다. 눈으로는 따라갈 수도 없다.

에퍼리, 아니 주환영은 대체 지구에서 자신의 약함을 얼마나 탓했기에 저렇게 강해졌을까. 저런 것에 빨리 적응하는 걸 보면 역시 씹덕이 맞았다. 자신은, 특별함을 원했지만 막상 주어진 특별함에 적응하지도 못하고 물 위 돼지기름처럼 한없이 떠다니는데.

"…성녀?"

그녀는 무아지경으로 걸었고, 어느새 아주 커다란 괴물들을 바라보게 되었다. 가테스와 에퍼리는 놀란 얼굴을 했다. 가테스의 몸은 아주 엉망진창이 되어 있었다.

모르긴 몰라도 에퍼리는 두 괴수를 가로막으려고 하는 듯했고, 몸은 깔끔했다. 그러니까, 저 괴수들은 가테스만을 노리고 있는 것이다.

이해가 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건 익숙한 감정이었다. 지구에서는 이해가 안 되는 상황이 더 많았으니까. 이 세계에서는 사람들을 캐릭터로 보다 보니 이해가 되는 게 많았지만.

그렇다면 지금은 지구의 정연서처럼 살아야 했다. 그녀는 작게 되뇌었다. 지구에서 살았던, 정연서의 좌우명을.

"꼴리는 대로 하자."

한 번도 그 좌우명에 떳떳한 적 없었지만, 이 세계라면 조금 다를 수도 있겠다.

가테스는 사실상 거의 빈사 상태였다. 리바이어던과 베히모스는 얄밉게도 자신들에게 쏟아지는 공격을 급소만을 빗나가게 하며 가테스를 집중적으로 공격했다. 대체 왜 이렇게 가테스를 몰이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차라리 죽이게 놔둘까. 난 그런 생각을 했다. 사실, 중후반부에 가테스는 한 번 죽는다. 다른 정적에 의하여.

그렇지만 성녀가 그 가테스를 살린다. 정제된 신성력을 쏟아부어서 살린다고 했지. 지금의 마리나가 좀 이상한 년이기는 하지만, 나중에 설득하면 되리라. 그렇게 생각했다. 난 최악을 일단 상정하기로 했다.

하지만 또 다른 최악이 기다리고 있음은 몰랐다.

저 멀리 떼어 놓은 마리나가 어느새 다시 다가온 것이다.

"야이, 미친년아! 여기가 어디라고 또 와!"

난 욕을 즐겨하는 사람이 아닌데, 무의식적으로 욕이 나왔다. 마리나는 얼굴을 찌푸렸다.

가테스는 마리나가 온 줄 알았지만, 피하는 방향을 자기가 정할 수는 없었다. 그저 몰리고 몰렸고, 우연찮게도 마리나가 있는 쪽으로 계속 몰리고 있었다. 거대한 괴수들에게 밀리는 가테스. 조금이라도 가까워진다면 신체 능력은 일반인에 불과한 성녀는 그 여파에 죽을 게 분명했다.

"성녀, 피해라!"

가테스는 소리 질렀다. 하지만 마리나는 피하지 않았다. 난 일단 리바이어던과 베히모스를 베는 걸 멈추고 마리나에게 달려 나갔다.

그와 동시에 마리나도 달려 나왔다. 하얀빛을 뿜으며.

"야, 그거 소용없다니까?"

여기 있는 건 신성력을 두른 괴수들이다. 하지만 상황은 내 예상과는 달리 진행됐다. 그녀가 올가미처럼 뿜어낸 신성력이 리바이어던과 베히모스의 발목을 묶어 버린 것이다.

자세히 보니, 신성력에 있으면 안 될 검은 마나가 흐르고 있었다.

그녀는 마치 그걸 줄다리기하듯 당겼다. 거대한 괴수들이 연약한 소녀에게 당겨지는 이상한 광경이었다.

"이런 미친!"

나는 마리나가 무엇을 생각하는지 즉각 깨닫고 마리나를 구하러 달려 나갔다. 리바이어던과 베히모스의 앞발이 마리나의 가슴으로 짓쳐 가고 있었다. 마리나의 의지에 의해.

내가 막을 새도 없이, 가테스가 막을 새도 없이. 베히모스와 리바이어던의 발이 마리나의 가슴을 꿰뚫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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