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맨스판타지로 떨어진 S급 헌터-75화 (75/150)

75화 소생 (1)

- 작가님, 오늘 마감은요?

- (네가 하면 되지 않을까 하는 수달 이모티콘)

정연서는 휴대폰을 침대에 던졌다. 그녀는 불성실한 로맨스 판타지 작가였다. 세 번의 삶에 이미 그녀는 진저리가 나 버렸다. 대체 무엇이 이런 삶의 굴레에 그녀를 집어넣어 둔 것인가?

그녀는 알 수 없었다. 그녀에겐 부모도 없었다.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가짜 부모에게 줄 정이 남아 있지 않았으니까.

- 네 이름은 정희란다. 넌 근데 왜 말을 안 하니?

- 지랄하지 마. 내 이름은 연서야.

처음 교육 시설에서 꾹 입을 닫다가 참지 못하고 내뱉은 말이다. 바로 정연서는 징벌방에 들어갔었다. 나이 스물을 넘고 징벌방에서 손을 들고 서 있었지. 정연서는 그냥 받아들였다. 인생이란 게 이제 그녀에겐 무상했다.

죽을 생각도 없다. 그냥, 어차피 죽어도 또 다른 세계로 떨어질 테니까. 아프기만 한 짓을 굳이 왜 해. 대체 왜 자신에게 이런 시련이 생겼는지 모를 일이었다.

"아, 아, 아."

그녀는 침대에 대자로 누워서 목청을 가다듬었다. 목소리는 아직 살아 있었다. 신기하네. 근 20년간 소리를 낸 게 손에 꼽힐 만한데도 목소리는 살아 있다.

지겹다. 저번 생도 20년 가까이 살았는데, 이번 인생도 20년을 넘게 살았다. 저번에도 20년 넘게 살았으니 자신은 60대인 건가. 그냥, 모르겠다.

누군가 자신에게 삶과 죽음에 대해 물어본다면 정말 간단히 대답해 줄 수 있었다. 둘 다 엿 같다고.

"진짜 개쓰레기 같은 인생."

그녀는 이번 생에는 완전히 히키코모리로 살고 있었다. 아는 사람도 없었다. 편집자와는 글만 주고받는 사이다.

그렇다고 굶어 죽는 건 너무 허름했기에 소설가가 됐다. 뜻밖에 글 쓰는 재주가 있었는지, 그녀가 쓴 로맨스 판타지 소설은 꽤 잘 팔렸다.

- 네가 뭔데 귀족의 예의를 성녀한테 따지지? 성녀는 평민일 수도 있고 귀족일 수도 있다. 이건 상식 아니야?

아, 아이리 공녀. 이건 멋있었지. 미안하지만 이 대사는 자신이 가져가야 했다. 웹 소설은 주인공이 돋보여야 하는 것이니까.

그나저나 이름도 기억 안 나는 백작 영애가 시비 걸었었지. 아, 그냥 아이리 공녀로 하자. 원래 빌런은 강해야 하니까.

- 원고원고원고원고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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