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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스판타지로 떨어진 S급 헌터-100화 (100/150)

99화 S급 지휘관 (2)

1군단 예하 1사단, 3사단, 8사단장은 군단장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몰랐다. 군단장은 회의에는 전혀 참석하지 않았고, 아예 군단장실에서 나오지도 않았다. 군단장은 그저 전황 보고를 서면으로 받았고, 하달 지시만 내렸다.

"군단장님은 뭐 하시는 거지?"

"설마 자신이 없으신 것 아닐까?"

"그래도 소드 마스터잖아. 무위는 확실하다고. 그건 우리 사단장님이 보셨다고 했어."

"이봐, 낭인들 중에서도 강자는 많다고. 소드 마스터라고 꼭 지휘 일에 능숙한 건 아니야."

병사들에게도 이런 소리가 돌 정도로 에퍼리 군단장에 대한 의심은 커져 가고 있었다. 하지만 군단장의 직접적인 지시를 받는 사단장들은 꽤 놀라고 있었다.

지휘관 회의에서도 군단장은 빠져 있었다. 말도 안 되는 일이었지만, 사단장들은 군단장의 서면 지시 하달에 끄덕였다. 적어도 병법의 근거나 작전 계획에 충실한 명령들이었기 때문이다.

"에퍼리 후작이 이런 작전 계획에도 통달했었나?"

"모르겠군. 왜 바깥에 안 나오는지는 몰라도, 군단장 몫은 잘해 주고 있는 것 같네."

"확실히 단순한 사람은 아니야. 어쩌면 골방에서 계속 전략 연구를 해야 나오는 타입일 수도 있지."

"그래, 하관은 상관에게 맞춰 가야 하니까. 상관이 저런 타입이라도 일만 잘하면 됐지, 뭐."

사단장들은 그렇게 만족하고 있었다. 적어도 이 정도 기본이 있는 사람이라면 군을 전멸할 때까지 놔두진 않을 거라고.

그렇게 사단장들한테 칭찬을 받고 있는 군단장이 있어야 할 군단장실에서는, 백금색의 머리를 짧게 친 여자가 몸에 맞지도 않는 큰 군단장복을 입고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있었다.

"이건 이쪽 지대 작전 계획이고. 아, 전에 다 본 거구나. 그렇다면 보급 작전 계획은……."

군단장실의 책상은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고, 노트에는 펜으로 빽빽하게 필기들이 작성되어 있었다. 다시 책 하나를 집어 들고 군단장 집무 책상에 앉은 그녀는 분석을 하다가 큰 모자가 흘러내려 짜증을 냈다.

"아잇, 흡……."

큰 소리를 낼 뻔한 칸나가 입을 막았다. 지금 군단장실에 자신이 있는 건 극비였다. 군단장실에 화장실도 있고 침실도 있어 생활하는 데는 문제가 없었지만, 지금 소령 따위가 군단을 지휘하고 있다고 하면 아주 전 부대가 난리가 날 것이다.

당연히, 에퍼리가 지시한 일이었지만.

"…에퍼리, 언제 오는 거야."

칸나는 밖에 들릴 새라 작게 투덜거리고 다시 두꺼운 작전계획 책을 폈다.

투명 망토는 참 편리한 도구다. 아마 마탑이 대량 개발에 성공해서, 모든 병사에게 이걸 씌워 줄 수 있다면 제국이 전 세계를 통일하는 것도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리라.

지금 이렇게, 제논 왕국 군영 한가운데 서 있는 게 바로 그 증거이니. 나는 조용히 제논 왕국의 병사들을 탐색했다.

"며칠 뒤면 또 돌진 명령을 박으시겠지."

"아마 병법에는 문외한이신 게 아닐까?"

"뭐, 무위는 확실하다고 하니까……."

병사들은 중얼거리며 배식 받은 식량을 챙겨 먹고 있다. 점심시간. 일단 난 여기서 한 가지를 확인했다. 줄을 서서 받는 병사들과 통 안에 있는 식량들, 여유롭다. 군수품의 문제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뭐가 문제일까. 나는 조심히 아무도 올 것 같지 않은 임시 창고 뒤에서 눈을 감았다. 어딘가, 어딘가를 찾아야 한다. 환영 살인마라는 내 통합 스킬에 포함된 초감각이 열일 하고 있다.

- 언제쯤 내보내 주는 거야?

- 삼 일?

찾았다.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있다. 난 조심히 내 감각이 이끄는 곳으로 찾아갔다. 그곳은 바로 병영 내 군법 위반자를 가두는 병영 감옥.

여기만큼 노골적으로 진영에 대한 여론이 오가는 곳도 없으니. 난 조용히 감옥 옆에서 몸을 숨기고 그들의 말을 들었다.

"하, 그냥 후임 하나 팼다고 뭔 일주일이나 영창에 가두시나. 나 진짜 이해할 수가 없다니까."

"야, 세상이 많이 변했잖냐. 대장군님이 선진 병영 하신다는데."

"하여튼 그 낙하산은 뭐가 잘나서……."

"잘나긴 했지. 그 사람 싸움하는 거 봤어? 완전히 초능력을 쓰는 것 같던데. 난 흑마술이라도 쓰는 줄 알았어."

"나야 갇혀 있으니 뭘 아나. 하여튼, 나 때는 절대 이러지 않았는데."

수감자와 감독관은 동기인 듯 서로 말을 주고받았다. 하나 확인. 군벌을 남용하고 있지도 않다는 것.

난 다시 움직였다. 병영을 돌아보면서 난 많은 걸 확인했다. 군사 시설이 별로인가? 병사들의 대우가 별로인가? 장교와 부사관, 병사들과의 반목이 심한가? 모두 확인해 봤지만 걸리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렇다면 확실히 말할 수 있다. 이건, 지휘관 문제라고. 그렇지만 여기 지휘관은 최소 소드 마스터 되는 양반일 터. 난 조용히 움직여야 했다.

지휘관 집무실은 찾기 쉬웠다. 바로 군영 중앙에 제논 왕국의 깃발이 크게 펄럭이는 천막이었으니까. 난 마치 지하철에 부정 승차 하듯 천막 안으로 들어가는 간부에게 붙되 터치는 하지 않는 신기를 발휘했다.

"네. 필승. 사미르 중장 나와 있습니다."

공교롭게도 마법 구슬로 지휘관 회의를 할 때 들어와 버렸다. 가뜩이나 조용한 곳에서 난 이리저리 움직이는 간부와 병사들을 피해 두 손을 올리거나, 쭈그리거나, 소리 없이 구르거나를 반복했다.

"…군단장 뒤에서 뭔가 먼지가 인 것 같은데."

"…예?"

헙. 오다 보니까 아예 사미르 중장 뒤에까지 있게 되어 버렸다. 난 사미르 중장이라는 지휘관 의자 밑에서 숨을 참고 기다렸다.

"…구슬이 군용이라 오래돼서, 아마 장비 문제인 것 같습니다."

"좀 고치세요."

구슬에서는 장군보다는 훨씬 젊은 목소리가 났다. 근데, 어디서 들어 본 것 같은데. 그래, 마리나의 말대로라면 대장군 중 한 명이 지구 사람일 수도 있다고 했지.

"대장군님, 그래서 이쪽 전방 부대로 오고 계십니까?"

"지금 가고 있잖아요. 곧 도착합니다. 구슬 뒤로 모래바람 휘날리는 거 안 보입니까?"

"…보입니다."

난 조심스레 일어났다. 그 구슬을 난 봐야 했다. 지금은 아마 대장군이라는 사람이 있겠지.

난 보자마자 침을 삼켰다. 내가 잘 아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왕공학, 중국의 S급 헌터였다. 뭐, 가끔 가다 국가 교류로 만난 적이 있는 정도다. 개인적으로 많이 연락을 나눈 적은 없고.

그때, 구슬 안에서 왕공학이 내가 있는 쪽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분명 그는 나와 눈을 마주쳤다. 어째서 그럴 수가 있을까. 난 혹시나 해서 가만히 있어 봤다.

구슬 안에서 왕공학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사미르 중장."

"예?"

"머리 숙이세요."

그와 동시에 엄청난 기가 군영 바깥에서 몰아치는 느낌이 들었다. 나 또한 살기를 느껴 고개를 숙였다. 곧 내가 서 있는 곳으로 거대한 기를 담은 화살이 날아와서 천막을 완전히 날려 버렸다.

어떻게 알았을까? 그건 중요하지 않다. 난 일단 군영 바깥으로 빠져나갔다. 조금 빠르게 움직이는 관계로 투명 망토가 펄럭여 내 모습이 좀 드러나 병사들이 혼비백산했다.

"귀, 귀신이다!"

"뭔 귀신, 인마?"

난 병사들을 놔두고 군영 바깥으로 나갔다. 저 멀리서 황색 갈기의 날개 달린 말이 날아오고 있었다. 왜냐하면, 내가 화살이 날아온 쪽으로 왔기 때문에.

그가 날 본 건 우연이 아니었다. 그는 여전히 투명 망토로 몸을 가리고 있는 내 앞에 말을 세웠다.

"오만하구나. 내 궁술을 보고서도 앞에 나설 생각을 하다니."

왕공학은 말에서 내렸다. 내가 조용히 있자 왕공학이 내 쪽으로 바로 화살을 속사로 세 발 날렸다. 난 그것들을 모두 쳐 냈다.

"호오, 한 수가 있는 놈이군."

왕공학은 뒷목을 돌리며 웃었다. 저 오만한 얼굴에, 인중 옆 왕 점은 언제 봐도 도려내고 싶다. 난 확실히 알았다. 그는 투명 망토를 눈치챌 수 있지만 내 존재를 눈치챈 건 아니었다.

그는 내가 말을 걸기도 전에 순식간에 30발의 화살을 쏘아 냈다. 화살의 30발은 모두 정면에서 날아오는 것도 아니었다. 몇 개는 곡사, 몇 개는 직사였고, 각자가 담은 기도 달랐다.

확실히, 지구에서 신궁(神弓) 타이틀을 달고 있는 헌터가 맞았다. 하지만 난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고 전부 쳐 냈다.

그제야 왕공학의 얼굴이 살짝 변했다.

"너는 누구냐?"

"오랜만이네, 왕 헌터님."

나는 투명 망토를 벗었다. 왕공학의 눈은 심하게 흔들렸다.

"…주환영 헌터, 인가?"

"예. 마지막으로 한-중 헌터 친목도모회에서 한 번 봤던 것 같은데."

끄득이라는 소리가 내게 들릴 정도로 왕공학이 이를 강하게 갈았다. 그가 나에게 보내는 건, 완벽한 적대감이었다. 그는 바로 하늘로 솟구쳐 오르더니 내게 화살을 비처럼 쏟아 내었다.

공격에 기다림은 없었다. 마나로 되어 있는 화살은 뱀처럼 휘어져서 들어오고, 땅에 닿자마자 커다란 폭발성을 내었다. 화살촉 끝에 기를 단단히 압축해 놨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것들을 맞받아치지 않고 뒤로 휙 물러났다.

"왕 헌터, 오랜만인데 갑자기 이러는 이유가 뭘까?"

"몰라서 묻느냐, 지구의 공적아."

"뭔 개소리야? 친하지도 않은데 친한 척 인사했더니만, 뒈질라고."

나는 곧바로 그의 앞에 다가갔다. 그의 흔들리는 동공이 내 눈앞에 정확히 보였다.

"그때 친목 도모회에서 화살 한 발 안 날리게 해 주고 개 털어서 그런 거냐?"

백천이 사선으로 그를 그어 간다. 물론 죽이려는 목적은 아니다. 그에게는 들을 말이 많았으니까. 지구에서의 일들이라든지.

허나, 그는 활대로 내 검을 막고 뒤로 물러났다. 난 눈을 살짝 가늘게 떴다. 이 정도의 공격이면, 왕공학 정도는 충분히 제압해야 하는데.

지금 나는 지구에서의 S급 헌터일 때보다 훨씬 강해진 상태니까. 노을이들의 신성력도 먹었고, 다른 스킬들도 많고.

"왕 헌터, 약 먹었나?"

"난 강해졌다. 이 제논 왕국에 와서 강해졌지. 지금 나는, 네가 그 이상한 망토를 써도 어디 있는지 보인다."

"어떻게? 나도 안 보이는 걸 당신이 어떻게 보지?"

"사람이 서 있으면 대기가 당연히 몸이 있는 곳에서 저항을 받기 마련이지. 난 그 흐름을 보는 거다. 잊고 있었나, 내 특기는 안력이라는 걸."

맞긴 맞네. 그는 궁사여서 원래 나보다 눈은 더 좋았을 거다. 그래도 감각은 따라올 수 없을 텐데.

"그나저나, 묻지 마 화살은 그만하시고. 나도 좀 물어봅시다. 지구의 공적이라는 건 또 무슨 얘기인지 좀 들어 보게."

"…하, 자네는 모를 수도 있겠지."

왕공학은 비웃었다. 그 진심 어린 경멸이 나를 살짝 화나게 했지만, 일단 참았다.

"자네가 못 막은 SS급 마수, 리바이어던이 결국 자네를 먹고 더 강해져 SSS급 마수가 되었다. 지구에 있는 헌터들이 결국 리바이어던을 못 막고 망하고 말았지."

"…뭐?"

허무맹랑한 소리. 말도 안 되는 소리. 난 그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지구가 망했다고?

"지구가 망했다고?"

"그래. 왜, 믿기 힘드나?"

"…그래서 내가 공적이 된 거냐? 참 편의주의적인 공적이네."

왕공학은 고개를 저었다.

"물론 리바이어던이 지구를 단번에 멸망시킨 건 아니지. 그동안 지구에서도 많은 연구가 있었다. 연구진이 연구한 것 중 하나는, 왜 뜬금없이 대한민국에 SS급 마수가 나왔냐는 말이었어. 결론은 간단하지. 자네도 알지 않은가? 던전을 처리하지 않으면 던전이 커지고 더 상등급의 마수를 부른다는 것을."

"그래서?"

"결국 지목된 것이 한국 S급 헌터들의 연예인화였지. 막상 의무인 던전 레이드는 안 하고 유명세에만 붙어서 국고나 낭비하는 존재들. 물론 다 그런 건 아니었지. 기록을 다 따져 보니 자네만큼 실적이 없는 S급 헌터는 없었어. 심지어 세계 1위까지 할 수 있는 실력인데도, 레이드가 2115년부터 2118년까지 단 한 건도 없으니 전 세계인들은 분노했어."

왕공학은 내게 손가락을 겨눴다.

"결국, 너를 포함한 S급 헌터들의 방만함이 지구의 멸망을 부른 거다."

그 손가락질은, 어떤 화살보다 내게 날카롭게 박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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