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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스판타지로 떨어진 S급 헌터-101화 (101/150)

100화 S급 지휘관 (3)

나는 가슴을 문질렀다. 이것 봐라. 왕공학이 내게 한 공격 중에는 가장 유효했다. 왕공학은 많은 말을 내뱉고 여전히 내게 눈빛으로 증오를 보내고 있었다.

"트라프비체 제국의 에퍼리 후작이라는 사람이 바로 너겠지? 지구를 멸망시킨 것도 모자랐나?"

왕공학은 계속 나를 몰아붙였다.

"할 말이라도 있나, 지구 멸망의 주적아?"

"할 말?"

나는 침을 뱉었다. 왕공학에게 개인적인 감정은 없다. 아니, 이제 개인적인 감정이 생겼다.

"진짜 지구는 여전하구나. 잘 망했다, 개새끼들아."

왕공학에게 검파를 날린다. 내가 진심으로 붙을 생각을 하니 왕공학은 표정을 굳히고 내게 거리를 뒀다. 궁사가 내게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지만, 그걸 허용해 줄 생각은 없다.

왕공학은 당황한 얼굴을 하다가 내가 근접하자 얼굴을 바꿨다. 왕공학의 싸늘한 말이 내 귓전에 들렸다.

"나도 여기서 얻은 게 많다."

그의 빈 활에서 마나의 화살들이 거미줄처럼 퍼져 나온다. 순식간에 내 퇴로들이 막혔다. 왕공학은 웃었지만 난 쓴웃음을 지었다.

난 몸을 돌려서 모든 가둬져 오는 실들을 쳐 냈지만, 몇 개의 실이 내 팔과 다리들을 그었다. 피가 검은색으로 난다. 내가 거리를 두자 왕공학은 비웃었다.

"넌 예전부터 거만했지. 세계 1위라는 실력을 태생부터 타고났으니."

왕공학의 말에 내 가슴이 좀 답답해졌다. 난 진심으로 얘를 잘 모른다. 그냥 국가 교류에서 잠깐 얼굴만 스친 정도고, S급 헌터니까 악수 몇 번 해 본 정도다.

근데 얘는 왜 이렇게 날 잘 아는 것처럼 대할까. 난 그 이유를 잘 알고 있었다.

"그, 거만했다는 얘기는 내가 지구 공적이라는 연구에서 파생된 탐사 보도에서 나온 얘기냐?"

"지구에서는 네가 쓰레기 같은 놈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이 없다."

왕공학은 그러면서 어떤 장비를 꺼내 들었다. 무슨 무선 알림 장치 같았다.

"주환영을 찾았다."

"얼씨구, 누구한테 고자질도 하고."

"지구에서 많은 사람이 여기로 떨어졌고, 너를 찾으려고 눈에 불을 켠 사람이 많다."

"다 오라고 해."

"곧 올 거다."

왕공학의 비웃음이 점점 더 커진다. 그에게서 순수한 악의가 느껴진다. 정말, 지구에서 나는 얼마나 쓰레기가 된 건지 모르겠다.

"어때, 좀 아프지 않나? 여기서 배운 마법이지. 스킬이라고 하더군."

"뭔 스킬인데?"

"알려 줄 이유라도 있나?"

확실히 알려 줄 이유는 없지. 그리고 피부가 따갑다. 이 정도로 아픈 건 아이리를 구하면서 손모가지 날렸을 때 이후로 처음인 것 같은데.

"없지. 근데, 대충 알 것 같다."

내 피부에서 타는 검은 피를 백천에 떨어뜨렸더니 푸시식 하면서 타는 소리를 냈다. 난 곧바로 신성력을 몸 안에서 끌어 올렸다. 바로 피부에 긁힌 자상이 굳더니 딱지가 앉았다.

"검은 무리랑은 무슨 관계냐?"

"뭐?"

"흑마법 아니냐?"

신성력으로 태워지는 꼴을 보아하니 흑마법이 확실했지만, 왕공학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는 눈치였다. 모르면 됐고.

왕공학은 내게 공격을 계속했고, 난 계속 뒤로 물러나며 기다렸다. 왕공학은 아까의 공격이 내게 타격이라도 입힌 것처럼 굴었다.

"역시, 아까의 공격이 조금 먹혔나 보군?"

"마음대로 생각해."

난 기다리고 있는 게 있으니까. 얼마 지나지 않아 땅이 울리는 게 느껴졌다. 왕공학도 슬슬 거리를 벌렸다. 곧 왕공학 쪽으로 먼지를 날리며 빠르게 수많은 사람이 모여들었다. 대다수가 S급 헌터들이었다.

"정말 주환영이군."

많은 S급 헌터가 나를 노려본다. 프랑스의 S급 헌터, 러시아의 S급 헌터, 미국의 S급 헌터, 일본의 S급 헌터 등 전 세계의 S급 헌터들이 모여 있다.

"지구를 말아먹고 여기서 뻔뻔히 살고 있었군."

"더러운 새끼."

"저 좆만이 자식은 처음부터 마음에 안 들었지."

모두가 나를 손보려고 노려본다. 전 세계 S급 헌터들의 얼굴은 대략 알고 있었다. 아마 내가 모르는 얼굴들은 A급 헌터 이하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은 너무 많았다.

내 시야 구석까지 사람이 꽉 차고 있었으니까. 그래, 인정한다, 잠시 이성을 잃었다는 걸. 나는 그냥 흔들리지 않고 냉정하게 판단했어야 하는데.

"이제 알았나, 주환영이라는 사람을 얼마나 많이 증오하는지."

왕공학이 비웃었다. 다른 사람들의 눈이 내게 따라붙는다. 그래, 이런 눈빛이다. 난 이런 눈빛을 너무 많이 받았다, 철이 없을 때부터. S급 헌터라는 등급을 받자마자 그랬으니까.

구공환 아저씨에게 이런 걸 상담했을 때 그 아저씨는 무신경하게 S급 헌터에게 따라붙는 훈장이라고 했지만, 난 천성이 민감한 사람이었다.

수많은 언론의 관심과 내가 조금만 말을 해도 왜곡해서 써 내기 바쁜 기사들. 그런 것들이 얼마나 낯설고 무서웠던지.

"내가 처음에 S급 헌터를 달았을 때는 말이야. 세계를 돌며 다 던전을 뺏어 먹는다고 국유재산을 뺏는다고 했지."

나는 백천을 털었다. 여기 있는 놈들 중 씹어 먹을 놈들은 왜 그렇게 많은지. 난 왕공학 옆에 있는 서양인 헌터를 가리켰다.

"크리스토프 헌터 맞지? 프랑스 S급 헌터."

내게 지적받은 크리스토프는 움찔했다.

"던전은 미래 시대의 자원이니 남의 나라 걸 뺏어 먹는 주환영 같은 헌터가 나오면 안 된다고 언론으로 공격했었잖아. 기억난다, 개새끼야."

나는 한숨을 쉬었다.

"어떤 새끼인 것까지는 기억이 안 나는데, S급 헌터가 자신의 일상 생활을 방송에 보여 주는 게 의무라고 한 새끼도 있었지. S급 헌터 같은 병기가 던전 레이드만 말없이 돌면 민간인들에게 위기의식을 심어 준다나."

내가 세계 1위가 헌터가 된 비결은 아무것도 안 하고 레이드만 뛰었기 때문이다. 그랬더니 또 그걸가지고 태클 거는 미친놈도 있었지. 물어뜯기 위한 물어뜯기. 내가 뭘 해도 꼬리를 잡을 사람이라면 차라리 내 신념대로 행동하는 게 맞았지만, 그때는 너무 어렸다.

"뭐, 잘됐다. 지구에서는 내가 뭔 말만 하면 막말이라고 지랄하는데, 여기선 그럴 것도 없잖아."

난 바로 그들에게 달려들었다. 맨 앞에 서 있는 왕공학의 목을 향해 검을 날렸다. 왕공학의 눈은 따라오고 있었지만, 몸을 움직이는 건 느렸다.

쾅!

왕공학의 목 앞에서 내 검이 가로막혔다. 바로 옆에 있는 S급 헌터들이 막아선 것이다. 그래, 얘들이 왕공학보다 랭킹은 높은 애들이었지.

순식간에 내 주위를 헌터들이 둘러싼다. 헌터들과 나의 간격은 좁았다. 사이에 고작 칼 하나가 누울 정도.

그들에게서 온갖 스킬이 뿜어져 나온다. 처음 보는 스킬들도 있었다. 그 좁은 공간 사이에서 수없이 많은 공방이 펼쳐졌다. 많은 사람들이 공격을 했지만, 충분히 막을 수 있는 정도였다. 한 차례 공방이 끝나고, 내 주위를 둘러싼 S급 헌터들은 당황했다.

"어, 어떻게 이걸 전부 막지?"

누군가의 입에서 나온 소리. 당연하다면 당연하다. 이들은 여기 세상에 떨어진 지 얼마 안 된 것으로 보이고, 스킬 활용도는 내가 훨씬 높았다. 그들과 나의 격차는 이 세계에서 더 벌어져 있다는 의미였다.

물론 그래도 위험하기는 했다. 지금 나는 방어할 수밖에 없다. 아무리 그래도 이 사람들도 S급 헌터. 내가 공격하고자 하면 틈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내가 고민하던 찰나, 저 멀리서 커다란 새들이 날아오고 있었다. 그 새들은 우리를 지나치지 않고 우리 머리 위에서 원을 그리며 맴돌았다.

"뭐야, 저 새끼들은?"

색깔도 검어서 마치 우리의 시체를 노리고 있는 것 같은 느낌. 아마 그들에겐 그렇게 느껴질 것이다. 왕공학이 그 새들에게 화살을 쐈지만, 새들은 날렵하게 피했다.

난 그때 왕공학에게 달려들었다. 여기 있는 모든 사람이 알고 있었다, 내가 공격을 하기는 힘들다는 것을. 그건 어느 정도 경지에 오른 사람이라면 모두 알고 있다.

하지만 지금은 가능하다. 주위를 둘러싼 S급 헌터들의 병장기가 내게 날아온다. 난 그걸 막을 생각보다는 피한다는 생각으로 몸을 비틀었다.

푸식!

아무리 그래도 정교한 S급 헌터들의 공격을 전부 피할 수는 없다. 내 살이 갈라지는 느낌이 났지만, 내 검로가 흔들릴 정도로 치명적인 곳은 아니다.

"크아아아아악!"

비명 소리가 울린다. 내 검이 왕공학의 오른팔을 통째로 떨어뜨렸기 때문이다.

왕공학은 분명히 안심하고 있었을 것이다. 이토록 수많은 S급 헌터가 있으니까. 하지만 내가 상대라면 적어도 긴장의 끈을 놓지는 말았어야 했다.

난 곧바로 위를 쳐다보았다. 새들이 커다란 날개를 휘두르며 내 쪽으로 돌진해 왔다.

"뭐, 뭐야?"

그들은 모두 수비 태세를 하며 막아섰다. 온 몸에 회색 마나를 두른 새들의 박치기는 위협적으로 보였으니까. 하지만 그들은 박치기를 하려고 오는 것이 아니다. 날 구하러 온 것이지.

"…안녕, 노을아."

"오랜만입니다."

짧은 인사와 함께 나는 검은 새 위에 탔다. 그래도 곱등이는 아니니까 괜찮네. 순식간에 공중으로 떠오른 우리에게 공격들이 날아왔지만, 노을이들은 날렵하게 피했다.

"여기는 어떻게 알고 왔냐?"

"금발 여자가 보냈습니다."

"리얀?"

"네."

하긴, 연가시들이 귀족으로 둔갑하고 있었지만 그들이 정국에 도움 될 리는 만무하다. 그럴 바에는 나라도 도우라고 보낸 것이겠지. 그래도 왜 말을 안 하고 보냈는지는 모르겠다.

"상처가 좀 깊으신 것 같은데, 괜찮으십니까?"

"대충. 뭐, 치료하면 낫겠지."

확실히 좀 무리해서 공격한 감이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엄청 아픈 정도는 아니다. 이 정도 상처로 왕공학한테 한 방 먹여 줬으면 남는 장사지. 또 난 신성력도 가지고 있으니까. 적당히 신성력을 사용하니 상처가 살짝 아물었다.

"어디로 가야 합니까?"

"일단 우리 부대로."

칸나는 군단장실의 문을 굳게 걸어 잠갔다. 그녀의 하루 일과는 그렇게 시작됐다. 물론 군단장실을 노크도 없이 마구잡이로 들어오는 무뢰한은 없지만, 그래도 불안했다.

문을 점검하고 칸나가 다시 작전 계획을 보려 할 때, 누군가가 군단장실의 문을 강제로 열려 하고 있었다. 그녀는 소리도 못 질렀다. 들통이 나면 안 되니까.

칸나는 머리를 한껏 굴리다가 결국 창문 옆에 있는 커튼에 몸을 돌돌 마는 수밖에 없었다. 그와 동시에 문이 억지로 열리는 소리가 났다. 칸나가 숨을 참을 때, 친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칸나, 나와. 나야."

그 목소리는 당연히 그녀가 기다리던 주인공인 에퍼리였다.

"후우."

칸나는 커튼을 다시 풀며 천천히 나왔다. 괜히 어색하게 숨은 게 살짝 창피하기도 했다.

"군단장님, 수확은 있으셨습니까?"

"응."

에퍼리는 그 말을 하면서 투명 망토를 벗었다. 칸나는 에퍼리의 꼴에 살짝 놀랐다. 그의 몸은 자상으로 상처투성이였기 때문이다.

"왜 이렇게 다치셨습니까?"

"뭐, 이건 치료하면 되고. 크게 중요한 건 아니야."

"군단장님 안위보다 중요한 건 없습니다."

"어우, 계속 존댓말하니 어색하다."

에퍼리는 살짝 웃었다. 칸나도 어색하긴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지금은 에퍼리의 상처가 우선이었다.

"…응급처치 해 드릴게요. 잠시만요."

"그것보다."

에퍼리는 손을 저었다.

"전 부대 후퇴시켜. 그리고 리얀한테 연락 한 번만 해야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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