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6화 이방인들 (4)
난 잠자리에 예민한 편이었다. 낯선 곳에서 자면 항상 꿈을 꿔야 했다. 난 꿈이 싫었다. 꿈이라는 놈은 가끔 내가 보기 싫어 머릿속에 깊이 묻어 놓은 기억들을 천진난만하게 꺼내서 보여 주기 때문이었다.
오늘 꿈에 나온 건 내가 가장 보기 싫은 기억이었다. 게이트가 열린 포항에 막 도착했을 때 본 돌아다니는 119와 가족과 친구를 잃어 울부짖는 사람들. 그들은 붉어진 눈으로 날 원망스럽게 바라보았다.
- 부른 지가 언제인데 대체 왜 이제야 오신 겁니까?
- 일단 빨리 던전에 들어가세요.
꿈이라는 건 가차 없었다. 난 그저 지켜볼 뿐이었다, 과거의 나라는 사람을.
- 와 줘도 지랄이냐, 피곤해 죽겠는데. 얼굴 한 번 안 본 사람들을 내가 구해야 돼? 왜? S급 헌터가 노예야? 난 개인적인 삶도 없냐?
내 앞에 있던 포항시장은 그렇게 얼굴이 굳었었지. 난 툴툴거리며 나갔다. 근데, 원래 그렇다. 눈앞에 없는 건 실감하기 힘드니까.
원래라면 국빈 대우를 해야 하는 S급 헌터에게 그렇게 말을 거칠게 할 정도면, 어떤 상황이었는지 내가 예측했어야 한다는 의미다.
포항 게이트에 들어갔을 때, 처음에는 너무 당황스러웠다. 음식물 쓰레기가 한데 모여 몇 달은 썩는 냄새가 났으니까. 난 인간의 썩는 냄새가 그렇게 고약한지 그때 처음 알았다.
인간과 파편이란 얼마나 안 어울리는 단어인지. 팔과 다리와 눈, 코, 입이 있어야 비로소 인간이라 할 만하다. 인간의 다리라고 한다면 온전한 신체에 붙어 있는 사람의 다리를 보통 지칭한다. 하지만 다리만 떨어져 있는 ‘그것’은 뭐라고 지칭해야 할까. 그것도 인간의 다리인가?
헌터는 적응하기 위해 30번은 토해야 된다는 말이 있다. 시체의 부패한 냄새, 누런 단백질의 단면, 풀려서 흐느적거리는 장기들, 마수들의 시체. 그리고 아이템을 목적으로 같은 파티원을 등쳐 먹으려는 파티원. 토할 여지는 많았다.
하지만 난 헌터 생활 1년간 한 번도 토했던 적이 없다. 왜? 축복받은 S급 헌터라서. 근데, 난 포항 게이트에서 처음 토했다.
* * *
“칸나.”
난 칸나를 불렀다. 헛된 사실이라는 건 알고 있다. 이 여자는 칸나가 아니니까. 심안에서는 그걸 명확하게 보여 주고 있다.
「이름: -
나이: -
호감도: -
가장 사랑하는 사람: -
키워드: -」
심안의 창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녀는 지금 여기 실재하지 않았다. 그때부터였지, 내가 여관에서 나신의 사람들을 확인했을 때 잠깐. 내가 불안감을 느껴 칸나를 바라봤을 때부터 그녀의 심안 창은 계속 이 상태였다.
나는 그녀를 꽉 끌어안았었다. 난 그때 확신했다, 이 도시에서 행동하는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이 나도 모르는 방법으로 감시되고 있다는 것을. 안 그러면 칸나를 이렇게 빼 갈 수는 없었다.
그때 난 엄청난 절망감을 느꼈다. 바로 옆의 사람도 못 지키다니. 나는 이렇게 무능한 사람이었다. 내가 잊고 있었다. 여기서 너무 수월했던 것뿐.
하지만 그 절망감을 숨기고 칸나에게 속은 척을 했다. 그리고 도시를 최대한 구석구석 돌아다녔다. 나만 알 수 있는 표식을 박아 놓으려고. 내가 그들을 알아차리지 못했다는 건, 그들 역시 내가 가진 기를 알아차리지 못한단 뜻이었으니. 나는 신성력과 마나가 합쳐진 특이한 마나를 가지고 있으니까.
“칸나, 미안해.”
나는 그녀의 단검을 쉽게 부러뜨리고 수도를 세워 심장을 찔렀다. 칸나의 눈에서 순식간에 빛이 돌아왔다.
“에, 에퍼리… 어째서?”
칸나는 피를 뚝뚝 떨어뜨리며 나를 바라보았다. 난 그녀의 얼굴을 붙잡았다. 난 칸나의 얼굴을 잡아 본 적이 있다. 확신한다. 칸나의 얼굴은 이런 질감이 아니었다.
“지금 다 듣고 있으면 들어.”
내가 말했다.
“이 도시에 있는 새끼들, 한 명도 살아서 못 나간다.”
칸나는 내게 푹 쓰러졌다. 난 그녀의 흐트러진 금발을 계속 바라보았다. 곧, 그녀가 일어났다. 심장이 뚫려 있는 상태로 일어난 그녀는 뭔가 그로테스크했다.
“안 속았네요?”
칸나는 입이 찢어지게 웃었다. 경박한 웃음이었다. 그녀의 따뜻한 미소와는 확실히 달랐다. 생긋 웃는 미소. 난 지금 칸나가 보고 싶었다.
“우리는 도망갈 생각도 없어. 너와 진솔한 얘기를 나누고 싶지.”
그때, 칸나의 팔다리가 탈구되기 시작했다. 큰 뼈부터 작은 뼈까지. 나를 위한 마지막 쇼였다. 칸나는 비명을 지르며 모든 뼈가 부러져 서있는 자리에서 그대로 주저앉은 것처럼 형체가 무너지고 말았다.
연기가 끝났지만 박수를 치기에도 하찮은 쇼였다.
“죽여 달라고 발악을 해라.”
나는 곧바로 옷가지를 챙겨 입고 나갔다. 바로 여관의 옆방으로 갔다. 나신인 사람들은 없었다. 여관엔 아무도 없었다.
도로로 나가니 길거리에는 아무도 없었다. 모두 사라졌다. 도시의 건물, 구조 모두 똑같았지만 사람들만 모두 사라졌다. 대신 안개가 가득했다. 내 마나로도 뚫어 볼 수 없는 안개다.
이건, 처음 느끼는 마나였다. 하지만 어딘가 익숙했다. 그 근원은 안개를 헤치다 보면 분명히 나오리라.
“어디 있냐. 다 나와라.”
난 도시의 외곽 포인트마다에 내 마나를 심어 놓고 경계 알람을 붙여 놓았다. 한 명이라도 넘어가면 내가 추살(追殺)할 수 있도록.
“그렇게 너무 무섭게 말씀 안 하셔도 됩니다, 주환영 씨.”
안개 속에서 누군가가 나타났다. 난 바로 튀어 나가 안개와 동시에 그의 팔을 베어 버렸다. 그의 팔은 툭 떨어졌지만 피가 나오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피가 고여 있었다.
“괜찮습니까? 칸나 카라모프가 저희에게 있는 건 알고 있지 않습니까?”
“그걸 알고 있기 때문에 목이 아니라 팔을 날린 거라고 생각해.”
“소문만큼 위험한 분이시군요.”
그는 자기가 있는 쪽의 안개를 걷었다. 그는 중절모를 쓰고 있었다. 뭔가 기괴하게도 팔을 잘랐는데도 고통이 전혀 없다는 표정이었다. 아무리 고통을 잘 참는다고 해도, 적어도 참는 표정과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표정은 다르다. 이 사람은, 고통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그만큼 가치가 있는 분이죠. 어떠십니까, 저희랑 얘기해 보는 건?”
나는 그를 노려보았다. 안개가 동시에 확 걷혔다. 내 주변을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둘러싸고 있었다.
“협박이냐?”
“전혀요. 저희는 당신을 죽일 힘이 없습니다. 물론 제논 왕국에 있는 이방인들에게 들은 얘기대로라면요. 하지만 제가 지금 보니 듣던 것보다 오히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을 것 같군요.”
“너희가 누군데?”
나는 눈을 가늘게 떴다. 중절모를 쓴 그는 가볍게 웃었다.
“악명이 높아서 말씀드리기 부담스럽습니다. 안녕하십니까. 검은 무리의 수장, 알레프라고 합니다.”
그와 함께 내가 자른 알레프의 단면에서 팔이 돋아났다, 마치 아이의 팔이 어른의 팔로 자라는 것처럼. 그러나 아주 빠르게.
뭘 꾸미고 있는 건지 당최 모르겠다. 순간 땅과 하늘이 검어졌다. 건물들의 색깔들조차. 새로운 세계에 한 번에 떨어진 느낌이다. 그리고 익숙했던 기운이 더 강해졌다.
바로 난 이들 마나의 근원을 알아챘다. 뭐, 검은 무리라는 말을 들었을 때부터 예상한 거지만.
이들 마나의 근원은 검은 나무였다. 그들도 나와 비슷했던 거다. 검은 나무의 마나와 특이한 마나가 섞여 새로운 마나를 만들어 낸 것이다.
“따라오시죠. 칸나 카라모프가 있는 곳으로 데려다드리죠.”
그가 등을 돌렸다. 난 그를 따라갔다. 검은 여전히 그를 겨눈 채로.
검은 세상. 건물이 통째로 검어서 어디까지가 건물이고 어디까지가 길인지도 가늠할 수밖에 없었다. 여기는 아예 내 감각조차 통제하는 것 같았다. 난 그저 그의 뒤를 따를 뿐이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그렇게 강한 사람들이 아니니까요. 아, 사람이라고 하기도 뭐하지만.”
알레프는 내게 계속 말을 걸었다, 뒤돌아보지는 않았지만. 그는 계속 걷다가, 무슨 기준인지는 모르겠지만 왼쪽으로 꺾다가 오른쪽으로 꺾다가를 반복했다. 그는 그러고 멈췄다. 알레프가 걸음을 떼고 처음으로 날 돌아본 순간이었다.
“너무 이상하게 생각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이런 말이 의미 없다는 건 알지만.”
곧 땅이 열렸다. 촉수와 이빨로 가득한 괴수의 입이 아래에서 쩍 벌어지고 있었다. 나같이 경력 있는 헌터도 눈살이 찌푸려질 정도로 혐오스러운 비주얼이었다.
“들어갑시다.”
곧 땅의 표면이 사라지고, 그들이 괴수의 입속으로 들어갔다. 진짜 괴수의 입이어도 상관없다. 위산이 나온다 싶으면 찢고 나오면 되니까. 단지 나는 지금 칸나를 먼저 찾아야 했다.
괴수의 입으로 들어가니 꽤 멀쩡한 홀이 나왔다. 알레프는 거기서 중절모를 벗고 벽의 고리에 걸었다. 그리고 등을 돌려 내게 정중하게 인사했다.
“이곳이 검은 무리의 거처입니다. 여기는 그렇게 역겹지는 않으실 겁니다.”
“역겨운 건 알고 있나 보지?”
“뭐 차차 설명할 부분이지만, 저희는 역겨운 걸 창조한다기보다 인간에게 역겨워 보이는 것만 창조하게끔 되어 있습니다.”
알레프는 후후, 웃었다.
“여신의 미움을 받았으니까요. 뭐, 지금 들어도 잘 모르실 겁니다. 일단 중요한 게 그건 아니니까요.”
“그렇지.”
그는 바로 나를 오른쪽으로 인도했다. 거대한 식탁이 있는 홀이었다. 그곳 식탁에는 역시 흉한 음식이 있었다. 질퍽한 갈색에 묻혀 있는 말라비틀어진 오징어 다리. 그리고 그 식탁 앞에 칸나가 멍하니 앉아 있었다.
심안의 창으로 봤을 때 그녀는 칸나가 맞았다. 난 칸나에게 다가갔다. 칸나는 오도카니 앉아 있었다.
“죄송합니다. 제가 말씀드렸다시피, 여기는 인간에게 해가 되는 공간이라서. 잠시 의식을 끊어 놨습니다.”
“다시 돌려놔.”
“네.”
마나의 흐름이 보였다. 칸나는 조용히 눈을 깜빡였다. 난 그녀의 얼굴을 잡았다. 역시, 그녀의 얼굴이었다. 그녀는 눈을 깜빡거리더니 흠칫 놀랐다.
“…에퍼리?”
“응. 나야.”
나는 칸나를 꽉 끌어안았다. 칸나는 몸을 살짝 버둥거렸지만, 이내 잠잠해졌다.
“널 누가 건드리지는 않았지?”
“응… 뭐, 그렇겠지? 사실 기억이 없는데.”
나는 알레프를 휙 노려보았다. 알레프는 허허 웃었다. 그는 냄새가 나는 캠코더를 내게 건넸다.
“여기 칸나분을 모셔 오고 녹화한 영상들입니다.”
나는 그걸 바로 틀어서 보았다. 16배속으로 봐도 계속 칸나는 앉아 있기만 했다. 마치 일시 정지를 보는 것 같았다. 가끔 이상한 차림의 사람이 와서 그 구더기 같은 음식을 먹고 가는 것 빼고. 아마 여기는 식당 같았다.
“참고로 말씀드리지만, 저희는 인간에게 식사 대접, 차 대접 그런 것은 일절 없습니다. 하려면 할 수야 있지만, 당신들께서 싫어할 게 분명하기 때문에.”
나는 칸나를 옆으로 더 꽉 조였다. 칸나가 잰걸음으로 내게 붙었다. 여긴 확실히 불온한 기운이 감돈다. 칸나를 이제부터는 절대 놓치지 않을 것이다.
알레프는 의자를 권했다. 사람의 다리뼈를 꺾어서 만든, 보기만 해도 혐오스러운 의자였다. 나는 웃옷을 벗어 그것을 가린 다음에 칸나를 먼저 앉혔다.
“먼저, 할 말이 있겠지?”
“네. 칸나분을 저희 임의로 데려온 건 어쩔 수 없었습니다. 이곳을 우리의 결계로 둘러싼 이상 칸나 영애 같은 순한 마나를 가진 분은 갑자기 나타난 마수에게 잡아먹힐 수 있기 때문이죠.”
“내가 옆에 있을 때는 전혀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됐는데?”
“전혀요.”
알레프는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책상 위로 입이 툭 삐져나오더니 기다란 혓바닥을 둘러쳐 위에 있는 접시를 모두 쓸어서 먹었다.
“이곳에서는 그 어떤 것도 마수가 될 수 있습니다. 물론 에퍼리 당신 정도면 당연히 안 당하겠지만, 칸나 영애는 위험했습니다.”
“…흠.”
일단 그럼 그렇다고 해도 납득이 안 가는 건 있었다.
“왜 굳이 나를 속인 거지?”
“당신을 한번 알아보고 싶었거든요, 어떠한 사람인지. 저희가 당신에 대해 들은 정보는, 제논 왕국을 점거한 이방인들로부터 들은 게 전부입니다.”
“용케 그 평을 듣고도 만날 각오가 생기셨네?”
“전 그들을 믿지 않으니까요.”
그는 내 검을 가리켰다.
“또 당신에게는 저희의 근원이 있지 않습니까. 전 느낄 수 있습니다. 검은 나무에게 당신의 얘기도 많이 들었고요. 사실, 검은 나무는 당신에게 기대를 많이 하고 있었습니다. 아실지 모르겠습니다.”
나는 가만히 다리를 꼬고 그의 얘기를 들었다. 누군가 알레프에게 찻잔을 건네주었다. 딱 봐도 먹기 싫어 보이는 보라색 물이었다.
“조금 긴 얘기를 해도 될까요. 당신의 얘기도 포함해서.”
알레프가 말하자 난 잠깐 손바닥을 들어 그를 막았다. 그리고 칸나를 바라보았다. 칸나는 우리가 한 말 중 절반은 못 알아들었을 테니까. 내가 주환영이라고 불리는 것부터, 모두.
난 칸나를 바라보았다. 칸나를 기절시키려 했다. 왜냐하면, 내 얘기라 하면 이방인 때 얘기였으니까. 난 그녀의 뒷목을 확 쳤지만, 칸나는 비명을 질렀다.
그녀는 눈물 맺힌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뭐 해, 에퍼리? 아프잖아.”
“음. 잠깐만.”
너무 힘 조절을 했나. 더 강하게 쳤지만 칸나는 내 손목을 잡았다. 그녀는 도리어 내 뒷목을 쳤다.
“여기는 인간의 힘을 쓰는 곳이 아닙니다. 영혼의 힘을 쓰는 곳이죠. 그리고 이방인들은 대개 영혼이 약하더군요. 아마, 여기서는 칸나 영애가 당신보다 셀 겁니다.”
그럼 답은 간단하다. 나는 알레프를 바라보았다.
“다시 의식 없애 줘. 미안, 칸나.”
“뭐?”
“그게 편하시다면.”
알레프가 유체화가 되더니 칸나의 입속으로 들어갔다. 칸나의 얼굴이 찡그려졌다.
“에퍼리, 너, 날 의지한다고…….”
칸나는 내게 분노의 눈길을 보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건 내가 짊어지고 가야 할 짐이었으니까. 이 사람들과 공유할 수는 없었다.
곧 의식을 잃은 칸나가 의자 옆으로 쓰러질 뻔했지만, 칸나의 몸을 받쳐서 조용히 바닥에 앉혔다. 난 그다음 다시 사람의 몸으로 돌아온 알레프를 보았다.
“시작할까?”
“그러시죠.”
알레프의 보라색 입술이 열리고, 내 방에 있던 가짜 칸나가 그랬던 것처럼 하나씩 탈구가 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