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7화 검은 무리 (1)
한 사람의 팔다리가 하나하나 탈구되는 과정은 다시 봐도 참으로 역겨웠다. 마치 인간의 오체를 슬라임화한다면 저런 모양이 아닐까 싶었다.
“어디서부터 말해야 할까요. 아니, 이것부터 물어봐야겠군요. 뭐가 제일 궁금하십니까?”
궁금한 건 많았다. 하지만 당장 궁금한 건 이거였다.
“그 끔찍한 꼬라지를 바꿔 줄 수 없을까?”
“당연하지만, 제가 의도한 부분은 아닙니다. 굳이 말하자면, 이방인들의 용어를 빌리자면 홀로그램이라고 해야겠습니다. 오해하지는 마시지요. 전 여기 토박이입니다. 당신 같은 이방인들을 많이 만나 봤을 뿐입니다.”
“그래서?”
쓰레기 무더기처럼 변한 알레프의 몸에서 입술만이 나불거린다.
“조금 어려운 얘기지만, 인간의 인지라는 것에 대해서 얘기하고 싶습니다. 인간은 보통 바퀴벌레를 보면 혐오스럽다고 생각하죠. 하지만 바퀴벌레가 바퀴벌레를 본다고 혐오스럽다고 생각할까요? 아니죠.”
“그래. 그런데?”
“여신의 축복을 받은 요정들을 봤을 때 어떤 생각이 드셨습니까? 아름다웠고 귀여웠죠? 저희는 그것의 반대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저희는 인간이 보기에 가장 혐오스럽게 보이죠. 당연히, 여신의 미움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세계라는 건 여신의 독단으로 조직되어 있는 건지. 교활하며, 심지어 조악하기까지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무섭기도 했다. 사람의 인식을 이렇게 바꿀 수도 있다니.
난 그때 어떤 생각에 미쳤다. 마리나가 리얀에게 행한 것. 그것은 그야말로 여신의 힘과 비슷하지 않은가. 그렇다면… 난 살짝 소름이 돋았다.
“인간도 여신의 힘을 사용할 수 있나?”
“용케 아셨군요. 맞습니다. 원래 인간은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가진 존재입니다. 여신이 인간의 가능성을 막아 놓은 거죠.”
그렇다면 나도 그 힘을 사용할 수 있는 건가? 하지만 의문점이 들었다. 모두가 여신의 힘을 가진다면 세상이 어떻게 될지는 자명하니까.
“무슨 생각을 하시는지 압니다. 옛날 이 세상은 아비규환이었죠. 불행하게도 이 세계에서는 법이 없었을 때 사람들의 마법이 발현됐거든요. 법이 있었더라도 비슷했을 것 같긴 하군요.”
그는 담담하게 말했다. 하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대륙에서 마법이라는 힘이 발현된 날부터 일주일 동안 대륙의 인구 절반이 사라졌습니다. 15억이었죠. 어떤 한 사람은 산봉우리로 가서 산 밑 다섯 개의 도시에 폭우를 일주일 동안 내리게 했답니다. 그 도시에 있는 모든 사람은 익사했죠. 그 이후에 마법을 선하게 쓰려는 사람들과 악하게 쓰려는 사람들이 나뉘고, 마법을 못 쓰는 자들은 도태됐죠.”
“이봐, 우리 지구도 2050년에 게이트와 헌터가 생겨났지만 그렇지는 않았어. 물론 조금의 잡음이 있기는 했지만.”
“저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이방인들에게 기대를 항상 걸었죠.”
알레프는 말을 이었다.
“저는, 그것이 교육의 수준 차이라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거기서는 살인이 금기라죠? 하지만 여기는 달랐으니까요. 살인이 나쁘다고 누구도 알려 주지 않았죠.”
난 알레프의 말이 거짓말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내가 본 인간은 악하다. 난 사실 그렇게 생각한다. 나만큼 인간의 악의를 많이 받아 본 사람도, 많이 봐 온 사람도 없을 것이다. S급 헌터에게 그건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것이었다. 내가 인간 혐오에 걸린 건, 퍽 개연성 있는 현상이었다.
“하지만 이방인들 역시 이곳에 오니 크게 다르지 않더군요. 당신들을 비하하는 건 아닙니다. 나는 정확히 당신네들의 세계를 모르지만, 적어도 당신들의 세상이 우리보다 발달한 세계임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방인들은 보통 우월감을 가지고 이 세계에 임하죠. 아니면 환경에 동화된 걸까요? 뭐, 모르겠습니다. 보통 이방인들 역시 여기서 악하게 행동하는 사람이 많더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날 찾은 건?”
“희망이죠. 잃을 게 없기도 합니다. 저희 검은 무리는 망령들과 같은 존재니까요.”
알레프가 말했다. 그래, 얘기가 빠르게 돌아간다. 나는 그에게 궁금한 걸 물어보았다.
“그래, 검은 무리 너희는 뭐지? 내가 기감을 못 느꼈으니, 내 예상으로는 너희는 사람이 아닌데.”
“사람이 아닙니다. 맞습니다. 저희는 마물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마물이었죠.”
“마물이라도 내 감을 속일 수는 없는데?”
“그러니까 망령이라고 하죠. 저희는 여신에 의해 배제된 자들입니다. 그러니 기감을 못 느끼는 건 당연합니다.”
이름이 없던 건 그 이유였나. 뭔가 하나씩 밝혀지고 있었다.
“그렇다면 검은 나무와의 관계는?”
“검은 나무가 첫 번째로 낳은 마물들이죠. 굳이 따지자면 모와 자의 관계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게 언제인데 아직도 살아 있는 거지?”
“천 년 전이죠. 검은 나무가 만들어졌을 때, 저희는 죽지도 못했고 살지도 못했습니다. 저희는 아직 처리되지 못한 영혼이라고 해야겠습니다.”
대답해 주고는 있지만 답은 안 나오는 느낌이다. 이 세계의 꺼풀은 대체 언제까지 벗겨야 하는 것인지.
“그럼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데?”
“뿌리 깊은 욕망이 처리되어야죠.”
“욕망이 뭔데?”
“여신의 살해입니다.”
나는 의자에서 목을 꺾었다. 그가 내게 원하는 건 여신의 살해였다. 이야기가 어마어마하게 커져 괜히 칸나를 바라보았다. 칸나는 목을 굽힌 채로 새근새근 자고 있다.
“왜?”
“그녀가 저희를 이렇게 만든 장본인이니까요.”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정확히 말하면, 이 세계의 체계를 만든 게 지금의 여신입니다.”
알레프는 잠깐 멈추고 말했다.
“과거에는, 마물들이 없었거든요.”
그와 함께, 이 방으로 많은 마물이 들어왔다. 모두 혐오스럽게 생긴 것들이었다. 마물이니 어쩔 수 없었다. 나는 그들의 면면을 바라보았다.
“인간이었군.”
“맞습니다.”
“그렇냐.”
나는 여기서 내 생각 하나를 더했다.
“여신도 인간이었겠네?”
“눈치가 빠르시군요.”
쉽게 할 수 있는 유추다. 여신이 원래부터 있었더라면 인간들의 가능성을 처음부터 막아 놨을 테니까.
“그러면 너희는 마법에 소질이 없어서 마물이 된 거야?”
“아뇨, 그건 아닙니다.”
알레프는 말했다.
“저희는 마법으로 그들에게 적대했지만 실패했죠. 그래서 마물이 된 겁니다.”
결국 마물도 사람이었다는 얘기다. 너무 잔인한 얘기였다. 죽으면 마물이 된다는 얘기인가.
“죽은 사람들을 마물로 만들었다라.”
“정확히 말하자면 다릅니다. 모두가 그런 게 아니죠. 여신은 사람의 욕망을 경계했습니다. 욕망은 죽어서도 남는 것이거든요. 아마 당신이 이 세계로 온 것도, 욕망 때문에 왔을 겁니다. 욕망이 있으면 전이를 하거나 환생을 하거나 하는 식이니까요. 하지만 이 세계에서 욕망을 가진 채로 죽으면 인간이 아닌 마물로 태어나게 되는 거죠.”
“참, 더러운 얘기네.”
“이건 여신의 생각은 아닙니다. 트라프비체 트라프비체의 생각이죠.”
난 얼굴을 찌푸렸다. 익숙한 이름이 들렸기 때문이다. 트라프비체 트라프비체 대제.
“그는 여신의 수하 중 한 명이었죠. 사실, 이 대륙에 있는 나라의 시조들은 모두 여신의 수하들이었습니다.”
하. 이 세상은 얼마나 꼬여 있는 건지. 나는 손사래를 쳤다.
“그래서 나한테 이런 얘기를 해 주는 이유는 뭐냐? 그리고 제논 왕국에 있는 다른 이방인들이 아닌 굳이 나한테 온 이유는?”
“그들에겐 저속한 욕망밖에 없는 것 같아서요. 이를테면, ‘원죄’라고 할 만한 욕망이 없었습니다.”
“원죄? 스킬 말하는 거야?”
“원죄는 여신이 허락하지 않은 욕망이지요. 당신에게 원죄가 있다면, 당신은 곧 죽어서 마물이 될 겁니다.”
순식간에 너무 많은 정보가 들어왔다. 난 잠깐 알레프의 말을 멈추었다. 칸나는 여전히 자고 있다. 칸나가 이 말을 듣지 못하게 한 건 잘한 것 같다. 자신이 살고 있는 세계가 이런 더러운 이면을 가지고 있다면 아무래도 버티기 힘들 테니까.
“이런. 여신이 눈치챘군요.”
그때 알레프가 말했다. 그와 동시에 커다란 빛이 우리가 있는 검은 공간을 꿰뚫었다. 알레프의 근처에 있던 마물들의 몸에 불이 붙었다.
“이상한 얘기들을 하고 있군요. 요즘 이방인들은 다들 귀가 얇아서 문제라니까요.”
나는 소리가 들리는 위를 바라보았다. 너무 눈이 부셔서 볼 수 없었다. 그저 무언가가 있다는 것만 느껴질 뿐이었다.
“아아. 너무 이방인들을 막 받은 것 같아요. 이러면 곤란하거든요.”
“여신, 오랜만입니다.”
“인사하지 마세요. 당신은 저한테 인사할 급이 아니랍니다.”
알레프가 인사를 건네자 여신은 비웃었다. 여신은 빛을 살짝 가렸다. 그제야 나도 여신을 볼 수 있었다.
그야말로, 모든 아름다움을 총집합한 느낌. 성스러웠다. 하지만 이런 나의 느낌 또한 여신에 의해서 조작이 된 것일 수도 있었다.
“이방인, 당신은 한낱 인간치고 너무 많은 이야기를 들었어요.”
“쟤가 한 말이 사실이라는 걸 자백하는 거야?”
“그게 사실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인간은 계속 뻗어 나가는 존재죠. 당신의 마음에 의심이라는 뿌리가 있는 것만으로도 당신의 죄는 결정된 것입니다.”
그 무슨 부조리한 말일까. 내가 억울함을 토해 내기도 전에 여신은 말했다.
“내게도 제약이 있어요. 당신을 직접 죽일 수는 없죠. 전 그저 세상을 조종할 뿐. 그렇지만 적어도 제가 준 건 회수할 수 있답니다?”
그때, 내 앞에 강제로 스킬 창이 켜졌다.
【고유 스킬: 환영살인마가 분해됩니다.】
그리고 환영살인마에 있던 모든 스킬이 퍼진다. 협상, 역제안, 천리안, 민첩한 움직임… 내가 얻었던 스킬들이 모두 분해된다.
내 수많은 스킬이 스킬 창에서 떠다닌다. 여신은 지구에서 볼 법한 권총을 들었다. 그녀는 안경까지 끼고는 내 스킬 창에 떠다니는 스킬들을 사격하기 시작했다.
팡.
팡.
팡.
스킬들이 하나씩 터져 나간다. 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여신이 맞힌 스킬들은 글자가 분해되어 버린다.
“아, 재밌어.”
여신은 마치 오락실에서 사격하듯 내 스킬들을 계속 사격했다. 곧 내 스킬이 모두 사라지고 말았다.
“하하. 그러니까 왜 이런 얘기를 진지하게 들었어요. 제논 왕국의 이방인들은 사기꾼 냄새가 난다고 바로 검은 무리를 쳐 버렸는데.”
뭔가 어이가 없었다. 그녀는 그냥 변덕이 심한 사람과도 같았다. 여신? 신이란 건 인간의 인지능력을 완벽히 상회해야 했다. 하지만 이 사람은 신이 아니다. 그저 신이 된 인간일 뿐이었다.
스킬들이 사라지자 내 몸에 깃든 모든 것이 사라진 것 같았다. 난 검을 들고 바로 여신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난 높이 날아오를 수도 없었고, 강력한 검격을 날릴 수도 없었다.
여신은 그저 위에서 비웃었다.
“이봐요, 당신. 내 세계에 들어온 순간부터 내 말을 잘 따랐어야죠.”
“지랄한다.”
“예?”
난 백천을 여신에게 조준했다. 내가 이 세계에 속한 사람이고 뭐고 간에, 난 나를 먹이려는 사람들을 놔둔 적이 없다. 이 여신도 나에겐 그냥 사람일 뿐이었다.
그와 동시에 백천에서 검은 기운이 쏟아져 나왔다. 바로 검은 나무가 내 백천에 심은 마기의 핵이었다.
“이건 뭐…….”
“좋은 타이밍이다, 친구.”
검은 나무의 목소리. 마치 그는 잘 훈련된 개처럼 여신에게 달려들어 여신을 감쌌다. 검은 나무의 망령이 붙어 여신이 혼란스러워할 때, 알레프가 날 바라보았다.
“재밌으신 분이군요.”
“유머 감각이 있긴 해.”
“옌시로 가셔서 선한 마법사들의 후예를 만나 보세요. 분명히 도움이 될 겁니다.”
알레프는 내게 말했다.
“제가 도움을 줄 수 있는 건 여기까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