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8화 거울 (9)
마수들은 생각보다 다루기 쉽다. 인간보다 쉽다고 생각한다. 인간에서 부산물의 감정을 떼어 낸 존재. 난 그들의 핵심을 꿰뚫고 있다.
오히려 난 인간과 유리된 존재지, 마수들과 유리된 존재가 아니었다. 인간은 아이리 같은 특별한 사람이 아니면 대화를 나눌 수 없었지만, 마수는 특별하지 않더라도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물론 그렇게 지능이 높지는 않았다. 마치 동물과 의사소통하는 정도. 딱 그 정도였다.
- 배고파?
- 응.
- 나올래?
딱 이 정도였다. 그 정도여도 내가 아파치치를 부리는 건 쉬웠다. 아파치치는 공포라는 감정도 딱히 없었다. 우리와 다르게 터부라는 느낌도 없었다.
아파치치는 나와서 계단에 있는 사람 한 명을 쥐고 뜯어먹어 버렸다. 허리까지 잘린 몸통에서 내장이 울컥거렸다. 사람의 눈으로 보면 잔인했지만 아파치치에게는 그저 음식물처럼 보였을 테다.
“으, 미친 괴물 새끼!”
누군가가 그 잔인한 광경에 욕을 했다. 아파치치의 외피는 흔한 칼이나 스킬로 흠집을 낼 수 없었다.
아파치치는 당연히 그 말을 못 알아듣고 사람을 잡아먹고 있었다. 굳이 말하자면, 이들의 업보였다. 굶긴 만큼 아파치치는 먹을 뿐이었다.
“다들 밖으로 나가!”
사람들은 어떻게든 바깥으로 나가려고 했다. 녹색 모자와 폴라성주라는 귀족은 가만히 있었지만, 그 밑에 있는 사람들은 아비규환이었다.
가뜩이나 지하였고 숨겨진 곳이었기에 출구는 좁았다. 1초라도 먼저 나가려고 앞사람의 목을 치는 건 물론, 넘어진 사람을 일으켜 주려는 노력 또한 당연히 없었다.
“쯧쯧.”
“참으로 안타깝네.”
녹색 모자와 성주는 서로 말을 주고받았다. 아이리와 함께한 말들도 난 듣고 있었다. 난 사실 이제 어느 곳에도 존재할 수 있었고, 어느 얘기든 들을 수 있었다.
“딱히 죄책감은 안 느끼나 봐?”
“음. 글쎄? 네가 하는 게 정의의 단죄처럼 느껴지지 않는걸. 만약 네가 약했다면 난 너를 계속 부려 먹었을 거고, 널 팔아 치웠거나 내 연구 대상으로 삼았겠지.”
녹색 모자는 그렇게 말했다. 난 그렇게 말할 줄 알았다. 원체 사람이란 건 쉽게 변하지 않는다.
“내가 제발 살려 주세요 하면서 과거의 죄를 모두 뉘우치겠다며 너의 발등을 핥아도 네가 내 진심을 알 수가 있나? 그저 내가 연기를 잘하는 것일 수도 있는데. 만약 네가 그렇게 살려 준다고 한들 넌 평생 찝찝하게 살 거야. 언제 네 뒤통수에 칼날이 찍힐지 모르잖아?”
“안다면?”
내가 물었다.
“내가 네 진심을 알 수 있다면 어쩔 텐가.”
진심을 알기는 쉽다, 지금 나에게는. 아무리 무공을 단련해도 눈을 비롯한 급소는 단련하기 어려운 것처럼 사람의 무의식도 단련할 수 없다.
난 당장이라도 저자의 무의식을 뒤집어 놓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건 안 될 소리였다. 그건 사람의 존재 의의 자체를 부정하는 것과 같았으니까. 난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 않았다.
난 그저 대답을 기다릴 뿐이었다.
“음. 너는 뭔가 불가해한 존재구나. 인간이지만 인간이 아닌 느낌이야.”
“그런가?”
“고해성사 하기는 좋겠지만, 난 그런 체질이 아니라.”
“응. 그럴 줄 알았어.”
“넌 이해해 줄 줄 알았다. 꽤 사람을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보여서. 그, 내가 만났던 그 귀족 아가씨하고는 다른 것 같더라니.”
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줄 알았다. 난 그저 아이리가 신경이 쓰일 까 봐 물어본 것뿐이었다. 그녀는 분명 민감할 테니까. 책임감도 느끼고 있겠지, 이 나라의 귀족으로서. 난 아이리를 대신해서 질문해 주는 것이었다.
“만약 다시 산다고 해도 넌 바뀌지 않겠군?”
“그럼. 원래 한 번 밟힌 눈은 잘 쓸리지 않아. 이건 내 고집이 아니야. 내가 바꾸려고 해도 바꿀 수 없는 거니까.”
난 거기서 살짝 비참함마저 느꼈다. 이자는 생명을 올바르게 쓰지 못하고 있었고, 이제 스러지려 한다. 마지막까지 그 올바름이 무엇인지 모른 채로.
“그래?”
나도 그렇게 생각은 하지만. 하지만 이자는 죽어서 마물이 될 거다. 저 아파치치 같은 흉측한.
“어쩔 수 없지.”
내가 지금에 와서 그를 구해 준다 한들 이미 늦었다. 이미 아파치치는 많은 사람을 먹었고, 그 수뇌부에 해당하는 사람을 안 죽이면 오히려 이상한 일이 아닌가.
다만, 조금 걸렸을 뿐이다. 다른 사람들은 저리 살고자 뛰고 있는데 녹색 모자는 살려고 하는 의지도 없는 것 같아서. 그는 그냥 욕망이 없는 사람 같았다.
“…….”
“…….”
우린 서로 인사를 나누지도 않았다. 그런 건 오히려 뒷맛을 안 좋게 남길 따름이다. 성주 역시 가만히 눈을 감고 죽음을 맞이했다.
그들이 길렀던 살인 병기에게서 죽는 건 어떠한 느낌일지 모르겠다. 아마 그들은 아무것도 안 느끼겠지.
난 밖으로 나갔다. 마지막으로 가는 길에 하중을 못 견디고 부들거리고 있는 기둥을 발로 차 주었다. 먼지와 함께 건물이 완전히 내려앉았다. 아파치치는 집의 산 너머, 큰 골짜기로 도망갈 것이다.
* * *
아이리가 하늘을 보니 새들이 마치 시체를 앞에 둔 까마귀인 양 원을 그리며 맴돌고 있었다. 맨 선두에 있는 새는 알파트로스, 가토스 황자였다.
그 새들은 안에서 사람들이 튀어나오면 사람의 목 뒷덜미를 물고 결박해 놓았다. 지능이 굉장히 뛰어난 마수인 것 같았다.
“대단하네.”
아이리는 마수들을 보며 생각했다. 마수들이 저렇게 조직적으로 움직일 줄이야. 어쩌면 마수들의 새로운 가능성이 아닐까.
“마수들도 가르치려면 충분히 가르칠 수 있는 족속이야. 어쩌면 인간보다 더 순수한 상태지.”
“아, 황자 전하.”
“난 지금 황자가 아니야. 그냥 알파트로스네.”
“그렇다고 제가 반말을 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그것도 그렇군.”
대충 밖에 나오는 사람들을 솎아 낸 알파트로스가 아이리 옆에 섰다.
“예프린 라피테스. 동생이 여기 있었던 모양이군. 집을 나간 건 익히 알고 있었네만.”
“네. 저도 이렇게 만나게 될 줄은 몰랐죠.”
“참 세상은 신기한 거야. 좁으면서도 넓고, 넓으면서도 좁지. 기적이라는 게 별건 아니야. 이런 게 기적이지 달리 기적이겠는가.”
알파트로스의 근엄한 말에 아이리는 고개를 숙였다. 그는 어째 유약한 황자 시절보다 지금 시절이 더 굳세 보였다.
“황자 전하도 많이 바뀌신 것 같습니다.”
“자네가 바뀐 것처럼 말이야.”
가토스의 말에 아이리가 갸웃했다.
“제가 바뀌었나요?”
“원래 사람들은 자기가 바뀐다는 걸 몰라. 그래도 마수보다는 좀 낫지. 사람은 적어도 남들이 알려 주니까. 그래서 그걸 알려 주는 사람을 옆에 둬야지. 나는 그런 게 없어서 황제를 못 했을 거야.”
알파트로스를 비롯한 새들이 사람들을 결박해 놓자 폴라성의 근위병들과 시민들이 저택으로 모였다. 어느새 여기는 구경거리가 되어 있었다.
“마수다!”
근위병들은 난리가 났다. 다름 아닌 도시에서 갑자기 마수들이 뛰쳐나왔는데 안 놀랄 수가. 하지만 군대 편제를 잘 모르는 아이리가 봐도 폴라 근위병들은 대처가 미숙하기 짝이 없었다.
“성주님 연락돼?”
“빨리 명령을!”
근위병들은 사분오열하고, 가토스와 눈이 마주쳐 도망치는 병사들도 있었다. 그야말로 군 사기가 아주 가관이었다. 그래도 군을 다뤄 봤던 가토스는 날개로 이마를 쳤다.
“한심할 노릇이군. 이건 성주의 잘못이기도 하겠지. 부패한 지역이라고 대충 듣고는 왔다만.”
그때 건물 안에서 에퍼리가 나왔다. 아이리는 처음 빛 아래서 예프린의 모습을 보는 것이었다. 그녀의 모습은 당연히 꾀죄죄했다. 팔과 다리에는 온갖 상처가 있었고, 머리에는 먼지가 가득했다.
아이리는 바로 예프린, 아니 에퍼리를 안았다. 그녀는 너무 신경이 쓰였던 걸 물어보기로 했다.
“그, 녹색 모자, 그린은 어떻게 됐어?”
“죽었어요.”
에퍼리는 딱 끊어서 말했다. 그녀는 고개를 떨어뜨렸다. 그의 인생에서 비극을 느꼈다면 위선자인 걸까. 자신이 이렇게 순탄하고 윤택하게 살아오며 그런 인생들을 전부 방기하고 있었다는 기분마저 들었다.
하지만 에퍼리는 아이리의 얼굴을 착 붙잡았다.
“아가씨, 뭔 생각을 하는지 알아요. 나도 대충 그런 감정을 느껴서 아니까. 근데, 한 사람이 모두를 구원할 수는 없어요.”
에퍼리는 그렇게 말하고 자신과 녹색 모자가 나눈 말을 알려 주었다. 아이리가 못 물어봤던 그 질문들이었다. 에퍼리가 어떻게 알고 질문했을까. 하긴, 그는 자신의 무의식에 들어왔던 사람이다. 어쩌면 자신보다 자신을 잘 아는 사람일 수도 있었다.
“그렇구나. 그래도 살짝 씁쓸하네.”
“어쩔 수 없죠.”
에퍼리의 말에 아이리는 단념하기로 했다. 너무 자기가 이상론에 빠져 있었는지도 몰랐다. 아니, 확실한 이상론이다.
에퍼리는 오랜만에 만난 가토스 황자와도 인사하려고 했다. 그러나 그 만남은 어쩔 수 없이 방해될 수밖에 없었다. 폴라성의 군인들이 결국 안쪽으로 쳐들어왔기 때문이다.
“여기서 나온 사람인가?”
“네.”
관군은 예프린의 옷차림새를 보고 하대를 했다. 하나, 아이리는 쓸데없는 곳에 시간을 쓰고 싶지 않았다. 바로 옌시로 넘어가야 했으니까.
“잠깐 들렀다 가게.”
그걸 막은 건 가토스의 짧은 말이었다. 아이리에게만 들리게끔 말하는 작은 소리였다. 물론 그 소리가 남들에게 들렸다고 한들 이 새가 말했다고 생각할 사람은 아무도 없겠지만.
“일단, 포박하겠네.”
“왜요?”
근위병들의 말에 아이리가 성을 내었다. 아무리 안에 있는 건 에퍼리의 정신이라고 해도 바깥에 있는 건 예프린의 혹사된 몸이었다. 당장 치료를 받아도 모자랄 터인데, 포박해서 수사까지 하면 얼마나 그 몸이 버텨 줄지 몰랐다.
“제국의 명령으로 포박하는 것이다! 일개 아녀자는 상관하지 말라!”
근위대의 장으로 보이는 사람은 아이리 앞에서 고압적으로 말하고 에퍼리를 포박하려 들었다. 아이리는 바로 에퍼리 앞에서 두 팔을 벌려 막았다.
“이자를 포박하려면 먼저 나를 포박하고 가야 할 것이다.”
“이년이 어디서 반말……!”
근위대장이 아이리를 밀어내려고 할 때, 아이리가 품에서 공작 패를 꺼냈다. 아이리의 얼굴은 이미 살기등등해져 있었다.
“…뭐야?”
“공작임을 증명한다고?”
근위병들이 아이리가 꺼낸 패에 술렁였다. 하나 그녀의 패는 먹히지 않았다. 근위대장이 공작의 패를 내쳐 버린 것이다.
“이런 사기꾼들의 명패를 한두 번 보는 줄 아나? 뭐 해? 다들 포박해!”
그는 시민들이 보는 앞에서 볼썽사나운 모습을 보이기 싫었던지 되레 큰소리로 말했다. 아이리는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그를 보았다. 이건 명백한 귀족 모욕이었다.
“마수와도 야합한 것 같은데, 어떻게 됐는지 다 알아봐야겠군. 이런 오지에 공작이 왜 오나?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근위대장이 버럭 근위병들에게 소리를 질렀다. 하긴, 지금 아이리는 아름답기는 했지만 평민의 옷 그 자체였다. 그러나 귀족인지 아닌지 밝혀지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처리하는 건 예의 없는 일이었다.
그때였다. 갑자기 첩첩이 쌓인 시민들이 반으로 갈라졌다. 시민들이 웅성이기 시작했다. 그 끝에는 누가 봐도 귀족스러운 말을 타고 귀족스러운 복장과 귀족스러운 외모를 한 사람이 있었다. 바로, 이 귀족들의 끝에 서 있는 리얀 트라프비체 황제였다.
아무리 오지 사람들이 몰라도, 황제의 얼굴 정도는 다들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이 위압은 황제만이 풍길 수 있는 그런 분위기였다.
“…황제 폐하?”
근위대장의 멍청한 소리를 리얀은 들어 주지 않았다. 그저 오랜만에 만난 친구를 볼 뿐이었다.
“아이리 공작, 오랜만이군.”
“…황제 폐하를 뵙습니다.”
리얀의 공언에 분위기가 싸늘하게 얼어붙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