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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스판타지로 떨어진 S급 헌터-132화 (132/150)

132화 다른 사람 (3)

사실 S급 헌터들에게 군 입대를 안 시켜 주는 이유는 당연하다. 그야말로 S급 헌터가 국가의 자산이기 때문. S급 헌터 등급이 뜨자마자 뉴스가 나는 건 물론이고 국제 헌터 매니지먼트에서 얼마나 입질이 들어오는데. 이민 권유는 아주 흔한 일이다.

다른 이유는 하나 더 있다. S급 헌터는 굳이 총기를 다루지 않아도 그 자체가 흉기에 가깝다. 총을 쏘는 게 무의미하다.

- 넌 근데 4주 훈련 왜 받냐? 그냥 해외 던전 출장이라고 빠져.

- 비행기 타는 거 별로 안 좋아해요.

구공환 아저씨는 그 4주 훈련 때문에 이민을 진심으로 고민했다고 한다. 내가 무슨 애국자는 아니지만, 그래도 4주 정도는 감내할 만했으니.

그리고 굳이 첨언을 하자면, 난 당연히 20발 만발 출신이다. S급 헌터가 그 정도 신체 능력도 안 되면 등급 반납 해야지.

탕.

내 일발에 바퀴가 터지는 소리가 나며 차가 회전했다. 만약 포장도로였으면 그저 끌리고 멈췄을 것이지만, 여기는 울퉁불퉁한 오프로드였다. 뒤의 마차는 지면 위로 솟아 나온 나무뿌리에 걸려서 뒤집혔다.

“나이스 샷이네요.”

“감사합니다.”

총구에서 매캐한 냄새가 났다. 원 샷 원 킬이네. 칸나는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도 몰랐다.

“뭔 일이 벌어진 거야?”

“특급 사수 출신이야.”

자대에 갔으면 아마 그랬을 거다. 그래도 수류탄 던질 땐 솔직히 쫄리기는 했다. S급 헌터고 뭐고, 내 손안에 폭탄이 있다니까 좀 묘했지. 교관한테 말해서 파란색 플라스틱 수류탄으로 바꿔 달라고 말할 뻔했다. S급 헌터 가오가 있어서 그러지는 않았지만.

“대단하시군요. 역시 에퍼리 님이십니다.”

스프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 근데 이 사람은 날 아는 건가. 만약 사회생활이라면 꽤 굉장한 건데.

“죄송합니다. 편히 모셔야 되는데, 귀빈에게 안 좋은 꼴을 보여 드렸군요.”

스프리는 말했다. 됐어요라고 말하려던 찰나에 그는 말을 덧붙였다.

“아마 더 죄송할 것 같습니다.”

그가 조종하고 운전하는 벽에는 많은 것이 띄워져 있었다. 내비게이터? 레이더? 비슷한 것이 타륜 옆에 있었으니까. 레이더의 점멸하는 점이 우리에게 빠르게 가까워지고 있었다.

“기능이 많아서, 속도 자체는 좀 느립니다.”

“이 정도면 빠른 거죠, 뭐.”

나도 차가 가까워지는 걸 느꼈다. 우리가 레이더가 있는 만큼 그들에게도 레이더가 있을 거다. 레이더 안의 빛이 점점 바뀌고, 우리를 포위하려고 하고 있었다.

“소총으로는 좀 부족할 것 같은데. 그레네이드 런처 이런 건 없어요?”

“…그건 처음 듣는 이름인데요.”

아직 거기까지는 발전이 안 됐다는 건가. 난 아쉬움을 느꼈다. 사실 그걸 사용해 본 적이 없긴 한데, 한번 써 보고 싶은 무기여서.

차들은 이제 우리 시야에 보일 정도로 가까이 와 있었다. 레이더에 잡혔던 대로 우리를 포위하는 듯이 오고 있었다.

내가 가늠자를 다시 보고 소총을 들려고 하자 스프리가 말렸다.

“여기까지 왔으면 괜찮습니다.”

“뭐가요? 완전 여기 숲 중심인데?”

내 말대로 여기는 건물 하나 없었다. 그저 나무와 숲만이 울창한 곳이었다. 이딴 곳에 어떻게 차를 타고 들어왔나 싶을 정도였다.

“아직 내리지는 마시죠. 상황이 곧 정리가 될 겁니다. 정리가 다 되면 제가 문을 열어 드리겠습니다.”

스프리의 이해할 수 없는 말에 난 일단 기다리기로 했다. 기다리는 건 그렇게 어렵지 않으니까. 하나 우리를 포위하려는 차들은 계속 거리를 좁혀 오고 있었다. 난 그때 나무의 구멍에서 총구 하나가 나오는 걸 봤다. 총구를 봤다기보다는 총구에 비친 빛을 본 것이다. 그만큼 그건 우연이었고 은밀했다.

푸슉. 푸슉. 푸슉.

나무의 구멍에서 총구들이 하나둘씩 나오기 시작하더니 저격을 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우리를 감싼 게 아니었다. 이쪽이 그들을 감싸고 있는 것이다. 여러 군데에서 정밀하게 쏟아지는 총탄의 세례에 차는 급하게 회전을 해 후진하기 시작했다.

거의 다 잘 도망갔지만, 어떤 차는 엔진에 총이 맞았는지 폭발하기도 했다. 갑자기 마나와 스킬이 난무하던 판타지 세계에서 화약 냄새 나는 화기 전장으로 오니 나도 정신을 못 차릴 지경이었다.

“상황이 끝난 것 같군요. 내리시죠.”

“음. 아직 무슨 상황인지는 모르겠지만, 저들은 또 누구죠?”

“들어가서 설명해 드리도록 하죠.”

“에퍼리, 그것보다.”

칸나가 내 어깨를 잡고 손가락을 흔들었다. 난 그녀가 처음에 뭘 말하는지 몰랐다. 아, 맞다. 지금 이건 내 몸이 아니지. 왠지 그렇게 생각하니 다시 좀 부끄러워지기 시작했다.

맹세코 말하건대 난 변태가 아니다. 다만 좋아하는 사람의 나신은 상상되기 마련이라고 생각한다. 아주 평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그녀의 동의가 필요한 일이겠지. 난 명백히 옳은 말을 하고 있는 이성과 변태 같은 감성의 싸움을 관망했다. 다행히 칸나가 옆에 있어서 이성이 이겼다.

“…하하, 까먹을 뻔했네. 음, 그래야지.”

“그래.”

칸나가 날 살짝 경멸하듯이 본 것 같은 건 착각이었을까? 우리가 대화를 나눌 때 스프리는 풀숲을 뒤지고 지하로 향하는 문을 열었다.

“들어오시죠. 귀빈을 모시게 되어 정말로 반갑습니다. 아, 대신 저 종자는 다릅니다.”

“뭐가 달라요?”

“기밀이 좀 많은 곳이라서, 서약서를 좀 써야 하거든요.”

참 나. 하긴, 딱 봐도 이런 숲 중앙에 기지가 있다는 건 뒤가 구리다는 거겠지. 정확한 옌시 내 역학 구도에 대해서는 안에서 알아봐야 할 것이다.

“…으, 끝났어?”

“네.”

“별일 안 했지?”

아이리는 깨자마자 옷깃을 저몄다. 살짝 상처인데. 아이리는 칸나에게 돌아서서 무언가를 속삭였다. 안 들어 봐도 뻔하다. 내가 아이리의 몸에 들어가서 뭘 했냐 이거지. 아무것도 안 했다니까. 귀에다 대고 소리를 지르고 싶네.

“들어오시죠.”

스프리는 땅의 문을 열더니 우리를 안내했다. 계단이 좀 높기는 했지만 전등이 있어서 위협적이지는 않았다. 심지어 손잡이도 있었다.

“이건 마력구인가요?”

“전구입니다.”

“…전구?”

“전기를 생산해서 만든 거죠.”

“그게 가능한 건가요?”

아이리는 신기한 물건에 여러 가지를 물었다. 하긴, 그녀의 입장에서는 이런 과학의 산물들이 신기하게 보일 법도 하다. 칸나도 말을 안 했다 뿐이지 이곳저곳을 둘러보았다.

“그런데 외무대신이면 공직자 아닙니까? 공직자가 무슨 레지스탕스처럼 이렇게 굴을 파 놓고 삽니까.”

“음. 현재 우리 나라가 좀 갈라져 있어서요. 사정이 많습니다.”

“하긴, 사정이 없으면 누가 이렇게 총질을 하진 않겠죠.”

“그 부분에서는 거듭 사죄를 드립니다.”

사과받으려고 한 말은 아니었는데. 그는 나를 너무 극진하게 대해서 탈이었다. 부담스러울 정도로.

부담스러운 건 더 심해졌다. 우리가 오자마자 모든 사람이 우리에게 부복했다.

“귀한 손님을 모십니다, 에퍼리 님, 칸나 님.”

여기서도 아이리는 완전히 논외시되고 있었다. 아이리는 그래도 공작인 걸 떠나서 신성력을 갖추고 있는 성녀인데. 제국에서나 성녀지 옌시 왕국에서는 안 쳐 준다 이건가. 그래도 뭔가 소외받는 기분이었는지 아이리는 살짝 침울해 보였다.

“괜찮아요.”

“동정하는 거 아니지?”

“그럼요.”

나는 아이리를 대충 동정하고 이곳을 둘러보았다. 가이드는 당연히 스프리였다.

“도착지가 이곳인가요? 지도에서 봤을 때는 한참 가야 할 것 같던데.”

“이제부터는 땅굴로 움직일 거라서요. 그곳과도 연결되어 있습니다. 아마 바깥으로 나다니면 아까보다 더한 상황이 연출될 겁니다.”

“아, 그렇긴 하겠네요.”

“여기는 지하 도시 승동이라고 합니다.”

“도시 이름도 있나요?”

난 그것보다 제일 궁금한 걸 묻기로 했다.

“그나저나 검은 무리, 아니 그 옛 친구들에게 무슨 말을 들었기에 이렇게 다들 저희를 극진하게 대하는지 모르겠네요.”

“당신들은 우리가 도달하려는 목표이고 근원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근원에 가까워진 존재죠. 저희가 지켜야 하는 건 당연합니다.”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조금 더 쉽게 말하자면?”

“현재 옌시엔 신성파와 반신성파가 있습니다. 사실 여신이 우리를 버렸다고 해도, 우리는 나름의 사회를 구축해서 잘 살고 있었죠. 근데 기술이 발전하게 되면서 신의 힘이라는 스킬을 넘보게 된 겁니다. 스킬은 우리 몸속에 내재되어 있는 힘입니다. 옌시인들은 그걸 제약받고 있죠. 우리는 스킬과 과학을 조합하려는 시도를 계속했습니다.”

스프리는 복도에서 마주친 아이의 머리를 인자하게 쓸어 주고 말을 이었다.

“결국 우리는 인간의 눈으로 볼 수 없는 유령을 볼 수 있게 됐고, 신성을 침범하게 됐죠. 거기서부터 파가 갈라지기 시작한 겁니다. 더 이상 신을 자극하지 말자는 신성파와 이 기술을 가지고 여신과 대등하게 서자는 반신성파로 나뉘게 됐죠.”

“…근데 이런 말 다 해도 돼? 다른 사람들도 다 듣고 있는데.”

너무 개방된 공간에서 이런 얘기를 크게 크게 하니 난 좀 부담스러웠다. 하나 스프리는 뜻밖의 말을 했다.

“우리는 제국과 다르게 과거의 역사 교육을 제대로 하고 있습니다. 그건 우리 선조들의 강력한 의지였죠. 여신도 하나의 대륙에 해당하는 사람을 전부 죽일 정도의 힘을 이 세계에 작용할 수는 없으니까요. 물론 그래서 스킬을 못 읽게 되는 제약을 받게 된 것도 있겠습니다.”

“그러니까 검은 무리, 아니 옛 친구, 고대에 있었던 스킬을 가진 사람들의 파벌 싸움, 이런 것들을 알려 준다는 얘기네.”

“비극적인 얘기니까요. 역사는 비극적일수록 교훈을 더 많이 줍니다.”

아이리와 칸나는 머리가 핑글핑글 도는 듯했다. 우리는 그저 스프리를 찾아서 걷는 게 전부였다. 확실히 도시라고 칭하는 만큼 물건을 파는 곳도 있었고 집도 있었다.

지하에 있다 보니 공기는 별로 안 좋게 느껴지지만, 그래도 전등이 여러 군데 있어서 어둡다고 느껴지지는 않았다.

우리는 곧 레일이 깔린 갱도 같은 곳에 섰다. 무슨 광부들이나 탈 것 같은 느낌인데.

“이곳이 정류장입니다. 곧 기차가 올 겁니다.”

“기차도 있어요?”

“지하 도시가 꽤 넓습니다.”

재밌게도 지구의 버스 정류장처럼 배차 간격이 적혀 있는 표가 있었다. 아이리와 칸나는 마치 해외여행을 처음 온 사람들처럼 이리저리 구경하기 바빴다.

곧 칙칙폭폭, 철컥철컥 하는 소리가 들렸다. 어둠 속에서 기차가 속도를 서서히 줄이며 섰다. 기차의 문이 연기를 뿜어내며 열렸다.

“타시죠.”

“뭐, 교통비 이런 건 필요 없죠?”

“귀빈이신데요. 다 저희 쪽에서 처리하겠습니다.”

나와 칸나가 타고, 아이리도 뒤따라서 타려 하자 스프리가 팔을 뻗어 막았다. 아이리가 무슨 짓을 하냐는 식으로 스프리를 바라보았다.

“귀빈은 여기까지. 당신은 돈을 내셔야 합니다. 저희 경제가 지금 만만치 않거든요. 연구비로 꽤 많은 비용이 나가는 상태라.”

“…참 나. 뭐, 얼만데?”

“금화 하나만 주시죠.”

“미친, 양아치야?”

나도 여기 물가를 좀 아는데, 확실히 기차 편도가 금화 하나면 양아치가 맞기는 하다. 그거면 보름을 편하게 살 수 있는 돈이니까.

아이리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면서도 금화를 지불했다. 스프리는 싱긋 웃으며 금화를 받고 가슴의 품에 넣었다.

“근데 왜 굳이 지하야? 그냥 지역 하나 잡아 가지고 거길 거점으로 삼지.”

“음. 여기가 연구하기 좋은 지역이거든요. 세상의 근원과 가까이 있어야 하니까요.”

“세상의 근원이요?”

아직 내가 이 세계에 대해 모르는 게 좀 있는 모양이었다. 기차가 갱도를 향해 달린다. 확실히 위험성이 있는지 그렇게 빠르지는 않았다. 한 시속 50킬로 정도 되는 것 같은데.

전철은 우리가 아는 지하철처럼 네모난 칸이었지만 꽤 좁았다. 하긴, 금화 한 장이 통행료인데 누가 쓰겠어. 이것에 탄 사람은 우리밖에 없었다.

바깥은 구경거리도 없었다. 하긴, 지하철을 타면서 바깥 창문을 봐서 뭐 하는가. 그때, 내가 건 목걸이 두 개가 흔들거렸다. 찰랑찰랑찰랑. 난 직감적으로 무언가 또 다가오고 있다고 느꼈다.

- …예, 차장입니다. 현재 30m, 30m 전방에 마력 난기류가 감지되고 있으니 잠시 정차합니다. 불편을 끼쳐서 죄송합니다. 여행을 즐겨 주시길, 아니 앉아 계시는 걸 즐겨 주시길 바랍니다. 다시 한번 사과드립니다. 이상.

참, 뭔가 묘한 세계인 것 같다. 하나 난 이 목걸이의 진동만으로도 느낄 수 있었다. 저 마력의 난기류가 뭔지는 몰라도 이 목걸이가 반응을 하고 있다는 것. 그게 중요했다.

“잠깐 나가 봐야겠는데요?”

“뭐? 어디 가?”

바로 아이리가 날 선 말을 했지만, 난 바로 말을 정정했다.

- 난기류와 충돌합니다. 충돌에 대비하세요.

차장의 방송과 함께 나는 씩 웃었다.

“나갈 필요는 없겠구나.”

왜냐하면, 저들은 곧 지하철 창문을 깨부수고 들어올 테니. 내 예상이 정확하게도, 그들은 창문을 깨부수고 우리에게 돌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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