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3화 다른 사람 (3)
이게 무슨 비행기도 아니고, 전철에 무슨 난기류인가 싶었다. 하지만 확실히 주변에서 마나의 흐름이 격하게 느껴지고 있었다.
창문을 깨고 들어온 건 일단의 사람들이었다. 사람들은 이상한 검은 가면들을 쓰고 있었다. 스프리는 허리춤에서 작은 권총을 꺼내어 그들에게 즉각 발포했다. 그들은 능숙하게 권총을 막아 냈다.
어떤 이는 방탄 우산을 폈고, 어떤 이는 총을 검으로 베었다. 모두 심상치 않은 움직임이었다. 그들은 분명히 능숙했다. 아이리 또한 검을 들어 그들에게 맞섰다. 잠깐의 대치 상황이 벌어졌다.
“스프리 양반, 지금 자네 옆에는 그 에퍼리라는 잡종이 있겠지? 그에게 전해, 제발 조용히 하고 살라고.”
“우리의 귀빈에게 못 하는 소리가 없군.”
아마도 나와 칸나는 저들에게는 안 보이는 모양이었다. 특별하게 뭘 처리를 해야 볼 수 있는 건지.
“지금 너희가 하려는 일이 얼마나 큰일을 불러일으키는지 모르는 건가? 여신의 심기를 건드린다는 의미를 모르지는 않을 터.”
“우리가 하려는 건 혁명이다. 너희 같은 무지렁이들은 모르지.”
“무지렁이? 넌 거대한 힘이 뭔지 몰라. 그건 한낱 인간으로는 못 막는 성질의 것이야.”
저들은 아마도 신성파인 모양이었다. 자동차로 추격전을 벌인 걸로도 모자라 이렇게 나를 막고 싶은 듯했다. 하나 이 지하 도시는 반신성파의 근거지였다. 이렇게 시간을 끌면 당연히 사람들이 몰려오기 마련이었다.
곧 땅이 흔들리는 소리와 함께 사람들이 몰려왔다. 그 사람들은 안전모와 낫, 곡괭이들을 들고 있었는데, 반신성파 측 갱도에서 노동을 하던 노동자들 같았다.
“어디 우리의 귀빈님들을 해하려 드냐!”
“여신의 졸개 새끼들아!”
그들은 변변찮은 무기도 없었다. 우리가 지하철 중앙에 있고, 우리를 감싸는 신성파 사람들 그리고 그들을 감싸는 반신성파 노동자들이 하나의 띠를 이루고 있었다.
신성파 사람들이 곤혹스러워하는 게 느껴졌다. 그들은 민간인들을 해치고 싶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난 그들의 움직임을 보았다. 잠깐의 방어 동작이었지만 그건 완벽한 고수의 동작이었다. 지구로 치자면 명백히 S급 헌터급의 사람들이다. 어디서 이런 사람들이 떼거지로 나왔는지는 모르겠지만.
“너희 때문에 나라가 분열됐다는 생각도 못 하나? 여신이 우리에게 간섭하지 않으면 우리는 평탄한 생활을 유지할 수 있다. 너희가 괜히 여신을 자극하여 이런 파탄을 만드는 거라고 예상하지 못하나?”
신성파 사람들의 두목으로 보이는 사람이 나왔다. 아까 제일 능숙한 것으로 보였던 사람이다. 뜻밖에도 목소리는 여자였다. 몸도 아주 작았다.
“원래 세상으로 돌리려는 것뿐이다. 그건 선조들의 바람이다. 너는 그러면 저기 인간을 몰살하는 데 협력한 제국의 후예들이 스킬을 받고 편하게 사는 걸 용납할 수 있다는 말이냐?”
“우리는 대신 과학을 만들어 냈다. 인간은 늘 답을 찾는 종족이다. 스킬이 없어 우리는 어렵게 살면서도 느리지만 충분히 발전할 수 있었다.”
신성파의 여자는 그렇게 말하고 물건 하나를 꺼냈다. 그 물건은 청소기같이 생긴 이상한 물건이었는데, 그 물건을 꺼내자마자 스프리의 얼굴이 변했다.
“칸나 님, 에퍼리 님, 도망치십시오!”
하지만 그 경고는 너무 늦었다. 난 곧바로 스프리의 말대로 뒤로 멀찌감치 물러났지만, 그 흡입기는 칸나를 빨아들였다. 칸나의 형체가 빨려 들어가 청소기 안으로 쏙 사라지고 말았다.
“…하나밖에 안 걸려들었군.”
“결국 금지된 기술을 쓰는구나. 선신께서 노할지어다.”
스프리는 이를 갈았다. 나는 목걸이가 강하게 진동하는 걸 느꼈다. 이 목걸이가 무슨 일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분노하고 있다는 건 알았다.
그들은 바로 빠져나가려고 했다. 하나, 이제 나도 그들을 막아설 수밖에 없었다. 칸나를 이렇게 허무하게 도난 맞을 수는 없으니까.
이 크리스털 목걸이는 대체 어떻게 쓰는 걸까. 나는 이 목걸이가 어떤 역할을 하는 건지도 몰랐다. 다만 그들과 교류를 할 수는 있었다. 그들이 감정을 드러낸 건 처음이었다. 난 그들이 대체 뭐 하는 것들인지 몰랐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면 이상한 점이 많았다.
대제가 어째서 가지고 있었는가? 대제는 어째서 우리에게 목걸이를 나눠 줬는가? 왜 목걸이는 망령인 나한테도 걸릴 수가 있는가?
“목걸이야, 넌 대체 뭐 하는 놈이냐?”
안에 있는 화염과 물의 소용돌이가 흔들린다. 그들은 분명 뭔가 아니꼬운 모양이었다.
나는 뭔가 경계를 할 수밖에 없다. 저 청소기는 유령들을 빨아들이는 작용을 하고 있었다. 내가 멀찌감치 피하지 않았다면 나도 끌어당겨졌으리라.
“…너희가 뭐 하는 녀석인지는 모르겠지만, 그게 만약 칸나를 완전히 먹어 치웠다면 각오해야 할 거야.”
내가 간과한 게 또 하나 있다. 바로 아이리의 분노였다. 그녀에게는 확실히 칸나가 사라진 것처럼 보였겠지. 하지만 나는 칸나를 느낄 수 있다. 칸나는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
“그저 보관을 해 둘 뿐이다. 너희가 사회의 질서에 반하는 행동을 하는 거니까.”
“그걸 어떻게 믿지?”
“못 믿으면 말고.”
신성파의 사람은 비웃었다. 물론 아이리가 검을 대고 붙으면 3초도 버티지 못할 거다. 하지만 아이리에게는 다른 힘이 있었다.
그녀의 몸에서 빛이 나왔다. 바로, 신성력이었다. 그야말로 거대한 신성력이었다. 아이리의 분노를 알 수 있는 힘이었다.
“신성력이군.”
“…성녀인가?”
나는 이게 약간 애매한 상황이라는 걸 알아차렸다. 아이리는 당연히 생각지 못했을 거다. 신성파와 반신성파에 대해 낯설었고, 칸나가 눈앞에서 사라졌다는 것에 대해서 충격을 받았겠지.
하나 난 정확히 알아냈다. 스프리를 위시한 반신성파 사람들은 여신을 싫어하고 타도하려 한다. 근데 성녀는 여신에게 힘을 부여받는 사람이다. 이 모순적인 상황을 어찌하면 좋을 건가.
그때 목걸이가 또 난리를 쳤다. 신성력에도 이 목걸이는 반응을 하고 있었다. 이 목걸이는 불편한 것도 참 많은 듯했다.
하나 아이리와 신성파 사람들은 내 목걸이를 무시하고 서로 힘을 무지막지하게 끌어내고 있었다. 아이리의 신성력과 신성파 사람들의 힘이 극점에 다달았다.
아이리의 신성력이 얼마나 강한지는 애초에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마리나의 신성력을 전부 받았으니까. 하나, 내가 놀란 건 신성파 사람들의 힘이었다. 그들은 하나하나 놀라울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었다.
“아가씨, 그만하세요!”
내가 말려도 이제는 서로 힘을 가누지 못할 지경에 이르렀다. 그들은 힘을 꺼냈고, 부딪쳐야 했다. 하나 아이리는 몰랐다, 자신의 힘이 얼마나 강력한지를.
분명 아이리의 신성력과 저들의 힘이 부딪친다면 굉장한 폭발을 일으킬 게 당연했다. 여기가 지하이고 주위를 많은 평범한 사람이 둘러싸고 있다는 걸 감안하면 엄청난 피해가 동반될 게 뻔했다.
“먼저 칸나를 내놔!”
“신성력이나 줄여, 미친년아!”
그들 역시 이제 자신들이 가진 힘을 알아차린 것 같았다. 그러나 누가 먼저 그만둬야 할지 모르는 모양이었다. 이대로 가면 완전 폭발이다. 내가 아무리 사람들을 향해 방어막을 펼친다고 한들 전부를 구해 내지 못할 거라는 판단이 들었다.
“힘을 줄여!”
“내놔!”
점점 힘이 커질수록 치킨 게임은 극단으로 치달았다. 언제 폭발할지 몰랐다. 서로가 주저하고 있었다.
아이리는 칸나를 보관하고 있다는 말을 믿을 수 없었고, 신성파의 사람들은 아이리가 파괴적인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 리가 없었다.
“인간을 벗어난 힘은 결국 대가를 치르기 마련이야.”
신성파의 사람이 아이리에게 말했다. 서로가 힘을 줄이는 걸 주저해서 걷잡을 수 없게 되었다. 아이리는 나중에는 힘을 줄이려고 했지만, 이미 세상 바깥으로 나온 신성력은 어찌할 수가 없었다.
“…미친.”
아이리도 나중에는 이 힘의 거대함을 알고 숨기려고 했지만 실패했다. 그녀의 입에서 전혀 나올 것 같지 않던 욕이 나왔다.
곧 신성력이 폭발하고, 신성파 사람들은 역시 모아 뒀던 힘을 방출했다. 거대한 힘 둘이 맞선 폭발력이 거대한 바람을 일으켰다.
쩌적 하는 소리와 함께 내 목에서 크리스털이 갈라지는 소리가 났다.
크리스털에서 나오는 힘은 내가 지금까지 살아오며 느꼈던 그 무엇과도 닮지 않았다. 목걸이가 깨지면서 내 안에 거대한 폭풍이 일었다.
그러나 그 힘은 날 잡아먹지도 않았고, 다른 힘들과 충돌하여 더 큰 폭발을 일으키지도 않았다. 그건 모든 걸 잠재우는 힘이었다. 아이리가 뿜어낸 신성력과 신성파 사람들이 쏟아 낸 힘이 한순간에 소멸하고 말았다.
나도, 신성파 사람들도, 아이리도 이런 결과가 나올 줄 몰랐다. 그저 이 목걸이는 거대한 힘에 반응한 것이다. 마리나가 내게 이 목걸이를 간직하고 있다가 준 건 이런 상황을 예상해서였을까?
이 힘의 정체를 아는 사람은 아마 스프리뿐인 것 같았다. 그는 갑자기 내게 바싹 엎드렸다.
“위대함 앞에 경의를 표합니다.”
난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몰랐다. 모르는 건 신성파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폭발의 풍압에 망토와 가면이 벗겨진 채였다.
하나 그들의 표정보다 눈에 띄는 건 그들의 얼굴이었다.
왜냐하면 그건 정말 오랜만에 보는, 낯익은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맨 앞에 서 있던 그들의 리더를 보고 나는 혼잣말을 했다.
“…채린이?”
내가 사람을 잘못 봤나 싶었다. 하나 특유의 똥 씹은 표정은 쉽게 흉내 낼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물론 내가 아는 S급 헌터 정채린은 중학생 S급 헌터였다. 하나 지금은 꽤 커 보였다. 한 20대 초반 정도? 그래도 별로 달라진 건 없었다.
“뭔 힘이야?”
“몰라.”
정채린은 어처구니없다는 웃음을 짓고 다른 사람들을 보았다. 다른 사람들 역시 내가 어느 정도 안면이 있는 한국의 S급 헌터들이었다.
이해할 수 없는 바도 아니었다. 제논 왕국의 S급 헌터들 얘기를 들어 보면 지구는 망했다고 했으니까, 그들 역시 여기에 떨어진 거겠지. 하나 그들이 왜 신성파인지는 전혀 모를 일이었다.
“…뭐야, 주환영 아저씨?”
“어?”
신성파 사람들, S급 헌터들이 내게 아는 체를 했다. 나는 내 목 아래를 바라보았다. 흐릿하지만 내 몸이 보였다. 대체 무슨 조화가 이루어진 건지 모르겠지만, 내 몸이 다른 사람에게 보이는 모양이었다. 내 몸에는 크리스털 목걸이에서 빠져나온 힘이 감돌고 있었다.
대체 왜 보이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잘됐다. 지금 상황을 타개할 사람은 나밖에 없었으니까.
하지만 갑자기 걱정이 됐다. 갑자기 왕공학이 내게 한 말이 기억났기 때문이다. 그는 지구의 멸망이 나 때문이라고 했다. 그들 역시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닐까.
내가 그 생각에 멈칫할 때, 정채린을 비롯한 사람들이 내게로 달려들었다.
“아저씨, 여기 있을 줄 알았어.”
정채린이 나를 먼저 끌어안았다. 갑작스러운 포옹에 난 얼떨떨했다. 난 좀 당황스러웠다. 그보다 당황스러운 건, 아이리의 얼굴이었다.
아이리는 정채린이 날 안자 아까만큼 짜증 난다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녀의 표정은 싸늘하다 못해 얼음장이 깔린 것 같았다.